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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지하 공간이 드낙의 피로 가득 차올랐고, 그곳에서 흐름이 생겨났다. 드낙의 손에 의해서 하나의 권속 악마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악마 건축물.’
건축물을 만드는데 중요한 건 ‘효율성’이 아니다. ‘목적성’이었다.
네크로맨서처럼 항상 도망쳐야 한다면, 저장과 이동에 목적을 많이 기울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 권속 악마는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 그저 드워프를 위한 각성제를 토해내면 될 일이었다.
그렇기에 굳이 손발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항상 잠들어 있는 게 좋겠어.’
날뛸 수 있기 때문이고, 관리하는데 귀찮기 때문이다.
‘뇌는 있어야 하니까.’
뇌 없이 알약을 생산하는 데에는 애로사항이 꽃피기 때문이고 사실 드낙이 그 정도로 권속 악마 제작에 능한 게 아니었다. 그는 암살, 사냥을 제외하면 젬병이었다.
그나마 ‘전초극(戰超克)의 권능(權能)’을 구축하고, 드낙에게 수많은 능력을 내걸어준 중립신을 잡아먹었으며, 많은 업을 보유하고 있는 특이한 반마(半魔)라서 이런 일도 가능했다.
평범한 반마였다면 어림도 없었다.
‘알약이 배출되는 곳도 여럿이면 좋겠지.’
생산성을 높이려면 많은 곳에서 많이 만들어서 여러 방향에서 토해내야 했다.
‘그럼 자연스럽게 크기도 커야 하지.’
더 많이 생산하려면 더 커야 했다. 자연스러운 이치였다.
올림픽 경기장만큼 거대한 지하 빈공간을 가득 채울 만큼 크게 하고 싶었다. 물론 이는 드낙의 욕심이었다.
쿠구구...써억!
대단히 크게 만들자 단번에 육체가 무너져내렸다. 버티지 못했다.
‘쩝.’
몇 번 시도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그 절반만 한 덩치를 지닌 대형 권속 악마 건축물이 만들어졌다. 그런데도 거대했다. 올림픽 경기장 절반만 한 놈이었다. 이걸 이렇게 넓게 해둔 드워프도 문제였지만, 그걸 참고해서 크게 만든 드낙도 맨정신은 아니었다.
“잠자는 스티물런트(Stimulant)다. 먹을 때도 가수면 상태지.”
굼벵이같이 생긴 거대한 권속 악마의 모습에 계단에 잔뜩 모인 드워프들이 뭔 말을 하지 못했다. 입에 꿀을 바른 것처럼 한마디도 못했는데, 드낙이 손짓하자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악마적이다.’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이렇게 하는 것 자체가 자신들이 빈 소원이라서였다.
“아무거나 잘 먹는다. 하지만 고기가 효율적이다.”
드낙이 그렇게 말하며 바닥에 널브러진 피와 살덩이들을 마법을 통해서 단번에 모아서 허공에 띄우더니 스티물런트의 꾹 닫힌 아가리를 툭툭 치자 입을 천천히 열었다. 거기에 쑥 집어넣었다. 스티물런트는 씹지도 않고 바로 삼켰다. 그리고 괴상한 소리가 몸속에서 들려왔다. 지하 공간이고, 천장도 높은 탓에 그 소리가 웅웅 울렸다.
부서지고, 뒤섞이고, 흐르고,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경이 곤두서기 쉬운 소리였다. 그 끝에 옆구리에서 질척한 ‘낭’ 하나가 툭 튀어나와서 널브러졌다. 이를 드낙이 손으로 찢었다. 그 내부에는 알약이 가득했다.
“하나씩 먹어봐.”
“예?”
“빨리 먹어야지 효력을 알 거 아니냐?”
그 말에 드워프가 주저하면서도 하나씩 알약을 집어 들었다. 낭의 상태는 외부는 반들반들하고 진득한 액체가 들러붙어서 비위생적이었지만 안쪽은 깔끔했다. 알약의 상태도 좋았다.
드낙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졌다. 이를 단번에 집어삼켰다.
먹자마자 단번에 효력이 일어났다. 나른한 것이 싹 사라지고, 잠이 조곤조곤 오는 현상도 말끔히 지워졌다. 가장 최고의 컨디션처럼 몸과 정신이 펄펄 날았다.
“오, 오, 오!”
“하! 하! 하!”
특히, 처음 복용할 때는 마약을 먹은 것처럼 짜릿했다. 쾌감이 엄청났다. 물론 워낙 드워프가 둔해서 찰나에 불과했다. 나중에 가면 ‘기호 식품’으로까지 여겨질지도 몰랐다. 잠 와서 먹는 게 아니라 쾌감이 쩔어서 먹게 될 터였다.
“이걸로 해결된 거다?”
“예!”
“하하하!”
드워프들이 너도나도 좋아했다. 이를 통하면 드워프 제국은 더욱더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더 많은 드워프가 장기동면에서 깨어날 것이며, 더 적은 드워프가 동면에 들어갈 것이다.
‘얼마나 생산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나무 열매 각성제.
각성제 권속 악마.
그 외에 다양한 방식으로 동면을 막고 있는 드워프들이었다. 그건 날이 지날수록 많아질 것이고 미래에는 누구도 동면에 들지 않게 될 터였다. 그렇게 되면 드워프는 정말 강력한 종족이 될 수 있었다.
“근데, 너희 제대로 방비는 하고 있는 거야?”
“네? 자-주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벌써 10만 문이 넘게 있습니다.”
“아니, 그거 말고.”
“그럼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지...”
“자주포를 대인화기로 만들라고 했잖아! 여태 아직 안 한 거야?”
드낙의 급발진에 드워프들이 안절부절못했다.
“그게 반마반신께서도 아시다시피 지금 자-주포 기술이 대형화에만 치중된 상태입니다.”
“그게 효율이 높기 때문이죠.”
크기가 클수록 더 많은 힘을 넣을 수 있었고, 방출력도 높아지며 포탄의 크기도 커진다. 자연스럽게 더욱 강한 자주포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아직 그 기술 발전은 현재진행형이었고, 더뎌지지도 않았다.
시간 대비 효율로 그냥 크기만 크게 만들어도 발전은 발전이고, 위력도 배가되기 때문에 굳이 소형화를 추진하고 있지 않았다.
“그럼 그다음에 할 생각이냐?”
드낙이 조금 누그러졌다. 일단은 크게 만드는 것에 정점을 찍고, 소형화를 진행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건 체계적이다. 프로세스가 있었다.
과정이 있는 행동이기에 누그러질 수 있었다.
“예. 일단은 군대 혹은 거대한 차원 침공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초장거리 포대 요새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걸 가능케 하고 나서 병사 개개인에게 자-주포를 줘야 한다는 것이 사리에 맞습니다.”
탱크부터 굴려놓고 병사 개인장비에 손을 대겠다는 소리와 비슷했다.
‘뭐, 일리는 있네.’
드낙은 그 말에 설득되었다.
“군비를 꾸준히 증가시키는 게 좋겠다.”
물론 훈수 하나 툭 던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드낙이 너무 태평하게 돌아다녀서 다른 종족들도 은근히 경제 총량이 증가했음에도 군비는 절대값으로 동결된 지 오래였다. 공장 만들기 바빴다.
드낙이 살아있는 눈으로 이를 지적하자 드워프들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알았지?’
다만, 하나의 의문은 남았다.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드낙이 날카로운 명령을 내리서였다. 마치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처럼 굴었다. 실제로 드낙은 지금 마음 한구석에 불안감이 존재했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신성력.’
사람을 치료하지도, 생명체를 도와주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사라진 신성력.
그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 탓에 드낙은 드워프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군사 능력에 투자하는 것을 지적할 수 있었다.
‘삼위 변종 악마들이 잘하고 있는지 가봐야겠다.’
아주 오랜만에 새린과 발바룽 그리고 포낙서스를 보고 싶어졌다. 드낙이 단번에 세상을 속였다. 관측되지 않는 드낙은 그저 파동으로 존재했고, 어디든지 갈 수 있었다. 해당 좌표에 도달하자마자 모습을 내비쳤다.
그 아래에는 황무지가 광활하게 보였다. 다만 전과 크게 달랐다. 가장 먼저 도로가 존재했다. 이 도로를 통해서 불안정한 마력흙이 공장의 연료로 쓰이기 위해서 매일같이 보내지고 있었다.
<마력흙 작업장>의 규모는 대단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큰 마을이 들어서 있었다. 그 중심에는 오아시스가 존재했다. 오아시스는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었다.
고오오오오오-!
바닷속에서 고래가 거센 고동소리를 내는 것 같은 울음소리가 중후하게 울려 퍼졌다. 드낙의 눈이 좁혀졌다. 언덕처럼 생긴 거대한 악마 건축물이 지어져 있었다. 그 꼭대기에는 백두산처럼 구멍이 뻥 뚫려있었는데, 그 깊이가 커서 어두컴컴했다.
거기에서 나오는 소리는 굉장히 먼 곳으로 울려 퍼져나갔다.
가장 흥미로워 보이는 곳으로 드낙이 움직였다.
*
[파견대]는 소리소문없이 행성에 도착했다. 그들은 남부 왕국의 중부 어딘가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 누구도 이를 알아차릴 수 없었다. 보는 이도 없었고, 이를 느낄 초월자는 아주 먼 곳에 있었다.
40명, 용병 지구인(Mercenary Earthman) 10명에 3성(星)급 정예병(Elite)을 30명 포함한 이들의 차원이동으로 인한 파동은 불과 500km밖에 퍼져나가지 않기 때문에 그 밖에 있으면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차원이동이라는 거창한 기적과는 다르게 파동의 단파가 매우 빨리 소모했다. 그렇기에 다른 차원의 존재는 ‘차원 침략’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지키는 것보다 공격하는 게 쉽기 때문이다.
중립신 같이 300명이 넘는 인신을 아래에 뒀던 대신(大神) 중 대신(大神)이나 <테라> 같은 정신 나간 차원을 만들 계획을 잡을 수 있었다.
거무튀튀한 명찰에 진초록색의 글씨가 써져서 읽기가 힘든 용병 지구인(Mercenary Earthman)의 명찰에는 E8이라는 글자와 M.E라는 약자에 에메리히(Emmerich)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어깨에는 상사 계급장이 붙어있었지만, 병사와 구분이 어려웠다.
비슷비슷했고, 색깔의 차이가 전부이거나 미묘하게 별이 하나 턱 있든지 했다. 멀리서 보면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상사님.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몬스터는 조금 잡힙니다.”
“계속 이동하다 보면 마을도 나오겠지.”
그들은 하나같이 태평했다. 긴장감이라는 게 없었다. 독특한 패턴의 군복을 입고 있었지만, 검도 차고 있었고 판타지스러웠다. 하지만 수류탄부터 M4-226A1TL 같은 돌격소총도 보유하고 있었다.
어떤 자는 대전차 로켓까지 등에 짊어지고 있었다. 중대형 몬스터를 쉽게 무력화할 수 있는 건 마법보다는 로켓이다.
상사 1명, 병장 2명, 상등병 4명, 일등병 3명.
상위인간이자 용병 지구인은 10명에 불과했고, 일등병 3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식민지 전투를 경험했다. 일등병 3명의 경우에는 이전의 식민지 차원에서 징병한 자들이었다.
상사 에메리히가 말하기도 전에 병장인 아메리고(Amerigo), 블랑쉐(Blanche)는 3성 정예병 30명을 관리하도록 상등명 4명에게 명령했다.
“장비 이상이 있으면 보고해라.”
“예.”
상등병 얼(Earl)의 말에 붉은 요새의 방패병 중 분대장 직을 맡고 있는 페리(Perry)가 짧게 대답했다.
상등병 렉스(Rex)는 오성마탑의 마법사 7명에게 다가가서 비슷한 일을 했다. 상등병 헤스터(Hester) 또한 마찬가지로 포레스트 레인저 3명을 살폈다. 특히 그의 임무는 막중했는데, 포레스트 레인저는 3성급에 불과했지만 자부심이 대단했다.
상등병 중 가장 막내인 헤스터가 그들을 맡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힘든 일은 짬 처리하는 건 어느 곳이나 똑같았다.
상등병 리셸(Richelle)은 환희와 자유의 사제 10명에게 다가가서 웃음이 만개했다. 사제들의 경우에는 모두 여성체로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이상 없습니다!”
곧 그들은 보고 체계를 통하고 통해서 상사 에메리히에게까지 도달했다.
“몬스터를 잡아서 가죽을 확보해서 재화와 교환하여 활동비를 확보하고, 세상에 대한 정보를 획득한다.”
“정신체(精神體) 관측을 위한 설비도 들어오면 좋을 텐데요.”
“그건 나중에 해야 할 일이다. 지금은 이 세계에서 명성을 떨치는 인적자원을 파악한다.”
침략에서 영웅은 어디에서든지 나타난다. 하지만 그런 영웅은 90% 이상, 기반이 있는 이들에게서 모습을 드러낸다. 파견대는 요인암살은 안 하지만 싹이 있는 인적자원을 파악하여 데이터화 시키는 임무도 있었다.
그건 최대한 빨리해야 하는 일 중의 하나였는데, 가장 오래 걸리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런 허허벌판에서 언제 성이나 도시에 도착할지.”
“작은 마을에서 점직적으로 정보를 모아서 활동하는 게 안전하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저, 작은 불만을 말한 것뿐입니다.”
병장 아메리고의 말에 상사 에메리히가 짧게 답했다. 무뚝뚝한 이들이었다. 그만큼 상위인간의 수명은 대단히 길었다.
“대규모 정보 마법을 펼쳐라. 블랑쉐!”
“예!”
널널한 아메리고와 달리 병장 블랑쉐는 빠릿빠릿했다. 군인다웠고, 여자임에도 어깨가 떡 벌어져 있었고 허벅지도 어마어마했다. 여전사의 표본이다.
“애들 여럿 데리고 가서 주변 정찰하도록.”
“예.”
대충 내리는 명령이었지만 그만큼 블랑쉐를 신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상등병 2명, 일등병 하나에 발키리 시스템으로 제작된 인조 생명체, 3성 정예병 10명을 적절히 데리고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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