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4 -->
판타지 월드
살아있을 때는 악마의 힘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하급 계층으로 머물며 살아가기에 좋았다. 신분이 높아져도 결국 까먹고, 추락할 것이 분명했다. 또 하급 계층으로 살아도 대부분이 범죄자로 끌려와서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자들이었다.
잔혹하게도 그렇기에 그들은 필요했다. 그렇기에 세파리아스나 드낙이나 크게 그들을 생각하지 않았다.
‘죽고 나서가 문제인 놈들이지.’
어디서든지 쉽고 간단하게 동원 가능한 인간은 일단 필요하긴 했다. 무식하지만 효율적으로 일을 진행하기 좋았다.
하층민의 파이를 크게 차지하게 될 터였다. 동시에 미남미녀의 인자를 인간 세상에 퍼뜨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한 가지가 필요했다.
‘나의 악마 권속으로 만들어야 한다.’
악마의 힘으로 발현되지 않는 악마의 힘을 잡아먹는 그런 능력을 가진 악마 권속이 되어야 했다.
“야, 네가 국제 연합 가서 회의부터 먼저하고 있어. 아무래도 악마에 대한 차원 방위의 추진을 먼저 해야겠다.”
“넌? 아직도 그 버러지 같은 권속 악마를 처리하려고 하는 거냐?”
“응. 퍼뜨릴 거면 나중에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잖아? 처리를 해둬야겠어.”
“어떻게?”
드낙은 씨익 웃었다.
“악마는 악마로 처리해야지. 안 그래? 거기에 난 중립신을 잡아먹은 반마반신이야. 권능을 만드는데 특화되어 있다고.”
세파리아스는 몸을 돌렸다.
“소란만 일으키지 마라.”
“이제 어떤 놈이 악마의 힘을 받았는지 알고 있어. 조용히 처리 가능해. 걱정 말고 가라.”
“그 전에 네 영상을 담은 걸 줬으면 한다. 믿지 않을 수 있으니까.”
드낙은 필요한 영상을 줬다. 그 영상은 간단했다.
“악마의 카운터를 칠 수 있는 차원 방위 계획을 만들어라. 적어도 백 년 안에는 해결을 봐야 할 것이다.”
그것으로 끝이다. 그 환영을 담은 금반지를 세파리아스에게 던졌다. 그는 쉽게 받아냈다. 그가 떠나고 드낙은 눈을 감았다.
‘필요한 건 권능.’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혈육의 연결고리. 끊어지지 않는 부모와 자식의 끈. 그곳에 닿아야 했다.
‘엥?’
그리고 그건 드낙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간단했다. 너무나도 쉽게 그 권능의 조건 하나가 이루어져서 크게 당황했다. 왠지 들어보면 그걸 만들기 힘들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나도 수월했다. 어미의 몸에서 수많은 걸을 받으며 자라나는 것이 아기였기에 사실 육체를 이용하는 악마의 초월 체계는 너무 쉽게 그 조건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러면 악마들은 생각보다 더 많은 차원에 하급 권속 악마들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주식 개미처럼 주당 10~20원의 차익을 보는 것처럼 들키지 않고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며 그 업을 조금 빨아먹을지도 몰랐다.
‘기생충 같은 짓이라서 많은 악마가 할 것 같지 않지만.’
기생충 같은 짓보다는 위엄있게 세계를 침공하여 별을 파괴하는 대악마가 더 멋진 법이다. 드낙은 다음 조건으로 넘어갔다.
‘다른 악마의 힘을 잡아먹는다.’
보이지 않기에 죽어야지 발현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 조건은 까다로웠다. 그렇기에 드낙은 보름을 허비해야 했다. 그런데도 노력한 것은 그가 중립신을 잡아먹으면서 권능 제작에 대한 실력이 올라서였다.
반신(半神)이었기에 악마보다도 더 능력과 초월의 힘에 대한 권능을 더 잘 만드는 면도 있었다. 악마의 경우에는 육체에 너무 제한되어있었지만 드낙은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인 <피의 거미줄>만 생각해도 증명된 실력이다.
‘흠! 완성됐다.’
두 번째 조건을 완성했다. 하지만 원래 기대했던 것을 많이 포기해야 했다. 누더기 같은 능력을 지닌 권능이 되어버렸다.
가장 먼저 죽으면 육신이 지렁이로 변하는 권능이었다. 시체가 썩기도 전에 변하는 것이기에 기생인(寄生人)의 능력이 발현되기도 전에 육신에 쌩하니 사라지고 없다. 고로 확실하게 차단할 수 있었다.
‘지렁이는 토양을 더욱 비옥하게 만드는 거대 지렁이가 된다.’
죽어서 땅을 비옥하게 만들고 죽는다. 아카타베루의 능력보다 먼저 발동되는 능력이기에 손쉽게 가능했다.
‘이제 이를 퍼뜨리면 된다.’
15번째 권능 <잡아먹는 지렁이>.
드낙은 성관계를 하는데 미쳐있는 남자들을 찾고, 그 남자들과 살을 섞은 여성들을 찾았으며, 그들이 낳은 아기들에게 이를 심었다.
그 과정 속에서 드낙은 독특한 깨달음을 얻었다. 바로 <특정된 존재 촉각>이라 불리는 기묘한 깨달음이었다. 이 깨달음은 촉각을 통해서 발생하는데, 털이 곤두서며 자신이 노리고 있는 표적이 어디에 있는지 대충 방향을 잡아주는 깨달음이었다.
다만, 세파리아스와는 다르게 드낙은 이 깨달음을 체득(體得)하는 건 가능했지만, 심득(心得)하는 건 불가능했다. 남에게 이를 가르치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나중에 진정한 신이나 악마가 되었을 때는 권능으로 삼아서 자신의 챔피언에게 전해줄 수는 있었다.
‘그러기에는 썩 강한 능력은 아니지만.’
그냥 표적이 있는 방향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또한 힘의 수준이 아니라 격(格)의 수준이 크게 차이가 나야 했다. 동격이라고 할 수 있는 반신(半神) 세파리아스가 어딨는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
‘지가 무슨 헤라클레스야?’
드낙은 크게 불만을 품었다. 괜히 질투가 났기 때문인데, 황제에 올라서도 몇 년도 되지 않은 주제에 벌써 반신격에 올라섰기 때문이었다.
드낙은 딴생각을 했다.
‘네가 헤라클레스면 나는 제우스다.’
특정된 존재 촉각은 당장 권능으로 세울 수는 없었지만 드낙은 이를 16번째 권능이라 칭하였다. 나중에 순찰자 같은 이들에게 내려주면 좋을 것 같았다.
“아악! 당신 누구야!”
여자와 함께 물레방앗간에서 쿵떡쿵떡하고 있는 남자의 머리채를 잡은 드낙은 그 입속에 피를 한 줌 쑥 집어넣었다. 여자에게도 마찬가지 행위를 하고 그대로 사라졌다. 그가 그 모습을 보여준 이유는 단순 경고였다.
물론 근처에 있는 피숨결 검은 뿔쥐 정보원에게 주시하라 명했다. 드낙의 손에서 젤리 같은 붉은 것이 호도다다다다닥, 떨어져 내렸다.
“아이를 밴 여자들에게 이를 먹여라.”
“뜨나아아악!”
순식간에 드낙은 기생인을 깔끔하게 처리했다. 세파리아스 덕분이기도 했는데, 결국 문제는 시체가 썩었을 때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걸 방지할 수 있는 권능을 피젤리로 없애버리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하급 악마 권속으로 삼았다.
‘약간 성욕을 감소시켜주는 효과도 넣어줬다.’
짐승처럼 여자를 따먹고 다니지는 않을 터다. 드낙은 기생인을 자기 나름대로 세계에 이로운 것으로 변하게 하였다. 동시에 이를 쉐도우 위스퍼에게 맡겼다. 피젤리를 통해서 먹이기만 하면 그만이다.
아카타베루가 기생인을 쉽게 만들고, 쉽게 보낸 것처럼, 드낙 또한 쉽게 그 목적을 분쇄할 수 있었다. 기생인을 추적할 수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네건 내 것이 된다.’
어떤 악마인지 몰라도 이곳을 노린 걸 후회하게 만들어줄 생각이었다.
*
“이번이 250번 기생인이다.”
“상당하군. 하지만 이대로 계속 꾸준히 보름에 10마리씩은 보내야 한다.”
강하지도 않고, 격이 높은 것도 아니기에 능히 가능했으며 손쉬운 방법이었다. 인간 하나가 가지는 차원 이동에 소모되는 값은 매우 낮았다.
말 그대로 토양을 어느 정도만 변질시켜서 악마의 힘을 배출하게 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렇게 나약했고 미미했기에 보내는 것도 쉬운 일이었다.
“시선을 끌면 안 된다고 하지만 보름에 10마리는 너무 적은 것 같다.”
“20년만 지나도 그런 소리는 못할 거다. 번식력이 대단하거든.”
싸고 도망치는 개 같은 한량이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번식력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구천안흉(九千眼凶)이 몸에 좁쌀처럼 들러붙은 눈 9천 개를 동시에 움직이며 비열하게 웃었다.
“크크크.”
‘재미날 수밖에 없다. 하찮은 인간이 세계를, 차원 하나를 통째로 악마 친화적인 세상으로 만든다.’
그 반전은 실로 큰 재미를 줄 수밖에 없었다. 마치 100원짜리로 거대 기업을 쓰러뜨리는 것과 같았다.
‘50년 뒤에는 범용성의 마력과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악마들의 힘이 땅에 퍼져 있겠지.’
“키키킥.”
생각만 해도 재미났다. 다친 악마들은 흙만 퍼먹어도 몸을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필멸자들은 절망할 것이고, 초월자들은 도망부터 칠 생각을 하게 될 터다.
‘별과 별의 충돌.’
세계와 세계의 융합.
그 동시에 발생하는 차원 전쟁.
구천안흉은 이번에도 자신들이 승리할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침략자였으며, 별을 수차례 파괴하여 대악마에 들어선 아카타베루의 종복들이다.
오로지 승리만 해온 아카타베루는 그들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전쟁 악마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이제 그들은 <범용성의 마력>에 대한 카운터를 생각해야 했다.
“새로 창조할 필요가 있겠나? 하,중,고의 데몬 메이지면 충분할 것 같은데.”
소아귀로 이루어진 땅과 하늘 아래 퍼져있던 구천안흉 9,000마리가 모여서 회의를 했다. 그들 중 하나가 가장 먼저 데몬 메이지를 범용성 마력의 카운터 카드로 제안했다.
하위, 중위, 고위로 나누어서 잉태되어 태어나는 데몬 메이지는 권속 악마 전통의 마법 카운터였다.
“마력을 사용할 수 있기에 충분히 마법사들의 상쇄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데몬 메이지는 너무 소극적인 선택이지 않나?”
“소극적이기는. 데몬 메이지와 맞설 수 있는 마법사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건 고위 데몬 메이지가 아닌가. 전부 고위 데몬 메이지로 제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엘프들을 잡기 위해서 중급 악마인 인골흉(刃骨凶)을 현재 생산 중인데 굳이 고위 데몬 메이지를 생산할 이유가 어디에 있나?”
엘프의 모습을 한 인골흉은 그들에게 침투해서 엘프를 암살하며 내분을 일으키기 좋았다. 특히 엘프들은 내란에 휩쓸리기 좋은 종족이었다. 하나같이 동족혐오가 심했다. 꼬투리 하나 잡아서 전통 운운하며 정적을 죽이는 게 보통이었다.
“너무 썩은 물이 되어버린 중립신의 엘프들에게 잘 통하겠지만, 그래도 마법사들이 많은 세계아닌가. 난 데몬 메이지를 추천한다.”
우려에도 한 명이 데몬 메이지에 표를 던졌다. 너무 빠른 표 던지기에 술렁임이 커졌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고위 데몬 메이지 제작은 반대한다. 중하위로만 제작해야 할 터다.”
“말도 안 된다!”
“엘프 상대로 인골흉이 있기 때문이다! 중복된 목적성은 악마 군세의 다양성을 파괴한다!”
단번에 시끄러워졌다. 결국 데몬 메이지 건은 엎어졌다. 전통의 안티 메이지, 데몬 메이지는 거품이 펑 터지듯이 사라져버렸다. 그럼 남은 건 소아귀를 자원으로 사용하는 아카타베루의 악마 권속을 끄집어내야 한다.
“비식마력(鼻食魔力)이 제격이겠군.”
“호오, 제법이군. 부차적으로 마력충(魔力蟲)도 생산하니까.”
대형 장식물 내지는 소형 건축물로 여겨지는 게 비식마력이었다. 코로 뒤덮인 거대한 기둥이었는데 크기는 대형 냉장고에서 세탁기 정도의 크기로 들쑥 날쑥이다. 공장처럼 딱딱 맞아서 생산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코를 통해서 공기 중에 있는 마력을 흡입하고, 이를 통해서 하급 권속 악마에 속하는 마력충을 생산한다. 그 벌레의 크기는 15~50cm로 작은 편이지만, 문제는 적에게 달라붙어서 그대로 자폭하여 마력 폭발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그럼 범용성의 마력이 잔뜩 퍼져 있는 중립신의 세계의 마력 처리 수단으로 비식마력의 생산을 결정하겠다!”
모두 동의하였다.
“일단 소아귀(小兒鬼)를 통해서 비식마력 생산 공장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여력이 있나?”
아카타베루의 세계는 차원 침공을 앞두었을 때만 다양한 생산건물을 만들었다. 그 이후에는 모두 무너뜨려서 소아귀의 숫자를 늘리고, 유지비를 감소했다. 평시체제와 전시체제가 확실하게 달랐다.
보통 평시에는 구천안흉만 있고, 다른 악마는 거의 없는 편이었다. 대악마 아카타베루의 세계를 침공하기에는 악마 세계는 계속해서 움직인다는 장점이 있었다. 소아귀로 이루어졌기에 그건 아카타베루의 손아귀에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악마 육체로 이루어진 세상을 움직이는 건 대악마에게 꼬리를 흔드는 것과 같을 정도로 쉬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차원 전쟁을 앞두고 수많은 변이체와 생체공장을 만들고 있었다.
“오십몽대두에 데몬나이트... 상급 악마만 두 개를 만들고 있는 형편이라...”
절로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결국, 계획만 설정되고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야 생산할 수 있을 터였다.
=============================
[작품후기]
5867자
평점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