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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거대한 생명체가 드낙의 앞을 마주했다.
불모지의 평야에 있는 우뚝 솟은 언덕처럼 생긴 생명체는 확실하게 ‘악마 건축물’이었다. 하지만 그 형태는 너무 단순했다. 푸딩처럼 그냥 피막만 있었고, 그 외의 특징은 존재하지 않았다.
가까이 가서 이를 확인했다.
피막에는 모래가 잔뜩 묻어있었는데, 상처도 제법 생겨있었다. 불모지의 파괴 속성 흙 때문이다. 그 흙은 척박한 불모지의 기후로 인해서 모래가 된 지 오래였고, 모래는 피막의 겉면을 바짝 메마르게 만든다. 그리고 바짝 마르면 상처도 나기 쉽다.
‘자글자글하다.’
피막은 처음에는 탱탱했겠지만, 이제는 상처투성이에 노인처럼 자글자글한 피부를 지니고 있었다. 드낙은 날아올라서 꼭대기에 있는 입구를 바라보았다. 거대한 구멍이었다. 그곳에 쏙 들어갔다.
“엉?”
포낙서스가 멍청한 소리를 냈다. 깜짝 놀라 하는 게 눈에 보였다.
“오랜만이다. 포낙서스! 악마 건축물을 곳곳에 만들어놨던데, 프로젝트의 일환이겠지?”
“반마반신을 뵙습니다!”
그가 고개를 넙죽 숙였다.
“저...계획서는 받으셨습니까?”
“응. 중대형 권속 악마를 제작하고 싶다고 하던데 아주 좋은 생각이야.”
드낙은 포낙서스의 권속 악마 사업에 대해서 낙관적이었다. 사실 다종족 연합의 가장 큰 단점은 바로 오우거를 제외하고는 모두 소형이라는 점이었다. 이를 단점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너무 편협한 시야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덩치의 차이는 크지.’
마신장(魔神將) 아니, 가히 마왕(魔王)이라고 불릴만했던 발라쿠를 잡을 때, 드낙은 대형화를 선택했다. 그게 아니면 승산이 없다고 여겨서였다. 소형과 대형의 차이는 크다.
작다고 무조건 이득을 취할 수 없었다. 작은데 체중이 몇십 톤이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마저도 시야의 제한이 생긴다.
‘다양성을 위해서 중대형 권속 악마는 필요하다.’
다만, 새로 창조하기가 어렵고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아무리 드낙이라도 생명체를 만드는 건 힘들었다. 쥐같이 종족성이 낮고 작은 것이 우연히 조건이 맞아떨어져서 잉태된 핏빛쥐와는 또 달랐다.
이를 위해서는 수많은 연구가 필요했다. 특히, 드낙은 반마(半魔)이고, 악마로 나아가게 되겠지만, 악마로서의 숙련도는 떨어지는 편이었다. 움직이지 못하고 그저 연금술과 악마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각성제를 토해내는 대형 악마를 만들어내는 것과는 달랐다.
‘걷는 것, 뛰는 것, 싸우는 것. 모두 쌓아올리기 힘든 일이지.’
굼벵이 같고, 머리는 생선 같은 잠자는 스티물런트(Stimulant)와는 차원이 다른 난이도를 지닌 셈이다. 그렇기에 드낙은 포낙서스의 일에 대단히 낙천적이었다.
“성과는?”
“아직은 없습니다.”
시무륵.
드낙이 실로 아쉬워했다. 하지만 포낙서스가 그 모습을 보고는 아차 싶어 했다. 바로 다른 프로젝트에 들어가라고 할지도 몰랐다.
“다만, 가능성은 확보했습니다. 보시겠습니까?”
“그래! 그러면 그렇지, 믿고 있었다고!”
포낙서스가 피막에 손을 대자 피막이 쩌저적 열렸다. 찐득한 액체가 투둑 떨어졌다.
“체액이 왜 흰색이야?”
“정액입니다. 권속 악마 연구에는 권속 악마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언덕 권속 악마는 거대한 자궁입니다.”
“오우야.”
드낙이 최대한 조심하며 문을 통과했다.
“그럼, 여기에 보이는 체액 같은 건 전부 정액이라는 건가?”
“예. 악마 건축물을 만들었는데, 오류가 생겨서 체액이 정액이 되어버렸습니다. 근데 어차피 정액이 필요하긴 필요해서 수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수정할 수도 없습니다.”
아직 권속 악마 제작에 대한 체계도 잡혀 있지 않았다.
“그 체계를 잡기 위해서 만든 각각의 방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해? 보통은 염(念)을 통해서 제작하잖아.”
“그렇게 하면 뭐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언덕 권속 악마를 만든 것이기도 합니다.”
생각을 통해서 권속 악마를 만드는 방법은 그저 마구잡이식 있는 공정에 지나지 않았다. ‘악마의 힘’에 의해서 만들어질 뿐이다. 하지만 포낙서스는 마법처럼 권속 악마의 제조에도 체계가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그런 노하우를 만들기 위해서 언덕 악마를 만들었고, 하나의 언덕 악마는 4개의 심방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각각의 방 중 한 곳에 두 명이 들어섰다.
“이곳은 핸드 아트리움(Hand atrium)이라 불리는 심방입니다.”
드낙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엄지 손가락이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이 여러 개 있었다. 손톱이 없는 엄지 손가락이 있는가 하면 아주 초기 단계의 점에 불과한 것도 있었다. 관절이 생기기 시작하는 과정의 중간에 정체되어있는 것도 있었다.
무엇보다 엄지 손가락만해도 사람의 머리통만 했다. 거대했다.
곳곳에 검지, 손목, 손바닥 등의 손의 세세한 부위들이 조각조각 나누어져서 그 과정이 딱딱 나뉘어 있었다.
“손가락을 계속 만들면서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는 체계를 세우고 있습니다.”
“대형 권속 악마를 만들려면 많은 힘이 필요하니까.”
“예. 당장은 소모가 크겠지만, 이 체계를 완성한다면, 그 어떤 악마들보다 적은 힘으로 대형 권속 악마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타입이나 형태는 조금 고정되겠지만, 다양한 바리에이션을 넣을 수 있고.”
인간형 타입에 종속되지만, 화염부터 시작해서 온갖 다채로운 능력을 추가하는 것도 능히 가능해질 것이다.
핸드 아트리움의 중앙에는 쇠사슬에 걸려있는 대형 악마의 손이 보였다.
“이게 완성본인가?”
“프로토 타입에 불과합니다. 양산에 들어갈 때는 뭐가 바뀔지 모르고, 사실 이것보다는 더 강할 겁니다.”
시제품(prototype)은 결코 양산품을 이길 수 없었다.
드낙이 악마의 손에 접촉했다. 특별한 대형 권속 악마는 아니었다. 말 그대로 평범했다. 그리고 그 평범함은 ‘악마답다’라는 평가가 들어가 있었다.
“필요한 게 있나? 몇 년이 걸릴 것 같나?”
“언덕 권속 악마의 숫자는 현재 32개체입니다. 이를 통해서 반복적인 부위 생산을 통해서 노하우를 축적한다면 족히 3년이 걸립니다.”
“언덕 권속 악마를 두 배로 늘린다면?”
“1년 반이 될 겁니다.”
“3배면?”
“...일년은 걸리지 않겠습니까?”
“5배로 간다. 150개체의 언덕 권속 악마를 만들어라.”
“네? 하지만 그건 너무 비효율적이고, 소비가 너무 큽니다.”
포낙서스에게 있어서 드낙의 말은 그저 급발진한 것에 불과했다.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드낙이 주위를 살피더니 이내 그의 몸에서 그림자가 뻗어 나가며 모든 것을 차단했다.
“...꿀꺽.”
포낙서스가 침을 삼켰다. 드낙이 검지로 입술에 가져다 대자 그가 딱딱하게 굳었다.
드낙의 전신에서 풍겨오는 기세는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평범한 사람은 그런 기세조차 느끼지 못했는데, 그만큼 음험했다. 그는 자신의 전력을 내비쳐서 주변에서 자신을 훔쳐보는지를 확인했다.
이상이 없자 그제야 검지에서 손을 떼고 기세를 죽였다.
“자연적으로 소모되는 신성력을 본 적이 있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다. 신성력이 대기 중에 보였는데...아주 작은 힘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소비활동도 없이 그 힘이 사라져버렸다.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있나?”
“없습니다. 초월의 힘은 소모되어야지 사라집니다. 마력은 마법으로 변환하며 소모가 일어나고, 마법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체계가 마모되면서 소모가 일어납니다. 혹, 신성력이 움직이지는 않았습니까?”
“전혀.”
“......”
포낙서스는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거대한 음모의 냄새를 맡아서였다. 드낙이 왜 그렇게 급하게 구는지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내 그가 고개를 조아리며 충언을 했다.
“만약 거대한 음모가 존재한다면, 지금 이렇게 악마의 힘을 소비할 때가 아닙니다. 일단은 악마 혹은 신이 되셔야 합니다. 현재 드낙 님께서는 무엇이 더 빨리 도달하실 수 있습니까?”
드낙이 턱을 매만졌다. 악마로서의 각성은 업(業)으로도 해결할 수 있었지만 수많은 피를 받아들여야 했다. 반면 신으로서의 각성은 업(業)으로서만 해결할 수 있었다.
즉, 악마는 복합적인 수단을 쓸 수 있었지만, 신은 한 가지의 자원밖에 쓸 수 없었다.
“당연히 악마다.”
“그럼 먼저 악마가 되십시오. 일단은 완전한 초월자가 되셔야 합니다.”
“알겠다. 그리고...”
“함구하겠습니다.”
포낙서스의 말에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덕 권속 악마는 앞으로도 그랬듯이 32개체로 유지될 터였다.
“휴우...”
언덕 권속 악마로부터 날아오른 드낙이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온 김에 새린과 발바룽도 보자.’
*
어리둥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파견대는 해지기 전에 야영 준비를 해야 했지만, 그 전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빈 건물이 그들을 맞이해서였다. 모두가 이용할 수 있어 보이는 빈 건물은 부속 건물로 작은 창고가 벽에 바짝 붙어서 툭 튀어나와있었다.
문에는 자물쇠도 없었다.
끼익.
창고 안에는 장작이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허, 참.”
그중에서는 공업용으로 사용되는 숯인 백탄도 한쪽에 쌓여 있었는데, 기름은 먹이지는 않았지만, 무두질 된 가죽에 덮어져 있었다.
“소가죽 같습니다.”
“이 땅의 지배자를 한번 보고 싶군.”
상사 에메리히는 진짜 궁금했다. 말 그대로 펑펑 쓰기 바쁜 모습이었다.
‘시민에게 베풀어주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세금을 낼지 안 낼지 모르는 방랑자도 여길 쓸 수 있다.’
심지어 산적의 산채나 도적 소굴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도 여길 점령하고 있지 않았다. 마치 가치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건 실로 파견대에게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럴 만도 했다.
남부 왕국의 인구수는 강제 이주 때문에 빠르게 줄어들고 있어서였다. 그런데 신제국과 자치왕국으로부터 들어오는 자원은 싼가격에 해일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그 이유는 남부 왕국을 분할 통치하는 것이 자치 왕국의 4공왕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람의 노동력을 자치왕국의 자원으로 크게 털어먹고 있었다. 신제국의 숟가락 얹기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 덕에 남부 왕국의 인간들은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엄청난 손해를 입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싸게 고기를 구매하거나 자원을 얻을 수 있어도 그 돈은 결국 자치왕국의 공왕들에게 흘러들어 가기 때문이다.
이를 다시 남부 왕국에 베푸는 이유는 바로 ‘인구’ 때문이었다.
수많은 전쟁을 겪은 남부 왕국은 불안하기 그지없었고, 자연스럽게 출산율이 바짝 올라섰다. 그 인구 포텐셜을 유지하기 위한 신제국과 자치왕국의 암약은 그 어떤 담합 없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말 그대로 인간 농장이나 다름없었다.
모든 것이 경제와 산업이 잠식돼서 고용되고 살아가다가 선별된 인재들이 신제국과 자치왕국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드낙이 알아서 하라고 한 ‘이주’문제를 엄선된 프로세스를 통해서 철저하게 재능이 있는 남부인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물론 하층민도 이주하고 있었다. 그들이 있어야 그 위에 설 자리가 완성될 수 있었다. 노예가 없으면 노예 관리자도 없다. 고로, 노예는 필요했고 상류층을 위해서는 하층민이 존재해야 했다.
산업의 가치, 경제의 발전에는 인구수가 담보되어야 했다.
그 발로가 이런 빈집들이었다. 세금으로 만들어지고, 관리되고 있었는데 재능 없는 남자 여럿을 고용해서 공무원처럼 굴리고 있었다. 그들을 <여관지기>라 불렸다.
이런 사회 현상을 에메리히는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혀를 내둘렀다.
내부에는 건조대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걸어놓은 돼지 뒷다리나 앞다리가 훈제된 상태로 걸려있었다. 이를 긴 갈고리를 이용해서 가져왔다.
“맛있겠는데요?”
햄과 유사한 것이라 군침이 돌았다. 고기 외의 식량은 없었다. 다만 뒷마당에 무성하게 자리 잡은 식물들이 가득했다.
얼마나 대충 일하는지 알 수 있었지만, 방문하는 이들이 채소나 야채를 얻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게 식사를 뚝딱하며 천국과도 같은 이세계에 대해서 떠들기 시작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여관 지하에 맥주가 가득 있어서였다.
“이렇게 세상 좋아도 됩니까? 왜 이런 곳이 있을까요?”
아메리고 병장은 화를 낼 정도로 언성을 높였다. 골램이 일을 하고, 여행하는 길이 힘들다며 빈 여관에 들어가면 고기도 있었다. 적당히 관리되고 있는 텃밭도 감지덕지다.
겨울 대비 장작부터 혹시나 재난을 대비한 공업용 백탄까지 있다.
“지나칠 정도로 자원이 넘쳐흘러.”
에메리히 상사는 굳은 얼굴을 했다. 하지만 이내 맥주를 한 입 마시고 좌중을 훑으며 말했다.
“어쨌든 이렇게 평화롭고 부유한 세계라면 우리에 대한 경계도 낮을 터. 작전하기에는 좋다.”
“근데, 이 정도로 먹고살기 좋으면, 우주 낙원(Cosmos Paradise)이 와도 경제 침탈은 힘든 것 아닙니까?”
“바보 같은 소리.”
일등병 라우리츠(Lauritz)의 말에 블랑쉐 병장이 한소리 했다.
“경제침탈로 안 되면, 인조 생명체를 꾸준히 침투하면 돼.”
적법한 프로세스, 합당한 과정이 있는 게 식민지 구축이었다.
“초월자가 있었다면 놈을 죽이고, 시작했겠지만 여기에는 신이라고 불릴만한 존재가 없을 가능성이 커. 그러니까 오히려 난이도는 낮을 수밖에 없지.”
블랑쉐가 거침없이 맥주를 들이켰다. 맥아비율이 90%가 넘는 농후한 맥주맛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정도로 풍미가 강했다.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큰 마을이나 도시, 성에 도착하면 거기서 생활하면서 초월자를 탐색할 중형 마법 건축물을 짓는다. 거기서 판가름이 날 것이다. 그때부터가 진짜다.”
“어쨌든 오늘은 즐겨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메리고 병장이 에메리히 상사의 말을 받으며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모두 거칠게 맥주잔을 서로 부딪쳤다. 그리고 그들의 아래에서 뿔쥐들이 귀를 쫑긋거리고 있었다.
맥주 창고에는 큰 술통이 많았고, 그만큼 그림자도 많아서 숨기 좋았다.
뿔쥐들은 수많은 정보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정보 단계를 한 단계 더 올려야겠다. 이계인들이다.”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의 신을 믿지 않는 모-독자들이다.”
찍찍.
피숨결 검은 뿔쥐들이 쥐새끼 소리를 냈다. 그러다가 한 뿔쥐가 말했다.
“어, 이거 옛날에 이스핀이 관리했던 맥주다. 여기까지 흘러들어와있네.”
“정말?”
“한 잔 해야겠는걸. 이제는 못 마시는 거잖아?”
“비슷한 건 있지만, 찍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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