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833화 (832/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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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대악마(大惡魔) 아카타베루가 들끓는 분노를 참지 않은 채로 말을 이어나갔다. 몸에 들러붙은 아기 머리통이 미친 듯이 움직이며 튀어나오려고 난리였다. 실제로 어깨와 앙상한 양팔이 튀어나온 아기들도 있었다.

아기의 팔이라기에는 지나치게 길었다.

그 모습은 실로 수많은 별을 먹어치운 대악마다웠다.

자신의 차원을 가지지 않은 채, 상대의 차원계를 침략하는 악마라는 초월자는 전투 종족이라고해도 무방했다. 그만큼 거대한 덩치를 지니고 있었고, 그 덩치만큼 초월의 힘에 대한 출력도 높으며, 가진 양도 많았다.

마신(魔神) 성현과 비교하면 빛이 바래지만, 그렇다고 고개를 조아릴 정도는 아니었다.

악마의 공격력은 대단히 높기 때문이다. 수많은 차원을 관리해야 하는 마신의 세력은 피해 없이 그를 잡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분노에 머리를 굴리는데 최적화된 중급 악마이자 아카타베루 세력의 전략가인 <구천안흉(九千眼凶)>이 더욱 미노타우르스를 몰아붙였다.

“주인이시여, 별의 파괴자이시여! 이 간악한 소대가리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모욕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마신은 마신장을 통해서 간악한 수작질을 벌였습니다.”

“먼저 트롤에게 악마 인자를 자극했기에 저희도 그렇게 행동했을 뿐입니다.”

미노타우르스, 구천안흉 모두 아카타베루의 앞이라 말을 높였다.

“규센메쿄(九千眼凶), 잠자코 있어라.”

“예.”

아카타베루 또한 그냥 대악마에 올라선 게 아니다. 그는 다른 악마들보다 음모에 밝았고, 수지 타산적인 면모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다. 악마의 포악함과 수지타산 이 상반된 두 가지를 지닌 대악마였다.

“마신장 건을 제쳐놓더라도, 모방된 삼위일체가 제대로 싸우지 않고 물러나지 않았나. 그건 어떻게 생각하는 거냐.”

“자궁 트롤과 신생 악마의 수를 일찍 소모해버린 저희가 어찌 피를 흘릴 수 있겠습니까. 서로 협력하여 한 번에 중립신을 몰아치기로 했는데...그 패를 다 써버렸으니...”

“그러니까 꺼져라. 대신(大神)과의 전쟁은 피해만 남을 뿐이다.”

수지가 안 맞다. 업는 업보다 버리는 업과 힘이 많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래도 제법 재미를 봤다는 점이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대신의 부활이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게 무엇보다 대악마에게도, 마신에게도 중요했다.

‘신들의 땅에서 그 정도로 강력한 위세를 보여줬으니...’

다른 인신에게 배신을 당할만했다. 그런 놈이 다시 부활을 하려 하고 있었다. 시간과 비교하면 비효율적이지는 몰랐지만 이를 방해하여 완벽한 부활로 이끌지 않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계획은 반쯤 성공했다.

고로, 이 정도에서 빠지는 게 가장 좋았다.

‘역시...’

미노타우르스는 손절 타이밍을 확실하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아카타베루를 보며 감탄했다. 대악마 중에서 유일하게 마신과 함께 이 비효율적인 일에 동참한 놈답게 계산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도 그는 다시 한 번 아카타베루를 움직여야 했다.

“인신의 대신, 중립신이 전쟁의 카실레안(Casillane)과 만나게 되면 악마는 크게 위축될 것 같습니다만, 그냥 물러나시는 겁니까?”

“목숨이 아깝지 않나 보구나! 감히 악마를 앞에 두고 그 버러지 같은 인신(人神)을 언급하다니?”

구천안흉이 발작하듯이 외쳤다. 악마의 금기, 금어가 바로 전쟁의 인신이었다. 전략은 병신같고, 큰 그림을 못 그리는 머저리였지만 맞대결 전술만큼은 높은 장벽의 존재였다. 그런 인신이 전략의 대신과 만난다면, 가히 감당키 어렵다.

“바보 같은 소리하지 마라, 단편적인 사실로 날 위협하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중립신을 배신한 저열하고 비참한 자매신의 곁에 있는 것이 놈이다. 그런 놈과 중립신이 함께 힘을 합쳐?”

“가능성은 있지 않습니까.”

아카타베루의 혀가 제법 길어진 걸 보고 미노타우르스가 속으로 웃었다. 전쟁의 신, 카실레안은 놈들의 역린이다.

“일없다. 돌아가라, 중립신이 죽은 곳을 알려준 마신에 대한 마지막 배려다.”

“중립신은 죽었습니다.”

미노타우르스가 마지막 말을 꺼냈다. 인신과 인신을 엮어서 위기감을 끌어냈다. 아니라고 해도 그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터다. 그리고 그 강력한 결과물이 단번에 뻥하고 사라졌을 때 오는 쾌락은 장난이 아닐 터다.

“흐흐, 흐하하하하. 뭐라? 뭐라고 했느냐?”

“중립신이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이라면 마신은 왜 그 차원을 잡아먹지 않는 거냐.”

“지금 가지고 있는 차원의 관리만으로도 힘에 부칩니다.”

“그래, 그렇겠지.”

“동시에 이건 아카타베루님께 주는 선물입니다.”

“날 위한 선물?”

“중립신의 부활이 이루어질지도, 그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 죽음이 깃든 차원을 곤죽을 낸다는 것에 동의한 대악마와 오래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기에 드리는 선물입니다.”

“흥. 네놈들의 구린 속내가 훤히 보이는구나. 중립신은 왜 죽었지?”

“하찮은 인간이 그의 정신 세계에 운 좋게 들어가서 그 정신을 붕괴시켰습니다.”

“후, 후하하하하!”

아카타베루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의 반쯤만 튀어나와있는 거체(巨體)가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육중한 손이 일그러지고 뒤틀린 얼굴을 덮었다. 거대한 아가리가 쩍 벌려져서 웃음소리를 더욱 크게 뱉어냈다.

투둑, 투두둑!

기형아가 몸에서 떨어져 나가서 바닥에 부딪혔다.

“그렇게 대단하다고 떠들던 자의 최후가 그토록 허망하다니! 평범한 인간에게 정신 세계에서 패배해 죽었다고? 정말 가관이다!!!”

“그런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기에 중립신도 대처할 수 없었습니다.”

“좋다. 마신의 선물은 내가 잘 받겠다.”

미노타우르스는 예를 다하여 물러갔다. 구천안흉(九千眼凶)에게 아카타베루가 명령했다.

“차원 침공을 준비해라. 얼마나 걸릴 거라 예상하느냐.”

9천 마리에 달하는 중급악마 구천안흉은 한 개체가 9천 마리와 완벽하게 일치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단 한 마리에게 물어도 9천 마리가 고민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중급 악마에 불과하지만 아카타베루의 군사 노릇을 할 수 있는 이유였다. 이 또한 모두 마신의 왼팔인 미노타우르스와 비견되는 군사를 만들기 위한 아카타베루의 노력이었다.

“50년이 걸립니다.”

50년, 찰나의 시간이다. 중립신이 너무 멀리 가버렸고, 대악마를 따르는 권속들은 가히 ‘세계’와 비견될만하다. 그 세계가 옮겨지는 일이다. 50년이 걸릴만했다.

다시 돌아오는 것은 편했다. 이미 뚫어놓은 곳을 통해서 차원 이동을 해버리면 그만이다.

“중립신을 죽인 놈 또한 죽고 없을지도 모르겠군.”

누워서 떡 먹기였다.

*

“아아, 이것은 습식사우나라는 것이다.”

“와!”

수증기가 제법 나오는 걸 보고 드낙이 우월한 표정을 지었다. 겨울에 후끈후끈한 수증기로 가득 찬 방에 들어오는 건 대단한 사치였다. 제법 굵은 천으로 된 사우나복을 입고 부인들이 모두 들어오며 구경하기 바빴다.

“꼭 사우나를 하고 나서 찬물로 샤워를 해야 해.”

“무슨 효과가 있나요?”

“그 땀구멍이 줄어들어. 피부에 좋아.”

재잘거리는 부인들은 오랜만에 사치를 누렸다. 뭐든지 신기해했다. 특히 일부러 더운 곳에 들어가서 일부러 얼음이 둥둥 띄워진 음료를 마실 때는 실로 이를 좋아했다.

습식 사우나는 물을 끓여서 나오는 수증기를 보냈기에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고, 운영이 가능했다.

일부러 약화시킨 몸뚱어리에서 땀을 쏵 빼고, 차가운 물로 이를 쏵 식혀주고 나온다. 후끈후끈해진 체온은 실로 상쾌함을 줬다.

탱글탱글해진 부인들의 미모는 한껏 더 빛났다. 그걸 바라보며 드낙은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함께 소비하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관계는 발전되어가는 법이었다.

물론 얼마든지 이권 속에서 다툼이 일어날지 몰랐지만 그래도 좋은 건 좋은 거였다.

‘목욕탕과 습식 사우나.’

가장 하찮고, 하찮은 문화 중 하나다. 그런데도 이 세계는 그것을 누리지 못했다. 이를 드낙은 가장 보편화된 소비 문화로 만들 생각을 가졌다.

‘화장품도 빠질 수 없지.’

기술 있고 똑똑한 놈들은 넘쳐난다. 이들에게 명령 한 마디면 꾸준히 개발이 이루어질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도래했기에 누구보다도 드낙은 앞장서서 흥청망청의 소비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속도를 내고 있었다.

가볍게 사우나와 목욕탕을 대중적인 것으로 만들었고, 도박의 세금화를 위해서 누구보다도 화려한 도박장을 국가가 운영할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사설 도박을 몽둥이로 때려 부수고 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경제를 자신의 손아귀에 잡아서 관리하려는 드낙의 노림수가 보였다.

그 사이에 국제 연합의 일정이 잡혔다.

드낙이 가장 상석에 있었고, 다른 이들이 원탁에 둘러앉았다. 본래는 대리자를 내보내도 괜찮다고 했지만 그 누구도 대리자를 데려오지 않았다. 동부왕이라는 명칭도 이제는 무색하게 자치왕국은 4명의 공왕이 다스리는 연합국의 성격을 띄고 있었고 이 자리에는 세리안 공왕이 서게 되었다.

세파리아스 불파겐과 세리안 불파겐은 국제 연합의 거대한 회의장에 들어서서 짧게 인사만 나누고 자리에 앉았는데, 그것만으로 모든 이들이 이 자리에 혈연은 없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신제국의 것은 세파리아스의 것.

자치왕국의 것은 세리안의 것인 셈이다.

이 구분은 단점만 있을 것 같았지만, 장점도 많았다. 가장 큰 장점은 세파리아스와 세리안을 구분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하나의 불파겐이 아니게 되면서 큰 압박과 견제를 피할 수 있었다.

일의 진행은 게제라스가 맡았다. 그는 자치 왕국에서 벗어나 국제 연합의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수많은 허례허식은 없었다. 드낙이 싫어하고 귀찮아해서였다. 대신 회의가 있기 전에 3일 동안 전국적으로 큰 축제를 벌였다.

“모두 빠짐없이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 안건은 남부 왕국의 이주민에 대한 분배입니다. 신제국과 자치왕국의 타협점을 찾는 것이 목표입니다.”

목표까지 친히 알려줬다. 드낙이 내려주는 임무인 셈이다. 하지만 세파리아스는 그런 목표를 추구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신제국은 제국의 후예, 그 땅을 빌려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자치왕국은 많은 것을 받았다. 거기에 인구까지 탐을 낸다면 짐승이나 다름없다. 다만, 그간의 관계를 위해서 3할을 양도할 생각은 있다.”

통보에 가까운 말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

“신제국의 보유 인구를 생각하면 욕심이 지나친 건 신제국 쪽, 오히려 신제국으로부터 제국인을 받아봐야 하는 게 자치왕국의 현실정이다.”

상대가 반말로 지껄이면 반말로 대답해주는 게 인지상정, 여기에 외교는 없었다. 바로 부딪침만 있을 뿐이다. 기사의 대화였다.

그 살벌함에 드낙이 되려 어리둥절했다.

‘진짜로 싸우네? 이래서 있는 놈들이 더한다더니!’

50억 유산에 만족하지 못하고 형제부모의 배에 칼 박고 100억, 200억을 원하는 모습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 치열한 공방에는 한 치의 빈틈도 없었다. 가장 먼저 상대의 약점을 계속해서 꼬집었고, 그다음에는 자신들의 정당성을 외치기 바빴다.

선거유세나 다름없었다.

그 모습을 대장쥐는 가만히 지켜봤다. 그는 ‘지하연합’의 대표자였다.

‘역시 인간들이다. 분란, 분란, 또 분란이다. 국제 연합에서 2석이나 차지했음에도 저런 꼴이라니.’

슬프고 또 슬펐다. 저런 자들이 감히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의 신에게서 도움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불경한 존재들이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그 은총에 혀가 잘리고, 피를 쏟아내도 외쳐야 하거늘.’

현재 피 숨결 검은 뿔쥐들은 자신들의 종족성을 높이고, 더 높은 곳에 도달하기 위해서 전종족이 사활을 걸고 있었는데 인간들은 전혀 거기에 동참하고 있지 않았다. ‘상위종’으로 올라서는 걸 차순으로 미뤄두고 있는 모습이다.

‘중요한 건 인구가 아닌데.’

대장쥐 더 나아가 검은뿔쥐들만 아는 깨달음이었다.

인간을 하위종족으로 보는 건 그들보다 우월한 종족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꼬물거리는 쥐새끼에서 시작한 검은뿔쥐는 누구보다도 <상위종(上位種)>에 대한 열망이 컸다.

그는 이 국제 연합이라는 것도 부질없다고 여겼다.

중요한 건 단 하나.

‘드낙 님을 위해서 뭘 할 수 있느냐다.’

종족 내에서 내분이 일어나지 않기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검은 뿔쥐들은 이미 목욕탕과 습식 사우나를 지하에 마련해두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가 원하는 걸 모두 이행하고도 여력이 남는 게 현재 검은뿔쥐의 상황은 실로 무서울 정도였다.

“세파리아스, 너무 욕심을 부리는 거 아니냐?”

그 말에 세파리아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반마반신이 개입해서 정리한다면, 나중의 안건에 쓸 우선권을 하나 받아야겠지.”

세파리아스는 실로 드낙과 동등하다는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괘씸한...”

대장쥐가 그를 노려보며 말하자 세파리아스의 눈이 대장쥐에게로 향했다. 그 모습에 대장쥐가 한 마디를 더 붙였다.

“격(格)에 맞게 그 고개를 조아려라, 인간. 네놈이 동등하게 여길 분이 아니시다.”

“쥐새끼가 말하는 것도 주제넘은 짓이다.”

그 말에 대장쥐가 일어서서 드낙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 인간의 콧대를 누를 기회를 주십시오! 만인의 앞에서 저 불경한 자의 불온한 태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원탁의 뒤에서 가만히 관전하는 수백 명의 부관 중 검은 뿔쥐들이 피숨결을 내뱉으며 고함을 내지르며 동참했다.

“뜨나아아악!”

그들은 실로 광신도, 그 자체였다. 그들이 드낙에게 받은 걸 생각한다면 전혀 이상한게 아니었다. 이들은 은혜에 보답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 은혜는 백번을 죽어도 보답할 수 없었다.

어찌 필멸자 따위가 신이 내려준 은혜를 모두 갚을 수 있겠는가.

그런 생각 자체가 대단한 오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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