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831화 (830/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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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드낙은 케이슨에게 접촉하자마자 신(神)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었다. 반신(半神)에 올랐지만 신성력을 남에게 준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기에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 성기사 케이슨의 고결한 정신이 한몫해냈다.

‘공유되는 정신. 아니, 흘러 지나가는 정신인가.’

성기사 케이슨이 지닌 순수한 정신이 드낙의 정신을 훑고 지나가며 드낙의 정신에 남아있던 음울한 앙금을 부수었다.

파동을 통해서 길목을 막고 있는 돌을 깨부수는 것과 같았다.

‘이게 신이 신도들을 만들어내는 이유.’

올곧은 분노, 정의로운 신념을 지닌 성기사와 사제들이 있어야 하는 이유였다.

신이 자신의 열정을 유지하는 수단이며, 자신의 목적이 변질되지 않게 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했다.

중립신이 지금까지 맹렬하게 목적을 세우고, 목표를 위해서 달릴 수 있었던 증거품이 나왔다. 동시에 드낙 또한 열정이 활활 타오르는 기분에 휩싸였다. 마치 처음으로 자신의 꿈을 위해서 한 걸음 내딛는 젊은 사람처럼 화산처럼 달구어졌다.

가만히 어깨에 손을 올린 채 침묵하는 드낙을 보며 주위가 동요했다.

힘들어서 신경질을 부렸던 건축가가 어디론 가로 도망쳤다. 그러든 말든 드낙은 케이슨을 관조했다. 중립신을 잡아먹었기에 힘 하나 필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중립신을 위해서 봉사하고, 헌신한 성기사는 모든 것을 중립신에게 내어준 상태였다. 거부감 하나 없었기에 들여다보는 데 힘 하나 들지 않고, 고속도로처럼 지나갈 수 있었다.

‘아!’

거기서 오는 쾌감은 짜릿했다.

‘나’가 아닌 다른 자가 진정으로 모든 것을 자신에게 내다 버려서 오는 감각은 지나칠 정도로 대단해서 드낙조차도 어쩔 줄을 모를 정도였다.

‘그릇이...텅 비어있다.’

인간의 몸으로 신성력을 담았기에 성기사들과 사제들의 <그릇>은 넓고 깊었다. 마력을 사용할 수 없음에도 그릇만이 덩그러니 크게 있을 뿐이었다.

‘혈통 좋은 마법사와 비슷하다. 그래서...신성력(神聖力)이고, 인신(人神)인가!’

드낙의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이 또한 인간을 위한 안배였기 때문이며, 신이 자신에게 업을 바치는 인간들을 개발하기 위한 술수였기 때문이다.

‘신성력은 마력이 없어서 그릇조차 좁은 인간의 그릇을 넓힐 수 있다.’

그 깊이 또한 세월이 흐르면서 깊어질 것이고 그가 낳은 자식은 자연스럽게 마력을 담을 <초월의 그릇>이 마련된다.

좋으나 싫으나 신성력으로 초월의 힘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개발된다는 소리였다.

‘마법사들은 대부분 신성력을 부여받은 조상이 하나쯤은 있다는 소리다.’

그들이 서로 얽히고설키면 평균적으로 인간들의 마법 사용자 숫자는 늘어만 가고 종국에는 마도 사회가 건설된다. 초월의 힘을 담을 수 있기에 자연스럽게 외부의 침략자에 대한 방위 수준도 높아진다.

‘동시에 죽어서도 업을 비롯한 힘을 가져다 바치게 된다.’

인간들의 수준 자체가 높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끝자락에는 아마 인간이 인간답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상위인간(上位人間)이라는 종족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무섭다.’

인간으로부터 태어난 인신이 인간을 신성력으로 개발하여 더 상위의 종족으로 만듦과 동시에 인신도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종국에는 대신에 이를 수 있었다.

‘중립신은 제국의 인간들이 마도 사회를 구축했기에 ‘때’가 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동시에 드낙은 의문을 지녔다. 중립신은 적극적으로 신성력을 지닌 이들이 결혼하고 자식을 낳는 걸 장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도 사회를 구축한 인간은 신의 자리를 넘볼 수 있다.’

드낙이 음흉하고 음습한 결과에 도달했다. 현실적인 생각을 했다. 인간은 발전 끝에 바벨의 탑을 건설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들의 탐욕은 끝이 없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신성력을 지닌 인간을 종교라는 이름으로 울타리를 만들고, 제한한 것이구나.’

최대한 마도 사회와 상위인간으로서의 길을 막고, 초월의 그릇을 지니지 않은(마력을 비롯한 힘을 지닐 수 없는) 인간의 숫자만 늘린다.

‘임계점에 도달하면 초월의 그릇을 지닌 인간을 싹쓸이하고, 다시 시작한다...’

드낙이 입을 손으로 가렸다. 그의 안색이 나빠졌다.

뭘 해도 결국에는 닭장 신세다.

거대한 세월을 생각하면 그 피해자는 한 세대 혹은 3대에 족할 것이다. 그저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 전에 살았던 이들은 신을 찬양하며 죽음에 이르렀을 터다.

선신, 악신...

드낙은 그 구분이 모호해졌다.

인신(人神)이라는 본질 자체가 인간이라는 하찮고, 하찮은 필멸자에게 기생하며 사는 잡귀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드낙은 사람들을 상위인간으로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많은 인신들은 그전에 인간을 전복시키고, 다시 키웠겠지만 드낙은 아니었다.

‘물론 억측일 수도 있다.’

인간불신에 가까운 감정을 지닌 게 드낙이었다. 이 모든 과정이 다른 인신들에게는 적용이 안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신이 대신에 도달하는 시간은 너무나도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중립신이 신들을 이끌고 신들의 땅에 가서 전쟁을 한 것도 어찌 보면 힘 있는 인간을 처리하기 위한 소각장이었을지도 모르지.’

역겨운 생각은 떠나가질 않았다.

“저...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케이슨이 입을 열었다.

생각에 빠진 드낙의 표정이 계속해서 변해서였다. 그제야 드낙이 정신을 차렸다.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한숨을 한 번 내쉬더니 그제야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왜 이렇게 힘든 일을 하고 있는 거냐.”

그 말에 케이슨이 양손을 보여줬다. 손가락이 몇 개 사라져 있었다.

“손가락 없는 이가 무얼 가리겠습니까. 이렇게 벌어서 고아가 된 이들을 살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입니다.”

“레이시아는? 네가 도와준 다른 이들은?”

“그들도 그들 앞가림 하기 바쁩니다. 왕비께서는 시녀 하나 없으신 채 신전에 들러서 아이들에게 많은 걸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많은 이들이 죽었다. 그렇기에 동부 왕국은 가히 멸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실제로 드낙은 신제국으로의 이주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지배 계층은 많은데 피지배계층이 없는 셈이다. 중산층은 물론이고 그 밑에 사람들도 싹 사라져버렸다.

그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

이 사회가 가장 요구하는 것.

그것을 성기사와 사제들은 마땅히 받아들였다.

진정으로 놀라운 사람들이었다.

‘난 반신(半神)이다.’

본래라면 많은 신성력을 지니고 있지 못한다. 고작해야 천 명 안팎이다. 대도시, 하나의 국가를 어찌 관리 가능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대신을 잡아먹은 반신이다.’

세파리아스가 중립신의 정신을 죽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힘을 많이 소모한 대신이라도 대신은 대신이다.

“내가 다시 그대에게 신성력을 주겠다. 중립신은 악독한 대계 때문에 죽었지만, 그 대신 내가 그대의 신념을 이어나갈 수 있게 돕겠다.”

그 말을 끝으로 케이슨의 몸에서 빛이 터져 나왔으며, 동시에 머리에 후광이 비쳤다. 전신에 터져 나온 빛은 금방 사라졌지만, 머리에 있는 미약한 후광은 사라지지 않았다.

“맙소사...”

사람들이 그 후광의 존재에 절로 놀랐다. 케이슨 또한 적응이 안 되는 듯했다. 후광이라는 것이 지닌 가치도, 개념도 없는 세계에 후광을 드낙이 만들어냈다.

드낙이 눈을 감았다. 동부의 통계에 잡히지 않은 성기사와 사제들의 숫자는 천 명이었고, 그들 모두를 자신의 사도로 삼았다.

“앞으로는 종교라는 울타리 속에서 살지 않아도 된다.”

동시에 드낙은 종교라는 울타리도 걷어냈다.

“그대 스스로의 가치를 실천하며 세상에 선한 영향력(Good influence)을 펼쳐라. 그대와 같이 후광을 뿜어내는 이는 모두 ‘선한 영향력’이라 불리게 될 것이다.”

“이를 실천하겠나이다.”

케이슨이 양 무릎을 꿇었다. 죽은 신의 배신은 뒤로 미뤄두었다. 지금 당장 힘들어하는 고아들이 있다. 신의 이름 따위는 케이슨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없이 교리를 새로이 짜던 세월이 아쉬울 뿐이었다.

“신전이 아니라 개인의 삶을 실천하고 살아가라. 그리고 착한 이들이 있다면 나에게 보내라. 그에게도 후광을 주어 선한 영향력이라 불리게 될 자격을 주겠다.”

“이를 실천하겠나이다.”

드낙이 주변을 둘러보며 외쳤다.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이 있다면, 내 그들에게 거리낌 없이 후광을 주고, 신성력을 부여하겠노라! 이를 만인에게 알려라!”

“와아아아!”

모두 고함을 질러대었다. 그렇게 사기를 키우고, 동부 왕국은 빠르게 신제국으로 이주할 준비를 했다. 그곳에서 남부 왕국 이주민을 지배하며 다시 한 번 세상을 주름잡을 수 있을 터다.

드낙은 곧장 레이시아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신전에서 고아가 된 이들을 위해서 수학과 다양한 실전 학문을 가르치고 있었다. 드낙이 가만히 지켜보고, 수업이 끝나서 밖으로 내달리는 애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레이시아에게 다가갔다.

“어! 여기는 어쩐 일로...”

레이시아가 깜짝 놀랐다. 드낙이 웃는 얼굴로 다가갔다. 아이들의 손을 탄 새하얀 치마에는 흙이 제법 묻어있었다.

“크레시미르는요?”

“요즘 할아버지, 할아버지 노래를 불러요. 오늘도 새벽부터 데려가셨어요.”

레이시아와 드낙이 서로 웃었다. 드낙은 그녀의 허리를 손으로 감았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늘은 다름이 아니라, 성기사들과 사제 때문에 찾아왔어요.”

차분한 드낙의 목소리를 들으며 레이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진짜에요. 도와주면 도와줄수록 세상이 밝아지는 기분을 들게 하죠.”

“맞아요. 케이슨 성기사는 막노동을 하고 있더군요.”

“저도 한 번 찾아갔어요. 가슴이 크게 떨렸어요.”

신성력을 잃은 케이슨의 행보는 보는 게 괴로울 정도였다.

“그는 다시 신성력을 얻었어요.”

“정말인가요?!”

“예. 제가 빌려줬어요.”

드낙의 말에 레이시아가 크게 놀란 눈치였다. 그리고 드낙을 깊게 안아줬다.

“정말 잘하셨어요.”

드낙은 그들을 종교에서 꺼냈으며, 거대한 자유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라 말했다. 또한 이에 대한 관리와 선별을 레이시아에게 맡기고 싶다고 말했다.

“제가요? 하지만 저는...”

“괜찮아요. 사람 보는 눈은 있어 보이니까요.”

은근히 뚝심도 있다. 그저 권력을 잡아보지 못해서 꽃피우지 못할 뿐이었다. 단적으로 길게이가 아니라 케이슨을 선택한 게 컸다.

그 덕에 맡길 수 있었다.

레이시아에게도 드낙이 신성력을 부여했다. 인간에게서 비롯된 인신이 100%의 확률로 개화하는 힘이 바로 신성력이었고, 인간은 신성력을 자기 뜻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다양한 방법으로 변환시키는 게 어려울 뿐이었다.

고로 레이시아는 당연히 그럴 자격이 있었다.

이미 그녀에게도 피의 잔을 내어주고 피의 거미줄로 연결이 된 상태였다. 이를 통해서 레이시아의 눈도 좋게 만들었다.

알게 모르게 레이시아는 탈인간급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후광을 전수하는 방법은 별것 없어요. 신성력을 그에게 부여하면 제가 틈틈이 알아서 내어주면 되니까요.”

드낙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서둘러 레이시아에게 전수해줬다. 그녀의 그릇이 커진다면, 다양한 능력을 통해서 아예 신경을 꺼도 될 터였다.

그날 밤에 도렌과 이스핀이 호수 성채에 도착했다. 대단히 늦었는데, 자신이 책임졌던 서부의 생존자를 단 한 명이라도 더 찾기 위해서 수색에 힘을 썻기 때문이다.

자정이 지난 시간이었음에도 드낙은 그들을 야밤에 찾아가서 마중을 나갈 정도로 총애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죄송합니다.”

도렌이 솔직하게 고개를 숙였다.

“모든 게 중립신 탓이다.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아니다. 내일 이야기하자. 힘들게 왔는데...”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도렌이 한 번 거부했다. 반면 가만히 보던 이스핀이 옆구리를 쳤다.

“어어, 넌 안 괜찮아?”

드낙이 이스핀을 보며 말하자 이스핀이 당연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요. 하하하. 다만, 동부왕을 애타게 기다리는 왕비님들의 눈치가 보여서...”

“괜찮아. 괜찮아. 오랜만에 마셔보자고.”

그렇게 말하며 드낙이 손에서 신성력을 뿜어서 둘의 피곤을 싹 가시게 하였다. 도렌과 이스핀의 눈이 흔들렸다. 마치 PTSD를 앓는 것처럼 보였다. 모두 게제라스 덕분에 생긴 PTSD였다.

“아! 그렇지, 게제라스도 부르자고. 요즘 사람이 없어서 편~하게 쉬고 있거든. 아예 그 집으로 가자.”

“예? 지금 시간에요?”

이스핀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미 드낙은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도렌이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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