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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청탁 요리를 맛본 드낙은 심란한 표정을 지었다.
‘큭, 이런 한 수가 있다니.’
우승시키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날 수밖에 없었다. 엘프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생기는 이득이 컸기 때문이다. 그건 요리 대회 밖으로 퍼져나갈 수 있는 ‘확실한 영향력’이었다.
그 이득을 포기하기에는 아쉬움이 컸다. 목축 골램들이 많아지고, 가축이 많아질수록 치즈의 원재료인 우유의 총량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거기에 엘프들은 드낙으로부터 ‘볼케이노 스네일’의 양식장을 가지고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매운맛 하면 한국인이다.
드낙이 실로 오만가지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엘프는 운 좋게 그 지점을 콕 찔러냈다. 외국인이 맵냐고 묻는 것과 한국인이 맵냐고 묻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처럼!
“다, 다음!”
드낙이 심호흡을 하며 외쳤다. 그러자 드워프들이 분기탱천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검은 돌솥을 척척 놓았다.
‘돌솥?’
“자네, 한국인인가? 돌솥을 잘 아는군!”
“아닌데요. 돌솥은 석기 시대부터 유래된 역사 깊은 드워프의 돌솥을 가져왔습니다. 진짜 깊은 국물이 뭔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보글보글.
냄비 뚜껑이 닫혀있었지만, 내부에는 펄펄 끓는 소리가 꾸준히 나왔다. 어떻게든 더 오래 끓이겠다는 마음가짐이 있었지만 드낙은 코웃음을 쳤다.
‘10시간 넘게 끓이지도 않으면 진짜 국물이 아니지.’
그 정도는 되어야 국물이다. 그렇기에 드낙은 드워프를 비웃었다. 그들의 요리 시간을 보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뚜껑이 열리자 드낙은 구수한 향기를 맡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이건, 불가능하다! 오래 끓이지 않았지 않은가!”
드낙이 크게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나칠 정도로 국물이 진했으며 뭣보다 뼈! 뼈가 척 봐도 금방 부서질 것처럼 보였다.
“육수를 미리 준비했습니다.”
“그렇군!”
드낙이 쉽게 납득했다. 그런 거라면 가능했다. 딱히 제한을 두지도 않았다.
“후! 후!”
김이 펄펄 나는 걸 불며 숟가락으로 국물을 한 입 먹었다.
‘엉...?’
깊은 맛은 아니었다. 깊은 맛이 나지 않았다. 첫맛은 그저...
그저, 끝도 없이 광활한 만주의 대평야가 혀 안에서 느껴졌다. 방대함, 거대함...
압도적인 고기가 액체라는 형태로 혀를 쓰나미처럼 쓸어버렸다. 혀의 돌기 하나하나에 들어차며 거대한 해일이 건물과 매연, 그 모든 것을 털어내듯이 뒤덮어버렸다.
고기의 풍미로 모든 것이 쓸려나간 뒤에, 그 뒤에 가서야 깊게 우려낸 맛이 났다.
‘첫맛과 끝 맛의 차이가 너무 크다.’
국물인데 고기를 씹어야 나는 맛과 향이 났다.
“국물이 깊은 맛이 아니라, 고기 향이 너무 강한데 어떻게 했지?”
“국물을 우릴 때, 물보다 고기를 더 많이 넣으면 됩니다.”
쿠궁!
거대한 진리가 드낙의 뇌를 짓눌렀다. 그것도 모르냐는 드워프의 표정. 하지만 드낙은 그 간단한 진리를 실천하는 요리사를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간단한 걸 왜 묻냐는 식이다.’
자본주의에서는 볼 수 없는 국물이었다. 그렇기에 드낙의 머리는 둥둥 떠 있는 것처럼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물 반 고기 반도 아니다. 물보다 고기를 더 많이 넣어서 우려낸 국물!
거기에 10시간이 넘게 미리 우려낸 육수...
‘기본에 충실하다.’
드낙은 이내 돌솥을 통째로 들었다. 뜨거웠지만 반마반신의 육체는 화상을 입지 않았다.
꿀꺽! 꿀꺽! 꿀꺽!
“크어어어어어어어!!!!”
부드럽고 연한 소고기는 쉽게 몸속으로 들어갔다.
텅!
돌솥을 내려놓은 드낙이 손으로 거칠게 입을 닦았다. 이 맛이었다. 더 할 말이 없었다. 부담이 없는 향신료를 여럿 넣어서 자연스럽게 향신료의 향이 고기 냄새를 이기지 못하게 하면서도 비린내를 잡아냈다.
‘그건 어려운 일이지.’
비린내와 고기 향 내음은 한 끗 차이다. 이를 한쪽은 죽이고 한쪽은 살려냈다.
‘어디에서도 먹어볼 수 없는 맛이다.’
감칠맛만 주는 MSG? 신이 내린 조미료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여기에는 끗발이 딸렸다.
‘이게 진짜 국물이다.’
돈 생각하며, 마진 생각하며 끓어낸 국밥과는 차원이 달랐다. 동시에 드낙은 더더욱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누구에게 1등을 줘야 하는 거지?’
하나같이 강력한 요리들이었다. 국물맛을 내려면 물보다 고기를 많이 넣으면 된다는 드워프들의 음식철학!!!
‘거기에...’
드낙이 밑반찬에 손을 가져갔다. 발효식품이었다. 채소즙이 풍부하면서도 시다. 맵지는 않은 백김치의 맛을 제법 닮아있었다. 고로 고깃국에 잘 어울렸다. 뜨끈뜨끈한 국물과 고기 한 점.
뜨거워지고 고기에 한껏 지배당한 곳에 발효된 나뭇잎을 한입 물면 김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채소즙이 가득 들어왔다. 마치 삶은 양배추를 베어 물었을 때 철철 흘러내리는 물처럼, 압도적이다.
차가움과 뜨거움의 조화가 있었다.
‘하나하나 생각하면 부족함이 없다.’
국물이 바짝 줄어든 고깃국의 고기를 한 점 먹었다. 기름을 쫙 빼고, 국물 덕분에 텁텁하지도 않았다. 텁텁하면 숟가락으로 국물 한 입 쏙 입에 넣으면 술술 넘어갔다.
‘어...?’
하지만 이내 드낙은 뭔가 갈증 같은 것을 느꼈다. 오래된 친구를 스쳐 지나간 것 같은 알쏭달쏭한 갈증이 드낙을 괴롭혔다.
‘소주.’
아아, 그렇다.
드낙은 드워프들이 만든 고깃국을 통해서 현대에서 살았을 때 매일 달고 살았던 소주를 떠올릴 수 있었다.
너무 오랜만에 떠올렸다. 그렇기에 갈증은 있었지만, 소주의 맛은 떠올릴 수 없었다. 그것이 조금 슬펐다. 중립신의 세뇌로 인해서 기억이 제거된 탓이다.
“다음!”
조금 눈시울이 붉어진 드낙이 다음을 외쳤다. 오크들이 근육을 뿔끈뿔끈거리며 계단을 올라왔다. 그들이 심사위원들에게 하나씩 건넸다.
“요리의 이름은?”
“건강 약탕입니다.”
“건강 약탕이라...”
반짝하는 이름은 아니었다. 늙으신 분들이 좋아할 법한 구수한 이름이다.
‘임팩트가 약한데.’
별로일 것 같았다. 뚜껑을 무덤덤하게 열었다. 드낙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평범하네.’
여기도 소를 썼다. 하지만 고기보다 많은 게 있었다.
“이 나뭇가지는 뭔가?”
“약재입니다. 약재는 드셔도 되고, 안 드셔도 됩니다.”
“흠.”
드낙이 코를 킁킁거렸다. 한의원에서 자주 맡은 냄새가 진했다. 이래서야, 요리라고 할 수 없었다.
‘지나치다.’
분명 맛도 없을 터였다. 약재 냄새가 심해도 너무 심했다. 그리고 데코레이션도 엉망이다. 이래서야 너무 야만적이고, 추잡스럽다. 팔려고 내놓았다기보다는 가정식이라해도 무방했다.
“천박하군.”
세파리아스라 혀를 찼다. 잔뿌리가 보이는 뿌리를 보고 나서는 입맛까지 팍 떨어졌다. 하지만 심사위원인 이상 한 입은 해야 했다. 세파리아스는 가장 먼저 고기를 집어 들었다.
‘국물은 됐다.’
바로 고기, 메인으로 뛰어들어갔다. 흉악한 세파리아스의 검이 고기를 비집고 들어갔다.
참인가, 거짓인가.
잘근.
“콜록! 콜록!”
씹자마자 세파리아스가 기침을 했다.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심사위원들이 사례라도 걸린 것처럼 기침 소리를 내기 바빴다. 거기에는 드낙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사람에 비해서 한국인의 자존심을 걸고 참았다가 콧물까지 쏟아냈다.
‘아, 아아아아아!!!’
드낙이 입술을 바들바들 떨었다. 마치 팔십 먹은 노인네처럼 얼굴의 근육이 비틀비틀거렸다.
*
“촌장님. 이제 저희 마을에도 골램이 오는 거지요?”
“다른 마을은 벌써 받았다던데...”
“보채지들 말아. 그렇게 기대해봤자 올 때가 아니면 못 오는 게야.”
드낙이 요리 대회를 개최했듯이 골램 공장도 부스터를 달 듯이 빨리 진행됐다. 일단 프로토타입부터 시작해서 버전마다 골램들이 멀리, 멀리 퍼져나갔다. 그리고 종국에는 제대로 된 운동이 일어났다.
사대밭 새마을 골램 운동!
4개의 거대한 밭을 보유한 새로운 마을을 골램으로 이룩하겠다는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여기 꽃 언덕 마을도 기대심을 품고 골램을 기다리고 있었다.
댕댕댕!
하찮은 마을로 보였지만 뜻밖에 대장장이의 실력이 좋은지 균일한 종소리가 울렸다. 너도나도 달려나갔다.
“골램이다! 골램!”
“저길 봐! 저렇게 큰놈이 알아서 밭을 관리한다고!”
너도나도 이를 구경했다. 그리고 마을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마차가 멈춰 섰다.
“골램 보관소를 지을 곳을 마련해 두었는가?”
“예! 촌장집 옆에 창고를 건설에 두었습니다!”
“안내하라!”
기사와 병사들을 촌장이 서둘러 안내했다. 그들이 가져온 물품은 마차만 해도 다섯 대가 넘는 양이었다. 이 모든 것이 골램을 유지, 보관하는 데 필요한 일이었다.
“흠. 완벽하군. 작업을 실시하라!”
“예!”
병사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함께 온 기술자들이 움직였다. 그중에는 총괄 마법사도 있었다. 그만큼 골램 설치 작업은 어려운 일이었는데 이걸 해결하려면 결국 인간들의 힘이 필요했다.
골램 제작은 드워프와 엘프가 효율적으로 내놓을 순 있어도 이를 보급하는 건 어려웠다. 물론 그중에는 오크와 엘프가 끼어 있는 다종족 골램 설치대도 존재했지만, 자치왕국에나 있을 정도였다.
신제국의 마을들은 대부분 인간의 손으로 설치하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끄으으윽!”
거대한 마차에서 거대한 철골이 주르륵 미끄러져 내려왔다. 아주 위험천만한 순간이었지만 익숙했다. 바닥에는 물컹물컹한 고무가 크게 배치되어있어서 심하게 다치지는 않았다. 이 물컹고무를 이용해서 밧줄을 통해서 철골을 옮겼다.
당연히 보통 철골이 아니었다.
사대밭 새마을 골램 운동의 가장 기본적인 골램 유지를 위한 ‘대지 철골’이었다. 엘프들이 만드는 것 중의 하나였는데, 대지에 있는 마력을 소량 끌어모으는 일을 하는 철골이었다.
이를 곳곳에 배치했다. 정사각형 구조물이 바닥에 놓게 된 다음에는 철판을 놓고 조립식처럼 딱딱 그 구멍을 메꾸었다. 큐브 형태로 이루어진 철판은 사각형 구멍에 딱 들어맞았다.
‘마력 보관 큐브’였다. 대지 철골이 모으는 마력을 보관하는 데 쓰인다. 공교롭게도 이것은 하청을 받아서 한 것인데, 드워프 공장이나 엘프 공장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바로 뿔쥐들로부터 만들어져서 운반된다.
이를 통해서 마법사 없이도 골램을 충전할 수 있었다.
“이게 구동 설명서다.”
“예!”
또한 골렘의 등에는 지게가 있었고, 그 양옆의 다리에는 올라설 수 있는 발판이 툭툭 있었다. 이를 통해서 골램을 적절하게 제어할 수 있었다. 물론, 항상 사람이 조종해야 하는 건 아니었다.
“일시정지 스틱이다. 부러뜨리면 해당 골램이 정지를 하는데, 가격이 상당하니 고장 났을 때만 하도록.”
“예! 예!”
“글은 읽을 줄 알고 있겠지?”
“예! 한글(Hangeul) 교육을 충실히 이수했습니다.”
촌장이 굽신거렸다. 그 외에 한 달에 한 번. 3달에 한 번 해야 하는 기본 정비에 대해서 교육을 진행하고, 시험을 수행했다. 여기에 보름이 걸렸다. 그 이후에 골램 양도식이 거행되었다.
모두 마법으로 기록되었으며 국제 연합, 신제국, 자치왕국 등 다종족 세력에게 모두 복사하여 제출된다. 나중을 위해서 모든 걸 기록하고 있었다. 이건 드낙이 한국인이라서 그러한 면이 더 강했다.
사관에 대한 재밌는 일화 덕분에 기초 교육에 선생님의 관심조차도 못 받은 박호훈일지라도 말에서 떨어진 것을 부끄러워하여 적지 말라고 한 것을 적은 사관에 대한 일화를 국사 선생님에게서 재밌게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 건 한 번 들으면 뇌리에 강하게 들어오는 법이었는데, 지엄하고 위대하며 강대한 왕을 사관이 이긴 것처럼 느껴져서 짜릿해서였다.
웅웅웅.
처음에는 강한 마력이 필요했기에 마법사가 골램의 시동을 거는 데에 많은 준비를 해야 했다. 먼저 마력을 액체화한 연금 물약을 골램의 주변에 충분히 뿌리고 이를 제어할 마법진을 통해서 골램의 시동을 걸었다.
그 이후에는 작은 마력으로도 능히 활동할 수 있었다.
“와아아아아!!!”
움직이는 골램을 보며 마을 사람들이 환호했다. 마도 사회라고는 해도 일반인은 그렇게까지 많은 마법 덕을 못 봤는데 이렇게 자신들의 마을에 공동 자산이라는 이름으로 골램이 들어오다니, 꿈만 같았다.
골램 설치단이 떠나고 마을 사람들은 사대밭으로 지정한 곳에서 일하기 시작하는 골램을 바라보았다. 이 또한 마법사가 도움을 줬다.
“저거 봐! 엄청나다고! 밤새도록 밭을 고르고 있다니까?”
골램은 가장 먼저 돌부터 치우고, 자신이 걸어갈 길을 만든 다음에 길쭉한 손을 더욱 길게 만들 뿐만 아니라 여러 개의 손을 꺼내서 작고 큰 돌을 밭에서 빼내는 작업부터 시행하고 있었다.
또 언덕을 고르게 만들고, 나무를 뿌리째로 뽑아내어 농사짓기 좋게 만드는 작업도 서서히 진행해나갔다. 2m가 넘는 거인이 만들어내는 압도적인 행보에 누구나 구경하기 바빴다.
무엇보다 그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오랜만에 술 파티를 열었다. 그들에게 이제 미래가 보였다. 행복하게 나아가야 할 길이 눈에 들어왔다.
“아아아아~ 아아아아아~~”
아아아~ 아아아~
“해가 지고~.”
“해가 뜨고!”
“달이 지고~.”
“달이 뜨고!”
“땀을 흘리고! 또 흘려도 자식 입에 들어가는 건 언제나 부족하고! 그리고~ 이제는 행복이 다가오네. 밀알이 골램의 손에서 주르륵 흘러내리는 날이 왔네.”
“누구의 덕인가? 아아~모르겠다!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다!”
“해가 지고~.”
“해가 뜨고!”
“달이 지고~.”
“달이 뜨고!”
끝도 없이 노래를 불렀다. 꽃마을이라는 마을답게 평야를 가지지 못했기에 나무껍질이나 뿌리를 먹는 방법도 구전으로 내려오기도 했다. 그 정도로 낙후된 곳이라 전쟁도 비켜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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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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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 연재 감사합니다. 더 성실하게 글을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