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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번잡한 중앙 벽보에는 언제나 사람이 득실거렸다. 최근에는 언론의 자유이니 뭐니 이상한 소리를 하면서 벽보를 곳곳에 설치하고 관리원을 두고 이 소식 저 소식을 전하고 있어서 그로 인한 일자리도 많았다.
벽보에 있는 걸 보고, 이를 다른 이들에게 이야기해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이들은 술집부터 식당까지 자유롭게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소량의 돈을 받고 떠드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이 실버타운이라는 것이 교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양쪽 도시 사이에 건설되는데, 그게 가장 중요한 거지. 절대 안 버리겠다는 반마반신의 엄청난, 실로 엄청난 입김이 불어온 것이야.”
“아닌데? 내가 들은 바로는 게제라스 국제 연합 총수가...”
“명칭부터 틀린 데 뭔 헛소리야? 게제라스 국제 연합 의장이야!”
“총수야!”
“의장이야!”
“아니, 그래서 실버타운이 어떻게 된다는 거야?”
“대애박 났다는거제에에에!”
자기 일이 아닌 걸 떠들며 이모저모를 판단하고 사족을 덧붙이는 건 실로 재밌는 일이었기에 돈벌이와 비교하면 인기가 많았다. 마치 정치를 하는 듯한 기분에 휩싸이게 하였다.
시끄럽게 노인 앞에서 두 명의 정보꾼들이 떠들어대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라 동화도 하나씩 얻어서 기분 좋은 출발이었고, 실버 타운은 노인을 위한 것이라 노인들의 호주머니를 털기에도 좋은 이슈거리였다.
“다녀오겠습니다아아아아!!!”
“조심하고! 싸우지 말고!”
농경 사회를 벗어났지만, 아직 그 여파는 남아있어서 동이 트기 전부터 북적북적했는데, 노인이 사는 집에서 여자 아이와 남자 아이가 툭 튀어나오며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나갔다.
“어어! 이제 가는 거냐?”
한 타이밍 늦게 반응한 노인에게 넙죽 손자, 손녀가 인사를 올렸다.
“자격증 따러 가는 거지?”
“네!”
“허허, 잘 다녀와라.”
“다녀오겠습니다!”
아이들이 너도나도 1등을 하겠다고 내달렸다.
“활기차네요. 근데 여자애도 보냅니까?”
정보꾼이 툭 내뱉었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점심을 공짜로 준다는데 보내야지.”
드낙 비전을 보급화하고, 민간의 무력 수준을 높이는 일환 중에 하나.
‘소드 스콰이어 자격증.’
필수 과목 중 하나로 많은 아이가 이걸 따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7시부터 12시까지 이루어지는 5시간 교육과정에 한 명당 일주일 최대 3일 이수를 받을 수 있었다. 대부분 부모가 3일 모두를 등록해서 아이들을 보낸다.
바로 점심을 공짜로 지급하고, 아이들을 무려 5시간 동안 맡아주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필수 과목이 있었고, 이를 통해서 자격증을 얻을 수 있었다. 모두 공공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신뢰성도 높았다.
“그래서 실버타운이 좋다. 이거지?”
노인의 말에 정보꾼이 이야기를 따박따박했다.
“세수가 얼마나 많이 거두어들이겠습니까? 그걸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실버타운에 고용하고 있는지 알면 그런 의심을 거둘 겁니다. 거기에 땀을 좀 흘릴 정도로 근육 있는 나이 든 사람은 일자리도 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정말?”
노인이 단번에 훅 기울어졌다. 집안 살림이 조금이라도 보태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었다. 또 돈 버는 것도 제법 재미가 있었다. 무료한 삶은 사람을 죽이는 조용한 마약과도 같았다.
“감사합니다.”
동화를 한 닢씩 더 줬다. 이들은 실버 타운에 대한 이슈를 통해서 노인들을 전문적으로 상대하는 정보꾼들이었다. 그 이면에는 드낙의 사업을 ‘성공적인 사업’으로 만들려는 뿔쥐들의 ‘거대한 음모’가 존재했다.
이 모습을 실제로 지켜보고 있는 피숨결 검은 뿔쥐가 지붕 위에 숨어있었다.
‘일단 홍보가 되고 사람이 모이면 얼추 굴러간다.’
규모가 만들어진 플랫폼은 승리할 수밖에 없었다. 전세계에 있는 노인들이 모여있는 실버타운은 효율적일 수밖에 없었다. 실패하기도 어렵다.
뿔쥐 정보꾼들은 그들의 돈을 받은 이들이 제대로 일을 하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그 덕에 처벌받은 자들은 혼이 나서 더욱 열심히 일하게 되었다.
“나, 존 할배 좀 만나러 갔다 올게!”
“지팡이 가져가세요!”
“싫어!”
노인들이 하나 둘씩 실버타운이 건설되는 곳으로 움직였다. 그들 중 아직도 힘을 꽤 쓰는 이들은 인부로 고용되기도 했다. 물론 그 외에도 다양한 활동이 예정되어있었다.
“농사하실 분은 힘을 합쳐서 농사하시면 됩니다. 땅은 저희가 마련을 해놓았습니다.”
“술과 관련된 직종은 101동으로 가셔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삶! 노인들이 노인들끼리 서로 함께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실버타운이었다. 조건 없이 그들에게 복지를 주는 게 아니었다. 노인들 개개인의 사회적인 연결고리를 두껍게 만들어서 삶에 대한 의지를 크게 키우는 효과가 있었다.
“빌로엔 엘라한 님. 침구류가 부족하다고 합니다. 어찌할까요?”
“내일이면 도착한다. 대체할 것으로는 그것보다 위에 있는 보온 아티팩트 등을 배려의 의미로 지급해줘라.”
또 취미나 일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묶기도 했다. 그리고 이곳에는 동부 해안에서 물러나야만 했던 엘라한 가문의 사람들이 총지휘하고 있었다. 실버타운의 심층에는 <옹골찬 물의 정령>이 살아가고 있는 거대 지하 호수가 존재했다.
모두 서로의 의견이 맞아서 이곳에서 새로운 사업을 관리하는 가문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엘라한 가문은 노인 복지를 통해서 자신들의 가업을 연명해나갈 생각이 없었다. 이건 그저 부차적 사업에 불과했다.
‘도시 하나를 먹기 위한 사업의 일환.’
제대로 할 것이지만 주목적은 따로 있었다.
‘정령 물품의 생산 기지.’
마법 물품, 주술 물품 등 다양한 초월적인 물품들이 곳곳으로 유통되고 있었다. 이제 그 파도에 엘라한 가문도 뛰어들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돈이 되기 때문이다.
‘밀값과 고깃값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마을에 골램이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그 수요량도 줄어들고 있었다. 자급자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소비는 대부분 도시나 성에서 이루어지거나 큰 마을은 되어야지 식당이 밥벌이할 수 있는 구조로 변하고 있었다.
혹은 마을과 마을 사이 길목에 세워진 여관이나 할 법한 일이 되었다. 그걸 대체할 새로운 산업 구조를 꾸준히 제시하고 있었기에 혼란은 적은 편이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봤기 때문에 엘라한 가문은 ‘정령’에 많은 투자를 할 수밖에 없었다.
*
‘아따, 좋다.’
드낙이 테라스에 자리를 펴도 햇살을 맞이했다. 물론 노는 것이었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태산처럼 쌓여있었지만 그래도 휴식을 취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야말로 대 평화시대가 도래했는데, 열심히 일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요리 경합 대회에서 일했다고 생각해서 더더욱 게으름을 피웠다.
‘내일에는 23째 내 딸에게 이름을 지어주러 가야 하고...’
오늘만큼 쉬고 싶은 날이 없었다. 왜냐하면 내일에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일 일하면? 당연히 오늘은 쉬어야 했다.
쿠구구궁!
국제 연합 도시에 천둥소리가 퍼져나갔다. 그건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드낙도 벌떡 일어났다.
‘이게 뭔 일이야?’
마법으로 인한 것인지 소리가 먼저 마른하늘을 뒤흔든 다음에 벼락이 번쩍이며 떨어졌다. 물리적으로는 그 반대가 되어야 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리고 그 벼락에서 리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슴이 콩알만 해지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있는 드낙을 보며 리고가 씨익 웃었다.
‘이 새끼...?’
드낙이 단번에 리고의 머리 위에 섰다.
“내려와!”
“흐흐.”
한 번 비웃어주고 나서야 드낙이 바닥에 섰다. 리고는 온몸이 푸른 액체로 뒤덮여있었다. T34번 융합물약이었다. 주력과 마력을 하나로 융합해주는 물약이었다.
“왜 이렇게 끈적해?”
“조금 섞어서 그렇다.”
“근데, 지금 한 건 뭐야?”
“벼락이동이라 불리는 마주력 주문이다.”
“대단해보이는데...”
“힘이 많이 소비되지만 단번에 5,000km를 이동할 수 있지.”
“여기에 오는데 많이 힘들었겠다.”
“최단시간에 왔다. 그게 중요하지.”
드낙은 그저 ‘세계 관측’을 회피해서 파동으로 이동하면 되지만 리고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절로 그를 불쌍히 여겼다. 그게 짜증 나는지 리고는 대수롭지 않게 쿨내를 풀풀 풍기며 대답했지만, 이득을 본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누가 봐도 억지로 쿨한 척을 하고 있어서였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날 찾아오고. 뭐 부족한 게 있어?”
“있다! 왜 나를 요리 대회에 참가시키지 않은 거냐! 심지어 나는 대회가 끝나고 들었다! 간악한 다른 종족이 우리 오우거 종족을 따돌림 시켰어!”
“엉? 오우거는 생식을 하지 않나?”
“생식도 훌륭한 요리다! 날것을 안 먹는 버러지 같은 놈들은 편협한 시야를 가지고 있을 뿐!”
“아!”
드낙이 큰 깨달음을 얻은 표정을 지었다.
‘쓰쉬! 스시를 아시는구나!’
회! 회가 있었다. 하지만 요리 경합 대회에서는 조리된 것만 나왔다. 드낙은 절로 미안함이 들었다. 만약 오우거가 생식 요리를 홍보했다면 매우 요리적인 발전을 이뤄냈었을...
‘아니지. 기생충에 큰일 났겠지.’
“생식 문화는 아직 받아들일 수 없어.”
온갖 질병과 세균, 기생충을 그대로 몸속에 집어넣는 일이었다. 반드시 막아야 했다. 구충제를 먹지 않으면 어찌 되는지 드낙은 잘 알고 있었다.
“일단 본론부터 말해. 대체 왜 이렇게 급하게 온 거야?”
국제 연합 도시에 큰 소란을 일으켰다. 무식하게 벼락이 되어서 왔기 때문이다. 마력과 주력을 따로 쓰는 게 아니라 융합해서 쓰는 리고는 이미 반신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T34 융합 물약이 있어야 한다는 제약이 있었지만.
“이제 곧 우리 첫째 아이가 성인식을 한다! 네가 꼭 와줘서 축하를 해줬으면 한다!”
“중요한 일이야?”
“오우거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날이다.”
“그럼 가야지.”
드낙이 단번에 대답했다. 그 모습에 리고는 입꼬리를 씰룩였다. 좋아할 만했다.
찾아온 사람의 성의가 있다. 가지 않는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리고는 솔직히 말해서 생각보다 폭력성이 없는 편이었다. 그의 아내 또한 대화가 가능한 오우거였기 때문이다.
고로 그들의 자손들 또한 앞으로 큰 도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융합물약만으로도 그 가치는 이미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다.’
마신 성현은 오우거를 마신장(魔神將)으로 만들어 장수로 쓰지만, 솔직히 드낙은 그게 비효율적이라 여기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오우거도 얼마든지 똑똑할 수 있었다. 엘프와 종족값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무시무시한 만큼, 효력도 크다.’
오우거는 드낙이 꾸준히 대우해줘야 할 종족이었다.
“가보자고. 근데 어떤 성인식인데?”
“자신보다 강한 자와의 싸움! 원래는 다른 산에 사는 오우거 성체와 부딪치는 거지만 그보다 강한 자가 여기 내 앞에 있지 않은가!”
“하하하! 한 마디로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라는 소리네?”
리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드낙은 희희낙락해져서는 바로 자신의 모습을 감추었다.
세상을 속이고.
파동으로 변해서 단번에 오우거의 땅으로 공표한 곳에 도달했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에 이동을 끝낼 수 있었다. 소리 없이 사라져버린 드낙을 보며 리고도 서둘러 벼락이동을 사용했다.
몸에 큰 부담이 있어서 보통 인간이 사용하면 핏덩이가 되지만 오우거는 거뜬했다. 거대한 속력이 리고의 온몸을 짓눌렀지만 버틸만했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로봇이나 다름없었다.
드낙은 그 사이에 리고의 아내 비건에게서 회를 얻어먹고 있었다. 그는 기생충부터 싹 없애버리고 나서 회를 한 점 입에 집어넣었다.
“으음~.”
탱글탱글하고 차가운 식감! 무슨 물고기인지는 몰랐지만 새하얀 살들만 봐도 어깨춤이 절로 나왔다. 반마반신에 도달했기에 혹여나 기생충이나 세균이 들어와도 금방 처리할 수 있었다.
‘육체를 다루는 반마가 자기 몸을 거덜 내는 기생충을 처리 못 하는 반마 실격이지.’
“이건?”
“내장을 삭힌 것에 다양한 향신료를 가루로 낸 거다.”
꿀꺽.
내장의 거센 비린내와 뒤섞인 향신료의 코를 찌르는 강렬한 풍미가 맡아졌다.
‘이거이거, 오우거들도 무시할 수 없겠는데?’
밋밋한 회에는 소스가 특히나 중요했다. 그걸 삭힌 내장으로 커버하면서 향신료 가루도 첨가하여 맛을 높였다. 드낙은 살짝 찍어 먹었다가 다시 푸욱 담가서 먹었다.
‘이거야. 이 맛있는 비린내. 내장의 역함...!’
소주가 절로 생각이 나는 강력한 소스였다. 그리고 회를 싹 털어냈을 때 리고가 천둥 소리를 동반하며 도착했다. 그 모습을 다시 한 번 목격한 드낙은 마음이 동하는 걸 느꼈다.
‘개멋있다.’
벼 락
등 장
리고의 모습은 그야말로 벼락의 오우거로 보였다. 반면 드낙은 자신의 파동 이동술이 멋지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의 눈이 번쩍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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