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832화 (831/1,239)

<-- 832 -->

판타지 월드

“게제라스 있는가!”

드낙이 대문을 걷어차며 외쳤다. 오면서 수급한 술독들이 줄줄이 마법에 붕 띄워져서 따라오고 있었다. 도렌과 이스핀도 하나씩 들고 있었다. 사람 하나 죽일만한 양이었다.

그를 지키던 자유 기사들 또한 드낙과 안면이 있었기에 살아남았다.

그들은 드낙을 서둘러 안으로 모셨다. 게제라스는 늦은 밤에도 뭔가에 몰두하고 있었다. 동부 왕국이 멸망해도 그의 집념과 열망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런 일로 사그라든다면, 모든 기득권과 싸우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 터다.

‘결국에는 법과 제도는 남고, 역사의 다음 세대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언젠가는 자신의 법지식을 이어받는 후계자가 나타날 터다.

“이런 늦은 시간에 어쩐 일입니까.”

드낙이 들이닥치자 이를 서둘러 정리하며 게제라스가 말했다. 그리고 도렌과 이스핀이 먼저 인사를 올리자 그들을 반겨주었다.

“마음고생이 심한 줄 알았는데...”

드낙의 말에 게제라스가 가볍게 웃었다.

“제가 너무 동부 왕국에만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사람 아닙니까.”

가문에서 내쳐진 게제라스 문인이었기에 더더욱 국가라는 족쇄에서 벗어나기 쉬웠다. 결국에는 사람이 중요했다. 사람은 동부 왕국 외에도 살아가고 있었다.

“법과 제도는 결국 사람을 위한 것. 동부 왕국이 멸망의 기로에 서 있다고 한들, 무엇이 바뀝니까. 제가 아무리 발악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날 뿐입니다.”

드낙은 게제라스가 어느 경지에 올랐음을 깨달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 듯이 게제라스 또한 그간 수많은 아귀다툼 속에서 상처를 입으며 살아왔다. 그 상처는 흉터가 되고 곧 경험으로 녹는다.

“다행이다.”

드낙은 술을 개봉하였고, 게제라스를 보좌하던 자유 기사가 잔을 놓고, 안주를 몇 가지 가져다 놓은 뒤에 물러갔다.

“이렇게 세 명이 모이니, 기분이 이상한데.”

드낙이 운을 띄우자 이스핀이 손을 비볐다.

“그때 드낙 님을 따라나선 게 천운이었습니다.”

힘든 일도 많았지만 결국 잘 되었다. 그들 가족 또한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죽었지만 드낙과 관련된 이들은 하나같이 살아남았다.

드낙은 가장 인격신에 가까운 존재였고, 그 본능이 발현되었을 뿐이다. 그에게 진실된 평등함과 공정함은 가장 동떨어진 소리였다.

서로 과거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굉장히 좋은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모두 취기가 올랐을 때, 드낙은 새로운 꿈을 제시했다. 동부 왕국은 더 이상 유지될 수가 없었다.

“신제국의 옆에 자치왕국을 세울 것이다.”

“그곳에 저희가 편입되는 겁니까?”

“편입은 무슨...신제국이라는 이름은 절대 바꾸지 않기에 자치 왕국으로 우리가 개칭하는 것뿐이다.”

그렇게 대략적인 걸 말하고 드낙이 앞으로 그려가야 할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건 그들에게 쥐어지는 새로운 꿈이다.

“세계의 판도는 다시 새롭게 자리잡혔다.”

“중립신의 대계를 흐트러뜨렸기 때문이죠.”

도렌이 이를 언급했다. 그 덕에 드낙은 다시 한 번 중립신의 음흉함을 떠들어야 했다. 동시에 드낙은 인신(人神)의 알고리즘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런...”

엄청난 비사(祕史)였다. 인간으로 잉태된 인신이 도리어 인간이 상위인간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고 있어서였다. 그리고 그건 100년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서 수천 년 때에 따라서는 만 년이 지나서 이루어지는 순환의 고리였기에 인간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에게나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가족에게도 함구하는 게 좋을 거다. 퍼져봤자 좋아질게 없기 때문이다.”

“예.”

동시에 이를 말한다는 건 드낙이 그런 인신과는 다르게 인간들을 대하겠다는 것과 같았다. 엘프를 타락 엘프와 디아볼로스로 삼아서 품었는데 인간을 초월자가 되지 못하게 막을 이유 또한 없었다.

신성력을 통해서 그릇을 성장시켜 다음 세대로 이것이 흐르고, 곧 마력을 지닌 인간이 태어나고 그게 상위인간이 되고 그렇게 초월자로 나아간다...

거대한 흐름이다.

이를 진정으로 체감한 이는 게제라스와 도렌 정도였다. 드낙은 중립신의 세뇌에 오래 절여져서 그 영향이 잔뿌리처럼 남아있었다. 전쟁터에 휩쓸린 인간이 그전과 확연하게 다른 것처럼 그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신제국과 자치왕국 그리고 그 외에 오크, 드워프, 엘프들을 조정하고 관리할 국제 연합의 출범이 예정되어있다.”

신제국의 황제가 될 세파리아스도 국제 연합의 권고를 결코 피할 수 없었다. 드낙이 있기 때문이다. 신성력을 잃은 세파리아스는 결코 드낙을 죽일 수 없었다. 드낙이 상대를 안 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패배는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할 일이 많겠습니다.”

게제라스의 눈에 새로운 열정이 담겼다.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나아가서 이 차원의 관리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어?”

차원 관리자의 꿈!

중립신이 설계한 테라처럼 행성 자체가 커지기에는 무리가 있는 게 드낙의 테라였다. 우주로의 이주는 불가피했다. 인구는 끝없이 늘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황무지인 대륙 북쪽을 개척한다고 해도 한계는 오겠지. 아마 중립신처럼은 할 수 없을 거다.’

그렇기에 차선을 끊임없이 제시해야 하고 준비해야 했다. 동시에 중립신과는 아예 다른 노선을 취해야 했다.

“음...”

이스핀이 생각에 잠긴 세 사람을 보며 소리를 냈다. 이에 그들의 눈이 이스핀에게로 향했다.

“전 그냥 은퇴하고 싶은데요. 게제라스 님과 도렌이라면 능히 차원 관리자의 임무도 충실히 이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뭔 소리야. 도렌이랑 너랑은 완전 찰떡인데.”

“저요?”

“그래, 너. 곧은 이에게는 뺀질거리는 애도 있어야지.”

그 말에 도렌이 동의했다. 현실이라는 놈은 곧게 가면 부딪치기 마련이다. 그 뾰족한걸 깎아서 부드럽게 만드는 게 이스핀의 뺀질거림이었다.

협박, 회유, 청탁.

모두 이름만 다를 뿐, 그런 부드러움의 작용이다. 이에 어울리는 사내가 바로 이스핀이었다. 그의 주류 산업은 생각보다 위기라는 게 없었다. 그냥 두루 나눠 먹었기 때문이다.

“뭔가 스케일이 저랑 안 맞는 것 같은데요.”

“충분히 어울려.”

“제가요? 아닌데요?”

드낙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서부 부사령관에서 쓴소리가 안 나온 것만 해도 알짤 없이 능력이 있다는 소리였다. 뒷골목 깡패가 부사령관이 된다? 한 달도 안 되어서 원성이 자자할 터다.

‘그게 없다는 게 이미 대단한거지.’

아니라고 해도 현실은 맞다고 대답해주고 있었다.

이스핀은 그 모습에 그냥 땡깡을 부렸다.

“왜요? 근데 제가 왜 해야 하는데요?”

“나이 먹고 그 무슨 소리야. 그냥 하면 되는 거지.”

“그럼 동부왕...아니, 술자리니까. 드낙 님도 하셔야죠. 드낙 님은 뭐하시는데요?”

“나? 난...총감독이지...”

“감독은 쉐도우 위스퍼들이 다 하잖아요.”

드낙이 눈을 굴렸다. 하지만 게제라스와 도렌은 이스핀이 필요했다. 도렌을 통해서 게제라스도 제법 ‘편한 길’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럼 이스핀은 대륙 북쪽 불모지 개간으로 가야겠구먼.”

게제라스의 말에 이스핀이 온몸을 들썩였다. 서쪽 개발에 간 것만으로도 와이프 앞에서 쩔쩔맸다. 최신 트렌드에서 멀어지는 것만으로도 여성은 삐질 이유가 있는 법!

‘대륙 북부?’

엘프도 포기한 곳이다.

“하겠습니다. 하하하. 그래도 신제국이라면 문화가 가장 꽃핀 곳 아닙니까?”

“허허허. 그렇지. 그렇지.”

드낙이 대차게 웃으며 이스핀의 태세 변화를 즐겼다. 아주 정이 가는 행동이었다. 역시 사람이라면 갈대처럼 휙휙 바꿔야지. 그게 인간다움이었다.

“제국 동부는 거의 폐허다. 그곳에 자리 잡아라. 신제국의 본거지는 제국 서부니까 부딪칠 일은 없을 거다. 그리고 국제 연합의 첫 안건은 ‘남부 왕국 이주민’에 대한 것이니 매우 단단히 준비해라.”

드낙의 편애에 모두 고개를 숙였다. 신제국보다 자치왕국의 편을 들어준 것이다.

이를 뒤로하고 드낙은 서둘러 드워프들에게로 향했다.

‘중립신이 사라졌으니, 다시 열정이 사그라들어서 잠자고 있을 터.’

이를 막아서 드낙 차원의 첨병이 되어야 했다. 화약과 대장장이 기술은 드워프가 일품이다. 거기에 그들은 유기체가 아니라서 우주에서의 작업에서도 유리했다.

드워프들은 드낙을 환대해주었다.

“확실한 해명을 듣고 싶소.”

드워프 왕족, 산맥 가문의 일원들은 대부분이 잠에서 일어난 상태여서 가히 수백이 넘었고, 그 중 <용맹한 산맥>은 여전히 왕위를 가지고 있었다. 일찍 깨어난 이유로 계속 왕위를 맡기로 한 상태다.

드낙은 모든 과정을 아낌없이 설명해줬다.

“어쩔 수 없었다.”

“이해한다. 그대의 말이 맞다면 우리 또한 죽을 운명이었군.”

“믿어주는 건가?”

드워프 왕족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중립신이 스스로 행성에 녹아서 죽음을 각오했는데, 다른 필멸자들을 안 녹인다? 어불성설이지.”

“관리할 초월자가 없는데, <초월자>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필멸자가 있으면 안 되겠지.”

드워프들은 드낙에게 속하기로 했다. 그는 그럴 자격이 충분히 되었다. 반마반신(半魔半神)의 격을 지니고 있었으며 곧 악마이며 신이 될 차원의 주인이 될 것이다. 남은 건 시간뿐이다.

“그대들에게 내어줄 것은 <신의 봉화>같이 거창한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지만, 그대들의 정신을 하루마다 맑게 해주는 능력을 줄 생각이다.”

<케이슨의 모방씨앗>.

드낙은 케이슨과 접촉하는 것으로 신성력과 신, 인간에 대한 걸 단번에 체감하고 이해했다. 동시에 자신의 정신에 담겨 있는 피로감과 오점들을 지울 수 있었다.

그 여파는 매우 컸다.

능력 이름 자체가 케이슨의 모방씨앗이라는 것부터 대단히 영향받았음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케이슨의 정신을 느낀 그대로 모방해서 만든 씨앗을 드워프들에게 심는 일이었다. 그것을 통해서 드워프도 제법 이득을 볼 수 있고, 드워프들도 이득을 볼 수 있다.

“적어도 반나절은 거뜬히 활동할 수 있을 거다.”

“그것만으로도 큰 축복이오.”

드워프들에게 이를 전하는 데에는 꼬박 한 달이 걸렸다. 하나하나 접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서 드낙은 드워프들과 연결되었다.

“마지막 날에는 당연히 술판이 있어야 하지 않겠소!”

“마셔라아아아! 죽어라아아아!!!”

케이슨의 모방 씨앗이 담긴 드워프들이 고함을 질렀다. 어디서 가져왔는지는 몰라도 5층 비계에서 맥주 통을 들이붓고 있었는데 그 맥주 폭포 밑에서 드워프가 서넛 모여서 서로 밀치고 난리도 아니었다.

귀차니즘으로 봉인되어있던 드워프를 깨우고 만 것이다.

물론 이를 조심해야 할 드낙은 마법으로 맥주통을 더 올려보내고 있었다.

“와하하하하!!!!”

드낙이 순수하게 웃었다. 이런 미친 짓거리를 싫어할 리가 없었다. 대계니 뭐니 지랄하던 놈에게 휘둘린 것이 이제 진정으로 끝을 맺었기 때문이다.

“부! 부부부! 부어라!”

“마! 마마마! 마셔라!”

“푸우우웃!”

광란의 술자리가 시작됐다. 드워프 왕족 중 가장 오래된 나이를 지닌 자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실로 꼴사나웠지만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었다.

*

아기들의 시체를 미노타우루스의 발굽이 짓밟았다. 꾸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아기의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곧 울음소리로 변했다.

하늘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아기들이 그 위에도 덕지덕지 발라져 있을 뿐이다.

피비린내로 가득 찬 세상에는 오로지 영유아의 시체만 득실거렸고, 그것들은 눈이 뽑혀 있거나 팔이 뒤로 꺾여서 묶여있는 등 참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차마 말로 내뱉을 수 없는 끔찍한 모습으로 장대에 걸려있기도 했다.

“마신의 종자가 감히 이 세계에 발을 들이다니, 미쳤구나.”

걸쭉한 피를 콧구멍에서 줄줄 흘리는 중급 악마가 3m에 불과한 미노타우르스를 막아섰다. <미궁의 미노타우루스>는 미궁 작성 밑 마수 제작과 생태계의 과학자나 다름없었지만, 무력이 변변찮았다.

중급 악마 선에서 정리가 가능할 정도였다.

“마신과의 약속을 저버린 아카타베루는 약속을 지켜라.”

온몸이 아기의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뒤덮여있는 <구천안흉(九千眼凶)>이라 불리는 중급 악마가 말하자 미노타우르스 또한 맞받아쳤다.

“너희들도 협약을 개잡것처럼 여기지 않았느냐?”

“먼저 시작한 건 그쪽이지. 우연인 것처럼 수작질했지만 날 속일 수는 없다. 트롤이 악마를 생산하는 <자궁>이 되었는데, 발뺌할 생각은 아니겠지?”

“허허, 허허허. 증거라도 들이밀고 지껄이던가. 그건 우연이다.”

그렇게 말하던 구천안흉의 9천 개의 눈동자가 왼쪽으로 휙 몰렸다.

“......따라와라, 아카타베루 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홀로 온 미노타우르스가 이를 따라갔다. 거창하게 마신의 왼팔이라고 불리지만 미노타우루스의 숫자는 굉장히 많았다. 그들은 마신의 사절로 많이 쓰이고 있었다.

암세포처럼 아기의 머리가 전신에 자라나 있는 거대한 대악마(大惡魔) 아카타베루가 아기들의 시체로 쌓인 땅에서 모습을 서서히 드러냈다.

그의 눈이 미노타우르스에게로 향했다.

“버러지 같은 놈이 찾아왔군. 그때 뭐라고 지껄였더라? 협력? 협력이었나?”

“동맹이기도 했습니다. 주인이시여.”

“협력? 동맹? 하하, 하하하하!”

웃음소리가 아카타베루의 상어 같은 주둥이에서 흘러나왔다. 전신에 불룩불룩 튀어나온 수만 개의 아기 머리통에서 아기의 웃음소리가 쏟아져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뚝 끊겼다.

=============================

[작품후기]

6117자

평점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