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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드낙이 지하 연합을 방문한다는 소문이 지하 깊은 곳까지 뻗어 나갔다. 드낙에 대한 정보 공유는 범종족적이었기에 모르는 이가 없었고, 소문도 무성했으며 실제 효과를 봤다는 정보 또한 있었다.
싹! 싸싹! 싹!
“모든 거미줄을 걷어내라! 거미를 죽여서는 안 된다!”
“찍찍! 익충이다, 익충!”
지하통로를 청소하기 바빴다. 벽에 누가 몰래 파놓고 숨겨놓은 술통이 발견되기도 했다.
“킁킁! 고블린 냄새가 난다!”
“나쁜 고블린이다! 혼자서 먹으려고 이렇게 숨겨놓다니!”
“빨리 챙겨라! 찍찍!”
가장 먼저 대청소가 시작되었다. 특히 어디서 들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물청소도 곁들었다. 막대한 물이 소모되었다.
쑤욱! 쑥!
바닥에 대리석을 빡빡 닦기도 했다. 물수건으로 반들반들하게 빛이 날 정도로 닦았다.
“에헴!”
그곳에 드낙이 뚝 떨어졌다. 청소하던 크놀이 귀신을 본 것처럼 펄떡거렸다.
“하하하. 왜 이렇게 놀라는 거냐?”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의 신을 뵙습니다. 제가 안내를 해드리겠습니다.”
“좋다. 소원을 들어줘야지.”
가는 내내 드낙은 지하 연합이 뭐가 힘든지를 물었다. 크놀은 상투적인 말을 하며 겸손히 대답했다. 들키면 그야말로 대장장이 망치를 손에 놓아야 할지도 몰랐다.
끼익!
문이 열리며 회의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둠에서 각별히 단장을 해둔 곳이라서 실로 아름다웠는데, 가장 먼저 거울이 많았으며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햇빛이 사방으로 반사되어서 내부를 햇빛으로 가득 물들게 하였다.
“아름답다! 굉장한데!”
드낙이 칭찬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너무 눈부시다.”
“예!”
냉큼 거울의 각도를 조절하여 윗부분에만 햇빛이 들게 하였다. 조절도 가능한 모습에 드낙의 눈이 매섭게 변했다.
“드워프의 기술이잖아!”
“쉐도우 위스퍼의 정보를 통해서 얻어냈습니다.”
그가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해했다. 발전하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걸음을 천천히 늦췄다. 처음 핏빛쥐를 봤을 때가 기억났다. 쥐떼에 불과했고, 서로 잡아먹고 이내 종(種)을 이루었다.
‘피로 범벅이 되었지만 굴러도 이승이 좋지.’
질척거리는 피와 흙. 썩 좋은 탄생과정은 아니고 화려한 카펫과 비교하기에도 부끄럽다. 하지만 그곳에서 생명이 태어났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황금과도 같이 빛나는 추억거리였다.
드낙의 등장을 듣고 회의소에 서둘러 미리 지정된 이들이 들어섰다. 고블린 주술사 중에서도 부인이 많아서 탈모가 되어버린 낮은 영광 티모테오! 대장장이 중에서 가장 쓸데없이 정성을 들여서 항상 생산속도가 느린 혼의 누르잔! 주술왕이라 불리는 뿔쥐 의원 매력적인 눈썹까지.
모두 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를 칭송하고 나서 잠깐 침묵이 나돌았다.
서로 눈치를 보더니 이내 고블린 티모테오가 일어나서 고개를 숙이며 말하였다.
“저희 고블린들의 소원은 키가 조금 커졌으면 좋겠습니다.”
단신(短身)인게 고블린들이었다. 당연히 그럴듯한 소원이었다.
“다른 이들은?”
“저희! 콜록, 콜록!”
바짝 긴장해있던 누르잔이 입을 열다가 기침 소리를 냈다. 그리고 물을 한 잔 마시고 나서 다시 말했다.
“크흠! 저희 크놀들은 망치질하기 좋게 힘줄 하나만 덧대어주셨으면 합니다.”
“뿔쥐들은 손가락 하나만 더 주셨으면 합니다.”
드낙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손가락이 의자를 두드렸다.
“......”
모두 긴장한 기색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하나같이 어정쩡한 소원들이네.”
싸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드낙이 다리를 꼬았다. 그는 오늘 제법 컨디션이 좋았다. 지하 연합에게 큰 선물을 주는 날이라서 더더욱 감정적으로 안정되어있었다. 자연히 이성적인 판단이 최고조에 도달해있었다.
또 이미 요리 경합 대회에서 뿔쥐가 두 번이나 튕겨서 더더욱 그 의도를 알기 쉬웠다. 똑같은 태도를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데 이를 세 번째 본 드낙이 모를 리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됐다. 누구 생각이냐?”
“예?”
“어떤 종족이 먼저 사리자고 한 거냐고.”
“뿌, 뿔쥐입니다.”
주술왕이 스스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가만히 그를 보던 드낙은 고개를 갸웃했다.
‘뿔쥐가 원래 저렇게 턱이 3개였나?’
돼지처럼 잔뜩 살이 붙어있었다. 동물은 살이 찌면 귀여워 보이기 마련이라 드낙은 쉽게 넘어갔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하 연합 종족, 너희는 3번이나 내 말을 거역하고, 딴소리를 해대었지.”
“하지만 그건 오로지 반마반신이 더 빨리 신격에 오르시는 것을...!”
“시끄럽다! 누가 말하라고 했나!”
드낙이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주위가 조용해지자 다시 입을 열었다.
“지하 연합은 나에게 충분히 해주고 있다. 이제 내가 너희들에게 상을 내릴 차례다. 이를 게을리한다면, 누가 나를 신으로 생각하겠느냐?”
“그런 자가 있다면 혀를 잡아서 뽑을 것이고! 뇌를 헤집어서 그런 생각을 불태울 것입니다!”
매력적인 눈썹이 뱃살을 덜렁이며 외쳤다. 눈이 잔뜩 충혈되어있을 정도로 광신도의 모습을 보였다.
“그만!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니다!”
드낙이 서둘러 그의 생각을 접게 하였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서 고블린 티모테오에게 다가갔다. 그가 움찔했다.
“고블린.”
드낙의 손이 티모테오의 어깨에 닿았다.
“고블린은 예로부터 주력에 능하니.”
“헉.”
티모테오의 간이 쪼그라드는 듯했다. 드낙이 저벅, 저벅 걸어가는 소리에 누르잔이 눈을 질끈 감았다. 이미 지하 연합의 계획은 박살이 났다. 이제 남은 건 드낙이 주는 힘을 그대로 받는 것뿐이었다.
‘실패다, 실패!’
“크놀. 너희는 지하 종족 중에서도 대장간과 용광로를 잘 다루지.”
꿀꺽.
마른침이 절로 삼켜졌다. 드낙은 홀연히 사라져서 매력적인 눈썹의 뒤를 잡고, 양손으로 그 어깨를 안마하듯이 주물렀다.
“뿔쥐들은 항상 낮은 종족값을 가지고 있지. 안 그런가?”
“크윽...그, 그것은...”
하나같이 드낙이 힘을 많이 사용해야 할 것 같은 것들이었다. 드낙은 순식간에 파동이 되어서 다시 자신의 의자로 이동했다. 다만 전과 조금 달랐는데, 어둠을 풀풀 풍기면서 일부러 이동하는 곳을 알려줬다.
그들의 시선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로 눈이 옮겨졌다.
‘나쁘지 않은 임팩트지.’
하지만 부족했다. 그렇다고 리고가 보여준 ‘벼락’을 똑같이 따라 할 수는 없었다. 조금 부끄러워서였다.
“지금부터 괘씸한 너희들에게 내가 상을 내리도록 하겠다.”
어감이 조금 이상했지만, 실제 이 상황이 그러했다.
“가장 먼저 모든 지하 종족의 키를 크게 만들겠다! 고블린 뿐만 아니라 너희 모두다! 싹다!”
“그, 그럼 그게 소원으로 대신하시는 겁니까?”
작은 희망을 누르잔이 가졌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드낙을 자극시켰다.
“아니. 마음이 바뀌었다. 그냥 키뿐만 아니라 신체능력 전반을 상승시키는 권능을 배포한다.”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많은 업을 소비하실지 모릅니다! 신제국의 황제가 벌써 반신격에 도달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신으로 올라서야 합니다!”
“그런 건 내가 정한다. 그리고 놈이 신이 된다고 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 그는 결코 날 죽일 수 없다.”
드낙이 웃었다. 세파리아스의 힘은 물론 강하다. 영향무력은 위협적이다. 하지만 그것도 간극(間隙)의 안에 들어서야지 강하다.
초월체에게 압도적인 위협감을 주지만 드낙에게는 큰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거기에 들어가지 않으면 그만이고, 세파리아스가 신격을 획득한다고 해도 그 정신체는 결코 드낙을 잡을 수 없었다.
‘세계’조차도 속이는 암살자를 그가 잡을 거라고는 기대되지 않는다.
짝!
드낙이 손뼉을 쳤다. 이제야 좀 감이 왔다.
“뼈가 성장할 것이고, 커질 것이다.”
“근육은 발달하기 좋고, 먹기만 해도 근육이 생겨날 수밖에 없을 터다.”
“외모 또한 이목구비가 강하게 자리 잡을 것이다.”
“이를, 트리플 피지컬 팩터라 부를 것이며 나의 18번째 권능으로 삼겠다.”
그가 공표하자 모두 고개를 숙이는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더 반대했다가는 더 큰 반응으로 되돌아올 뿐이었다.
“지하 연합에게 <트리플 피지컬 팩터>는 필수로 부여될 것이다. 거기에 이견은 없으며 거부하는 자는 있어서는 안 된다! 알겠나?”
“예!”
그다음에는 종족 하나씩 권능을 주기로 했다.
“고블린은 주력 청안을 하사받아라. 주력을 담는 눈동자이며 햇수를 더할수록 주력에 대한 제어력이 상승할뿐더러 시각을 통해서 주력을 다스리는데 더 깊은 직관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쓴맛이 느껴졌지만, 감히 딴소리를 할 수 없었다.
“크놀은 화염 활력 피부를 하사받아라. 높은 고열을 피부가 맞이하면 이를 흡수하며 활력으로 전환하는 권능이다. 대장간 일과 용광로에 일하는 그대들이 조금이라도 더 편하도록 하겠다.”
“죽어서도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드낙의 시선이 살찐 뿔쥐에게로 향했다.
“뿔쥐는 신성력의 후광을 얻을 것이다. 인간들이 상위인간이 되려고 신성력을 보유하여 없는 그릇을 만들 듯이 너희 또한 더 높은 종족값을 위해서 노력하라.”
“허나,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의 신이시여. 저희 ‘피숨결 검은 뿔쥐’들은 엘프를 먹고 상당한 성장을 이룩하였습니다. 여기서 어찌 더 종족값을 높일 생각을 가지겠습니까?”
“적어도 오우거만큼 성장하고 나서 그런 말을 나에게 하라.”
그 말에 매력적인 눈썹도 결국 고개를 숙이는 수밖에 없었다.
*
“끼에에에에에엑!!!”
소아귀가 끔찍한 고함 소리를 내뱉었다. 연약하고 연약한 목에서 소리를 내질렀다. 아주 고통스러워했다. 하반신이 뜯겨 나가서였다.
아기들로 땅과 천장과 모든 것이 이루어진 세계는 대악마(大惡魔) 아카타베루의 세상이었다. 그 세상은 움직이고 있었고, 착실하게 중립신이 죽어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곳에 구천안흉(九千眼凶)이 전신에 눈을 좁쌀처럼 붙인 채로 연신 회의에 임하고 있었다. 준비된 시간은 이제 45년이 넘게 남았음에도 할 일은 많았다.
세상을 침략하는 것.
차원을 무너뜨리고, 약탈하는 것.
그건 보통 일이 아니었고, 언제나 변수가 만들어진다. 세계급의 위기 속에는 언제나 믿을 수 없을 만큼 나약한 종족이라 할지라도 대영웅(大英雄)이 탄생한다.
위기는 곧 기회이기에 그들은 어디서 숨어있다가 나왔는지 몰라도 소름 돋을 정도의 포텐셜을 지닌 채 종족 위기 속에서 깃발을 내건다.
그렇기에 구천안흉은 수많은 준비를 아카타베루 대신 해나가야 했다.
그중에 하나.
바로 생명체와 세계를 죽이기 위한 권속 악마에 대한 선별이 이루어졌다. 이게 인제 와서야 이루어진 까닭은 상급 권속 악마의 생산과 다른 중하급 권속 악마에 대한 생산이 한꺼번에 겹친 시절이 있어서였다.
“이제 여유가 조금 생기는데, 환경에 대한 권속 악마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죽음의 지렁이?”
생명체가 살 수 없는 토양을 만드는 데스 어스웜! 크기도 작았기에 노동력을 통해서 잡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까다로운 하급 권속 악마였다. 환경을 붕괴하는데 탁월하고, 많은 악마들이 채용하고 있기도 했다.
“중립신의 대륙은 넓고, 또 넓다. 지렁이로 효과를 보기엔 어려워. 장기적으로 볼 게 아니지 않나? 용도에 맞지 않는다.”
“그럼, 레드 스카이는 어떤가?”
“나쁘지 않네. 날아다니고, 무엇보다 드워프를 제외한 모든 종족과 생명체에게 효과적이야.”
“찬성.”
“레드스카이...둠 메이커. 태양 떨구기. 자연 학살자라 불리는 하급 권속 악마는 생산효율성이 떨어지기로 유명한 건 알고들 있나?”
“그래도 효과적이지. 단기간에 뽑아먹기도 좋고.”
“중립신의 행성은 큰 편이다. 화산재를 내뿜는 독수리야말로 그들을 말려 죽이기에도 좋아.”
레드 스카이는 하급 권속 악마치고는 조금 단가가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기용되는 것은 태양을 가릴 수 있는 화산재를 뿜어내기 때문이었다. 날고 있기에 잘 죽지 않기도 했다.
‘하늘’을 지배하는 종족은 많지 않았다.
“그들의 사회를 보면 레드 스카이는 좋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지.”
“세상이 화산재로 뒤덮인다면, 그들은 식량 하나 얻기 힘들어질 것이다.”
구천안흉이 웃었다. 상상만 해도 재미났다. 버티더라도 오직 죽음밖에 기다리는 게 없었다. 그들은 그 절망 속에서 무엇을 말할까? 어떤 것을 볼까?
‘지독한 굶주림과 죽음만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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