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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일단은 진정해라! 우리 식문화를 검증 받는 게 아니라, 요리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대장쥐가 이들을 진정시켰다. 결국, 요리 경합 대회에서 승리하면 될 일이다. 그 외의 것은 중요치 않았다. 또 자연스럽게 요리에 관심을 쏟으면서 그런 풍토가 지하 연합에 퍼져나가는 건 분명한 일이다.
기술과 문화는 관심이 있어야지만 발전할 수 있다.
그저 가만히 있다고 세계는 발전하지 않는다. 요구와 필요가 있고 많은 관심을 받아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뿔쥐들의 결의는 지하 연합에 거대한 변화를 주기에 충분했다. 강대국이 그간 건들지 않았던 분야에 진출하는 건 지각변동을 크게 일으킬 수 있었다.
문제는 그걸 지하 연합 내에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고명한 요리사들을 염탐한 정보가 있었나?”
“찾아보면 있다.”
뿔쥐들은 수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중립신과의 전쟁 전에는 과잉 인구였기에 가능했으며, 다양한 벌레와 두더지 사업을 통해서 잉여 식량 생산이 엄청난 수준이었던 것이 지하 연합이었다.
밀같이 상대적으로 키우기 힘든 것보다는 그냥 벌레나 생식을 하는 무식한 식량 체계가 이를 가능케 했다.
악마의 힘을 일부 받게 되면서 따로 못 먹는 것도 없었기에 때로는 독이 있는 것도 그냥 먹는 편이었다. 적어도 크놀이나 고블린들은 아직도 하찮은 존재였지만, ‘피숨결 검은 뿔쥐’들은 감히 중급 권속 악마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엘프를 잡아먹고 떡상했는데, 그 수준이 굉장했다.
작전 세력 수십 개가 담합해서 주식 하나 제대로 작전 뛰는 것처럼 종족 값이 뛰어버렸다.
지금은 그 시절만큼 인구를 복구하지 못해서 많은 정보력이 감소했지만, 대충이라도 근황이라도 정보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것을 통해 선별을 좁히고, 발품을 적게 팔 수 있어 보였다.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의 신이 가지고 있는 식성도 고려해야 한다. 이건 전쟁이다, 전쟁!”
의원 중 하나가 말하자 모두 우레와 같이 박수를 쳤다. 실로 맞는 말이었고 핵심을 찌르는 말이었다.
“다종족을 염탐하여 그들의 요리 체계를 모조리 모아서 집대성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승리로 향하는 길이다!”
다른 의원들도 하나같이 맞는 말을 하고, 중요한 이야기를 한마디씩 외쳤다. 끝도 없이 박수 세례가 쏟아져나왔다.
아무것도 없는 쥐새끼였기에, 다른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대해와도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있었다. 그것은 곧 한 체계를 다시 한 번 묶어서 토해내는 것 같은 역사적인 일이었다.
이들은 가장 먼저 인간 요리사를 매수했다.
가장 매수하기 쉬운 게 인간 요리사였다. 동시에 다른 종족에게서 배울 거리를 찾았다. 하지만 금세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드워프라는 종족은 대체 혀가 있는 건가? 없는 건가?”
숨도 쉬지 않아도 그냥 움직일 수 있는 기괴한 종족인 드워프는 사실 식사를 필요하지 않은 존재들이었다. 세계에 뿌려진 중립신의 뼈에서 태어난 이들은 유기체 같은데 무기체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런데도 드워프들은 ‘먹는 행위’를 할 수 있었다. 그들은 특히나 묵혀서 먹는 걸 좋아했는데 지나칠 정도로 강한 풍미를 최고로 쳤다.
그런 불만 속에서 드워프들에게서 구입하고 재조 방법을 대강들은 대장쥐가 닫힌 나무통의 뚜껑을 열어봤다.
“찌찍!”
퀴퀴한 냄새가 피어올라 오자 대장쥐도 발작하듯이 놀랐다.
“이, 이게 뭐냐?”
“드워프들이 없어서 못 먹는 솔트 레드피쉬라고 하는 거다.”
“솔트 레드피쉬? 제작법이...”
나무통의 뚜껑을 대장쥐가 살폈다. 거기에는 저급한 종이로 딱 적혀져 있었다. 완벽한 계량은 꿈도 못 꿀 정도로 현재 요리업계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소금을 치고 붉은살 생선을 넣고 시원한 곳에 놔둔다. 잘 썩으면 꺼내서 먹는다.”
“썩혀서 먹는걸 드워프들이 좋아한다. 이거 외에도 솔트 윈드비어라는 음식도 있다.”
“그건 뭔데?”
“소금을 묻혀서 빨래처럼 널어서 바람에 썩히는 거다.”
죄다 썩히는 것들뿐이었다. 육체 감각의 정도가 낮은 드워프였기에 가장 자극적인 풍미를 쫓았다. 전체 종족 중에서 소금을 소비하는 비율도 높았으며, 뭐든지 썩히고 본다.
“퉤퉷.”
조금 맛봤지만 역한내와 비린내 그리고 너무나도 짠맛이 나서 바로 침을 뱉었다. 혀가 짠맛으로 얼얼했고, 짠맛이 사라지지 않았다. 물로 몇 번을 헹궈야 했다. 어떤 나무통은 소복이 쌓아오려 진 소금으로 덮여 있었다.
“미친놈들이다. 이 드워프란 놈들은 100% 꼴등 확정이다.”
차라리 본연의 재료를 살린 지하 연합이 꼴등을 면할지도 몰랐다. 최악 중의 최악이었다. 다음은 인간 귀족들의 요리가 수르륵 올라왔다. 대부분 금방 요리한 것처럼 김이 펄펄 올라왔는데, 마법을 통해서 모든 걸 최대한 유지한 채로 운송했다.
“흠흠.”
나쁘지 않아 보였다. 가장 훔쳐봐야 할 게 인간들의 음식문화였다. 드낙의 시작이 인간이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마법으로 가져왔다고? 인간 요리사 매수는?”
대장쥐의 말에 뿔쥐가 우물쭈물했다. 입을 오물거렸는데 길쭉한 털이 위아래로 꿈실거리기 바빴다.
“뭐라고 말하길래? 그렇게 뜸을 들이는 거냐?”
“그게...쥐가 무슨 요리냐면서 털 날린다고 갈 일 없다고...”
“그런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었느냐!”
대장쥐가 황당해 했다. 하지만 뿔쥐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주방에 내 털이 곳곳에서 날려서...”
그 말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러면서 제 몸의 털을 매만졌는데 손에 수북이 딸려 나왔다. 온갖 환경에서도 적응하는 털 달린 짐승은 털이 빨리 자라고 쉽게 떨어져 나가는 특징이 있었다.
뿔쥐들이 전천후 환경 적응력을 지녔다면 응당, 털이 빨리 자라고 쉽게 빠져야 했다. 소중히 머리털을 아끼는 대머리와는 확연하게 다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요리 연습하고 있는 뿔쥐들을 당장 여기에 불러라!”
그 말에 배불뚝 리전의 정예가 냉큼 소리를 질렀다.
“뜨나악!”
소리를 지르고 난 다음에 그림자처럼 기민하게 내달렸다. 곧 요리사 복장을 그럴듯하게 따라한 뿔쥐 100마리가 모였다. 그들 중 서열을 가려서 오직 5명만 요리 경합 대회에 나갈 수 있었다.
요리 경합 대회는 5인 팀 대회여서였다.
“모두 털을 밀어라.”
“찍?”
100마리의 견습 요리사 뿔쥐들이 순진하게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처음 듣는 말이라서 너무 생소했고, 본능적으로 그 말을 듣지 못한 척을 했다.
“두 번 말해야겠나? 요리하는 데 털이 방해가 된다고 하지 않느냐!”
“찍찍, 그래도 털을 밀라는 건 너무하다! 아무리 대장쥐라도 이건 안 된다!”
서서히 다른 뿔쥐들이 거리를 좁혀왔다. 그러자 요리사 차림새를 한 뿔쥐가 허둥지둥 옷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는 양팔로 그들을 제지하며 외쳤다.
“뜨나아악! 요, 요리 너무 어렵다! 포기한다!”
“나도 포기한다! 털을 밀면 안 된다! 이거 어제 푸르뎅을 발라서 윤기를 낸거다아아악!”
어림도 없는 변명이었다. 모조리 잡혀서 쓰러진 채로 싹둑 자르고, 바짝 베어냈다. 척 보면 풍채가 대단하던 피숨결 검은 뿔쥐였지만 털이 없고 나니 날렵한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흑흑.”
눈썹의 잔털도 정리하자 뿔쥐 요리사들이 눈물을 훔쳤다. 발가벗은 기분이라서 모든 모습이 위축되었다. 대장쥐는 거사를 치르고 나서 그들을 다독였다.
“모두 뿔쥐를 위해서다. 너희가 원한다면 나 또한 털을 자르겠다!”
“잘라아아아아!!!”
“찍?”
결국 대장쥐도 털을 밀어야 했다. 그러고 나서는 털 날린다고 지랄했던 인간 요리사를 다시 한 번 매수했다. 그는 박수를 치면서 그들의 결단을 칭찬하며 자기 가게를 닫고 도와주겠다고 선언했다.
“요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노력이 가상하니 한 번 해보자!”
겉으로는 이상론을 입에 담은 인간 요리사였지만 속은 달랐다. 금화 10닢. 평생 떵떵거리며 살아도 될 정도의 금액 앞에서 그는 쥐새끼의 사타구니도 핥을 수 있었다.
상대가 거부한다면 자신이 제안한 돈이 부족한 건 아닌지 반성을 해야 한다.
대장쥐는 천으로 온몸을 꽁꽁 싸매고 다녔는데, 그건 요리하는 뿔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상태에서 요리를 차근차근 실습해나갔다.
“가장 먼저 대회에 쓸 메뉴만 숙달한다.”
“뭐가 좋은가?”
“고기 요리와 사이드 메뉴를 합해서 총 5종! 이것만 바짝 연습해서 나간다면 능히 일등을 거머쥘 수 있다.”
그 말을 믿는 뿔쥐는 없었다. 그들은 드낙과도 면담을 잡아놨기 때문이다. 그게 진짜 중요했고 그걸 해석하고 개발할 사람이 인간 요리사 10명이었다. 그들에게 쥐어진 금화값을 톡톡히 할 터다.
*
불파겐의 자식들의 숫자는 20명에 달했다.
첫째부터 논하자면 크레시미르, 아메리코, 아니발, 테미스, 다이앤타, 이드리스, 힐두르, 일레아나, 아이셀, 아스타...로 많기도 많았다.
이토록 많은 자식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단 2명에게만 세력 후계자라 칭송받고 있었다. 하나는 장남 크레시미르였고, 다른 하나는 오녀 다이앤타였다.
아무리 잘나고 일찍 태어난 것만으로도 대우를 받을 수 있었고, 실제로도 크레시미르는 인간 중에서는 뛰어난 자였다. 이제 8살인데도 벌써 청년티가 났다.
반대로 다섯째 거기에 여자에 불과했지만, 악마의 힘을 제대로 타고난 다이앤타 또한 이제 겨우 4살임에도 풋풋한 소녀가 되어 있었다. 성장하는 속도가 기괴할 정도로 빨라서 모두 두려움에 떨 정도였다.
거기에 아주 얌전하게 지냈고, 드낙이 검증해서 악마의 힘도 족쇄에서 풀려났다. 실제로 그녀를 감시하는 존재가 있었지만 다이앤타는 ‘윤리’와 ‘도덕’에 흠집 하나 내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다이앤타가 두려움과 공포의 후계자라면, 크레시미르는 만능의 후계자라 불리며 뭇자는 로열 로드를 걸을 자라고 칭찬하기 바빴다. 그리고 그들은 자연스럽게 부딪쳐야만 했다.
물론 신구 세력 내에서 분쟁도 많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구세력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으며 현재는 북파라 불리고 있는 크레시미르의 세력이 가장 격렬한 논쟁에 휘말려야 했다.
새롭게 이주해서 땅을 남북으로 나눠 가졌기에 남파와 북파라 불리고 있었다. 심지어 수도 내에서도 거주하는 구역이 남과 북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우리가 더 명예가 높은데 왜 갑자기 검술 대련을 하게 된 것이오.”
“세리안 공왕 께서는 대체 왜 그런 마음을 먹으셨는지...”
과거 불파겐과 협력했던 가문들은 너도나도 불만을 제기하기 바빴다. 안 그래도 요리 경합, 남부 이주민 관리, 이권 해석 및 분배까지 머리통이 깨지기 바쁜 나날의 연속이다.
국제 연합을 이끄는 게제라스의 권고조치도 따라야 했다. 안 따르면 드낙이 방문한다고 하는데 안 따를 수가 없었다.
파리 좀 잡아라~하고 말하는 게제라스의 말을 안 듣다가 횃불 들고 파리 잡으려고 집에 불 지르는 드낙을 들이는 짓은 누구도 못할 짓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만개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패왕녀(覇王女)와 만왕자(萬王子)라 불리는 크레시미르의 검술대련이 잡혔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년, 나 미치는 꼴 보고 싶어?’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상대의 수완은 매우 뛰어났다. 거기에 신제국의 황제와 혈연관계에 있는 게 세리안이었다. 정치와 국업에는 전혀 상관없다고 해도 믿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웅성거리는 와중에 세리안 공왕이 들어왔다.
너도나도 웅성거림을 바짝 더 올렸다. 일부러 웅얼거리는 자도 있었다. 세리안이 한 결정이 얼마나 많은 혼란을 주는지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다분히 정치적인 모습이다.
“그만들 조용히 하시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텐가.”
그 말이 있자 빠르게 조용해졌다. 자신들의 태도를 보였으니 이제 제법 생산적인 일을 해야 했다.
“공왕께서는 왕녀께서 크세르미르 왕자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반반이다.”
공왕 즉위식까지 오른 세리안은 거침없이 그들을 하대했다. 드낙으로 받은 지위는 실로 강력한 권위를 주고 있었다.
“허면 왜 하자는 것이오? 이건 저희에게 불리할 뿐이오.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우리 왕녀께서는 아직도...”
4살에 불과했다. 풋풋한 향을 내는 소녀처럼 보여도 아직도 4살이었다.
“작은 그림 속에 있는 그대들은 어찌 그림 밖을 보지 못하는가? 왕위를 다툴 미래는 이제 사라졌다.”
그 말에 모두 어리둥절했다.
“말씀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오?”
겐 쟝이 물었다. 이에 세리안이 답했다.
“신으로 올라서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이런 한정된 영토 속에서 내 딸의 손에 피를 묻힐 수는 없다.”
야망을 드러냈다. 중립신이 죽었기에 <테라>처럼 무한히 확장하는 행성이 아니었기에 이 땅은 어찌 되었든 한계가 명확했고, 수백 년 내에 포화 상태에 달할 것이 분명했다. 그 미래를 점으로 찍고, 그다음을 생각하는 세리안은 실로 현명했다.
다만 다른 이들의 표정은 괴상하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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