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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드낙이 빠르게 이동했다. 휘말린 전령도 위치를 알려주고 나서는 놓아줬다. 그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반마반신(半魔半神)의 몸은 초월적인 기동력을 보여줬다. 대신육체(大神肉體)가 전투용 육체라면 드낙의 몸뚱어리는 관리하기 좋은 몸을 지니고 있었다.
100m에 달하는 체고(體高)를 지닌 몸으로 장기간 이동은 비효율적이다.
이를 잘 아는 드낙은 소형 몸체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렇게 작은 건 드낙의 재능과도 잘 어울렸다. 암살 재능은 이렇게 그림자나 빠르게 내달리는 것만으로도 알게 모르게 한계를 뛰어넘고 있었다.
그야말로 악마의 재능.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드낙은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시간으로 치면 약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버텨라! 여기를 넘겨주면 그 뒤로는 막을 곳이 없다!”
광산의 입구 조금 안쪽에서 방어진이 펼쳐져 있었다. 입구 밖에 반월형으로 그려진 방어진은 일찌감치 포기했는지 죽은 언데드의 숫자가 적었다. 이를 드낙이 찬찬히 훑어봤다.
‘사람이 많이 죽었네.’
피를 흘리며 뜯어먹히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생각 이상으로 많았다. 드낙의 눈이 좁아졌다. 사냥꾼이 사냥감을 훑고, 털이 부족하고, 뱃가죽이 줄어든 것을 보고 굶주린 놈이 지구력이 크게 손상된 것을 파악하듯이 단번에 신제국의 범죄자 광산이 지닌 허점을 파악했다.
‘베테랑이 적다.’
초기대응이 늦어졌고, 실전이 부족한 이들은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싸웠을 것이고 제법 전공도 세웠다. 하지만 그건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전공에 불과했다.
전황 자체는 그들이 죽어서 더더욱 악화되어졌다.
처음 1분을 위해서 죽은 병사들은 미래에 광산을 무너뜨리게 되어버린다.
‘지원군이 상당히 늦네.’
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만큼 광산은 오지에 있기 마련이지만 정도가 심하다. 범죄자 광산을 여럿 관리하는 군대가 따로 없는 게 분명했다. 드낙은 그대로 쾅하고 떨어져 내렸다.
꿇려진 무릎을 펴고, 주먹으로 땅을 퍽 치던 걸 거두며 일어섰다.
언데드 무리가 피떡이 되었음에도 그 누구도 드낙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언데드 무리의 모습은 굉장히 멀쩡했다. 좀 짓눌린 형태가 많았고, 불구가 제법 있었지만 인간의 시체처럼 보였다.
‘불태우지도 않았어.’
관리자가 연료를 챙기며 이득을 봤다는 뜻이다. 그래도 자연 언데드가 발생하지 않게 필요한 처치를 했겠지만 역부족이었다. 없는 발에 목뼈와 머리통을 달고 퉁퉁 달리고 있는 언데드는 흉악했다.
서로 뒤엉키고 뒤섞인 언데드 무리는 하나이면서도 여럿이었다. 알아서 들러붙기도 하고 다시 떨어지기도 했다. 그 덕에 순식간에 피해가 속출했다.
‘언데드 건축물 같기도 하고.’
자연적인 것이라 엉망이었지만 만약 이 전투에서 살아남았다면 골치 아픈 놈이 되었을 터다. 드낙이 주문을 읊조렸다.
이내 길쭉한 언데드가 서서히 타오르며 곧 전신에 마력불꽃이 들러붙었다. 그리고 모든 걸 태워서 재로 만들어버렸다. 뼈까지 바싹 타들어 갔다. 그리고 ‘사령마력’이 사라지며 드낙은 그 이면에 있던 ‘악마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가슴이 단번에 답답해졌다.
‘뭐야?’
있어서는 안 될 것을 본 것처럼 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세계에는 더는 흑마법사가 없어서였다. 적어도 드낙의 감각에는 그랬다. 중립신이 사제와 성기사에게 신탁을 내려서 말끔히 청소했다.
중립신이 굉장히 바빴던 이유 중 하나였다.
밥버러지 같이 남이 가꾼 차원을 서리하듯이 챙겨가는 놈들은 신들의 주적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걸 신앙으로 삼는 흑마법사는 대가리를 깨부수고 뇌수를 분쇄하여 돼지우리에 뿌려도 분이 삭히지 않았다.
‘아직도 흑마법사들이 살아있다는 뜻인가?’
중립신의 완벽함을 생각하면 황당했다. 하지만 다른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악마의 본격적인 공세.’
가능성이 제로라고 할 수 없다. 물론 굉장히 낮다. 고작 악마 냄새가 난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건 지나친 비약이었다. 최저임금이 올랐다고 모든 양극화가 해결될 것이라고 크게 외치는 자들이랑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드낙은 겁을 집어먹었다.
중립신과의 싸움에서 사실 아무것도 못 한 게 드낙이었다. 이제 이 차원을 지켜줄 중립신은 죽고 없다. 드낙이 진짜 모든 걸 책임져야 했다. 그 책임감은 드낙에게 너무 컸다.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설마...’
드낙은 나머지 언데드에게 마법불꽃을 붙이고 모습을 내비쳤다. 다른 이들에게는 마치 밤의 어둠에서 나타난 존재로 느껴졌다.
“난 반마반신 드낙이다! 책임자는 어디에 있는가!”
그러자 제법 걸출한 인물이 앞장서서 나왔다. 제국식 전신갑주를 입고 있었고, 순백의 색으로 도색을 했다. 신제국 기사의 증표다.
척봐도 영웅 같은 모습에 드낙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놈이 검은 돈 처먹고 다녔다니? 연료를 빼돌리고 언데드를 자연발생시키게 만든 주범으로는 여겨지지 않았다.
“왜 언데드를 그대로 나눈 것인가.”
“신제국의 범죄자 처리는 처음에는 태우는 것이었으나 죽는 이들이 해를 더할수록 많아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관절을 부수는 방식으로 자연 언데드가 발생해도 무리 없이 처리가 가능했습니다만...”
그도 감히 그 이후는 말하지 못했다.
예외가 툭 튀어나와버려서였다. 이에 드낙은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있었다.
‘악마의 힘은 육체의 힘!’
언데드의 박살 난 관절을 고치는 것 또한 능히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건...흑마법사의 짓이다.’
조직적인 힘이 만들어낸 계략이다. 무엇보다 신제국의 상태는 생각보다 매우 허술했다. 너무 많은 영토, 새로 출범한 신국가. 삐걱거리는 다리를 건너갈 수 있었던 것은 세파리아스라는 존재 하나 때문에 불과했다.
물론 그게 들통이 났다고 하더라도 몰락할 일은 없었다.
지금은 평화의 시대. 전쟁이 필요 없는 시대였다.
“구덩이로 안내해라.”
“예!”
병사들이 나와서 서둘러 그를 안내했다. 드낙은 상전처럼 굴면서 냉큼 발걸음을 옮겼다. 정보 마법을 사용하면 간단하지만, 굳이 이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세파리아스보다 자신이 우위에 있음을 말해주기 위해서였지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신황제나 반마반신이나 똑같았다.
“그어어어!”
가는 동안에 언데드들과도 조우하기도 했다. 놈들은 생기를 찾기보다는 그저 인간을 노리는 걸 지나칠 정도로 원했다. 동물을 지나치고, 토끼가 혼비백산하며 나무 밑동에 고개를 콕 박아서 엉덩이가 토실토실 움직일 때도 그런 걸 노리지 않고 인간 소리와 횃불 그들이 내는 땀내음에 광증이 걸린 개마냥 달려들었다.
“놈이 나무 위에 있다!”
눈썰미 좋고, 횃불에서 떨어진 자가 놈을 콕 집어서 외쳤다. 동공이 다른 이들보다 확장되어있어서 주변 빛을 잘 받아들일 수 있었던 탓이다. 드낙은 놈의 생태를 어둠 속에서 꿰뚫어보고 있다가 인간들에게 발견되고 나서야 단번에 놈을 죽였다.
화르르르르!
“키에에에엑!”
관절에만 살덩이와 근육이 들러붙어 있는 놈이 발악하며 덤벼들었지만 어림도 없지, 바로 뚝배기가 깨지는 소리가 나며 골통이 드낙의 주먹에 쾅 부서졌다.
“와아아아!”
단번에 사기가 올랐다. 자기들이 피를 묻히지 않아도 척척 타오르고, 곤죽을 내놓으니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귀찮은 일을 척척 해내는 드낙은 인간의 눈에는 위대한 지도자도 보이기 충분했다.
만약 선거 시기에 이런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일을 팍팍 진행하면 제법 표를 끌어모을 수 있었을 터다.
구덩이에 도착한 드낙은 이를 잘 살폈다.
“흠.”
아쉽게도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표면에는 진득한 시체 진액이 들러붙어 있었고, 이 때문에 올라오고 싶어도 올라오지 못하는 하위 언데드가 많았다.
‘난잡하다.’
그렇기에 드낙은 의문을 가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까지 비효율적인 계략을 흑마법사가 하기에는 얄팍해서였다.
‘이상하다, 이상해.’
신제국의 혼란스러운 정국을 더욱 혼란케 하기 위함인가? 그렇게 해서 뭔가 굵직한 혼란을 유도하려는 것인가? 이 또한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커지면 세력이 생기고 그렇게 몸집이 커지면 도망치는 게 둔하다.
‘바로 세팔이한테 반갈죽이지.’
반으로 갈려져서 죽기 십상이다. 싸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400년이 지나도 이름이 공공연히 나오는 게 세파리아스였다. 제국에서조차도 알고 있다.
그런 자를 상대로 일전을 둘 생각은 하지도 않았을 터다.
‘이제 어찌한다...’
드낙은 아쉬움을 느꼈다. 언데드가 죽을 때, 불타오를 때 볼 수 있었던 악마의 힘을 느낄 수가 없었다.
‘흔적은 여기까지인가.’
다른 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드낙은 마법을 사용해서 불태워 단번에 쓸어버렸다. 언데드들의 발악은 심했고, 진액이 바짝 들러붙으면서 다시 올라왔지만 그럴 때마다 족족 두개골에 얼음 송곳을 박아넣어서 죽여버렸다.
반마반신에게 이런 일은 너무나도 간단했다.
동시에 드낙은 그제야 느낄 수 있었다. ‘사령마력’에 의해서 가려져 있던 ‘악마의 힘’이 보였다. 단번에 드낙이 마법 불꽃 속으로 뛰어들어 유해 일부분을 가져왔다.
그건 우글우글 꿈틀거리는 살덩이였다. 어찌 된 모양인지 계속해서 ‘관절’을 생산하고 있었다.
“으...”
병사 몇몇이 그 끔찍한 생산활동을 보며 질려했다. 반면 제법 지식이 있는 자들은 대단히 희귀한 것을 본 것처럼 굴었다. 드낙은 그걸 주물럭거렸다. 반마였던 시간이 더 많아서 육체를 연결시켜 그 내부를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흠흠.’
관절이 없는 언데드들을 움직이게 하려고 자연스럽게 발전한 듯했다. 또, 다양한 인자가 느껴졌는데, 수십 개체가 넘는 ‘하급 권속 악마’의 피가 모여들어서 만들어진 생명체였다.
악마 권속이라기에는 지능이 없고, 그저 관절만 생산해내는 것에 불과했다. 그 관절조차도 썩어 문드러진 것이라 생명체에게 사용할 수는 없었다.
턱. 화르르.
바닥에 던지고 불로 태운 드낙은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내 세계에서 장난질하는 놈이 있다.’
차원침공은 아니다. 그저 조금이라도 이 세상에서 업을 강탈하기 위한 얕은 수법에 불과했다. 그리고 드낙은 그런 걸 가만히 두고 볼 사람이 아니었다.
‘도둑놈.’
차원을 뛰어넘어 조악한 하급 권속 악마를 보내서 소매치기하는 놈이 있었다. 어떤 놈인지는 몰랐다. 그 정도로 드낙이 ‘초월의 힘’에 대한 감정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서였다. 다만 악마인 건 확실했다.
‘아카타베루.’
가장 강력한 후보였다.
날이 밝아오고 먼 곳에서 마법 아티팩트를 통해서 날아온 세파리아스가 착지하자마자 드낙이 손짓했다.
“빨리 안 옵니까. 533번 훈련병. 지금 장난합니까. 여기 강제로 끌려 왔습니까?”
그 말에도 세파리아스는 눈썹 하나 꿈틀하지 않았다. 으레 있는 드낙의 바보 같은 장난이었다. 상대할 가치를 못 느꼈다.
“잘 정리했군.”
“응. 근데 악마가 섞여 들어온 듯하다.”
“음? 악마가?”
세파리아스가 의문을 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중립신의 실력을 믿고 있어서였다. 이제 이 차원에는 흑마법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걸 아는 자도 없을 터다.
“내가 봤던 게 뭐냐면.”
드낙이 있었던 일을 말했고 세파리아스가 수긍했다. 사냥꾼다운 추적 솜씨였다. 그 말을 듣고 수긍하는 건 쉬운 일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성이나 도시를 중점적으로 찾아봐야겠군.”
단번에 하급 권속 악마를 잡을 생각을 가졌다. 철저한 검열을 하면 분명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썩어 문드러져서 죽어야지만 이놈이 하급 권속 악마라고 알 수 있었다. 그게 기생인(寄生人)이었다.
모이고 또 모여서 수십 구가 쌓여서야 겨우 표면에 드러났다.
포를 떠서 죽은 뒤에 시체를 봐야지만 악마의 힘이 조금 보인다.
그만큼 수많은 차원을 침략하고.
세상을 움켜쥐고.
별을 파괴한 것이 아카타베루, 대악마라는 존재였다. 그는 결코 쉬운 자가 아니다. 평범한 악마 따위와 비교했다면 우물 안 개구리나 다름없다.
수많은 대영웅과 많은 신이 아카타베루의 침공에 고꾸라졌다. 그의 먹이가 되었다. 이제 그는 세상과 세상을 부딪치고 차원 전쟁을 하러 오고 있었다. 그걸 손쉽게 들킬 짓은 하지 않았다.
드낙은 한 달을 내내 이 잡듯이 신제국을 뒤졌지만, 악마의 힘을 지닌 자를 찾지 못했다. 대신 많은 범죄자 광산이나 농장 따위에서 관리하는 묘지에서 그들의 힘을 다수 발견할 수 있었다.
광산에 대한 인적조사를 명령하기에는 신제국의 역량초과였다. 그리고 기생인은 죽어서 테라포밍을 하지만 대부분이 성년이 되고 빛을 반짝 보고 끌려오는게 9할이 넘었다.
야지에서 죽은 건 너무 약해서 드낙의 감각에 닿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막다른 길이었다. 하지만 드낙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끈기 있는 사냥꾼이었다.
‘이제 해볼 만한 건...’
그의 눈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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