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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원 퍼펙트 팩토리가 두 개로 나뉜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리고 드낙이 자신의 생일을 앞두기 전에 자색 주포 위력 시범을 추진하겠다는 공표가 백설산맥에 있는 오크들에게 내려왔다.
<차원 방위>를 이제부터 해나가야 했고, 오크들도 이를 충실히 이행해야 했다.
자색 주포(자주포)는 드낙과 오크들의 오해로 만들어졌지만, 딱히 수정하지는 않은 상태였다. 귀찮고 무지해서 오크에게 그냥 맡겨 버린 셈이다.
많은 이들이 오크들을 불쌍히 여겼다. 그리고 자색 주포에 투입된 드워프들도 크게 시달릴 것이라 예상했다.
<자주포 요새>
나뭇잎 휴식의 술집.
“하하하.”
드워프가 크게 웃었다. 그의 작업복 곳곳에 자주색 빛가루가 묻어있었다. 자기 머리통보다 큰 술잔을 내려놓으며 옆에서 같이 술을 마시는 오크 주술사에게 말했다.
“아까 이야기꾼에게 들었지? 반마반신이 원 퍼펙트 팩토리를 박살을 내고 이제 우리한테 온다던데.”
“두렵나? 얼마나 깽판을 칠지 예상할 수 없어. ......루스 야브이그(Los yavLeeg,무분별한 예언쟁이)를 알지?”
그 말에 드워프가 자세를 고쳐잡았다.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시도 때도 없이 예언을 싸갈기도 다니는 예언쟁이는 자주포 요새에서도 유명했다. 저러다가 녹색 도끼에게 꿀밤 처맞고 대가리가 터져 죽을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50년 넘게 잘만 먹고 싸고 있었다.
“예언에 실패했다더라.”
“왜? 그렇게 힘든 건가?”
그 말에 오크 주술사가 고개를 저었다.
“모든 것이 엉망이라서 뭐라고 말할 수가 없다더라.”
“뭐?”
“몇 가지 단편적인 것들인데 허무맹랑해서 본인이 이야기하는 걸 거부했어.”
“그 수다쟁이가 입을 다물다니... 지금은 뭐 하고 있대?”
“몰라, 갑자기 숲을 청소한다면서 낙엽을 치우고 있어.”
“미쳐버렸구만...숲에 낙엽이 있는 게 뭔 대수라고 그걸 청소해?”
드워프가 혀를 내둘렀다. 살짝 겁이 났다.
“만약...원 퍼팩트 팩토리처럼 요새를 평탄하게 만들라고 하면?”
“고지대에서 쏴야 하는데 뭘 평탄화를 해. 껄, 껄껄! 껄껄껄!”
오크 주술사가 코웃음 쳤다. 하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곳곳에서 이런 광경들이 일어났다. 누구는 반마반신이 먼지를 싫어한다는 걸 들었다면서 빗자루를 오크와 드워프들의 발 뒤쪽에 묶어서 항상 쓸고 다니도록 하는 기행을 벌이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드낙의 방문을 위해서 뭐라도 해야 했기에 비교적 그런 기행도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식이었다.
드낙의 심리를 잘 몰랐기 때문이다. 또한 위력 시범을 앞두고 자색 주포를 개량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검증되지 않은 무기를 위력 시범에 사용하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는 예정보다 일주일이나 일찍 도착했다.
“할 게 없어서, 괜찮지? 준비해. 준비해. 나 상관하지 말고.”
통하지 않는 헛소리를 해대었다. 거기에 그는 다른 핵심인물도 제법 데려왔다. 모두 레우치터 덕분이었다. 그림자를 망토처럼 길게 펼쳐서 세파리아스를 비롯해서 국제 연합의 요직에 앉은 게제라스도 온 상태였다.
동시에 도렌도 함께했다. 그는 서부 사령관 커리어가 있었고 이제는 자치 왕국의 공왕 중 하나였다. 또한 살아남은 디아볼로스 중 1인인 리산드로스도 있었고, 뿔쥐들의 내정관 하나가 따라붙었다.
전종족이 자주포 요새에 관심이 있다는 걸 잘 알려주고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영향력을 적게 표현한 곳이 있다면 뿔쥐들이었다. 그들이 오크를 가볍게 봐서가 아니라 이미 다양한 자원을 자주포 요새와 오크들에게 대어주면서 해당 정보를 많이 접하고 있어서였다.
그들에게 이번 위력 시범은 허례허식이고, 얻을 게 없었다.
이미 오크와 한솥밥을 먹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 ‘지하연합’이었다. 중립신과의 전쟁으로 그 라인이 끊겨있지만, 곧 회복될 조짐을 보였다. 이미 한 번 왔던 길을 다시 걸으면 된다.
자주포 요새의 책임자로 떠오른 니챠브 트위그(Ntshav Twig,자주색 나뭇가지)가 드낙의 뒤를 종종 쫓아다녔다.
“어허, 이러지 말라니까. 책임자면 자주포를 잘 챙겨야지.”
“자색 주포는 현재 계속 개발 중이지만, 위력 시범에 보여주는 건 그전 버전입니다. 이미 수십 번 쏴본 것들입니다.”
반마반신의 격을 지닌 드낙의 앞에서는 오크 주술사 따위가 감히 반말을 지껄일 수는 없었다. 중립신의 피는 이 행성에 뿌려졌고, 오크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영향력은 중립신을 잡아먹은 드낙을 통해서 다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녹색 도끼를 숭배해도, 드낙을 자연스럽게 대우해주고 있었다. 전과 다른 반응을 드낙은 즐겼다.
다른 이들에게도 오크들이나 드워프가 한 명씩 들러붙은 상태였다.
특히 세파리아스에게는 전사 출신의 오크들이 많이 붙어있었다. 그가 풍기는 카리스마는 강자(强者)를 불러들이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대가 그렇게 강하다면서?”
“오크는 셀 수도 없이 죽여봤지.”
“흐.”
거침없는 패도(覇道)에 오크 전사들이 흉악하게 웃었다. 가장 강해 보이는 오크 전사가 나섰다. 그 누구도 방해하지 않았다. 오크들의 세계는 강자존의 세계였다. 물론 강자라도 늙은 주술사에게 나무 지팡이로 머리통 깨지면서 다니긴 했지만...
“너가 여기서 가장 강한 오크인가?”
“그렇다. 난 삼십시련을 견뎌내고 서른개의 타투를 지닌 상전사로...”
그가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며 경력을 줄줄줄 쏟아냈다. 그를 모르는 오크 전사가 없었다. 그는 세파리아스에게 자신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걸 즐기고 있었다. 세파리아스는 이를 막지 않았다.
저렇게 대단한 이를 저들이 그리는 그림 속에서 무너뜨리는 것이야말로 무인의 법도였다. 그리고 현재 상황만 봐도 굳이 그걸 막을 이유가 없었다.
세파리아스는 영향검(影響劍)을 뽑아들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부러지지 않는 롱소드는 투박했고, 장식 하나 없었다.
“아얄타!!!”
오크 전사가 함성을 내질렀다. 그의 몸에서 온갖 것들이 뿜어져 나왔다. 다른 이들은 볼 수 없었지만 세파리아스는 이를 볼 수 있었다.
평범한 인간이지만, 무(武)의 경지가 너무 높아져 버렸기에 세상을 무(武)의 눈으로 볼 수 있어서였다.
호랑이의 어금니가 오크 전사의 도끼로 스며들고.
두 다리에 하마의 거친 발자국이 내려 찍혔다.
오크 전사의 몸에서 튀어나온 서른 가지에 달하는 동물들과 몬스터들의 흉측한 기세.
‘모든 걸 걸었다.’
일격필살의 공격이다. 한 번에 이 정도로 힘을 쏟아부을 줄은 상대는 예측하지 못하겠지. 하지만 이는 어리석다. 무의 시야에 도달해서 30가지의 타투가 뿜어내는 형태를 보지 않았어도 세파리아스는 알 수밖에 없었다.
공격하기 전 오크 전사의 머리가 조금 앞으로 기울어져서였다. 그만큼 공격하는 것에 몰두한 모습이다.
세파리아스는 그 돌진을 기묘한 몸놀림으로 피해냈다. 오크의 눈을 현혹시켰다. 오크는 뭣이 중헌지도 모르고 그대로 이용당했다.
‘검은 무겁게 누가 봐도 진짜인 것처럼.’
거친 오크의 돌진을 막고, 견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야 했다.
보법 또한 좌측으로 반보 움직였다. 하지만 무거운 검초와는 전혀 달랐다. 매우 가볍게 움직였다. 하체의 균형은 전혀 좌측으로 기울어지지도 않았다. 고로 이것은 가짜 보법이었다.
타닥!
경쾌하게 움직였던 발이 똑같이 바닥을 차며 단번에 우측으로 벼락처럼 움직였다.
검과 몸이 좌측으로 움직였기에 상대는 확실하게 거기에 판돈을 올렸다. 다만, 검만 진짜였고 몸의 움직임은 가짜였다는 게 문제였다.
“큭!”
회피하면서도 검과 도끼가 부딪쳤다. 동시에 오크 전사의 균형이 무너졌다. 세파리아스가 그 돌진력을 이용해서 가볍에 다리를 걸어서였다. 하지만 넘어지지는 않았다. 오크 전사의 육체 스펙으로 버텨냈다.
주르륵.
오크 전사의 온몸에서 땀이 쫙 빠져나왔다. 30가지에 달하는 타투를 쓴 대가였다. 기진맥진한 오크 전사가 고개를 떨구었다.
“졌다. 설마 내 의도를 한눈에 꿰뚫어 볼 줄이야.”
첫수에 모든 걸 건다. 예상할 수 있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걸 눈으로 보고 확신해도 늦었다. 도끼가 어깨에 틀어박혔을 터다.
이에 세파리아스 불파겐이 가볍게 오크 전사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맹공(猛攻), 일격필살(一擊必殺)의 행동을 하려는 자의 고개를 잘 살펴라. 앞으로 살짝 내밀어 져 있을 터다. 그 자세를 고친다면, 통할지도 모르지.”
이에 다른 오크 전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적을 죽인다는 일념으로 가득 차야지만 맹공과 일격필살의 묘리를 120% 끌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몰두하면 적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보기 위해서 거북목처럼 고개가 몸보다 앞으로 슥 내밀어 질 수 있었다.
‘전혀 모르는 무술조언이다.’
자질구레한, 말 그대로 종이 한 장 차이의 차이에 대한 무술조언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 거대한 진리가 숨어있음을 모르는 오크 전사는 없었다.
“그대가 했던 방금의 수법은?”
“좌우벼락(Rechts und links Blitz).”
비전, 좌우벼락은 몸과 검을 좌측으로 순간적으로 움직이며 상대를 현혹하는 경쾌한 비전이었다.
세파리아스는 순식간에 오크 전사들의 호감을 획득했고, 이를 통해서 말해지지 않는 자주포 요새에 대한 이모저모를 들을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의 눈이 흥미롭게 변했다.
‘자색 주포.’
상품 가치가 대단히 뛰어난 전략적 무기였다. 세파리아스가 근육 덩어리들이 만든 무기에 관심을 가진 상태에서 무력 시범이 시작되었다.
사용되는 자색 주포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아직도 개발되어야 할 것이 많아서였다. 그렇기에 5,000문에 불과했다.
“적다고 해놓고선 5천 문이면 많구만.”
드낙의 말에 니챠브 트위그(Ntshav Twig,자주색 나뭇가지)가 냉큼 대답했다.
“차원 방위를 생각하면 적은 숫자입니다.”
“그렇긴 하지.”
중립신은 차원을 그냥 봉쇄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정신이 죽었기에 차원을 단단히 걸어 잠글 존재가 없었다. 항상 전쟁에 대비해야 했다.
붉은 깃발이 곳곳에서 올라가고 발포가 시작되었다.
소음은 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스팀이 쏟아져나오며 포문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드낙의 미사일 형태를 닮은 탄두가 발사되어 목표물을 향해서 쏘아졌다.
자주색 빛이 쏟아져 나왔다.
콰과과과광!!!
주력이 폭발하면서 광범위하게 타격이 이루어졌다. 드낙이 박수를 쳤다.
“어메이징! 완다풀!!!”
“아직입니다. 새를 풀어라!”
“뭐...라고?!”
드낙이 경악했다. 거대한 자주포는 그러든 말든 그물에 묶여있다가 쏟아져 나와서 날아오르는 새들을 겨냥하고 그대로 발사되었다. 말도 안 되는 광경이 일어났다.
‘유도!’
포탄이 멋대로 궤도를 변경해서는 새들을 향해서 돌진하며 그들을 찢어발기며 솟아오르다가 속력이 줄어들자 단번에 폭발해버렸다.
수만 마리의 비둘기가 핏물이 되어서 떨어져 나갔다.
“하하하, 어떻습니까?”
니챠브 트위그가 가슴을 두드리며 웃었다. 드낙은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이거, 너무 대단한데?’
자-주포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대인화기로까지 만들고 싶어졌다. 좋은건 여러개일 수록 더 좋다.
*
구천안흉(九千眼凶)들이 수십 마리가 한곳에 모여서 실험체를 확인하고 있었다.
뼈만 바짝 남아있고, 상체만 통통한 기괴한 생명체였다. 인간처럼 생겼지만 이족보행을 못했다. 손과 발로 기어 다니는 놈이었다.
단번에 손으로 피부를 찢고, 머리를 잘라냈다. 머리부터 안 자르는 이유는 고통으로 허덕이는 실험체를 보고 즐기기 위함이었다.
“어때?”
“나쁘지 않다. 효과가 충분히 있겠어.”
실험체의 내부에는 누런색의 장기가 부풀어 올라 있었다. 이를 손으로 쥐자 단번에 터져 나오며 노랑색 포자가 쏟아져나왔다.
진한 유황 냄새가 났다.
중급 악마인 구천안흉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지만 하찮은 이들에게는 <포자 중독>을 일으키는 악독한 하급 권속 악마가 바로 실험체였다.
그 포자에 나뭇가지를 집어넣자 포자가 단번에 부륵부륵 들러붙어서 자라나더니 이내 나뭇가지를 썩게 하였다.
그 의도와 용도는 명백했다.
“자질구레한 동식물의 황폐화.”
다른 악마들에게는 동식물 또한 이득이 될 수 있었다. 자연 생태계에서 악마는 충분히 살아갈 수 있어서였다. 하지만, 아카타베루의 권속들에게는 필요가 없는 게 자연 생태계였다.
그들의 세계는 소아귀(小兒鬼)로부터 이루어진 생태계였다. 그 바탕이 있었기에 자연 생태계의 황폐화는 오로지 적에게만 통용되는 말이었다. 모든 것이 황무지로 변한다면, 이득을 보는 건 아카타베루의 악마들이었다.
“황포괴(黃胞怪)라고 부르는 게 좋겠다.”
“나쁘지 않아. 중급 악마 이상에게만 통용되겠지만, 여차하면 소아귀처럼 잡아먹을 수도 있어.”
독 있는 복어도 먹는 게 인간이다. 황포괴도 독을 지니고 있었지만 중급 악마 이상에게는 별미다.
황포괴는 숫자만 많고, 격이 낮은 생명체를 죽이기 좋았다. 자연스럽게 인간을 비롯한 하등 종족을 카운터치는 개체였다. 이를 위한 생산기지를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었지만 시간은 넉넉잡아도 50년이나 남아있었다.
충분히 실현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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