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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칼리스투스의 말에 드낙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자기가 뭔데 중요하다 안 중요하다고 말하는 거야?’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참자.’
하지만 이내 인내심을 발휘했다. 현재 드낙은 ‘의문의 신성력’ 때문에 생존력이 바짝 서 있었다. 중립신의 세뇌 여파도 뜨끔할 정도로 놀라서 깊은 곳으로 들어간 상태.
그는 인내심을 발휘할 줄 아는 자가 된 상태였다.
“계속 말해보라.”
듣고, 논파한다.
그런 드낙의 태도에 칼리스투스와 다른 타락 엘프들 그리고 디아볼로스들이 눈을 빛냈다.
‘성공했다.’
말 그대로 성공이나 다름없었다. 드낙이 일단 이야기를 들으면 반드시 성공한다고 여겼다. 그만큼 변명을 많이 준비했다.
일단 가장 먼저 하나를 쑥 집어넣었다.
“타락 엘프보다 디아볼로스가 더 많은 업을 반마반신께 드립니다. 그렇기에 배양소에서부터 타락 엘프를 디아볼로스로 만들어서 최대한 빨리 권속 악마로서의 격으로 올린 것입니다.”
드낙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후후.’
엘프들이 눈웃음지었다. 드낙으로서는 저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었다. 굳이 간섭을 하지 않아도 이득인데, 왜 그걸 고치려고 하는가? 만약 그런데도 그만두라고 한다면 그건 쓸데없는 짓이었고, 자신의 이득을 포기하는 꼴이었다.
하지만 드낙은 정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놈들, 헛짓거리를 하고 있었구나.’
큰 오해를 하는 걸 드낙이 먼저 알아차렸다. 상대 엘프들은 드낙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기 전에 미리 선수를 쳐서 자신의 의견을 뱅글 돌리게 하려고 하고 있었다.
조삼모사의 격처럼, 드낙이 먼저 말하게 놔둔다면 이를 번복하기 어려워진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말하기 전에 미리 방해해서 설득해야 했다. 입 밖으로 나온 것과 나오지 않은 것의 차이는 크다.
특히나 권력자라면 더더욱 자신의 입 밖에 낸 것에 집착하기 마련이었다.
드낙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그동안 한 태도가 문제였다.
드낙이 일단 말을 맞춰줬다.
“하지만 타락 엘프들이 이렇게 많은데 굳이...?”
“태어나는 이들이 오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그들이 시작부터 디아볼로스라면 능히 이 사회가 정체된 사회가 아님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평등보다 더한 공정한 사회인 것입니다. 늦게 태어난 만큼 적응하기 힘들지 않겠습니까.”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드낙은 엘프들의 노림수가 뭔지 알 수 있었다.
‘헛허하...’
헛웃음을 속으로 지었다.
‘이놈들, 신이 되기 싫어하는구나.’
대화하지 않았을 때는 서로 오해하고 있었지만, 대화하면 자연스럽게 그들과의 오해가 풀렸다. 그 덕에 드낙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가는 길, 틀리지 않았다.’
그런 위안이 존재했다. 신이 된다는 것은 곧 독립한다는 의미였고, 다른 차원으로의 개척을 의미했다. 그리고 엘프들은 그런 개척을 하고 싶지 않다고도 해석 가능했다.
“됐다.”
드낙이 칼리스투스의 말을 끊었다.
“너희의 생각 아주 잘 들었다. 솔직하게 서로 이야기하자. 너희, 신이 되기 싫은 거냐?”
“......”
웅성거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것처럼 침묵했다. 마치 드낙의 역린을 건드렸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빨리 말해라. 엘프신이 되기 싫은 거냐고 물었다. 예스 or 노.”
모두 난색을 보이기 바빴고, 드낙은 칼리스투스를 보고 있었다.
“다른 차원으로 독립하는 것이 힘들고 어려워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내 칼리스투스가 진실을 이야기했다. 드낙이 한숨을 푹푹 내쉬는 연기를 했다.
“에휴...에효...내가 너희를 얼마나 신뢰하고 있었는데...하아...”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고, 엘프들의 마음도 크게 무거워졌다. 돌덩이가 가슴 속에 들어온 것처럼 답답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들 대부분은 젊은 엘프들이고, 갓 태어난 엘프들이다. 하나같이 드낙의 은혜를 통해서 썩은 엘프들에게서 해방을 맞이하고 진정한 자유를 얻었다. 그런데 드낙이 원하는 <엘프신>이 되려는 자 하나가 없었다.
자신들을 구원한 자의 기대를 철저하게 붕괴시킨 것이나 다름없었다.
“좋다. 알겠다. 너희의 의견을 수용해주마.”
“바, 반마반신이시여...”
엘프들이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드낙이 자신의 고집을 꺾은 것이다. 감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너희의 피를 아낌없이 나한테 집어넣어라. 그렇게 해서 초월자가 되는 걸 막아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제는 숨기지 않고 거침없이 하이킥을 넣듯이 드낙에게 업을 때려 박아넣을 수 있게 되었다. 디아볼로스에게는 큰 이득이었다.
“하지만 태어나는 이들은 타락 엘프인 채로 남겨둬라. 어차피 디아볼로스는 이제 마음껏 나한테 업과 피를 주면 되잖아?”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모두가 일제히 대답했다. 그 함성이 공기를 흔들어대었다. 드낙은 굳은 표정으로 일어나 엘프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듯이 자중을 둘러보았다. 모두 환호성을 내지르는 것을 멈추고 드낙을 바라보았다.
“걱정할 것 없다. 엘프신이 나오지 않아도, 내가 너희를 지켜주겠다. 내가 너희의 신이 되어주겠다. 그리고 만약 그게 부족해지고 힘들어진다면 그때 엘프신을 당선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드낙은 악랄한 떡밥을 던졌다. 엄청난 책임을 지게 될 엘프신에 대한 떡밥은 엘프들의 간을 콩알만 해지게 만들었다. 특히 칼리스투스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만약, 드낙이 엘프를 관리하는 데 힘이 많이 든다고 생각한다면? 그때는 그냥 깡패가 되는 거다. 강제로 칼리스투스나 다른 재능있는 디아볼로스나 희생자가 된 타락 엘프 하나를 덜컥 엘프신으로 만들지도 몰랐다.
“엘프들에 대한 염려가 전혀 없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모두 알아서 잘하겠다고 말하자 드낙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콰르릉! 번쩍!
그리고 단번에 리고 표절 벼락을 통해서 다른 곳으로 향했다. 엘프와의 일은 너무나도 쉽게 끝났다. 그 덕에 드낙은 엄청난 양의 업이 들어올 것을 직감했다.
엘프끼리 서로 카드 돌려막기를 하듯이 집어넣던 업의 양은 실로 거대했다. 너 먹어, 너 먹어 거리던 엘프 유동 업들은 막대한 양이 축적되어서 흐르고 있었는데 그게 오롯이 드낙에게 스며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드낙을 악마로 꽃피우게 만들지는 못했다. 압도적인 양이었지만, <각성>을 하기에는 부족했다. 신격의 획득은 그만큼 힘이 들었다.
‘부활하는 것보다는 신이 되는 게 힘들다는 소리지.’
불합리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필멸자로 태어난 것을 탓해야 했다. 드낙은 그대로 지하 연합에게로 향했다. 그들로부터도 업과 피를 받고 있지만, 더 많은 피가 있어야 했다.
그래야 최대한 단기간 내에 반마(半魔)에서 악마(惡魔)가 될 수 있었다.
‘세계를 속인다.’
관측에서 벗어난다.
그 순간, 드낙은 파동으로 존재했다.
단번에 남부 왕국의 서부 끝자락에 존재하는 <검은 돔>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모든 뿔쥐가 그를 찬양하며 노래를 불렀다. 그저 등장만으로도 드낙은 환영을 받았다.
“뜨나아아악!”
환호성을 내지르는 이들을 하나씩 손을 마주 잡았다.
항상 드낙을 보조해주며, 많은 곳에서 활약하고 있는 피숨결 검은 뿔쥐들을 드낙은 대우할 줄 알았다. 팬서비스나 다름없었는데, 항상 유명 선수들의 팬서비스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뉴스를 자주 접한 박호훈이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항상 도와줘서 고맙다.”
상투적인 말임에도 드낙은 악수하면서 어깨도 두들겨주고, 머리를 쓰다듬거나, 이마와 이마를 맞부딪치며 친밀을 과시했다.
이 때문에 소녀팬처럼 넘어가는 뿔쥐도 있었다.
그건 재미나서 드낙이 더욱 팬서비스를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소동은 금방 사라졌는데, 단박에 11의원 중 1인이 정보를 내뱉어서였다.
“살아 숨쉬는 우리들의 신이시여! 이계인 40명이 저희 차원에 찾아왔습니다!”
빅데이터를 통해서 드낙이 좋아할 만한 정보라서 냉큼 대답하자마자 드낙이 연봉 6천만 원 남편이 3억짜리 스포츠카를 샀다고 고백했을 때 설거지하다가 고개를 홱 돌리듯이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뭐?”
드낙이 깜짝 놀랐다. 전혀 갑작스럽지 않았다. 되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의문의 신성력’이 어디서 왔는지 탁 잡아챌 수 있어서였다. 의문이 해소되고, 명확한 문제가 드러났다.
이제 해결해야 할 일만 남았다.
“다른 건?”
“그들 모두 산업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산업활동? 뭔가 거대한 음모를 꾸미는 모습은 없고?”
“예. 아무래도 외차노 같다는 평가가 주류입니다. 다만 모-독자라서 처리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외차노가 뭐냐?”
“외부 차원 노동자의 준말입니다.”
“다른 차원에서 와서 노동을 하고 있다고?”
“그야...맨몸으로 여기에 왔으니, 일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럴듯했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듯이, 해외에 나가면 사람이 짐승 되는 건 한순간이다. 뭘 해도 돈이었다. 그런데 차원을 넘어가면? 이거 아주 큰 일이다.
‘돈이 더욱 필요할 수밖에 없지.’
“그래서 돈을 버는 건가?”
“그게...아예 눌러앉은 데다가 여자친구도 생긴 이계인이 많아서...”
드낙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긴가민가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차원에서 도망친 이계인들인가?”
“그럴 가능성이 큰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번 판단을 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겠다.”
동시에 드낙이 눈을 반짝였다. 어디서 온 놈들인지 매우 궁금했다.
다른 차원의 존재! 혹시 지구에서 온 자들일지도 몰랐다.
‘만약 그렇다면 소주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드낙은 표절 리고 벼락등장을 사용하지 않고 단번에 세상을 속여서 파동으로 변했다.
*
“내가 말이야, 왕년에는 자유기사 따라다니면서 일백야수를 잡았는데 무릎이 그만...”
“어이, 잭 씨! 와서 숟가락이나 들어!”
입을 털던 잭이 인상을 썼다.
“에이씨, 분위가 빡 잡고 있는데.”
“분위기는 여자 올라타서 빡 잡어, 썅놈아. 밥 먹는데 지랄하지 말고 먹어!”
“에이씨, 진짜.”
첫술을 들기도 전에 수레에 간판을 크게 가져온 자들이 있었다. 한글 보급 덕분에 ‘간판’에 글씨를 쓰게 되면서 간판이 길쭉해졌기에 멀리서도 볼 수 있었다.
“도와줘! 나도 밥 먹게!”
인부가 냉큼 손짓하며 외치자 하나둘 일어났다. 뭉그적거려봤자 먼지만 그릇에 들어갈 뿐이다. 서둘러 간판을 수레에서 내렸다.
남부에도 ‘한글’은 퍼져 있었기에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매직 워크숍.”
“심플한데, 이래서 장사가 되겠어?”
잭이 혀를 쯧쯧 찼다.
“그건 이거 짓는 사람이 알아서 하는 거고.”
[파견대]의 사업은 단번에 궤도에 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단순히 인조 생명체, 3성 정예병에 속하는 붉은 요새의 방패병만해도 인간의 몸으로 오크를 막아서는 삶을 살았던 가상현실 게임 영혼이 들어간 것이다.
숯숯마을에서 그보다 더 뛰어난 병사는 없다고 할 수 있었다.
동시에 오성마탑의 마법사 또한 뛰어난 마법사 자원이었다. 자치왕국은 가야 그런 마법사를 만날 수 있었다.
다만, 환희와 자유의 사제 경우에는 멘탈적으로는 이 세계의 사제의 발톱 때만큼도 따라가지 못했다. 항상 바닥으로 향하라는 글씨를 자신의 신분패 뒷면에 새겨서 가지고 다녔던 케이스 성기사부터 시작해서 명성 없는 이들도 대부분 숭고한 자들이 수두룩했다.
그런 이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상업적인 것이 환희와 자유의 사제들이었다. 이는 <환희(歡喜)와 자유(自由)의 신(神) 엘레우테리오(Eleuterio)> 때문이었는데, 그를 믿는 사제들이라서 어쩔 수가 없었다.
게으르고 노는 걸 좋아하는 게 엘레우테리오였다. 그는 대단히 세속적인 인신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신성력을 받는 사제들 또한 세속적일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되었던 용병단의 저택과 연병장, 아티팩트를 만들고 파는 매직 워크숍, 신성력을 통해서 돈벌이를 하는 사제들가지.
숯숯마을에서 그들의 수완은 대단했다.
“외차노 맞네.”
이를 드낙이 구경하며 말했다. 바로 블랑쉐 병장 앞에서 거침없이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말을 들을 수 없었다.
반마반신(半魔半神)임에도 부활한 대신(大神)과의 짧은 전투를 경험한 드낙의 경험치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상위인간(上位人間) 따위가 감지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파견대]는 잉여 자금력을 통해서 인부들을 고용하여 특수한 것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가만히 드낙이 지켜봤다.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지키는지 손의 접촉을 통해서 반마의 격을 통해서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세상에 초월자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는 마법 건축물이다.’
크기는 4미터는 될 법한 탑이었고, 내부에는 수많은 마법진이 새겨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드낙은 미소를 지었다.
‘수준도 높고, 뭔가 꾸미는게 있다. 잡았다, 요놈들.’
드낙은 놈들의 뒷배를 끌어올 생각을 가졌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자신’의 위험을 숨겨야 했다.
그에 딱 맞는 계획이 하나 있었다.
‘굿모닝, 굿애프터눈, 굿이브닝.’
이제 이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관리받는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다.
드낙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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