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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나중에 생각하자. 일단은 리고 자식부터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줘야지.’
“이번에 성인식 치르는 아이들은?”
“하나다. 가장 먼저 낳은 애지. 곧 올 거다. 그 전에 잠시 필요한 걸 준비해두겠다.”
리고가 밖으로 나섰다. 아내도 잠시 드낙에게 앉아있으라고 권했다. 드낙이 큰 의자를 껑충껑충 벼룩처럼 튀어 올라서 넓은 테이블에 섰다. 뭐든지 인간보다 컸다.
‘대인국에 온 기분이네.’
그런 생각을 했을 때, 문이 열리며 오우거 하나가 들어왔다. 초록색 피부에 이상할 정도로 눈이 똘망똘망했다. 속눈썹도 길었다. 그 오우거는 드낙을 보더니 말했다.
“뭐야, 이 조그만 녀석은?”
“네 아버지가 나보고 성인식 치러 달래서 왔는데?”
“엉?”
그가 멍청한 소리를 내자 인기척을 들은 비건이 손짓했다.
“어! 왔어? 이분이야. 반마반신. 아버지가 힘들게 데려오신 분이야. 인사해.”
“헤헤, 원래 작은 고추가 더 매운 법이죠.”
순식간에 태세를 전환했다.
“난 드낙이다.”
“탈룰라라고 합니다.”
드낙은 순식간에 놈의 뒤를 잡아서 어깨에 섰다.
“헉?!”
“후후. 뒷마당으로 가자. 리고가 준비를 해놓는다고 하더라.”
“근데 좀 내려오시는게...”
탈룰라가 은근슬쩍 불편함을 감추지 못했다. 여물지 못한 오우거였다. 이에 드낙은 웃으며 말했다.
“내려오게 해보던가.”
단번에 마법과 주술이 펼쳐져서 드낙을 노렸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흐흐!”
그 어떤 주문도 없이 시작된 힘의 방출에 드낙이 당하는 상상을 한 탈룰라가 웃음소리를 냈다. 기습이나 다름없어서 당할 수밖에 없다고 여겼다. 실제로 부모님에게도 성공한 수법이다.
이런 짓궂은 면모 때문에 리고가 특별히 드낙을 초청한 것이다. 부모를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어이어이, 난 네 머리 위에 있다고?”
“악!”
그가 버둥거렸지만 드낙은 탈룰라를 농락했다. 그냥 달리기만 해도 사냥꾼의 재능이 꽃피고, 사람 손가락만 자르고 다녀도 암살 재능이 세계수처럼 커지는 드낙을 상대로 탈룰라는 속수무책이었다.
“안 오고 뭐하냐!”
리고가 버럭 지르고 나서야 탈룰라가 드낙 잡는 걸 포기했다. 그는 끝까지 탈룰라의 머리 위에 섰다.
“친해졌군. 역시 반마반신.”
‘어린아이랑 잘 맞네. 나중에 애들을 좀 맡겨도 되겠어.’
“훗. 내가 쫌 하지.”
서로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 드낙은 껑충 뛰어서 단번에 몸집을 키웠다. 순식간에 오우거만한 인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근슬쩍 신성력을 퍼뜨리며 광휘의 날개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반응은 없었다.
‘임팩트가 좀 없나?’
“성인식이다. 탈룰라. 전심전력으로 부딪쳐라. 상대는 너보다 강하다.”
리고의 말에 탈룰라가 강철 글러브를 끼더니 그대로 양주먹을 쾅하고 쳤다. 공기가 터져나가며 그 울림이 사방으로 퍼졌다.
‘호오..’
제법이다.
“주먹을 쓰다니, 오만한데?”
“지금까지 이 쌍주먹을 버틴 놈이 없습니다.”
‘없겠지.’
체구만해도 트롤의 2배. 6~8m에 달하는 미친놈들이 바로 오우거였다. 걸리면 죽는다고 보면 된다. 그렇기에 마신이나 되는 자가 오우거를 마신장으로 격상하여 외부침략의 장군으로 세우고 있었다.
“후후.”
하지만 이내 드낙이 비웃음을 날렸다. 그 비웃음에 탈룰라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자신의 쌍주먹을 보고도 웃다니, 해도 너무했고,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다. 특히 이 쌍강철글로브는 마력과 주력이 혼합되어 있는 최강의 초월 무기였다.
그렇기에 탈룰라는 자신이 있었다.
“권투가 가장 낮은 수준의 무술 체계임을 모르는 건가?”
“아빠가 저한테 가장 맞는다고 하셨는데...”
“아.”
대화가 뚝 끊겼다.
“커흠...그게 애가 무기를 잘 못 다뤄서...”
분위기가 갑자기 암울해졌다. 드낙은 볼을 긁으면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나, 나도 무기를 들까?”
“자신 있는 걸로 하세요.”
탈룰라의 말에 드낙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기를 들어 올렸다. 사실 오우거와 견주기에는 무술에 그리 뛰어난 게 아닌 게 드낙이다. 최대한 자신 있는 무기를 들고 싶었다. 많은 능력으로 무력을 높게 보정 받고 있었지만 대부분 억지다.
검이 꼭 있어야 하는 편이다.
시작은 당연히 마법과 주술로 이루어졌다. 드낙 또한 정직하게 맞서나갔다. 대신 속으로는 아주 간악한 짓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악마의 힘을 이용해서 육체를 변형, 주문을 내뱉는 입이 피부 밖으로 튀어 올라 나왔다.
“크, 크아아아아아!!!!”
탈룰라가 양손을 앞으로 쩍 내밀면서 단순히 마력과 주력을 각각 다른 손으로 뿜어내며 ‘힘’으로 맞섰지만 마법으로도 안 되던 걸 그런 걸로는 막을 수가 없었다.
그대로 압도되었고 머리털이 홀라당 타버렸다.
“케흑.”
검은 연기를 내뿜었다. 놀라운 생명력으로 죽지 않았고, 놀라운 정신력으로 쓰러지지도 않았다. 그저 기침 한 번 한 게 전부였다. 패배에 대한 리스크가 적은 편이었다.
“치료해줄까?”
드낙의 경박한 물음에 탈룰라가 범처럼 달려들었다. 마력과 주술로 안 된다면 힘으로 짓누르면 된다. 오우거는 그 어떤 종족보다 ‘대형 생명체’에 어울리는 종족이었다.
콰과과과!
지축이 흔들렸다. 탈룰라의 질주에 땅이 들썩였다. 평범한 소형 생명체라면 옴짝달싹도 못할 정도로 진동이 심했다.
보통 사냥할 때도 그냥 껑충 뛰어서 땅 한 번 찍어주면 사냥감은 진동 때문에 다리를 후들후들 떨면서 주저앉는 게 기본이었다.
그 속에서 드낙도 질주했다. 그리고 서로 뒤엉켰다. 양주먹이 휘둘러지고, 검이 움직였다. 그 속에서 드낙은 그저 주먹을 견제할 뿐 그대로 몸통박치기를 했다.
쾅!
거대한 충격이 서로의 몸을 흔들었다. 또 동시에 박치기를 서로 했다. 피가 튀었다. 골이 깨지는 감각에 탈룰라가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아무리 똑똑하고 이성적인 리고와 비건의 자식이라고 해도 그들 또한 오우거였다. 되려 한 발 앞으로 나아가며 맹공을 펼쳤다.
백중세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건 전사의 기본이다. 수비보다 공격이 더 형세가 좋기 때문이다. 보고 피하는 건 힘들지만, 미리 지르는 건 편하다. 용서가 허락보다 쉽다. 지르고 보는 건 대부분 상황에서 좋다.
부웅!
압도적인 힘! 그 누구도 회피할 수 없는 정권 찌르기는 올곧았다. 그렇기에 쳐내기 쉬운 것 같았지만 빠르면 그 자체로 힘이 된다. 야구에서 파이어볼러라 불리는 강속구 투수를 기를 쓰고 영입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50km가 넘는 구속을 보고 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빠르면 그만!’
이를 드낙 또한 속력으로 맞받아쳤다.
퍽! 서걱!
검이 어깨를 깊게 베고 지나가고, 주먹이 드낙의 턱을 올려쳤다.. 드낙은 상체가 뒤로 가고, 탈룰라는 옆으로 크게 균형이 무너졌다. 하지만 하체는 서로 단단했다.
퍽! 서걱!
그 상태에서 몸이 틀어지며 다시 주먹과 검이 서로의 몸을 헤집었다. 피가 쏟아져나왔다. 결국, 물러선 것은 탈룰라였다. 마력과 주력이 서로 피어오르며 몸의 반쪽을 서로 지배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살점과 피가 떨어져 나갔다. 강인한 오우거의 뼈조차도 잘렸다.
‘큭.’
마력은 마법으로 변하여 물을 쏟아내며 그를 치료했고, 주력은 밝은 연두색 나뭇잎으로 변하며 몸을 덮으며 출혈을 회복시켰다. 완치까지 단 3초 걸렸다. 하지만 이를 드낙은 가만히 지켜봤다.
그는 가만히 있었음에도 몸이 회복되고 있었다. 반마(半魔)에 불과하지만 가진 업이 워낙 대단해서였다. 그 아래에 있는 자들만 해도 억이 넘었다.
“말도 안 되는.”
“몸이 자연적으로 치유가 안 되면 머리가 고생해. 안 그래? 주문을 읊어서 치료를 해야 하잖아. 그렇게 어렵게 세상을 살면 안 피곤해? 몸으로 해결하는 게 가장 간단하지. 옛말에 그 누구였더라? 뭐라고 말했는데.”
“아! 그래, 아무리 복잡한 이론도 심플하게 대답해야지만 통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이미 대가라고 할 수 있지.”
“핀트가 좀 어긋났는데요.”
탈룰라의 말에 드낙이 섬뜩하게 웃었다.
“중립신의 세뇌가 날 이렇게 만들어버렸지. 최근 내뱉고 나서 깨닫고는 해. 완전한 신격에 오르면 회복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중립신은 드낙을 자신의 입맛대로 개조했다. 그 여파는 반신격이 되어서도 회복되지 않고 있었다. 종종 뇌절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는 중립신과 똑같은 반열에 올라서야지만 극복 가능했다.
“성인식은 여기까지다. 탈룰라! 함부로 나대지 마라. 넌 오우거지만 동시에 필멸자다!”
“예.”
그가 제법 누그러졌다. 드낙과의 짧은 싸움으로 모든 걸 깨달았다. 이 세상이 얼마나 개지랄 같은지를.
“저도 신이 될 수 있습니까?”
“어? 정말?”
드낙이 함박웃음을 지었지만, 그 앞을 리고가 가로막았다.
“아직 어린놈이라서 건방지기 짝이 없네! 아버지도 아직인데, 어디서 자식이 먼저 신이 되려고. 안 그런가?”
“그렇지. 리고먼저 신이 되고 나서 자식이 신이 되어야, 사리에 맞지. 너도 검은 잔 같은 거라도 내어줄까?”
“내 피라도 필요한가?”
“아니지! 내 피를 마시는 거지.”
“하하하. 됐다. 사양하지. 나 나름대로 이 생활을 즐기고 때가 되면 오우거의 신이 되겠다.”
그 말에 드낙은 보증서를 내미는 친구가 된 것처럼 그의 어깨에 양손을 올렸다.
“너만 믿는다.”
‘응. 안 받아.’
“나만 믿어라.”
서로 굳게 악수를 나누었다.
“어, 그럼 난 이제 가도 되는 거지?”
“아니. 그거랑 또 하나를 해줬으면 좋겠는데...”
“어떤...?”
드낙이 조금 흥미를 느꼈다. 리고의 아들을 쥐어패는 건 재밌는 여흥이었다.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미지근했다.
“크흠. 최근 문제가 하나 생겼는데,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엥? 네가? 무슨 문제가 있길래?”
리고는 가만히 듣고 있는 탈룰라를 보고 턱짓했다. 그가 아쉬워하며 뒷마당을 나섰다. 리고는 거침없이 거부좌를 틀며 앉았다. 드낙도 양반다리를 하며 앉았다.
슬금슬금.
리고가 양손을 통해서 몸을 쩍 들어서 가까이 다가왔다.
“왜 이래? 대체 뭐가 문제인데?”
“뿔쥐들이 문제야.”
드낙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뿔쥐들이 문제라니?’
*
“신제국의 황제를 뵙습니다.”
“기다리고 있었다.”
세파리아스가 몸을 일으켰다.
뿔쥐들의 공중요새 기술을 모조리 가져온 신제국의 간악한 행동은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당연히 그 소리를 듣고 은근슬쩍 세파리아스와 연줄을 대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인간이기도 했고, 드워프이기도 했으며, 엘프일 때도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무엇도 아닌 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기에 세파리아스도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을 할 정도로 그를 대우해줬다.
뿔쥐를 제외한 이들이 모두 ‘신제국’을 그들의 견제책으로 여기고 있었다. 세력의 차이는 명백했기에 자연히 신제국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다.
견제하더라도 차이가 좀 비등비등해야 제대로 된 견제가 가능했다.
“저번에 받은 기술을 개량한 것입니다. 뿔쥐들은 감히 여기에 닿지 못할 것입니다.”
세파리아스가 디아볼로스가 건내주는 서류를 받아들였다. 서류는 허공으로 떠나서 세파리아스에게로 자연스럽게 향했기에 앉아서도 받을 수 있었다.
뿔쥐들의 독주는 다종족 연합체의 성격을 띠고 있는 현 세계질서를 위협하고 있었다.
이를 반드시 견제해야 할 세력이 필요했고, 세파리아스가 그 책임을 손에 쥐었다. 책임에는 권리가 따르고, 권리에는 이권이 담긴다. 그렇기에 책임을 진다는 건 귀찮은 일을 떠맡는다는 것이 아니다.
강력한, 뛰어난 자원이 신제국의 손으로 지금도 꾸준히 들어가고 있었다.
오크들은 자-주포를 싸게 보급했으며, 일정 비율을 무료로 제공했다.
드워프들은 다른 종족보다 더 많은 비율의 드워프 제품을 신제국에게 제공했다. 무역 비율 중 무려 30%가 신제국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기왕 판매할 거면 신제국에 판매하겠다는 노선이었다.
물론 신제국은 제값을 받고 사들이고 있었다. 활력이 없으면 동면에 들어가는 미친 종족이 드워프였다. 없어서 못 살 지경! 특히 드워프의 온돌은 엘프식과 다르게 마력충전을 요구하지 않는 반영구적인 온돌 기구였다.
그 외에도 자치왕국은 일부러 일차산업 골램의 일부분을 신제국에 보내고 있었다. 빨리 성장해서 뿔쥐를 견제하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공중 요새는 그저 구색에 불과하지.’
서류를 뒤적거리는 세파리아스는 끝 부분에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일차원적으로 멍청한 생각만 하는 놈들은 신제국이 공중 요새를 지을 거라 예상하겠지.’
가장 생각 없는 놈들이었다. 그런 군비 경쟁으로 뿔쥐를 이길 리가 없었다. 중요한 건 신제국이 뿔쥐와 경쟁하겠다고 공표한 것이다. 드낙이 마련한 판을 통해서 다른 종족에게 고함을 내질렀다.
신제국은 뿔쥐를 적대한다고. 그들을 이길 것이라고.
그렇기에 세파리아스는 공중 요새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 질 싸움에 끼어드는 건 삼류다. 삼류의 싸움을 하는 건 어리석다.
‘안 만들고 이 여력을 통해서 다른 걸 찍어버린다.’
디아볼로스가 주는 공중요새 개량 기술은 허울에 불과했다. 그 이면에는 ‘초거대 환상마법탑’의 건조 설계도가 빠짐없이 들어가 있었다.
‘황제 기사단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신제국은 공중요새 기술을 뿔쥐들로부터 빼앗고.
다른 이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황제 기사단 프로젝트를 수십 년 앞당겨서 진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쉬운 건 있었다.
‘뿔쥐들이 소원을 막아달라고 소원을 빌었다면 더 좋았을 것을.’
신제국의 소원은 이루어져도 결과는 변함없었다. 그 목적이 다른 연합국에게 자신들이 뿔쥐와 경쟁하겠다고 공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루어져도 그만, 안 이루어져도 그만이었다.
“선물은 고맙게 받겠다.”
“대신 약속은 지키셔야 합니다.”
“뿔쥐가 괴롭힌다면 날 찾아오라.”
디아볼로스가 고개를 숙이고 물러갔다. 세파리아스는 와인을 잔에 따랐다.
‘드낙 놈, 평화 시대가 도래했다고 모든 게 끝났다고 여기는 꼬라지하곤...’
전쟁 이후가 더 바쁘다는 걸 드낙은 모르는 듯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런 정치 체계가 세워졌지.’
가장 웃대가리가 정치에 관심 없었기에 이런 자유분방한 연합국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건 위업이라 부를 만했다.
어리석은 왕이 통치하는 평화로운 나라의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세파리아스가 드낙 편을 들었다. 드낙을 모시고 살아갈 마음이 생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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