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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드낙은 소리 없이 움직였다. 그 움직임에는 더 이상 ‘그림자’로 변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신제국을 돌아다니면서 더더욱 빠르게 움직이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존재.’
그리고 무(無)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깨달음’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드낙도 이해하지 못해서였다.
그 경지에 도달한 이유는 그저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황당하게도 그냥 열심히 달리는 것만으로도 그의 암살 재능은 커져만 갔다.
그 결과.
‘세상을 속인다.’
자연스럽게 그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반마반신(半魔半神)을 넘어서는 힘이었다. 동시에 새로운 힘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걸 명확하게 탁 집을 수는 없었다. 세파리아스처럼 되지는 않았다.
어쨌든 그걸 드낙은 그냥 머리털 빠지도록 돌아다니는 것으로 완성해냈다.
그냥 해보니 되더라. 하다 보니까 각이 나왔고, 거기에 뛰어들었을 뿐이다. 정도로 답변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 외에 드낙이 설명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남들이 왜 못하는지, 자신은 왜 가능한지 그리고 올라선 경지에 대해서 잘 설명해주지 못했다. 그만큼 인식과 법칙을 벗어난 경지에 올라섰다.
다만 결과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세상을 속였을 때 나는 관측되지 않는다.’
그 무엇으로도 드낙은 관측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드낙은 그 경지에 진입했을 때 ‘파동’으로 존재할 수가 있었다. 충격적인 결과였지만 드낙의 경험은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파동이 된 드낙은 무시무시한 속력을 지닐 수 있었다. 아직은 힘이 부족해서 빛보다 빨리 달릴 수는 없었지만, 그에 준할 수 있었다.
세파리아스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드낙을 못 쫓아온 것은 이 때문이었다.
드낙은 수많은 사람과 도시, 성과 마을에 머무르며 사람들의 손가락을 자르고, 무덤을 파헤치고, 그들을 치료했으며 ‘실버타운’ 같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무지막지하게 많은 시간을 허비했음에도 세파리아스가 드낙과 조우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는 세상마저도 속일 수 있는 암살자가 되었다.
관측되지 않는 물질은 파동으로 존재할 수 있었고, 그 덕에 드낙은 초월적인, 영향무력(影響武力)이 세상에 남기는 자상(刺傷)처럼 세상의 법칙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어떤 신도 그렇게 쉽게 그 결과에 도달할 수 없을 터다.
‘기이한 느낌이지.’
자신조차도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가능했다. 불가해의 경지를 드낙은 제집처럼 사용하고 이용해먹었다.
그는 그 무서운 현상을 하찮게 이용했다.
단번에 언덕 위에 있는 오두막에 도착하는 데 사용했다. 오두막 주위로는 벌목된 나무들이 제법 많았는데, 생활 냄새가 물씬 풍겼다. 나무를 고정해서 만든 건조대에 온갖 옷들이 널려 있었다. 바짝 말라 있었음에도 수거하지 않은 듯했다.
“나, 나 죽어어어엇!”
갑자기 들리는 소리에 드낙의 머리가 홱 돌아갔다. 여성의 비명 소리 속에서 아이가 우는 소리도 났다. 드낙이 기민하게 움직였다. 애는 돌돌 말린 채 울고 있었는데, 배가 고픈 듯했다.
‘잘 생겼네.’
아기임에도 잘 생겼다!
드낙은 제법 놀라며 오두막을 살폈다. 오두막은 2층에다가 제법 넓었다. 1층에는 생활을 위한 부엌부터 창고까지 다양한 것들이 있었다. 아래에서 일하는 여자들은 하나같이 못생겼거나 나이가 제법 있고, 목에 주름이 많은 여자도 있었다.
그 숫자가 13명은 되었는데 그중에 6명은 임신을 한 상태에서 일하고 있었다.
위로 올라가자 비명을 지르는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여관방처럼 방이 주르륵 나열되어있는 게 2층이었다. 그곳에서 서로 물고 빨기 바쁜 남녀를 볼 수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네.’
드낙은 다른 방을 살폈다. 태평하게 자는 소녀도 있었다. 그 모든 걸 확인한 드낙은 남자 한 명에 여자가 족히 20명은 들러붙어서 함께 사는 걸 볼 수 있었다.
‘이게 대체...’
한탕을 진득하게 끝내자 드낙은 그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꺄아아악!”
“우왁! 뭐요!”
남자가 여자가 깜짝 놀랐다. 드낙은 날개를 펼쳐서 자신이 평범한 인간이 아님을 보여줬다. 그 모습에 남자는 벽에 바짝 들러붙었다. 여자는 그를 보호하듯이 섰다.
보기 힘든 구도였다.
“난 반마반신, 드낙이다. 나에 대해서 알고 있나?”
“헉.”
그가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다만 문 뒤에서 여자들이 너도나도 몰려와서는 시끄럽게 굴자 드낙이 그 모든 여자를 묶어서 입까지 마법으로 닫아버렸다. 그 초월적인 모습에 침묵이 뚝 떨어졌다.
“손가락 보여줘 봐.”
“네?”
말을 마치기도 전에 손가락 하나가 쑥 베였다. 떨어진 손가락이 드낙의 손으로 들어왔다.
“아아아악!”
그가 비명을 지르자 묶여있는 여자들이 버둥거렸다. 악다구니를 썼지만 입안에서 울릴 뿐이었다.
‘썩어라.’
드낙이 주문을 읊었다. 부패의 주문에 단번에 손가락이 썩어 문드러져서 검은 액이 후두두 떨어져 내렸다.
동시에 악마의 힘이 드낙의 눈에 보였다. 그 힘에 드낙이 실로 반가운 표정을 그에게 지었다.
“잡았다, 요놈.”
드낙은 그대로 남자를 사로잡았다. 여자들이 거세게 반항했지만, 진실을 알려줬다. 그런데도 여자들은 그를 내놓으라고 했고, 드낙은 결국 여자들에게 환상 마법을 통해서 끔찍한 꼴을 체감하게 하였다.
“히익, 히이이익.”
“웁, 우웨애애액!”
찰나의 시간에 불과했지만 정신 시간으로는 반나절의 고문을 당한 그녀들은 하나같이 헛구역질을 해대거나 공포에 지려버렸다.
‘20명이나 되니까, 이 정도는 해야지.’
대부분 나약한 여자들이라 쉽게 꺾였다.
“가자.”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 진짜입니다!”
기생인이 발악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드낙은 그를 끌고 가며 아기들도 여럿 챙겼다. 인근에 있는 성에 착지하자마자 무장한 병사들이 몰려왔지만 드낙의 해명에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반마반신이 보여줄 수 있는 초월의 힘을 봤기 때문이다.
“어때? 마법사가 이런 걸 할 수 있냐고.”
“예!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내려오십시오!”
세파리아스의 동상에 눈 깜짝한 사이에 올라간 드낙이 악마의 날개를 펼치며 비로 세파리아스의 코 밑에 쌍코피를 그려 넣었다. 많은 병사들과 관리, 성주가 안절부절못했다.
남자와 아기를 데려온 드낙은 방을 하나 빌렸다. 거부하는 자들은 없었다.
그들은 동시에 세파리아스에게 연락을 넣었다. 봉화부터 시작해서 메시지 마법과 말을 달리는 전령까지 사용했다. 그런 방침이 현재 신제국의 모든 영토에 전달된 상황이었다.
촤아악!
상층 중 한 층을 완전히 장악한 드낙은 커튼부터 쳤다. 남에게 보여줘서는 안 될 짓을 앞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으으, 으으으...”
남자는 벌써부터 분위기를 잡는 드낙을 보며 벌벌 떨었다. 감지가 되지 않고, 실제로 죽어서 썩어야지만 악마의 힘이 관측되는 기생인(寄生人)이지만 그래도 평범한 인간보다는 뛰어난 자였다.
“곱게 말하면 서로 좋게 끝날 거야. 오케이?”
“예. 예예. 예!”
“아카타베루의 권속이냐?”
“예? 그게 누굽니까?”
콰득!
“아? 아아아아아악!”
박살이 난 손목뼈를 남자가 움켜잡았다. 그의 몸 전신에서 식은땀이 쭉 흘러나왔다. 엄청난 고통이었다. 온몸에 힘을 주고 악을 내질러도 고통은 전혀 사라질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파앗.
신성력이 단번에 그를 치료했다.
“헉. 헉헉. 허억...허억...”
진땀으로 범벅된 남자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긴 시간이 훅 지나간 것처럼 느껴졌지만 5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흑마법사에 대해서 할 말은?”
“저, 정말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냥 여자랑 떡 친 것밖에 없습니다! 진짜입니다! 저한테 대체 왜 이러시는 것입니까. 반마반신시여! 정말 저는...”
드낙은 가차 없이 놈을 고문했다. 그 정도로 악마는 위험한 놈이었다. 흑마법사가 갓 태어난 악마가 되었음에도 남부 왕국의 몰락을 주도했다.
‘가만히 놔둘 수는 없지.’
다만 놈은 정말 끈질긴 놈이었다.
‘역시! 대악마의 권속이 틀림없다! 이렇게까지 버텨내다니!!!’
드낙은 실로 감탄했다. 동시에 두려움에 벌벌 떨어야 했는데 악마의 힘을 전혀 가지지 못해서 진짜 인간 같은 놈이 대단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어서였다.
“정말 대단한 악마구나! 분명 대악마의 권속이겠지? 응? 어서 그 이름을 말해라! 그 이름을 말해!!!!”
“엉엉. 모른다고요. 모른다고오오오!!!!”
드낙은 장장 5일 동안 놈을 고문했지만, 그 어느 것도 얻어내지 못했다. 육체를 훑어보았는데 정신력을 강화시켜주거나 정보를 말해서는 안 되는 제약도 없었다.
‘진짜 모르는 건가?’
드낙이 정답을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쿵쾅쿵쾅!
문을 거칠게 두드리며 세파리아스가 그냥 문을 잘라내고 들이닥쳤다.
“잘도 신제국을 헤집어놨겠다!”
“잠깐! 악마의 힘을 가진 놈을 생포했어!”
그의 눈이 남자에게 향했다. 그리고는 그 사타구니로 옮겼는데, 발딱 세워져 있었다.
“게이인가?”
“성욕이 대단한 놈이야. 고문을 하는 사이에도 발딱 세워놓고 있더라. 엄청난 정력이야.”
“그래서 얻은 정보가 있나?”
“......아니.”
세파리아스가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드낙은 고문에 대해서 잘 모르는 듯했다.
쑤욱! 파각!
남자의 앞에 검이 쑥 들어가며 바닥이 그대로 박살이 났다.
“헉!”
엄청난 파괴력에 그가 놀라자 세파리아스가 그를 내려다보며 검을 뽑으며 말했다.
“고자가 되고 나서도 진실을 말하는지 보자고.”
그걸 보며 드낙이 턱하고 세파리아스의 팔을 잡았다.
“야! 물어보고 잘라야지. 그냥 자르고 물어보는 게 말이 돼?”
“원래 그런 게 고문이다. 되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너야 진짜 절망에 빠져서 술술 불어내지. 세상에 대한 미련이 없어지기 때문에 아주 얌전해진다고.”
물어보고 때리는 건 어리석은 방법이었다. 너무 상대를 배려해준다. 패고 난 다음에 물어야지 진짜 고문이었다.
“저, 저는 진짜 아무것도 모릅니다! 정말 몰라요, 몰라아아아악!”
서걱!
단번에 소시지가 댕강 잘려나갔다. 출혈이 크게 일어났다. 드낙이 그걸 보고 회복마법을 조금 선사해줬고, 출혈만 딱 아물 수 있었다.
“으, 으아아아아아아!!!!”
고자가 된 사내가 갑자기 끔찍한 비명을 지르더니 그대로 혈압 때문에 뇌출혈이 일어나며 그대로 죽어버렸다. 기생인(寄生人)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두 가지의 목적 중 종족번식을 해결할 수 없게 되자 나머지 목적인 테라포밍을 위해서 죽어야 하는 게 기생인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드낙이 혀를 내둘렀다.
“상남자 중의 상남자네. 고자가 되니까 죽어버렸어.”
“진짜 모르는 것 같은데. 하지만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뭔데?”
“악마가 여기를 노리고 있다.”
드낙은 그 말에도 위기감을 느끼지 못했다. 중립신이 든든하게 이 평화를 받쳐주고 있어서였다.
“못해도 백 년은 넘게 지나야 할 걸.”
거기에 대해서 세파리아스는 반박하지 않았다.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었다. 확률은 그도 몰랐다. 다만 악마의 의도만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단서는 더 없는 것 같군. 너는 지금 당장 돌아가라.”
“아니. 안 돌아갈 건데? 놈을 조사하고 나서 안게 있거든. 여기 이 아기들도 모두 악마 권속이야.”
세파리아스의 눈이 좁아졌다. 아기들은 하나같이 출중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나도 중산층 아들과 결혼할 정도로 외모가 벌써 보였다.
“특징이 아름답고 잘 생겼다는 거지.”
“미남미녀들이 마녀사냥 당하겠는데...그런건 증거가 될 수가 없어.”
“못 봤어? X대가리 휘둘리는데 선수야. 여자도 자식을 낳고 싶어서 환장하겠지. 여자 20명을 데리고 살면서 그거 하기 바빴다니까? 교미교미! 교미교미!”
드낙의 외침에 세파리아스가 지독한 표정을 지었다.
“처, 천박한 놈! 말을 그딴 식으로밖에 못하느냐!”
성을 내는 세파리아스를 보며 드낙이 되려 윽박질렀다.
“아는 거 다 아는 놈이 뭘 그렇게 화를 내? 그렇게 부끄럽냐?”
“됐다. 네가 저질렀던 일에 대한 배상금을 지불하고, 국제 연합으로 돌아가라.”
“하급 권속 악마를 다 잡고 가야지...아니면 거기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세파리아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썩어서 토양에 악마의 힘이 스며들고 퍼져나간다면 그 세상에서 악마들이 활동하기가 좋을 수밖에 없었다. 흙만 퍼먹어도 힘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묘지마다 신성력을 통해서 자질구레한 초월의 힘을 싹 쓸어버리면 그만이다. 어차피 죽어서 그렇게 된다며? 그렇다면 간단하다. 장례를 국가에서 치러주고 공동묘지를 세우면 된다.”
“아, 그렇긴 하네...그럼 난 왜 그렇게 돌아다닌 거지?”
죽기 전에는 그저 교미하기 바쁜 놈이기에 사실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인구를 생각하면 놔두는 편이 좋다. 죽어서 악마의 힘이 퍼져 나온다면 공동묘지를 주기적으로 정화하면 될 일이다.
“그걸 너한테 말해주려고 해도 네놈은 잡히지 않지 않느냐!”
“젠장.”
드낙은 자신이 바보 같은 짓을 했다는 것에 욕지거리를 날릴 수밖에 없었다. 세파리아스의 전언을 주려고 해도 손가락부터 자르고 시작하는데 그게 전해질 리가 없었다.
그래도 수확은 있었다.
‘세상 속이기’의 경지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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