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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너무 앞을 내다보고 계신 것 아닙니까? 왕녀께서는 아직 만왕자를 이길 수 없습니다.”
“이길 수 없기에 하자고 한 것이다. 상대는 쉽게 낚였지. 그리고 그대들도 낚인 것을 보니...제대로 성공할 듯싶다.”
“허어...”
모두 감탄하기 바빴다. 이 또한 큰그림의 큰그림의 큰그림이라니? 머리가...따라가질 않고 감탄을 한숨처럼 내뱉는 게 전부였다.
“이게 대체...”
“지려고 거셨다니...”
“자치왕국의 판도가 기울어질 것입니다...”
너도나도 우려를 표현하며 맥이 다 빠져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세리안은 짜증 나는 표정을 지었다.
“반마반신(半魔半神)은 머지않아 신악마가 될 것인데, 그때도 국가와 가문을 운운할 생각인가?”
“허면 뭘 추구하실 생각입니까?”
세리안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나같이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레이시아의 아들인 크레시미르는 실로 압도적인 존재였다. 변수로 가득한 인간이기에 그 능력치가 높으면 다재다능한 존재가 되는 법이다.
만능은 곧 왕의 재목이다.
반면 다이앤타는 호불호가 강한 존재였다. 주관이 강한 건 좋았지만, 지나치다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왕이 되기에 부족함은 없었지만, 한쪽으로 치우친 것만으로도 상대적으로 크레시미르보다 한 단계 낮은 재목으로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대련 패배?
“눈앞의 이익을 좇지 않기에는 걸린 것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비록 중립신이 죽었다고는 하나 그 계획을 일부 진행할 수 있다고 반마반신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중립신이 죽었기에 행성이 계속 커질 수는 없겠지만, 대단히 커질 것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아직 현 대륙조차도 포화 상태가 아닙니다.”
너도나도 불만을 내뱉었다. 그 모습에 세리안은 눈을 감았다. 그 웅성거림은 점점 작아졌다. 그리고 이내 싹 사라졌다.
세리안은 아예 공왕의 좌에서 일어나서 아래로 내려왔다. 귀족 한 명이 의자를 끌어다가 놓았다. 세리안은 거침없이 거기에 앉았다. 높낮이가 사라지며 눈높이도 딱 들어맞았다.
“이 자리에서 신이 되고 싶은 자가 있으면 손을 들어봐라.”
모두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왜 대답을 못 하는가?”
“그게, 생각을 해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세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생각조차도 할 수 없다. 어디서 감히, 하찮은 인간 따위가 신좌를 논하는가.”
그 말이 회의실을 울렸다.
왠지 마음속에서 조용히 꺼져있던 불씨가 확 타올랐다. 질투, 열등감, 동기, 열정.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는 장작에 불씨가 타들어 갔다.
그저 인간을 하찮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타오른다. 그런 게 바로 인간이었다. 비웃는 자들을 통쾌하게 고꾸라뜨렸을 때, 만인으로부터 승리하였음을 외칠 때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모습으로 있을 수 있었다.
그들은 열등하지만 승리자이고 싶은 비운의 종족이었다.
“이제 그 길이 열려있으니, 걸어가야 한다.”
“......”
그 말을 하자마자 대부분 귀족들은 주저함을 느꼈다.
“신이 되면 이곳에서 독립해야 합니다.”
“두렵나?”
대답은 없었지만, 분위기는 ‘그렇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암살기사를 배출하는 히프노틱의 가주인 세레니티 히프노틱이 의견을 냈다.
“이미 보고서를 올렸으나, 혹 잊은 분들이 계실까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그 누구도 신이 되고 싶지 않아 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신이 된다고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드낙의 행동에 대해서는 거의 완벽할 정도로 전종족이 공조를 하고 있었다. 서로 돕고 살자는 뜻이었고, 그 덕에 드낙이 방문하는 곳은 항상 낙엽부터 시작해서 청결하게 만드는 게 먼저일 정도였다.
엘프부터 시작해서 일단 제법 끗발 오른 놈들을 쿡쿡 찌르며 독립을 종용하고 다니는 드낙은 귀신이나 다름없었다.
그 상황에서 갑자기 세리안이 ‘우리 인간은 독립 가즈아!’를 외쳤으니, 이 상황을 다시 세레니티 히프노틱이 말한 것이다.
“누가 지금 당장 독립하자고 했나? 언젠가 하겠지만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지.”
“반마반신께서 나가라고 하면 어찌합니까?”
“더 준비하고 가겠다고 하는 거지.”
“그게 통하겠습니까?”
“안 통하면 죽이겠어?”
“그건 아닙니담...”
세리안의 말은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일단은 지르고 버티자는 생각이다.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크레시미르를 위시한 신남파 놈들은 자치 왕국에 묶여있다. 엘프도, 오크도, 그 누구도 반마반신의 품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고 있지. 거기서 우리가 하겠다고 하면?”
“거대한 힘이 투입될 겁니다.”
“단번에 주역을 꿰찰 수 있다.”
세리안이 주먹을 휘두르며 말했다. 남들이 안 살 때 사야 하고, 남들인 안 할 때 해야 한다. 그게 밑바닥의 성공 방법이었다.
“우리는 인간이다. 마력조차 품고 태어나지 못하는 종족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도박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뒤는 없다. 엘프에게 뒤처질 것이고, 오크에게 떠밀어져 질 미래를 택할 자는 당장 나가라.”
그녀가 주위를 훑었다.
“현재 자치 왕국은 무주공산이 많다. 지금 나간다고 해도 자기 자리는 보전할 수 있을터다.”
다시 한 번 권유했다. 허나 그 누구도 나가지 않았다.
이들이 누구인가. 한 손에는 명예를, 다른 손에는 권익을 쥐고 있는 귀족들이다. 이토록 인간찬가를 노래하고 있는 상황에서 엉덩이를 내뺄 자는 없었다.
이건 가문을 뛰어넘고, 국가를 뛰어넘은 인류애를 위한 노래였다.
그 노래를 부르는데 자기 심장도 바칠 수 있는 게 인간이다.
산길을 걷다가 들리는 아기 소리를 들으면 전신의 털이 곤두서고, 불안감이 엄습하는 것과 같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위기 속에서 더욱 힘을 합친다.
“엘프를 이기고, 드워프를 넘고, 오크를 지나치기 위해서는 확실히 지금이 적기입니다.”
모두 몸을 사리고 있었다.
중립신의 죽음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게 드낙이라서였다. 그는 일단 독립 한 명 시키고 편안해지고 싶은 마음에 집착하고 있었다.
“그 마음을 해소시켜 준다면, 더 많은 총애를 받을 수 있겠지.”
다만, 세리안은 불안 요소를 이야기했다.
“지하 연합의 움직임은 없나? 놈들이 먼저 공표하면 안 되는데.”
레이시아가 낳은 크레시미르에게 패배하고 그 명분을 들어서 자연스럽게 드낙에게 독립을 이야기하며 자원을 투자받는 게 부드러운 일이다. 다만 여기에서도 뿔쥐들이 언급되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어째서지?”
“요리 경합 대회 때문에 지금 미쳐있습니다. 반마반신께서 추진하고 있고, 준비 기간도 짧지 않습니까? 신격 획득에 대한 투자보다는 그분을 기쁘게 하며 소원을 취득하는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좋다. ‘때’가 따라주고 있다.”
여기서 못 먹으면 병신이다. 하지만 세리안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더 많은 미래를 그들과 공유했다. 그래야지만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상위인간으로 나아가야 한다.”
“상위인간...”
“새로운 종족이며, 우리 인간의 올바른 진화형태다.”
“그것은 어떤 인간입니까”
이에 세리안이 답하였다.
“마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인간이다. 모든 인간의 아이가 마력을 사용할 그릇을 가지고 있고, 반마반신께서 그렇게 해준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게 가능합니까? 모든 인간이 어찌...감히...”
“주제도 모르고 초월의 힘을 탐하느냐고? 이제는 그래도 된다. 그런 시대가 왔다.”
모두, 반마반신이 열어젖힌 문이었다. 중립신과는 완전히 반대 노선을 타고 있었다.
“신성력을 보유한 인간의 그릇은 커진다. 그리고 그들이 낳는 아이들은 점차 그릇을 보유하고 나온다. 그 그릇에 범용성(汎用性)이 가장 뛰어난 초월의 힘인 마력이 담긴다.”
“그런 비밀이...”
“물론 마력을 지닌 마법사와 아티팩트를 위해서 개발할 수 있다. 항시 몸에 마력을 소량 주입한다면 그 자식 또한 마력을 타고날 것이다. 하지만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마법사의 숫자도 적었다. 엘프들에게 부탁?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그리고 엘프들은 거부할 공산이 컸다. 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고 하지만 잠정적 경쟁자인 인간에게 도움의 손길을 뿌리지는 않을 터다.
드낙은 인간을 위한 인신이 아니기 때문에 부탁하기도 어려웠다. 그는 다종족신이라 불리기에는 인격신이라서 뿔쥐에 대한 애착이 인간보다 더 컸다.
‘난 가족이라는 굴레에 있어서 편애를 받고 있지만...’
그게 인간 전체에 퍼진 건 아니었다.
“미래를 생각한다면 종족 값을 높여야만 한다. 동시에 행성이 한계치로 커지고 그 개발도 끝나며 인구과잉이 일어나게 되면...”
“독립해야 한다. 물론 반마반신께서는 거기까지 기다리지도 않으실 터다.”
세리안이 단언했다. 그리고 그 첫발을 내딛는 종족은 반드시 인간이 되어야 했다. 그 차이가 그 이후의 종족대우를 송두리째 바꿀 터였다.
그녀가 숭고하게 입을 뗐다.
“모두가 평화를 생각할 때, 우리는 미래에 있을 전쟁을 생각해야 한다. 그 누구도 우리 인간을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100년, 300년 뒤를 보고 뼈를 깎는 노력으로 나아가야 한다.”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하여!”
“인간을 위하여!”
구북파들이 소리를 높였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아버지...’
세파리아스는 뭔가 요즘 딴생각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였다. 본래라면 그녀가 안다면 세파리아스도 안다. 하지만 그는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마치 인간을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있는 그대로 통치하는 모습이다.
그건 시대에 걸맞지 않은 모습이었다.
‘당신은 어디를 보고 있습니까?’
그 얼굴을 보고 물었으나, 이미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어리석은 인간을 보고 있다.’
이미 신의 시야를 가지고 있었다. 세파리아스, 그는 더는 인간이 아니다. 다른 뭔가가 되고 있었다.
세리안이 몸을 일으켰다. 모두 인간찬가를 드높이고 있었으나, 그녀의 마음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세파리아스가 있는데 그녀가 모든 책임을 지고 항해를 해야 했다. 그건 정말 불편한 행위였다.
*
많은 이들이 이 이벤트에 호응을 보내왔다. 특히나 인간은 드낙의 배려로 국가가 두 개였으며 대륙의 중심부를 차지했다. 큰 편애였다.
“이렇게 와줘서 고마워요.”
레이시아를 드낙이 껴안으며 그녀의 향을 코로 맡으며 부드러운 맨살을 매만졌다. 느긋한 오후 온종일 껴안고 지내고 싶어도 실증이 안 날 것 같은 미모를 지닌 게 그녀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건 사치지.’
중립신을 대신하여 차원의 지배자가 된 드낙은 해야 할 일이 많았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다.
쪽.
세리안과도 입맞춤을 하며 애정을 과시했다. 자식을 낳아도 두 여자는 여전히 아름다운 장미꽃이었다.
세파리아스와 드낙의 눈이 마주쳤다.
의외로 티격태격 거리지 않았다. 세파리아스가 눈을 먼저 돌려서였다. 그는 크레시미르에게 조언을 해주기 바빴다. 청년티가 나는 크레시미르의 나이가 고작 8살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놀람은 4살에 불과한 다이앤타를 보면 쏙 들어갔다. 풋풋한 소녀가 된 그녀는 촐랑거리기 바빴다. 드낙을 보자마자 바로 드낙을 껴안으며 목에 양팔을 교차시키며 매달렸다.
“하하하.”
드낙이 절로 웃었다. 끝없는 사랑을 보내오는 딸을 싫어할 수가 없었다.
“잘 해야 한다.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걱정 마세요. 박! 살을 내버릴 거에요.”
다이앤타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드낙은 세리안의 도움을 받아서 다이앤타를 떼어내고 크레시미르에게도 갔다. 그는 거칠게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할아버지한테서 많은 걸 배웠다면서?”
“예. 아버지. 반드시 이겨 보이겠습니다. 왕자에 어울리는 면모를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겠사옵니다.”
“기대한다.”
드낙은 그렇게 말하며 경기장으로 향하는 두 자식을 바라보았다. 심숭샘숭했다.
‘내가 8살 때 뭐했더라?’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울적해졌다. 인간의 정신과 뇌는 나약하기 그지없었다. 중립신의 세뇌 탓에 드낙은 많은 추억을 잃어버렸다. 광기에 휩싸여 그 광증이 최고조로 이르고 나서야 세뇌를 거둔 것이 중립신이었다.
그 여파가 간단히 끝날 리 없었으며 후유증은 반신격에 도달했음에도 회복되지 않았다.
그건 끝없는 증오를 끌어내는 것이기도 했다.
상상 이상으로,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중립신이 얼마나 필멸자를 ‘도구’로 취급했는지 계속 체감되어왔다.
“누가 이길 것 같냐?”
드낙이 세파리아스의 어깨를 툭 치며 말하자 세파리아스는 즉답했다.
“이변이 없다면, 크레시미르.”
“검사가 지녀야 할 자질은 다이앤타가 더 높잖아?”
민첩하고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여자는 확실하게 검사로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하지만 그 말에 세파리아스가 코웃음 쳤다.
“딸바보 녀석, 극한의 집중력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고겠지. 이류는 되기 쉽지만 일류는 어렵다.”
넓기에 얕다.
좁기에 깊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싸움이다.
“세리안을 후계자로 내세운 녀석이 할 말은 아닌데?”
드낙은 한 마디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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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일만 일어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