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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발바룽이 흰여우 새린의 말을 반박했다. 그녀는 불쾌한지 연신 여러 개의 흰꼬리를 거칠게 살랑거리며 바닥을 팡팡 쳤다. 절로 신경적인 모습이었다.
“오아시스만 만들면 30년 이내에 가장 확실하게 자리를 잡고, 효율을 보일 수 있다. 불모지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수원이 가장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그게 말이 안 된다는 거야. 헤드스 하이에나들의 수준이 얼마나 형편없으면 내가 이런 말을 하겠어? 있어봤자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하고 싶은거야. 기껏해야 노동자 계급에 불과하지.”
“그러는 너야말로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추진하려고 하고 있잖아?”
그 말에 새린이 자신을 새하얀 손으로 가리켰다. 붉게 칠한 손톱은 길었고, 얇아서 매력적인 모습이었다. 붉은 손톱이 맞닿은 앞가슴은 풍만하기 그지없었다.
“왜? 오아시스가 필요해야지만 살아갈 수 있는 하찮은 하급 악마보다는 연금 물약을 생성해내는 흰여우 종족이 더 괜찮지 않아?”
“등급이 높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 개체수를 늘리는 게 힘들지. 중급 악마로는 불모지 개발은 불가능에 가깝다. 몇백 년은 걸릴 터다.”
“아닌데? 상관없는데? 반마반신께서는 기간에 제한을 두지 않으셨는데?”
포낙서스가 이들을 중재했다.
“다들 진정하시고, 새린 님. 그래도 다른 종족과 상대적으로 평가를 받지 않습니까? 시간에 제약이 왜 없습니까.”
그 말에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포낙서스는 발바룽에게 말했다.
“둘 다 천천히 진행하시지요. 새린 님이 만드시는 흰여우 반인 종족을 오아시스 관리원으로 두면 되지 않겠습니까.”
“흥. 포낙서스, 그대는 아직 의견을 하나 내지 않았는데, 어쩔 셈인가?”
“전 종족보다는 악마 건물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생체 건물을 말하는 건가?”
“예. 두 분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악마 건물을 곳곳에 배치한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서로 추구하는 바가 달랐지만, 서로 다른 것을 만들면서도 충분히 협력할 수 있음을 포낙서스가 말했고, 두 명 모두 받아들였다. 새린으로서는 중급 악마를 만들어 불모지의 지배 계층을 만드는 것에 기쁨과 우월감을 느꼈고, 발바룽은 헤드스 하이에나라는 자기 종족의 씨앗을 퍼트린 것에 만족해야 했다.
포낙서스 또한 둘을 중재하면서도 자신이 지금 흥미를 느끼고 있는 분야를 연구하고 실천할 수 있었다.
‘운이 좋군.’
포낙서스는 실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우연히 헤드스 하이에나는 나약한 종족이었고, 연금 물약을 체내에서 조합하여 배출하는 흰여우 반인 종족을 떠올리게 된 새린은 물을 만들 수 있었다. 충분히 오아시스를 관리할 수 있었다.
또, 두 사람의 꿈을 실천하게 하면서 포낙서스는 상대적으로 두 사람의 견제를 받지 않게 되었다. 고로, 모두가 서로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됐다.
“그럼 일단은 그렇게 해보자고.”
흰여우 새린이 일어났다. 그녀는 ‘자신’과 비슷한 종족을 만들어내어 자신이 그들을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공들여서 만들 생각을 가졌다. 모두 드낙이 주고 있는 힘 때문에 가능했다.
그녀는 바다와도 같은 그릇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자신의 몸은 지금 드낙이라는 바다에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힘을 마음껏 쓸 수 있었다. ‘불모지 악마 사업’의 명분 때문이다.
“서로 발목이나 잡지 말자고.”
발바룽 또한 무거운 몸을 이끌었다. 그는 최대한 헤드스 하이에나의 종족 값을 높일 생각을 지금 가졌다. 흰여우 새린이 뭘 생각하는지 파악해서였다. 지배층이나 피지배계층이니 그런 소리를 하지 못하게 만들 생각을 가지게 됐다.
“반마반신께 누가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일단 그렇게 결재를 올리겠습니다.”
계획서는 드낙이 확인해야 했다. 불모지를 어떻게 개발하는지 그도 대충이라도 알고 있어야 했다. 3명의 변종 악마들이 만든 계획서가 드낙에게로 향했다.
“가라! 가서 가장 강대한 악마를 향해 나아가라!”
목적지는 필요 없었다. 그저 매는 드낙의 강력한 ‘악마적 존재감’을 추적하여 그에게 닿을 것이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불모지였기에 이런 수단이 유일했다. 오랫동안 메시지 마법을 유지하는 건 시간이 아까웠다.
“끼오옥!”
눈이 여럿 달리고, 붉은 피색깔을 지닌 매가 날아올랐다. 변종 키메라였던 시절을 지닌 포낙서스는 다양한 하급 권속 악마를 제작 가능했고, 이 매 또한 그러했다. 매는 해당 정보를 담은 양피지를 달고 날아올랐다.
*
요리 경합 대회의 소원.
이를 드낙은 각각의 종족 대표들에게 맡겼다. 상대적으로 인간이 더 많은 혜택을 얻은 형세였다. 소원을 두 가지나 가지게 되어서였다.
당연히 기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인간 중에서 자치왕국은 가장 먼저 자신들의 소원을 말하였다. 길게이 공왕이 오랜만에 드낙의 앞에 섰다. 그는 아직도 자치 왕국 내에서 이리 간보고 저리 간보기로 유명했다.
힘과 정치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저희는 기차 사업을 위한 지하 연합의 도움을 원합니다! 공동 개발 세력으로 지정하여주시고, 개발 및 지원을 아끼지 않게 해주십시오!”
교역 허브의 중심!
그게 바로 자치 왕국이 나아가야 할 거대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가장 큰 경제를 얻어낼 중계무역 프로젝트 중 하나이기도 했다.
말 그대로 국가 자체가 중계 무역으로 놀고먹겠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뿔쥐들의 협력이 필요했다. 그들은 무시무시한 속력으로 기술 발전을 이룩하고 있어서였다.
‘협력을 택했군. 그리고 다분히 정치적이다.’
드낙이 주는 소원이기에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게 거의 강제되어있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자치왕국은 기차 산업을 통해서 뿔쥐와 타협하는 걸 선택했다. 뿔쥐들과 사업을 같이하며 서로 관계를 좋게 할 수 있고 교역하는 품목도 늘어날 터였다.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친해지면 내가 편하지.’
드낙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왕좌에서 내려와 길게이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옷을 털어주며 어깨를 토닥였다.
“잘 선택했다. 서로 친하게 지내야지.”
“예. 평화의 시대 아니겠습니까?”
“만족스러운 대답이야, 앞으로도 그런 태도로 정치했으면 좋겠어.”
“예!”
길게이는 순식간에 만남을 끝냈다. 드낙이 아주 좋아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게임 끝이었다. 그는 희희낙락해 하며 떠나갔다.
드낙이 그다음으로 본 것은 오크들이었다. 오크 도시를 발전시키고 다양한 오크 산업을 주도하며 수완을 크게 늘리고 있는 규르소모스가 오랜만에 드낙과 해후를 맞이했다.
“마셔!”
“뫄셔!!”
두 명은 서로 작은 술잔으로 나누다가 자존심 대결로 번져갔다. 규르소모스가 자꾸 자기 주당이 오크 제일이라며 드낙을 살살 긁어서였다.
‘놈! 반마반신과 술을 대작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겠다!’
그 덕에 3일 뒤에서 오크와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규르소모스는 죽을 뻔했다. 물을 안 마시고 술만 마셨다가 진짜로 뒈질뻔했다. 곁에 드낙이 없었다면 죽었을 터였다.
“헉, 헉헉! 헉!”
거칠게 심장이 뛰며 규르소모스가 눈을 떴다.
“저, 정신차렸냐? 심장 떨려 죽는 줄 알았다!”
술 마시다가 오크 대족장을 죽인 역사를 남기면 다른 종족들이 자신을 어찌 생각할지 눈앞이 깜깜해진 드낙이었다. 규르소모스가 그걸 보며 중얼거렸다.
“녹색 도끼님을 봤다. 그분은 진짜 우리들의 아버지셨다.”
“정신 차렸으면 소원이나 말하고 가라.”
드낙의 말에 규르소모스는 저리는 손발을 주물럭거리며 단번에 일어섰다. 육체 회복 속도가 평범함의 궤를 넘어섰다. 실로 오크다웠다.
“우리 오크는 엘프의 해양 기술을 원한다.”
“바다 오크가 되려는 거야?”
드낙의 말에 규르소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개체수당 평균 식량 요구치가 매우 높은 것이 오크였고, 그들은 평야보다는 자신들에게 바다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고기는 식량에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나쁘지 않아.’
오크들이 다른 종족과는 다르게 바다 진출을 가장 크게 생각하는 건 드낙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상대적으로 경쟁에서 빠지게 되면 널널해질 수 있다. 그건 곧 평화를 의미했다.
“좋다. 엘프들에게 말해놓지. 그리고 동부 왕국의 동쪽 해안에 항구가 건조되어있다. 그곳을 유지 보수한다면 바다로의 진출을 더욱 더 빨리할 수 있을 것이다.”
“고맙다!!”
규르소모스가 머리를 땅에 박았다. 피가 튀었다. 그걸 보며 드낙이 빙긋 웃었다.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요즘 힘든 건 없고?”
“순찰자들이 문제다.”
“엥? 순찰자들?”
드낙이 의외의 단어에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 그들은 백설 산맥에 다시 돌아와서 살고 있는데, 그것 때문에 오크 족장들과 대전사들이 불편해하고 있다.”
드낙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곧 내가 찾아가지. 그러니까 그전에는 건들지 마.”
“알았다.”
규르소모스가 물러갔다.
‘순찰자...아직도 그대들은 신념을 쫓고 있는 건가.’
이제는 필요도 없는 신념을 쫓고 있었다.
드낙이 고민하고 있을 때, 신제국의 외교 대신이라는 자가 와서는 드낙을 찬양하기를 십분! 드낙이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며 말했다. 순찰자 때문에 마음이 굉장히 심란한 상태였다.
칭찬도 싫증이 날 정도로 해대면 주둥아리를 철퇴로 패버리고 싶은 법이었다.
“그만! 내가 대단하다는 건 이제 알겠으니, 상품을 말하라.”
그 말에 외교 대신이 넙죽 절을 하며 외쳤다.
“예! 저희 신제국은 뿔쥐들의 공중요새 기술을 원합니다! 그 모든 것을 원합니다!”
“뭐, 뭐라!!”
드낙이 벌떡 일어났다.
‘이, 이런 미친! 미친놈들을 봤나!’
국제 연합의 소원은 개개인별로 찾아와서 그때그때 읍소하는 것이기에 다른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오직 신제국의 큰 관리 하나만 이 자리에 있었다. 그가 깜짝 놀라는 소리는 공허하게 대전의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뿔쥐들이 대단히 분노할 텐데!’
드낙이 크게 인상을 썼다. 그만큼 신제국의 소원은 뿔쥐들의 노력을 무(無)로 돌리기 충분했다. 강력한 한 방이었다.
‘세팔이 이놈! 이놈 새끼! 뿔쥐들이 자신을 곱게 보지 않자 이번 기회를 통해서 꿀밤을 먹이려고 하는구나.’
그것도 평범한 꿀밤이 아니다.
‘이마 뼈가 박살 날 정도의 꿀밤!’
최적의 한 방! 하지만 드낙은 이 소원을 곱씹었고 속으로 소리를 내질렀다.
‘너무 적대적인 소원이고;고, 너무나도 정치적이다!!!’
뿔쥐와의 갈등 구조로 신제국이 포지션을 잡는 것만으로도 신제국은 가치가 있었다. 현재 다종족 연합에서 뿔쥐가 가장 1등이었기에 그런 1등의 바짓가랑이를 잡는 세력은 다른 종족들이 도와줄 수밖에 없었다.
앞장 서주면 손들어서 표를 주기 바쁜 게 이 바닥이다. 그게 매우 노골적으로 앞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파리아스의 행동은 너무나도 정치적이었다.
2등이 된다는 것은 1등 다음으로 많은 힘과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다. 세파리아스는 그 험난한 길을 걸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그걸 방금 드낙에게 보여줬다. 이를 만약 드낙이 알아차리지 않았다면 큰 곤욕을 치렀을 터였다. 허나 그렇기에 드낙은 그 무엇도 선택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다른 건 없고? 다른 소원은?”
“없습니다. 오로지 뿔쥐들의 공중요새에 대한 기술을 주십시오.”
진퇴양난이다. 드낙이 혀를 찼다. 실로 악독했다. 동시에 대단했다. 세파리아스는 이런 기회를 어떻게 이용할지 제대로 알고 있었다.
‘모두 알게 모르게 뿔쥐들을 견제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 기폭제 역할을 하는 게 신제국의 역할이라 여긴 듯했다. 그리고 신제국 또한 그런 세파리아스 때문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들은 뿔쥐를 넘어서야 했다.
그런 기준을 세파리아스가 계속해서 만들어나갈 것이다.
그 일보(一步)가 뿔쥐들에 대한 정치적 공세였다.
‘뿔쥐들을 라이벌로 삼아 인간을 견인한다. 그게 너의 생각이냐! 세파리아스...!’
드낙은 그 경쟁 구도가 지닌 무서운 ‘동기 부여’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실로 용맹하다.
‘감히 누가 뿔쥐에게 정면으로 박치기할까.’
검은 잔을 받으며 드낙에게 자신의 피를 부여하며 업을 먹으며 종족 값을 올리고 있는 타락엘프와 디아볼로스도 개체수 때문에 확 밀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지하 연합과는 데면데면 상대를 아예 안 하는 형편이었다.
모두 NO를 외칠 때 세파리아스는 YES를 외쳤다.
그렇기에 그는 우뚝 서서 드낙의 앞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것처럼 거대하게 느껴졌다.
하찮은 인간을 이끄는 반신격(半神格)이 눈앞에 있지도 않았음에도 드낙은 세파리아스의 그림자가 자신을 드리우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오기가 생겼다.
‘네가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뿔쥐들한테는 안 된다.’
“그렇게 해주겠다.”
드낙의 말에 외교 대신이 웃어 보였다. 반마반신이 내비치고 있는 거대한 자긍심은 만용에 불과했다. 외교 대신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다종족 연합차원에서 인간이 오롯이 우뚝 설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인간 승리 아닌가.’
그 또한 세파리아스의 사상에 감화된 자였다.
‘인간은 약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강해질 수 있다.’
마력 한 줌 가지지 못한 외교 대신의 눈이 활활 타올랐다. 생기(生氣)를 집어삼키는 거대한 화염 속으로 당장이라도 들어갈 것처럼 굴었다. 그 화염은 인간찬양이라 불리는 거대한 사상의 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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