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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사냥은 재밌다.
그것을 재밌다고 말하려면 사냥에 대한 재능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드낙은 재능이 있었다. 그는 마브로스 리꼬조차도 쉽게 잡은 자였다. 그건 몇몇 요행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순찰자 교육도 받지 않은 자가 잡은 성과로 보기에는 너무 큰 위업이었다.
남들은 씨앗이 싹이 되기를 기다릴 때, 이미 개화한 꽃이었으며 자라나는 묘목이다.
시작 선부터 남달랐다. 그게 바로 박호훈이며, 그를 부르고, 기다린 것이 중립신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시체에서는 보이지만 평범한 상태에서는 찾을 수 없는 악마의 힘을 추적하는 데에 흠뻑 빠질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마주한 벽.
생소해 보이는 급경사의 길.
낯선 냄새를 풍기는 숲.
드낙에게 있어서 ‘사냥’과 ‘암살’에 답이 없다는 건 흥미진진한 것에 불과했다.
물론, 기생인(寄生人)의 진실을 알면 실로 간단한 편법에 불과해서 기도차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모를 때, 드낙은 너무나도 단단하고 높은 벽을 마주했다. 그렇기에 드낙은 미소가 떠나질 못했다.
‘재밌다.’
보통 천재가 벽을 마주하면 스스로를 탓하고, 상처입히며 결국에는 자신을 죽이며 그대로 업계를 떠나기 마련이다. 짧은 순간이지만 화려할 정도로 빛을 내며 해당 분야를 헤집었던 나날과 다르게 금방 죽은 별이 되지만 드낙은 보통 천재가 아니었다.
그는 중립신(中立神), 엘 마르토 카사다민이 부른 필멸자였다.
누가 감히 그를 평범한 천재라고 말하겠는가.
그 어떤 자가 나타나더라도 드낙 앞에서 자신을 ‘사냥의 신이요.’라고 말하지 못할 것이며 그 어떤 자가 모습을 숨긴 채 드낙 앞에서 자신을 ‘암살의 신이요.’라고 말하지 못할 터다.
그렇기에 드낙은 그 벽을 오르는 과정조차도 즐길 수 있었다.
재능의 괴물.
거기에 피해를 보는 건 당연히 다른 이들이었다.
“어이, 너.”
“엉? 헉! 누, 누구십니까?”
화전민을 일구기 위해서 숲에 불을 내던 농부가 화들짝 놀랐다. 드낙이 홀연히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건 필멸자의 눈에서나 그렇지 사실은 오래전부터 드낙은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노모한테는 죽만 먹이고 넌 고기를 먹고, 너 이 새끼, 권속 악마지? 아카타베루가 보냈지?”
“예? 전, 아닙니다.”
“그럼 증명해.”
“네? 악마가 아님을 증명하라는 겁니까? 그게 저는 계속 여기 산에서 살았고...”
반마반신과 인간이 지닌 격(格)의 차이 때문에 농부는 드낙을 처음 봤음에도 절로 굽히기 바빴다. 드낙은 고개를 저었다.
“손가락 하나를 잘라서 네 순수를 증명해.”
“제 손가락을요?”
그가 질문과 동시에 손가락 하나가 드낙에 의해서 잘려나갔다.
“힉?! 끄아아아악!”
사례가 걸리듯이 숨이 턱 막히며 화전민 농부가 끔찍한 소리를 냈다. 오두막에서 노모가 깜짝 놀라며 지팡이를 쥐고 나오다가 계단에서 엎어져서 앞니가 부러졌다.
“아악!”
드낙은 손가락을 잡아챘다. 단번에 손가락 하나가 썩어 문드러졌다.
‘아니네. 화전민 조건은 빼도 되겠어.’
가난한 자는 맞았지만, 산을 일궈서 작물을 기르는 일은 고되다. 고된 일을 하면 악마가 시킨 일을 하지 못한다. 드낙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단번에 신성력으로 두 사람을 치료했다.
“실례했다.”
“이...! 무슨 무례...는 아닙니다.”
금화를 손에 쥔 농부가 절로 절을 했다. 분노하기에는 너무 큰 돈이었다. 드낙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는 <손가락 검증법>을 통해서 아카타베루의 권속 악마가 지닌 특징들을 하나씩 배제하며 찾아내고 있었다.
당연히 그 여파는 신제국이 오롯이 감당해야 했다.
“여기에 없다고? 이런 빌어 처먹을 새끼가! 대체 얼마나 들쑤시고 다니는 거냐!”
세파리아스가 보기 드물게 분노했다. 자기가 할 일을 대신 처리해줬을 때 그때는 기분이 좋았다. 신제국은 자연 언데드 발생률이 높을 수밖에 없는데 그걸 드낙이 허겁지겁 달려가서 호다닥 해치웠다.
자기 손바닥 위에서 춤추는 꼴이다.
‘그렇게 끝났어야 했다. 이 인간도 아닌 잡종 놈이!’
해서는 안 될 생각도 하면서 드낙을 욕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는데, 신제국의 혼란은 드낙이 기생인(寄生人)을 찾기 시작하면서 더더욱 심해졌기 때문이다.
당장 자정이 넘은 야밤임에도 사람들이 전부 깨어있었다. 드낙이 드잡이질을 했기 때문이다. 절로 공포스러웠고, 곳곳에 피가 많이 묻어나 있어서 이를 청소하는 것도 일이었다.
“피해자는?”
“셀 수도 없습니다.”
세파리아스가 손으로 이마를 쳤다. 두통이다. 지금, 반신격(半神格)에 도달한 자신이 두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신성력이 피를 돌고 있었지만, 편두통은 나아지질 않았다.
‘이....이....개새끼야!’
신제국의 교역 허브 중 하나인 쌍둥이 길목 성채!
가장 중요한 거점 중 하나였고, 거주하는 이들보다 유동 인구가 대단히 많은 곳이었다. 당연히 이런 곳은 밤에도 화려하게 빛을 밝히고 활력이 넘치는 곳이다. 그런 곳과 드낙이 합쳐지면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걸 뒷수습하는 건 세파리아스의 몫이었다.
주변은 조용했는데, 황제의 행차에 모든 이들이 다투는 걸 멈춘 상태였다.
“가장 큰 피해는?”
“집이 전소했습니다.”
황당한 피해가 튀어나왔다. 손가락 자르는 거? 그것보다는 재산피해가 먼저였다. 사람 한둘 죽는 것보다 재물이 망가지는 게 더 손해기 때문이다.
“집이 탔다고? 어쩌다가?”
이에 관리가 더듬거렸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소란이 일어났고, 누군가가 발이 잘리면서 넘어졌는데 그게 횃불이 제집의 나무 창문에 붙었다고 카더라는...”
“여기 성주가 어딨느냐! 왜 아직도 아무것도 모르는 자가 내 질문에 답을 하느냐!”
그 호통에 하급 관리가 벌벌 떨었다. 그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두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조아리고 싶어졌다.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도 무서웠다.
“예! 지금 도착했습니다! 황제시여!”
세파리아스가 호통을 치자 그제야 성주가 나섰다. 그는 그가 부르기 전에 기사에게서 어떻게든 최대한 많은 걸 듣고 있었다. 수많은 기사와 병사들이 한 마디씩 거들고 있어서 굉장히 소란스러웠지만, 제국의 성주답게 모든 걸 대충 알아듣고 걸러내고 있었다.
“황제시여! 그게 반마반신께서 시체가 되어야지 이놈들이 악마 냄새를 풍긴다면서 손가락 하나를 자르라고 하셨는데...”
그가 다시 진행과정을 설명하자 세파리아스가 신경질을 냈다. 원래 그래서는 안 되지만 진짜 인내심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악마침공의 의심과 그 대책>을 국제 연합에 건의하여 회의를 주도해야 하는데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걸 그대로 들어줬단 말이냐! 네가 그러고도 성주인가! 막았어야지!”
“그 책임은 제가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자 군중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막으려고 했지만, 사지가 꽁꽁 묶여서 뭘 할 수가 없었어요! 우리 성주님은 그런 겁쟁이가 아니에요!”
세파리아스가 그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군중이 썰물처럼 쫙 갈렸다. 조그만 아이가 땟국물을 묻힌 채 있었다. 콧물로 코밑이 범벅되어있었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라네리요!”
“하하하! 어린놈이 성주가 겁쟁이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구나. 하지만 그는 시민을 지키지 못했다.”
“손가락을 다친 이들은 반마반신이라는 놈이 모두 치료해줬어요. 죽은 사람도 없다구요.”
놈이라니...
웅성웅성.
군중이 들썩였다.
“이 애의 부모는 누구인가?”
대답하는 자가 없었다. 결국 병사 하나가 나서서 아이의 뒷목을 움켜쥐고 당겼지만 그걸 세파리아스가 막았다.
“전 고아에요! 그러니까 부모는 없어요!”
당차게 아이가 대답했다.
“끌고 가라. 어디서 객사할 놈이니, 군적에 등록시켜서 키워라. 용맹한 병사가 될 것이다.”
“예!”
다시 세파리아스는 성주에게로 몸을 돌렸다.
“손가락 자르고 다녔으니, 불이 났음에도 바로 끄지 못했겠군.”
“그건 아닙니다. 반마반신께서 가고 나신 뒤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도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한곳에 모이도록 명령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에 있는 모든 인간이 드낙의 명령에 모여야 했다. 그 혼란 속에서 불이 났지만 보고가 늦어졌다. 밤바람을 타고 불은 번져나갔다. 그건 화마(火魔)라 부르기에 합당할 정도로 커졌다.
“그렇다면 끄는 게 불가능했을 텐데? 마법사도 적고.”
“반마반신께서 뒤늦게 아시고, 모든 불을 꺼 트러 줬습니다.”
물론 이미 피해는 크게 난 상태였다. 족히 150여 채가 타버렸다. 한쪽 구역이 완전히 타버렸다. 모두 철거하고 다시 지어야 했다. 그건 맨땅에 짓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부들부들! 부들부들!
세파리아스의 볼살이 덜덜 떨렸다.
‘정신이 나가 있구나! 미친놈! 오직 악마의 힘을 찾는데 모든 정신을 집중하고 있겠지...’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세파리아스는 능히 드낙의 상태를 알 수 있었다. 그건 마치 ‘자신의 꿈’을 처음으로 추구하기 시작한 정열이다. 내 목숨 줘도 꿈을 이루겠다는 마음가짐일 터다.
‘그걸 이제 와서 한다는 게 웃기지만...’
잘되는 만큼 노력하는 재미를 느꼈다. 그 반응이 너무 커서 문제다.
실제로 드낙은 그 여파를 생각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사람 손가락 자르고 그 손가락을 썩게 하여서 악마 유무를 파악하고 있었다.
‘미친놈이다.’
처음으로 자기의 적성과 재능에 맞는 일에 ‘초고도의 집중’을 해봤으니 재미있을 수밖에...
납득이 될 만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용서할 마음은 없었다.
“수습해라. 나중에 모든 이들을 보상해줄 터이니, 기다려라.”
또한 드낙은 제법 돈이 많은 자였다. 거기서 그냥 배상금을 신청하면 될 일이다. 약조를 친필로 계약서를 피해자들에게 써줬다. 불만을 내비치지는 않았지만, 마음에는 불만이 앙금처럼 남아있었는데, 이게 싹 풀렸다.
물론 언제 줄지는 의문이었다. 드낙만이 알 것이다.
그 사이에 드낙은 숲에 있었다. 그는 범죄자를 호송하는 것처럼 보이는 무리를 봤는데, 그 모습이 이상했다. 아기들이 수레에 실려있었고, 늙은 여자들이 아기들을 돌보고 있었다. 하지만 기괴한 것은 철창 속에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다리에 족쇄를 차고 있었다.
흥미를 느낀 드낙이 그대로 떨어져 내려 말을 멈춰 세웠다.
“웬 놈...이십니까?”
그림자로 검은 날개를 척 펼치면서 피를 후두둑 떨어뜨려 내자 절로 공손해졌다.
“너희야말로 뭐하는 놈들이냐? 범죄 노예로 보이지 않는데.”
제국은 오로지 범죄자만 노예로 부려서 그 대가를 치르도록 만든다. 사형보다는 노역을 통해 사회공헌을 실현하는 게 그들이 말하는 법집행이었다.
“다, 당치도 않습니다! 워낙 멧돼지들이 많아서 이렇게 철창을 세운 것뿐입니다.”
“그럼 족쇄는 무엇이냐?”
“그건...”
그 말에 우물쭈물했다. 하지만 오히려 늙은 여자들이 외쳐대었다.
“이놈들을 놔둬라! 여기서 풀려나면 살아갈 수가 없어!”
“노예가 되어도 좋단 말인가?”
“나쁘지 않은 대우를 받고 있어서 말이다.”
눈이 침침한지 드낙의 무서움을 모르는 듯했다. 드낙은 날개를 접었다. 본인들이 원하는데 굳이 박살 내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이것저것을 캐물었다.
“아기들은 어디서 났느냐?”
“샀습니다. 제법 유명합니다.”
“유명?”
“예. 아기들을 파는 부모가 있는데, 남자 하나에 여자가 10명이 삽니다. 그들은 출산을 한 아이를 그냥 팔아치워 버립니다. 많은 이들이 여길 지나갈 때마다 한 번은 방문합니다.”
사람 장사였다. 드낙이 혀를 내둘렀다. 동시에 실로 ‘악마적’이라 여겼다.
“어디에 있다고?”
“그곳은...”
사람장사를 하는 놈이 술술 불었다. 그리고 그는 끝까지 자신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큰돈을 쥐여주고 장기적으로 노동 계약을 맺었을 뿐이며 이는 제국법에도 어긋나지 않았으며 도망을 막으려는 것뿐이라고 설명하였다.
피해자들이 떠나기를 거부했기에 드낙은 굳이 그를 건드리지는 않았지만 한 마디 경고하는 걸 잊지는 않았다.
“쉐도우 위스퍼를 생각한다면, 적당히 도의를 취하는 게 좋을 거다.”
“아주 잘 먹이고 잘 지내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네놈이 지금 명줄이 붙어있는 거겠지.”
노인 복지가 없는 세상이었다. 노예가 되어서라도 살고 싶은 늙은 여자들을 보며 드낙은 기분이 안 좋아졌다.
‘실버타운 먼저 지었어야 했는데...’
큰 후회가 다가왔다. 골램 생산 공장을 짓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역량이 남아있을 터.
‘실버 타운 프로젝트도 시작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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