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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상사 에메리히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백성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 왕은 많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들에게 많은 것을 투자하지 않는다. 한다고 해도 별 도움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방해하는 이들이 많았고, 금화 천 개를 그들을 위해 쓴다면 상류층에서 999개를 챙겨가고 금화 1개만 백성들의 손에 쥐여주는 식이다.
‘굶어 죽어 가는 이들, 착취당하는 이들이 그렇게 많아도 보이지 않으면 체감이 덜할 수밖에 없지.’
말세에, 반란군. 게릴라까지 생겨나도 삼시 세끼는 꼬박꼬박 나오고 수도는 평화롭다. 그렇게 보이기 마련이었다.
문제없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 쉬웠다.
고로, 지금 이 상황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척 봐도 유사 중세 시대였다. 집은 시멘트가 아니라 그냥 벽돌 혹은 오두막이다. 여관업이 많이 발전한 것도 아니고, 방문객은 빈집을 돈을 주고 사야 했다.
그 덕에 파견대는 멀쩡한 마을을 두고 밖에서 비박을 해야 했다. 물론 인조 생명체들 덕분에 용병 지구인이 어려운 건 없었다.
정예 마법사만 7명이었다. 사제는 10명에 달했다. 부족함 없이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열불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시작부터 꼬였다.’
“쯧.”
“찍.”
혀를 쯧하고 찼다. 그러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소리가 겹쳐서였다. 하지만 이내 흘러버렸다. 머리가 띵했다. 쉬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진짜 백성을 위해서 존재하는 웃대가리가 있는지 보고 싶었고, 그자들이 어떤 자들인지도 알고 싶어졌다.
‘있을 수 없는 모순된 사회다.’
힘없는 자들을 위해서 일하는 권력자가 있다? 동화 같은 소리였다. 그리고 동화는 항상 현실 도피적이다. 그렇기에 그는 이런 현상을 믿지 않았고, 진짜 있다고 해도 그 왕이 죽으면 끝이라 여겼다.
아메리고는 앞으로의 대해서 정리했다.
‘가장 먼저 이들의 사회와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걸 모르면 실수를 할 수 있었다.
‘그다음에는 지배자에 관해서 묻는 게 좋겠지.’
‘국업 사업에 대해서도...’
수많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상등병 리셸이 다가와서 경계하며 말했다.
“상사님. 아티팩트를 만들어서 파는 게 좋겠습니다.”
“결국 그렇게 되어야겠지. 하지만 구매력이 있는 사람을 구해야 하니까, 결국 큰 마을로 가야 한다. 이 마을은 평화롭지만, 너무 좁아.”
구매력이 낮았다.
“창고 관리에게 간단한 걸 거래하자고 하는 게 어떻습니까.”
‘나쁘지 않다.’
그나마 마을에서 가장 큰돈을 가지고 있을 터였다.
“T1 레벨의 간단한 아티팩트를 파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니까.”
“밤마다 빛을 내는 나뭇가지만 해도 껌뻑 죽을 걸요.”
반딧불이나 촛불 같은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효과가 좋았다. 밤에 뭐하기 알맞고, 백색이라서 더더욱 사물을 분간하기 쉽다. 형광등을 차용한 아티팩트였다.
문인이나 관리라면 반드시 가져야 할 소형 아티팩트 중 하나였고, 반대로 파견대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었다.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았다.
가장 먼저 적당한 나뭇가지를 구한다. 길지 않아야 하고, 굵지도 않아야 했다. 손에 잡고 휴대하기 좋아야 했다.
적당한 나뭇가지를 찾아낸다면 그 안쪽에 홈을 깊게 파야 한다. 원시적인 마도 시대였다면 노동력을 사용해서 힘겹게 안쪽에 작은 홈을 내고, 계속해서 파내서 구멍을 뚫었겠지만, 파견대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사치스럽게 마법을 통해서 나뭇가지 안쪽에 구멍을 크게 냈다. 그리고 그 안에 돌을 가루로 낸 것과 연금 식물 재료를 다진 것을 뒤섞어서 채워 넣었다. 마지막 양쪽 끝 부분에는 훔친 구리를 녹여서 봉했다.
그곳에 마법을 부여했다. 대단한 건 아니었다. 대단할수록 오히려 자주 충전해야 했다. 달이 떠오를 때마다 백색빛을 내는 것에 불과한 아티팩트였다.
이를 여러 개 만든 뒤에 다시 관리를 찾았다.
“오! 대단하군.”
그는 감탄했지만, 진짜 감탄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아티팩트를 자주 접하십니까?”
“많이 접하지만, 이토록 실용적인 건 본 적이 없군. 비슷한 걸 산 적이 있는데, 일주일 만에 사라져버리더군.”
“이 물건은 밤에 자연적으로 켜진다는 단점이 있을 뿐, 효과는 한 달이 넘게 지속됩니다.”
“좋군. 이 정도면 한 개에 은화 1닢은 줄 수 있는데.”
“전부 사실 생각이십니까?”
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런 마을에 부임하게 된 이후로 돈을 많이 사용하지 않게 되어서 돈이 제법 있었다. 지방에 살면 돈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쓸 곳이 마땅찮기 때문이고, 큰 곳에 살면서 눈도 높아져서였다.
그렇기에 2년~3년마다 부임지를 바꾸는 정책이 있었다. 이는 지역 유지들과 결탁하는 걸 막기 위함도 있지만, 관리들이 돈을 쓰게 만들게 하려는 점도 있었다.
단번에 은화 14닢을 얻은 파견대는 그 돈을 잠자는 데 쓰지는 않았다.
‘아껴야 한다!!’
무두질하지 않은 털가죽과 야수의 고기로는 아무것도 못 한다는 걸 인지했다. 대부분의 저열한 문화를 지닌 곳에서 으뜸으로 치는 육류 가격이 박살이 난 곳이라서 결국 아티팩트를 팔아서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다.
“렉스(Rex), 제디어(Jediah). 정보를 획득하고 다녀라.”
상등병 하나와 일등병 하나. 노련함에도 차이가 나서 능숙하게 술집에 들어가서 정보를 캘 만했다. 돈은 은화 2닢을 줬다.
“최대한 캐봐.”
“예.”
두 사람은 복장을 환영 마법으로 이곳의 풍토에 맞게 바꾸고 술집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시끌벅적했다. 시장바닥이 다름없었는데, 물보다 싼 것이 맥주였다. 농업을 통해서 밀을 얻고, 그 밀을 다시 가공해야 하는 맥주는 훌륭한 소비 산업이었다.
드낙이 이를 가만히 둘리가 없었다.
동부왕 시절에도 이스핀을 통해서 맥주 산업을 크게 부흥토록 했다. 담배처럼 술도 백해무익의 쓰레기 같은 물질이었지만 이 세계는 해독 물약이 존재했고, 값싼 신성력을 통해서 간의 ‘건강’ 자체를 회복하는 것도 가능했다.
중독성 자체도 지울 수 있는 게 가능했기에 사실 대마초를 유입해도 괜찮을 정도였다.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드낙은 박호훈이기 때문이다. 그는 미디어의 간악한 술수로 여성이 광고하는 술 광고에 뇌가 절여져서 술을 좋은 것. 가족 사진 불태우는 건 기본인 담배 광고를 보며 자랐다.
당연히 담배나 대마초보다는 술을 더 좋다고 여기고 있었다.
세뇌 미디어의 힘은 강력하다. 괜히 수많은 기업이 언론에게 돈을 가져다 바치는 게 아니다.
“여기 아이스 맥주 하나! 치킨 하나! 사이드 메뉴로 드워프 새콤무!”
능숙하게 주문하는 이들을 보며 메뉴판을 확인하고 파견단 소속의 2명도 메뉴를 주문했다. 그렇게 하면서 슬쩍 품에서 동그란 철덩이를 테이블에 올렸다. 이것만으로도 알아서 목표물로 삼은 이들의 대화 내용을 담을 수 있었다.
물론 그 정도에서 끝날 첨단 장비가 아니었다.
스르륵.
부드러운 철소리를 내며 단번에 장치가 겹겹이로 올라갔다. 제법 그럴듯한 조형물이 되었다. 이 층마다 타겟을 따로따로 녹음할 수 있었다.
강력한 첩보 장비였다.
그들이 한 것은 그저 신나게 자기 할 이야기하며 맥주를 마신 것뿐이다. 다만, 다른 이들과 다른 점은 굉장히 오랫동안 있었다는 점이다. 새벽이 다 지나갈 때가 와서야 밖으로 나섰다.
되돌아온 그들은 수많은 정보에 대해서 다시 파악해나갔다.
“허. 사대밭 새마을 골램 사업이라니.”
“이걸 하는 지배자가 왜 안 죽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드낙에 대한 건 너무 많이 퍼졌기에 술집에서 떠들 정도는 아니었다. 너무 유명하면 되레 입에 오르락내리락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들은 술집에서 드낙에 대한 소리는 듣지 못했고, 그저 골램 사업에 대해서 떠드는 것만 들을 수 있었다.
그것도 대단히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옆 마을은 골램으로 밀을 생산하고, 포도를 따서 섞어서 먹는 상품을 제조했다더라.”
“포도 가격이 요즘 제법 비싸지 않나?”
“그러니까, 마을 사업으로 삼은 거지. 풍미만 섞고, 포도 맥주라고 하는데, 포도의 달고 새콤한 풍미가 담겨서 여자들이 좋아한다더라.”
“도시나 성에서 엄청나게 원하겠네.”
돈 많은 여자들이 많은 곳이 도시와 성이었다. 또 돈이 많은 여자는 자연스럽게 시골보다는 도시나 성에서 거주하기를 원했다.
“자치왕국에 철도가 생겼다더라. 신제국이랑 백설산맥이랑 연결되는 곳인데, 아직 사람은 태울 수 없고. 화물만 옮긴다던데.”
“세상이 이렇게 발전하니까, 나만 바보가 된 기분이야. 이런 시골에서 오래 있어지고 싶지 않아. 난 자치왕국으로 가고 싶어.”
“웃기고 있네. 잭! 네가 그런 곳에 가서 어디 한 몫 제대로 챙길 것 같아? 노예처럼 부려지다가 도망 나올 걸.”
“이 새끼들이...”
특히 젊은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었다.
‘철도. 과학기술과 마도사회가 동시에 이루어진 사회인가? 그것도 국가 단위로 정보가 크게 제한된 것 같지도 않아.’
‘드워프와 인간? 보기 힘든 연합인데.’
드워프와 인간은 결코 상종할 수 없었다. 인간은 결국 드워프의 멱을 따고, 노예로 삼기 때문이다. 땅딸보 같은 드워프의 한계였다. 그들은 수많은 고문을 받으며 종국에는 모든 기술을 인간에게 토해낸다.
다만, 에메리히를 비롯한 파견단은 이 세상의 드워프가 엘 마르토 카사다민으로 잉태되어 났다는 것을 몰랐다. 결코, 평범한 드워프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우주에서도 맨몸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간다고 하면 같은 인간한테 가는 것보다는 이종족한테 가는 게 낫지. 오크들이 배를 만드는데 그 기술만 배워도 10년만 돈 벌면 바로 은퇴해도 된다더라.”
“누가 그래? 그리고 오크랑 결혼하게? 미친놈 아냐, 이거.”
“이 새끼가 아까부터 자꾸.”
술집의 젊은 이들은 미래에 대해서 많은 걸 이야기했는데 실로 의미심장한 것들이 많았다. 잠깐 에메리히 상사가 녹화본을 일시 정지했다.
“이거, 내가 제대로 들은 것 맞나? 드워프에 오크?”
“여기 인간들은 너무 태평한 것 같은데...그래서 연합할 수 있었던 게 아니겠습니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상사의 말에 대부분은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아메리고와 블랑쉐 병장 2명은 이해했다.
“엘프나 드워프 혹은 오크 한쪽만 연합해도 평범한 악마들은 차원 침공을 하지 않아요. 수지타산이 안 맞죠. 그래서 엄청나게 떼거리로 몰려와서 박살을 내요. 그 정도의 차원은 ‘중심’에도 몇 없죠.”
블랑쉐의 말에 아메리고가 뜻밖에 진지한 말을 했다.
“여기 수준이 생각보다 높다는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입니까?”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상사님.”
“아직 단언해서는 안 된다. 너희들도 카실레안 교본을 숙지하고 있겠지?”
적에 관한 판단을 달리하면 모든 것이 뒤바뀐다. 그렇기에 적을 가볍게 봐서도 안 되고, 무겁게 봐서도 안 된다. 전투는 효율성의 싸움이었다. 10명의 도적을 죽이는데 100명의 병사를 사용하면 그건 전술적 실패나 다름없었다.
10명의 도적으로 생기는 피해보다 100명의 병사가 소비하는 자원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감히! 단 한 번 술 마시고 떠드는 걸 보고 파악할 수는 없었다.
“드워프나 오크가 언급되었지만, 진짜 드워프나 오크가 아닐 수도 있다.”
“하프나 쿼터, 그런 말씀입니까?”
“그래. 아직은 단언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일단 큰 마을이나 성, 도시로 향하기로 했다. 그곳으로 향하면서 수레에 아티팩트도 여럿 만들어서 적재할 생각을 가졌다. 혹은 도적이 보인다면 그들의 노동력을 이용할 생각도 가졌다.
다만, 무분별한 살인과 강간은 저지르지 않았다.
그건 ‘식민지’로 만들고 나서 해도 늦지 않았다. 상대가 자신들을 적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했다. 그렇게 하면 반발심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가장 어리석은 접근법이었다.
‘경제 침탈부터 시작하는 게 기본이지.’
우주 낙원(Cosmos Paradise)이 이 행성에 착륙해도 전투나 전쟁은 바로 이어지지 않을 터였다. 차근차근 경제부터 시작해서 그들의 모든 것을 빼앗으면서 뇌수부터 척수까지 빨아먹는 게 현대식 식민지 작업이었다.
“찍찍.”
그 모습을 그림자 형태로 피숨결 검은 뿔쥐가 지켜보았다.
‘뭐하는 놈들이지?’
순수한 호기심뿐이었다. 독특한 놈들이고, 특이한 양식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보고할 필요성은 있었지만, 정보 등급은 낮았다. 그들의 목적이 불명확했다.
복장이 다르고, 특이한 물건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이 새끼 이계인이라고 딱 말할 수 없었는데, 그런 경험이 없어서였다.
판타지 고인물이나 할 수 있는 판단이고, 뿔쥐들은 그런 판단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과잉 전력을 지닌 군대다.’
주시해야 할 필요성은 확실하게 존재했다. 뿔쥐는 특히 용병 지구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붉은 요새의 방패병 10명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저놈들이 가장 위험한 놈이다.’
피비린내가 풍겼다. 동시에 숭고한 사명감이 눈 속에 담겨 있었다. 모순적이다. 인간 백정이 신부와도 같은 고결함을 가졌다는 비유와 같았다.
척 봐도 수많은 전장을 해쳐온 파수병이었다. 만약 ‘초월의 힘’ 없이 싸운다면 상대가 뿔쥐를 이길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백중세(伯仲勢)를 점칠 정도로 붉은 요새의 방패병은 대단했다. 일단 이놈들은 어떤 상황이 와도 쉬는 법이 없었다. 자신의 전신을 가릴 수 있는 방패를 기울인 채 앉아 있고, 새우잠밖에 자지 않았다.
뿔쥐는 이런 놈들을 잘 알고 있었다.
‘순찰자와 닮았다.’
오크라는 거대한 대적자를 마주한 인간이 보이는 강인함. 그게 붉은 요새의 방패병에게서 느껴졌다. 저들은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죽음보다 중요한 것을 지닌 인간으로 보여졌다.
뿔쥐는 오랫동안 놈들을 감시했고,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들이 3일 뒤에 마을을 떠날 때는 6마리의 뿔쥐들이 그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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