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855화 (854/1,239)

<-- 855 -->

판타지 월드

드낙 없이 국제 회의가 열렸다.

이번에는 ‘악마 차원 방위’가 가장 큰 안건이었고, 유일한 안건이었다. 일정과 관계없이 급하게 이루어졌다.

“관련 자료들은 모두 보셨을 겁니다.”

게제라스의 말에 반론은 없었다. 조용했다. 그만큼 생각할 거리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영원한 평화.

진정한 빛의 시대.

거기에 먹물 한 방울이 투둑 떨어져서 사방으로 튀었다. 실로 기분 나쁜 일이었다. 동시에 풀어졌던 경계심이 커졌다.

“아카타베루가 아닙니까?”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논의가 먼저 이루어졌다. 정보를 다시 확인하고 서로 오해한 것이 있는지 없는지를 훑었다. 글로는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그 이후에 본격적으로 본론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세파리아스가 입을 열었다.

“명확하고. 잘 정돈된. 차원 방위. 오로지 악마만을 위한 대책부터 세워야 한다.”

가장 먼저 피숨결 검은 뿔쥐의 대표자가 입을 열었다.

“당연히 공-중 요새다! 그 외의 것은 불필요하지!”

“떨어지기 딱 좋은 공중요새가 무슨! 역시 자-주포지! 지금도 신제국에서, 모든 곳에서 원하고 있지 않나!”

오크와 드워프들은 자주포를 논했다. 또한 엘프들은 폭풍의 요람만이 답이라고 말하였다. 하나같이 분산된 모습이었다. 반면 인간들은 침묵했다. 그리고 신제국은 이미 자주포에 올라탔다. 자치 왕국은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사실 인간 외의 종족이 크게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세파리아스는 말한 것과는 반대로 그냥 수긍했다. 여기서 자신이 소리를 내봤자 바꿀 놈들도 아니었다.

‘드낙이 결국 중재를 해야겠지.’

국제 연합의 대표자들에게까지 세파리아스는 영향력을 확보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다만, 그 카리스마는 여전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며 눈치를 살폈다.

“신제국은 어떻습니까?”

게제라스의 말에 황제가 몸을 일으켰다.

“신제국은 자색 주포와 성과 성벽을 쌓을 생각이다. 지금까지 하던 일을 반복할 뿐이지.”

“그렇다면 왜 이 회의를 열었습니까?”

너도나도 반발이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보며 세파리아스가 척 엘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지금 당장 마도를 버리라고 하면 들을 건가?”

입을 싹 다물었다. 안 그래도 인구수가 적었다. 검은 잔을 얻어 태어나는 타락 엘프의 배양시설은 그 수가 명확하게 제한되어있었다. 드낙의 힘이 소모되기 때문이었고, 자연히 디아볼로스와 타락 엘프로부터 얻는 업과 힘을 사용하는 형편이다.

돌고 도는 셈이다. 그리고 그 파이는 인구수가 늘어날수록 커지고 있었다.

세파리아스가 그대로 나가버렸다. 단 한마디를 들은 것만으로도 제대로 된 협의가 안 된 걸 알 수 있어서였다. 결국 국제 연합 회의는 흐지부지해져 버렸다. 그걸로 끝이었다.

다만, 그 이후에 뿔쥐들이 움직였다.

“건방진, 황제다. 아닌가?”

“맞다. 그렇기에 한 방 먹여줘야 한다.”

“그럴 여유가 있는 종족이 남아있나?”

“디아볼로스! 쥐어짜면 다섯은 데려올 수 있다.”

“역시, 정보력이 대단하다.”

피숨결 검은 뿔쥐들은 서로 세파리아스를 욕하기 바빴다. 뿔쥐와 세파리아스는 서로를 좋게 보고 있지 않았다. 상위인간으로 인간을 변하는 것만으로도 질색하는 세파리아스였다.

그 대립은 점점 금이 커져만 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파리아스가 드낙을 존경하는 마음이 없었다.

‘건방진 놈.’

적어도 겉으로라도 숙였어야 했다.

“놈만 빼고 거대 프로젝트를 실행한다.”

“드낙께서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우주.”

“맞다. 그곳에는 드워프들이 살 수 있다.”

“하지만 도달하는 게 힘들지.”

“많은 수학도 필요하다.”

“얼마나?”

“많은 수학이다.”

그들은 숙덕거렸다. 하지만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세파리아스가 말했듯, 결국 종족이 서로 달랐다. 그 간극이 너무 컸다.

“그럼 자치 왕국에게 도움을 주자.”

“자치 왕국? 머리가 되고 싶어서 머리가 4개가 되어버린 정신 나간 왕국이다.”

세파리아스보다 더 질이 나쁜 경우가 자치왕국이었다. 4갈래로 나뉘어서 성장하고 있었기에 더딜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도움을 준다면 한 방을 먹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뭐로?”

“모르지. 검은 돔의 판단을 기다려야지. 내 생각에는 뭔가 있을 것 같아.”

그림은 나쁘지 않았다. 뿔쥐들이 움직였다. 순식간에 정보가 흘러서 멀리 있는 검은 돔에게로 향했다.

“이거 봐라, 효율이 15% 상승했다.”

“단순히 소재만 바꿨는데, 이렇게 된다고?”

대장쥐가 실로 감탄했다. 공중요새는 뿔쥐들의 가장 큰 사업 중 하나였다. 그리고 국제 회의에서 은근슬쩍 발을 빼서 공중 요새 기술 개발에 힘을 쏟아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재는 다분히 뿔쥐다웠다.

부릉, 부릉!

그림자가 뿜어져 나왔다. 마치 연료처럼 토해지고 있었다. 이걸 보며 대장쥐가 찍찍 소리를 냈다.

“이걸 보신다면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의 신께서는 크게 기뻐하실 거시다아아아!!”

<그림자 연료>!

연금술을 통해서 마력을 담아내는 것처럼 드낙으로받은 그림자의 힘을 담아서 소재에 녹여내는 것! 그것만으로도 추진력을 얻을 수 있었고, 부유 효율이 15% 상승하는 결과가 되었다.

더욱 더 발전시킨다면 진짜 무서운 공중 요새가 될 터였다.

“대장쥐! 세파리아스 놈을 곤란하게 할 정보가 왔다!”

“뭐라고!”

대장쥐가 몸을 비틀거리며 서둘러 몸을 돌렸다. 그만큼 대단한 일이었는데 이 황제란 놈은 찌를 구석이 많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이를 듣고 금방 후회했다.

“우리 역량도 지금 부족할 지경인데 자치 왕국을 뭐라고 어째!”

“추측, 추측이니까...”

“누구보다도 빨리 공중 요새를 그럴듯하게 만들어서 하늘에 수백 개를 둥둥 띄우면 그걸로 게임 끝이다! 다 뭉개버릴 수 있어! 찍찍!”

그렇게 말하는 대장쥐에게 다른 자들은 입맛을 다셨다. 동시에 강력한 화두이기도 했다. 수백 채에 달하는 공중 요새! 그것만 해도 사실 웬만한 차원 전쟁에서도 능히 이 차원을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기회가 따로 없지 않나?”

“작게라도 재미를 보고 싶은데...”

“어차피 자치왕국은 신성력으로 상위 인간의 그릇을 만들고 있잖아. 그냥 놔둬.”

굳이 그들을 돕고 싶지 않았다. 모두 세파리아스에게 너무 민감하게 굴고 있었다. 대장쥐도 거기에 혹했지만, 그는 뚝심 있게 참아내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3개월 뒤에 돌아온 드낙은 어리둥절했다.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다고?”

“예. 어차피 서로 뭉치지 않을거냐면서...”

“그걸 다른 대표자들도 수긍하고?”

게제라스는 대답하지 못했다. 실제로 그러하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부끄러워서였다. 그걸 중재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세파리아스가 먼저 나가버려서였다. 그리고 황제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됐다. 딱 봐도 세팔이 뇨석이 지랄을 했겠지.”

“크흠...”

드낙이 신제국의 황제를 애칭으로 부르자 게제라스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것보다...내가 하나 아이디어가 있는데.”

“그게 지금 상황에서...말씀을 하실 생각입니까?”

“엉? 역량은 아직 충분하잖아. 그리고 여기에는 명분이 있고, 대의가 있어.”

“어떤...”

게제라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에 드낙이 빙긋 웃었다.

“모든 이들이 어찌 불멸의 삶을 살 수 있겠어? 신성력으로 최대한 번갈아가면서 오래 살게 할 수는 있겠지만, 그마저도 한계는 있겠지.”

“예. 예.”

“그래서 늙은이들을 위한 다양한 정책이 필요하다, 이 말이야.”

“네...? 혹시...”

“도시. 늙은 사람들을 케어해주는 거대한 도시를 세우는 거지. 이름도 이미 정했어. 실버 타운이라고, 그럴듯하지? 이게 좋은 게 늙으면 서럽잖아? 그러니까 서로 케어도 해주고 뭐 그럴 수도 있고, 즐기기도 서로 즐길 수 있지.”

“네?”

게제라스가 펄쩍 뛰었다.

“엉? 아니 취미 같은 거 같이 즐길 수 있잖아.”

“아! 예!”

그렇게 강하게 대답했지만 게제라스가 다시 드낙을 살살 달랬다.

“그런데 지금 하기에는 좀 많이 바쁘지 않습니까?”

“뭘? 늙으면 도시 하나에 집어넣는 거지.”

말이 이상했다.

“강제로 말씀이십니까?”

“아니~.”

드낙이 그렇게 말했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하긴, 여기는 늙어서 죽는 경우가 잘 없었다. 그 전에 죽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실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도 없었고, 있어도 마을 자체에서 적당히 돌아가면서 도움을 주는 것만으로도 대처할 수 있었다.

젊은 사람이 압도적으로 늙은 사람보다 많았기에 한 달에 한 번꼴로 도와주는 격이다. 그래도 나이 든 사람은 어느 정도 살아가는 게 가능했다.

“당장 필요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구역을 하나 만들고, 사업으로 삼기에는 좋아 보입니다.”

“사업?”

“예. 여성들이 수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왜?”

“남성들의 임금이 점점 오르고 있는 상황이라서 그 속도를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수요와 공급.

노동력이 곱절로 많아지면 자연 노동대비 임금의 성장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실로 그럴듯한 소리라고 드낙은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갸웃했다.

“세수가 그렇게 부족한가?”

“예. 몇 가지 사업이 정상궤도에 올라야 할 것 같습니다.”

드낙이 손을 주억거렸다.

“가장 지출이 많은 곳은?”

“골램 공장입니다.”

“엥? 그렇게 돈이 든다고?”

드낙이 제법 놀랐다. 하지만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골램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게 골램의 몸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상당한 크기의 석재나 광물이 필요합니다.”

그걸 캐야 하고, 운반해야 했다.

“성형하기 위해서 드워프들의 손길로 강화된 초대형 스팀 시스템이 있지만, 증기를 만들려면 열과 물이 필요합니다.”

그 수원. 당연히 공짜가 아니었다. 지하수에서 끌어올리는 것만으로도 힘과 자원이 필요했다.

“골램에게 마법을 새워서 일으켜 세워야 하기에 마법사들과 연금술사도 필요합니다. 효율성을 위해서...”

드낙은 그걸 듣고 인정했다. 확실히 지금 일차 산업을 공짜로 하게 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그럼 실버 타운은 일단 뒤로 미루는 수밖에. 그리고 세수를 다시 늘려야겠군?”

“여성을 임금 시장에 내놓아야 합니다.”

잔혹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모를 터였다. 드낙이 여성들이 할만한 일들을 끄집어냈다.

“옷이지.”

“옷...말씀이십니까?”

“대량으로 찍어내는 옷 공장 말이야. 그 정도면 여성들도 충분히 일할 수 있지.”

몇 톤짜리 석재를 부수는 일을 하기에는 여성들의 근력이 작다. 차라리 규격화된 공장을 만들어 처넣어버리는 게 이득이었다.

“아니다. 못 하겠다.”

드낙은 빌어먹고, 젠장맞을 기분에 휩싸여서 그 계획을 바로 지워버렸다. 게제라스는 감히 한마디도 하지 못했는데 드낙의 기세가 흉흉해서였다.

사회의 부품으로 전락해서 살아가는 기분이 얼마나 개 같은지 알고 있는 것이 드낙이었다. 최소한...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방법이 필요했다.

“농업, 목축 골램은 어느 정도로 추진 중이지?”

“현재 생산을 시작했지만 계속 개발, 개선을 진행해야 하기에 5천 기마다 공장을 쉬는 방식으로 운용 중입니다.”

“사회에 풀린 숫자는?”

“농업 골램 1만 5천 대. 목축 골램 3만 대입니다.”

“목축 골램은 왜 두 배나 되나?”

“농업 골램보다 간단한 구조로 되어 있어서입니다. 따로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없습니다.”

“좋군. 그럼 내년부터는 어느 정도는 고기가 매우 싼 값으로 유통된다는 뜻이네?”

“예.”

“아! 요리 대회는 어떻게 되었지?”

“드낙님이 참석을 안 하셔서 일단 연기한 상태입니다.”

“한 달 뒤에 연다고 말해. 아마 계속 기다리고 있겠지. 그리고 여성들에게 음식점 개업을 위한 지원도 추진하겠다.”

게제라스는 여기에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하지만 반마반신께서 그렇게 하시더라도 고기가 공짜인데 음식점에 가겠습니까?”

“흐흐, 자네가 아직 대중을 잘 모르는군.”

설거지를 1년에 최소 300일 정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외식의 위대함을. 누구나 집 밖에서 충분히 싼 가격에 식사를 해결하고 설거지를 안 해도 된다면? 특히 아내들이 격렬하게 좋아할 것이다.

‘거기에 이 바닥은 애들이 엄마를 도와서 가사를 돕는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도 밧줄을 배배 꼬아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는 아이들에게도 이득이었다.

‘가정에서 요리를 거세한다. 취미로는 하겠지만, 할 필요가 없는 세상을 만든다.’

드낙의 골램 산업은 그만큼 시대를 너무 앞서나가고 있었다. 악마의 냄새를 쫓던 드낙은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일단은 요리업계를 크게 증진시켜서 세수를 다시 모은다.’

소비를 촉진시키는데 먹거리만큼 좋은 게 없었다. 그리고 그걸 요리 대회에서 확인해볼 참이었다. 요리 대회에 나온 레시피를 민간에 공개하는 것이다. 고기와 밀만 공짜가 될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는 요리는 더더욱 세수에 큰 도움이 될 터였다.

‘내가 바로 이 세상에 진짜 요리를 전파하는 요리의 신이다.’

그는 신이다. 요리의 신!

=============================

[작품후기]

6081자

평점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