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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황제의 집무실.
그곳에서 드낙과 세파리아스는 서로 마주했다.
한 명은 오롯이 인간은 인간다워야 한다고 말했다.
“마력, 신성력, 좋다. 좋지만 그것으로 종족이 변형된다면...그것을 진화라고 말한다면, 인간은 더는 인간이 아닌게다. 네 말처럼 ‘상위’인간이 되어버리겠지. 그건 외력이다.”
세파리아스는 수많은 것을 외력(外力)이라 칭했다. 그리고 그 단어는 실로 드낙을 움찔하게 하기 충분했다. 동시에 세파리아스는 이를 영향무력(影響武力)과 선을 그었다.
그저 무술을 추구하면 닿을 수 있는 경지가 내어주는 것이 영향무력이다.
일정 범위 내의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자상(刺傷)을 낼 수 있기에 초월적인 모든 존재에게 위협적인 힘이었다.
이를 인간에게서 개화시킬 수 있다면 실로 무서운 종족이 될 것이다.
‘인간이 무서운 종족이 된다.’
“헛허하하.”
드낙이 유쾌하게 웃었다. 입꼬리가 내려가지 않았다. 세파리아스도 나쁜 표정은 짓지 않았다. 드낙이야말로 자신의 계획을 가장 잘 이해하는 자였다.
중립신에게 호되게 당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길이라고해도 드낙은 세파리아스가 그 길을 걸어가는 데 반대하지 않을 터다.
“중립신이 그나마 인신 중에서도 나은 놈이라는 게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많은 필멸자들은 모르고 살아가고 있겠지.”
“그렇다.”
드낙의 말에 세파리아스가 짧게 동의했다. 실제로 드낙은 끝의 끝에 가서야 중립신의 대계의 진의를 깨달았다. 모조리 용광로 속에 집어처넣어 다 녹여서 죽여버린 뒤에 깔끔하게 차원문을 닫고 새로운 세상을 연다.
그런 대계에 동의할 사람은 그 행성에 녹아서 죽을 중립신만 동의할 수 있을 뿐이다.
그걸 본 드낙의 기분은 노아의 방주에 타지 못한 사람들의 기분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바로 중립신을 조져버렸다. 방주고 나발이고 신세계의 창조고 지랄이고 나부터 살아야 했다.
탈출하는 사람 바짓가랑이를 잡는 게 드낙의 본성이었다.
죽어도 같이 죽어야 하고, 손해를 봐도 같이 손해를 봐야 한다는 고약한 심보!
“근데 영향무력을 다른 사람이 획득할 수 있어?”
“못하는 게 어디 있나. 모든 인간의 속에 있는 게 영향무력이다. 크고 작게 다룰 수는 있을 터다.”
“어떻게?”
“때려 박아넣어야지.”
“엉?”
세파리아스의 심플한 말에 드낙이 고개를 갸웃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 세파리아스가 차분히 말해줬다.
그가 꿈을 펼치려면 드낙의 도움이 있기는 있어야 했다. 이 땅은 풍요로울 것이며, 그로부터 나오는 산출물은 상상을 초월할 터다. 그리고 인간은 먹어야지 살아갈 수 있었다.
단순 유지비만 해도 드낙의 세계를 통해서 확실하게 낮출 수 있었다.
그렇기에 세파리아스는 마치 사업하는 사람처럼 드낙에게 투자를 받기 위한 설명회를 하기 시작했다.
“주먹을 쥔다. 앞으로 나아가며 상대의 공격 방향에 따라서 쳐내는 방향을 달리하고, 뻗어 나가 그 목젖을 친다. 그 과정에 들어가는 하나하나의 반응을 인간이 모두 통제하지는 않는다.”
“그렇지.”
“몸은 몸대로 익숙함을 추구하고, 머리는 머리대로 사고한다. 그렇기에 영향무력을 몸에 때려 넣어 체감하도록 한다면 ‘특수한 동작’에서 영향무력을 발현할 수 있다.”
그 말을 드낙이 받았다.
“마치 ‘비전’처럼.”
“그래.”
세파리아스가 지닌 심득(心得)의 한 줄기를 한 명의 인간에게 내려주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인간은 초월의 베기를 할 수 있을 터다. 또 다른 인간은 초월적인 찌르기도 가능할 터다.
“한 수가 있는 인간이 탄생한다.”
“나쁘지 않네.”
그 울림은 실로 나쁘지 않았다. 평범해 보이는 인간이 거대한 괴물을 사냥하는 일 또한 가능할 터다.
단 한 수.
단 한 번의 찌르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건 ‘세파리아스 불파겐’을 닮은 찌르기나 다름없었다.
그 단편적인 무력은 현실에서 쓰기 나름이지만 인간이라는 몸속에 똬리를 틀며 자연스럽게 숨겨지기 때문에 강력한 비수였다.
“그걸 나의 권능으로 삼을 생각이다.”
그는 권능 이름도 이미 정해놓았다.
무의식(無意識)의 일검(一劍).
“좋은데...”
드낙이 내심 열등감을 느꼈다. 네이밍센스가 제법이다. 하지만 이내 의문을 띄웠다. 이해할 수 없어서였다.
“안 될 것 같은데? 너무 많은 힘이 필요해. 적어도 대신은 되어야지 효력이 나타날지도 모르겠어.”
“그런가?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이들에게 나눠주지는 못하겠지만 한두 명에게 부여해줄 수는 있겠지. 그걸 차근차근 늘려갈 생각이다. 그들은 황제의 이름으로 수많은 차원을 여행하며 인간을 가볍게 여기는 악한 초월자를 죽일 것이다.”
“황제의 기사인가.”
초월자 입장에서는 아닌 밤에 홍두깨를 만난 격이다.
인간을 품은 척하면서 업을 쌓으며 잘 지내고 있는데 갑자기 황제의 기사니 뭐니가 나타나서 일검에 쏵.
그걸로 끝.
‘진짜 미친 일이 벌어지겠어.’
신이라도 떵떵거리는 놈들은 큰코다치게 될 터다. 물론 거기까지 도달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당장, 인간을 다른 차원으로 보내는 것부터 난제다. 그리고 기술은 필요 때문에 발전하는 법이다.
드낙은 지구 문물을 보고 싶고, 맛보고 즐기고 싶어 했기에 자연히 차원이동관련 기술을 발전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 또한 현재 세파리아스가 하고자 하는 일과 잘 맞아떨어졌다.
“물론 그전에 검증이 필요하겠지만...차원방위에도 쓰기 좋은 경비병이 될 수 있지.”
한방에 쾅! 할 수 있는 힘을 지닌 기사다. 허투루 봤다가는 바로 썰릴 터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그 역전의 발판이 있는 싸움은 긴장감도 있고, 재미도 났다. 드낙은 특히 언더독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서 더욱 그러했다.
“나도 좀 돕고 싶은데.”
그 말이 절로 나왔다.
“상관없다. 방해만 하지 않으면 된다.”
“방해라니, 내가 엉? 골램? 엉? 고기! 엉? 나 몰라?”
드낙이 가슴을 팡팡쳤다.
팡팡, 팡팡!
“팡팡, 팡팡! 팡팡누나 몰라?”
드낙이 가슴을 팡팡 계속 쳐대자 세파리아스가 인상을 썼다.
“여기서 농담치지마라. 뭔 개소리를 하느냐. 그렇게 당당 해봤자 네가 다 하는 일이 아니고, 다른 종족들이 열 일을 하고 있는 거 아니더냐.”
“그들의 덕이 내 덕이지.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
“흥미는 있나 보는군.”
“당연하지. 인간을 하찮게 보는 놈들에게 한 방 먹여주는 거잖아.”
최고의 복수였다. 그렇기에 드낙은 그 계획에 올라타고 싶었다.
“신제국은 인간으로 남는다. 하지만 다양한 문물을 받아들이기는 할 생각이다.”
“종족만 인간으로 남고, 볼덕은 다 보겠다는 소리네.”
드낙이 그렇게 빈정거렸지만 세파리아스는 당연하다는 듯이 굴었다.
“기술과 마법이 발달한 마도 사회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인간을 이롭게 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그걸 거부할 이유는 없지.”
드낙은 현대사회를 생각해냈다. 그것 또한 상위인간은 없었고, 모두가 죽을 때가 되면 죽었다. 다양한 마법설비와 과학문물은 인간을 이롭게 할 수 있었고,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인간이 타락할 수 있지 않겠어? 신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마력을 그릇에 담고 싶은 자도 있겠지.”
“그런 자들은 자치왕국으로 향하겠지.”
“아.”
드낙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세파리아스는 말을 더 이어나갔다.
“그리고 상위인간이라고 부르기에 모호한 그릇을 지닌 마법사와 신성력을 지닌 신관과 사제들도 계속 있기는 있을 터다.”
말 그대로 나약한 인간. 그 애매한 자들은 계속 신제국에서 살아갈 터다. 또 세파리아스는 그들 또한 여럿 둘 터였다.
초월자가 보기에는 진짜 나약한 인간일 것이고, 엘프나 다른 상위 종족이 보기에는 열등한 종족으로 보일 터였다. 그렇기에 그걸 뚫고, 놈들의 큰 코를 베어냈을 때 오는 통쾌함은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더 궁금한 것이 있느냐?”
“없다. 후련하다. 근데 이렇게 자세하게 말해주는 이유는 뭐야? 넌 그렇게 상냥한 놈이 아니잖아.”
그 말에 세파리아스는 이번에도 드낙같은 변명을 했다.
“중립신의 죽음을 봤으니까. 네가 그렇게 벌벌 떨고 다니는데 자세하게 말해야지. 안 그러면 나도 죽일 생각을 하지 않겠느냐.”
“내가 중립신이냐!”
그렇게 큰소리를 쳤지만 진짜로 그럴 수 있는 게 드낙이었다.
“나중에 차원의 문을 연다면 넌 어떻게 할 생각이야?”
“탐색한다. 인간을 벌레 취급하는 차원을 발견하면 거기를 토벌할 생각이다. 그리고 인간을 해방한다. 그들의 손에 다시 쥐여준다.”
심플했다. 하지만 그 단어에 깃들어있는 피 냄새를 드낙은 맡을 수 있었다. 지나칠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역시 넌 영웅이야.’
수천만, 수억 명을 죽일 영웅이다. 그렇게 죽어 나자빠져도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외치고 또 외칠 것이다. 환호하고 열광할 터다.
영웅주의(英雄主義)는 모든 인간이 좋아하는 사상이었다.
‘한국만 해도 이순신하면 정신을 못 차리니까.’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도 좋아하는 게 사람들이었다. 서주를 초토화시킨 조조도 좋아하는 이들이 넘쳐났다.
영웅은 그 정도로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하나의 훌륭한 사상이었다. 평범한 살인자는 한 명 죽이기도 힘들지만, 영웅은 추앙받으면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 수 있었다.
대의를 위해서.
“그럼 수고. 난 요즘 바쁘거든.”
“뭘 하길래? 네가 바빠?”
“엣헴. 요리 대회 준비. 고기가 무료가 되면 그만큼 소비해야지,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겠어?”
대꾸하며 밖으로 나온 드낙은 복도에서 허겁지겁 달려오는 전령을 볼 수 있었다. 황제의 내성에서 보기 힘든 복장을 하고 있었다.
‘경갑옷.’
대부분이 보여주기식 복장을 입어야하는게 이곳의 수비대였다. 물론 그중에서도 제식 외의 실전적 복장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진짜 사건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비율은 보통 5:5~7:3까지 차이가 나는 편이었다.
거기에 진흙까지 묻히고 있었다.
감히, 황제가 거주하는 곳에서 저런 차림새로 달려오다니, 드낙의 눈이 반짝였다.
“어이, 너!”
“비켜라! 급보다!”
전령이 그렇게 외치며 바로 집무실로 향하려고 했지만, 몸이 붕 떴다. 드낙이 마법을 쓴 것이다.
“헉?”
그가 버둥거렸기며 놀랐지만 이내 분노했다.
“비...적발?”
심야 시간, 조명은 극히 적다. 거기에 붉은 촛불로 의지하고 있는 것이 이곳이다. 그렇기에 붉은 머리카락도 가까이 와서 그렇다고 여겼다. 타오르는 붉은 초는 다른 머리카락도 능히 붉게 물들이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드낙이다. 날 모르지는 않겠지?”
“바, 반마반신을 뵙습니다!”
그가 서둘러 인사를 올렸고 드낙이 냉큼 물었다.
“뭔 일이 터졌길래 이렇게 난리냐?”
“범죄자 광산에 자연 언데드가 대량으로 발생했습니다! 서둘러 이를 황제께 알려야 합니다!”
“뭣이! 자연 언데드의 급격한 발생? 숫자는?”
“봉화만 올라왔습니다. 메시지 마법이 연결되었지만, 사령마력이 대기를 들끓게 하여 그마저도 불안정해져서 제대로 된 정보를 취득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 물음에 대해서는 다른 자가 답했다. 소란을 느낀 세파리아스가 문을 열고 나왔다.
“단가가 가장 낮은 메시지 마법 물품을 보급했다.”
“야 씨, 아무리 그래도 군용품인데 그건 좀.”
“흥. 세상이 그렇게 돌아갈 리가 있나.”
병사가 쓰는 모든 물품은 가장 싼 가격에 낙찰받은 가격으로 정해진다. 그게 꼬우면 사비를 들여서 장비를 갖추면 된다. 무엇보다 신제국은 모든게 부족한 실정이었다. 세파리아스의 카리스마 하나만 믿고 이곳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대단히 많았다.
뭣도 없는 게 이름값 하나로 국가를 세운 셈이다.
그 내면을 작정하고 들여다보면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신제국의 허술한 면을 보지 못했다.
모두 이미지, 세파리아스 마케팅 덕분이었다.
“넌 돌아가라. 신제국의 일이다.”
“무엄하다! 이런 큰 위기를 가만히 두고 볼 내가 아니지!”
“돌아가!”
세파리아스가 작정하고 드낙을 말렸다. 신제국은 위태로웠고, 그걸 드낙이 보면 무슨 소리를 할지 몰랐다.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었다. 그건 분명 제대로 된 것이 아닐 게 분명했다.
“가즈아아아!”
거기에 매정하고 단호하게 돌아가라고 하는 세파리아스 때문에 재미를 느낀 드낙이 전령을 데리고 휙 날아가 버렸다. 일단 무조건 세파리아스가 하라는 걸 반대로 하면 재밌는 게 드낙이었다.
‘얌전히 돌아가라고? 어림도 없지! 세팔이 요놈, 어떻게 신제국을 운영하고 있는지 한 번 봐볼까?’
범죄자 광산은 제법 중요 시설이다. 그것만 봐도 딱 견적이 나올 게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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