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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물론 그냥 이렇게 정한다는 게 아냐? 나 알잖아?”
드낙이 자신의 가슴을 팡팡쳤다.
“그럼...”
순찰자가 절로 기대심을 가졌다. 드낙은 벌떡 일어나서는 활을 당기는 시늉을 했다. 실로 능숙했다. 그 또한 사냥꾼의 재능을 지닌 자였다.
“봐봐, 활을 당길 때 무슨 힘이 필요해?”
“활마다 다르지요.”
드낙이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기대한 대답이 아니었다.
“그게 아니지! 장력을 높이는 권능! 더 대단한 화살을 쏠 수 있는 힘! 그런 권능이 있다면 어떨 것 같아?”
순찰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도 이 장궁이라는 것이 허릿심을 필요로 하는 거라서 아티팩트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평범한 자세로는 당기기도 힘들다. 드낙은 딱 손가락을 튕겨서 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래. 그렇게 힘들게 쏘면 얼마나 힘들어? 이 코어의 힘! 척추가 더 많이 발달하고 단단하다면 얼마나 강해지겠냐고.”
“그런 권능이 있습니까?”
절로 구미가 당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드낙의 말에 절로 뒷걸음질 쳤다.
“힘줄 한 일곱 개만 넣자.”
피맛을 맛본 것처럼 순찰자가 움찔했다.
“네?”
드낙은 그 반문을 받고 더블로 더욱 판돈을 올렸다.
‘녀석, 거래할 줄 아네.’
“척추뼈도 몇 개 더 추가. 길어지는 만큼 더 당길 수 있지.”
“아니, 그건 좀...”
듣기만 해도 악마적인 개조였다. 거부감이 절로 생겼다. 그 모습에 드낙이 턱. 순찰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스리슬쩍 손에 힘을 줘서 어깨를 음흉하게 주물럭거렸다.
소름 끼치는 손길이었다.
“나쁘지 않잖아? 더 많은 화살, 더 강한 화살! 그걸 쏘게 해준다니까?”
“그래도 몸이 변하는 건 조금...”
미지근한 모습에 드낙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걸 거부한다고?’
의수, 의안, 생체이식. 현대 의학 덕분에 드낙에게는 익숙한 것을 이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했다.
“차근차근 생각해봐. 백설산맥의 절반을 가져가는데, 그 정도 힘은 있어야지.”
순찰자들은 그 말을 협박으로 알아들었다.
“고민하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좋아. 또...오크들이랑 친하게 지내고.”
“예.”
드낙은 순식간에 모습을 숨겼다. 존재 자체가 사라진 것처럼 여겨졌고, 신기루나 다름없었다. 그 모습은 순찰자들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는 신이야! 결코 거절해서는 안 돼.’
그렇게 속으로 외쳐도 거부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어쩔 수 없이 신체 변형의 권능을, 그 악마적인 힘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도 사라지지 않았다.
절로 안색이 검게 변했다.
그 소식은 빠르게 순찰자 마을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당연히 좋은 반응은 끌어내지 못했다. 인간이 인간이 아니게 되어버린다고 여기는 순찰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나약한 인간의 몸으로 인간의 영토 밖, 불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인류의 적과 싸우는 자들이었다.
“신제국으로 가자.”
“뭐라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백설산맥을 떠나자는 소리인가!”
“그라면 우리를 보호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세를 잘 아는 순찰자가 뒤늦게 돌아와서는 의견을 냈고 그건 큰 사회혼란을 야기시켰다. 분열은 잠깐뿐이었다.
호다닥!
순찰자들이 하나둘씩, 가족을 이끌고 야반도주를 시작했다. 혹시나 드낙이 잡을까 싶어서였다. 자신의 몸을 변화시켜서까지 이곳에 있고 싶지는 않았다.
동시에 그들은 세파리아스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자치왕국과는 현격히 다른 노선을 걸으며 ‘초월의 힘’보다는 인간을 강조했다.
*
자치왕국의 수도.
웅성웅성.
드낙 중앙 도서관은 가장 거대한 규모를 가지고 있는 공공 도서관이었다.
교육열하면 한국인이었다. 어디서 배운 건 있어서 누구나 볼 수 있는 도서관을 추진토록 했다. 물론 그 목적은 조금 변질되어있었는데 드낙의 요구조건을 달성하려면 평범한 방법으로는 턱도 없었다.
“흐음...아시다시피 2층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책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을 거요.”
“예. 여기...”
학자가 배낭에서 책을 한 권 꺼냈다. 제법 오래되어 보이는 책의 표지에 절로 관리가 흥미 있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를 살펴봤다.
“좋군. 아주 좋습니다. 필사하고, 사본을 내어드리겠습니다.”
“예? 사본이요? 목판 인쇄를 하고 저한테 돌려주셔야지요.”
“허허, 개인이 보관하니까 책이 이 꼬락서니 아닙니까. 뭣들 하느냐? 모셔라.”
“악! 그건 내 할아버지께서 쓰신 책이오!”
양아치 같은 짓이 서슴없이 벌어졌다. 보관하고 있는 책을 늘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2층의 전문 서적을 민간에게 개방하면서 새로운 책을 요구했는데 이를 목판 인쇄로 찍어내고 사본을 그들에게 내어줬다. 그리고 드낙 중앙 도서관은 진본과 사본 둘 모두를 보관했다.
그렇게 했기에 가장 많은 책을 보관하는 도서관이 될 수 있었다.
“지나갑니다! 지나갑니다!!!”
동시에 저급한 종이와 고풍스러운 양피지를 싣고 가는 짐꾼들도 많이 보였다. 모두 지하로 향했다. 그곳에서 목판인쇄로 책을 만들고, 찍어내고 있었다. 하루에 토해지는 책의 숫자만 해도 수천 권에 달했다.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비켜! 내가 먼저야!”
“번호표 안 보여? 난 728번이야! 넌 몇 번인데?”
“어? 난 750번인데...”
“꺼져!”
그렇기에 시장바닥처럼 북적거렸다. 책의 민간개방은 그만큼 무서웠다. 하지만 사실 그것보다는 돈벌이가 더 컸다.
1층 구매처! 그곳에서는 중복된 사본을 판매하며 수익 모델로 삼고 있었다. 공공사업이기에 값이 싸다는 장점이 있어서 많은 보부상이 책을 구매하려고 하고 있었다. 특히 저급한 종이로 찍은 계몽 도서 100종은 가장 인기 있는 책 중의 하나였다.
그런 시장터도 2층에 가면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귀한 분들이 공부하는 곳이기도 했다.
“다이앤타 아니냐? 여기는 무슨 일이냐? 네가 도서관에 오다니.”
크레시미르 왕자가 다이앤타 왕녀와 복도에서 마주쳤다. 그녀 또한 그가 걸어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물러서는 건 그녀가 아니라 그가 되어야 한다고 여겼다.
“그릇 키우기 바쁘다고 들었는데, 도서관에 올 여유는 있나 보네. 난 원래 그릇이 커서 그런 거 필요 없거든.”
다이앤타가 능숙하게 맞받아쳤다. 크레시미르는 악마의 피를 타고나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는 신성력을 몸에서 꾸준히 운용하여 없는 그릇을 만들어서 초월의 힘을 타고나야만 했다.
반면 다이앤타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이미 쿼터 데몬이나 다름없었다. 드낙의 권능 때문에 붙잡혀 있을 뿐 사실 드낙의 권속 악마도 아니었다.
서로 한 방을 주고받으며 단번에 헤어졌다. 하지만 그 마음속에서는 강렬한 분노가 샘솟고 있었다.
‘반드시 성공하겠다.’
다섯 번째 왕녀가 첫 번째 왕자를 뛰어넘는 것만큼 끔찍한 패배도 없었다. 크레시미르는 궁지에 몰린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해를 넘길수록 다이앤타는 더욱 빛이 났고, 크레시미르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을 뿐이었다.
대련에서 이긴 건 그렇게 무너지기 전에 승부수를 놓아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크레시미르는 누구보다도 절박했다.
‘저놈보다는 위에 올라서겠다.’
동시에 다이앤타도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혈통의 진함 정도를 생각하면 그녀야말로 진정한 적통이었다. 이를 막아서는 크레시미르는 마음 같아서는 철퇴로 박살을 내고 싶었다.
다행인 것은 서로 직접 부딪칠 일이 이제 적어졌다는 점이다.
신이 되어서 독립할 준비를 해야 했다.
그 성과가 크레시미르와 다이앤타의 싸움에 종지부를 찍을 터였다.
“오늘은 책을 1권 더 봐야겠어.”
“저, 정말이십니까?”
“그래.”
다이앤타의 말에 수행원이 크게 기뻐했다. 한 달에 1권 보기도 싫어해서 도망치는 게 다이앤타였다. 근데 1권을 더 보겠다니? 엄청난 일이었다.
‘악마의 힘. 그걸 통해서 난 더 나아가겠어.’
그녀는 걸음을 빨리했다.
그 모습을 힐긋 크레시미르가 코너를 보며 쳐다봤다. 그녀와는 다르게 이미 온 힘을 다하고 있었기에 그의 일정이 변하지는 않았다. 대신 스트레스를 줄이려고 심호흡하며 갈 길을 갔다. 많은 부담이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할아버지. 전 당신을 믿습니다.’
크레시미르의 눈에 믿음이 깃들었다. 세파리아스가 자신에게 해준 말을 떠올렸다.
[다른 놈들도 가지고 있다. 다이앤타는 타고났지. 하지만 그 애는 노력하지 못해. 미묘하고 순식간에 결판이 나는 검술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너무 강하기 때문에 얻을 수 없다.]
태어나서부터 악마적 재능을 보였던 다이앤타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연스럽게 ‘인간의 길’을 걸을 수 없었다.
[하지만 넌 그걸 이해할 수 있다. 영향무력! 네가 가져가라.]
[그래도 됩니까? 전 레이시아 왕비의 아들입니다.]
[다 똑같은 불파겐이니라.]
그 그릇의 크기를 보고 크레시미르는 어린 나이에 검을 피가 나도록 열심히 했다. 그 끝에는 쿼터 데몬 프린세스와 나란히 하는 한 명의 불파겐 프린스가 있을 터다.
자치 왕국은 외부 팽창을 위한 준비로 정치적 싸움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그만큼 새로운 차원에 대한 기대가 컸다.
물론 세리안은 독립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독립하라고 하면 아직 부족하다면서 더 모으고 가겠다고 버티면 그만이다. 집 나가면 결국 모든 게 돈이듯이 버티면 버틸수록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크레시미르와 다이앤타는 독립을 진짜 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서로 그렇게 할 것이라 여기고 경쟁 구도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
디아볼로스와 타락 엘프들은 거대한 논쟁에 휩싸여있었다. 증인석에 올라선 디아볼로스는 침울한 표정을 지은 채 많은 이들 앞에서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해야 했다.
“저는 그저 조용히 마력칩을 생산하고, 모든 사람이 정화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소형 정화수 아티팩트를 만들던 타락 엘프였습니다. 그런데...하루 아침에 자고 일어났더니 디아볼로스가 되어버렸습니다!”
저런...
나쁜 놈들...
웅성거림 속에서 디아볼로스를 욕하는 목소리가 컸다. 엘프답지 않았지만 드낙의 피가 스며들어서 감정적인 면이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무분별한 업(業)의 소매넣기는 우리 엘프들의 규합력을 떨어뜨리고 불신으로 가득한 사회를 만들 겁니다! 반드시 중단되어야 합니다! 디아볼로스들은 자신들이 엘프신이 되기 싫어서 엄한 엘프에게 업을 짬 처리하고 있습니다!”
“우우! 우리는 쓰레기통이 아니다!!!”
“디아볼로스는 지금 당장 반신격으로 올라서라!”
“너희가 줬던 업을 다시 받아먹고 엘프를 위해서 희생해라!”
“옳은 사회로 나가려면 업의 청산이 필요하다!!”
숫자가 많은 것이 타락 엘프들이었기에 소수의 디아볼로스들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소매넣기를 당해서 강제로 디아볼로스가 된 엘프들은 자연히 그런 타락 엘프들의 편에 서 있었다.
당장이라도 디아볼로스 한 놈을 노려서 자신들의 피를 먹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성급하게 벌써 손아귀에 상처를 내서 피를 뚝뚝 흘리며 협박하고 있는 타락 엘프가 보였다.
그 눈은 충혈되어있었고, 아래로는 다크서클이 나 있었는데 업을 소매 넣기 하는 흉흉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불면증에 걸려서였다.
“급보요! 급보! 균등 분배의 권능이 우리들에게 적용된다는 소식이요!”
그런 대치는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드낙이 일단은 해주기로 한 소원 덕분이었다.
“서둘러 타락 엘프 배양시설을 건설하여 엘프의 숫자를 늘려야 하오!!”
“이제 업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음 세대에게 업을 물려주자!”
“아니! 그들을 배양 때부터 디아볼로스로 만들자!”
배양하고 있는 타락 엘프에게 몰래 자신들의 업을 집어넣어서 아예 디아볼로스로 만들어 태어나게 하자는 의견이 갑자기 큰 힘을 얻었다. 꼰대 엘프답게 다음 세대에게 문제를 떠넘기는 해결방법은 너무 매력적이었다.
젊어도 결국 지금 태어나는 엘프들보다는 많이 살았다. 자연법칙에 의해서 ‘상대적 꼰대 유지 법칙’이 적용되었다.
“그럼 디아볼로스 배양 시설을 건설하겠다!”
디아볼로스 또한 크게 찬성했다. 지금 당장 타락 엘프가 너무 많아서 그 불만을 줄이기에는 아직 의견도 하나 못 내는 엘프 아기들을 디아볼로스로 만들어버리는 게 더 좋은 방법이었다.
‘겸사겸사 우리들 업도 집어넣고!’
투표권 없는 청소년들이 사회에서 엉덩이 터져나가도록 맞고 사는 것처럼 엘프 사회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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