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829화 (828/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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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월드

오크 주술사의 눈치를 본 규르소모스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워낙 긴장해서 실수를 하고만 것이다. 그만큼 드낙이 보여주는 영향력은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건 본능과 비슷했다. 중립신의 잔재가 드낙에게 남아있게 되었고, 이 세계에서 태어난 이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오크라도 그건 피할 수 없었다.

엘 마르토 카사다민의 피가 뿌려진 행성이었다.

녹색 도끼로부터 타투와 토템을 비롯해서 많은 걸 부여받았지만, 반마반신(半魔半神)의 격(格)과 마주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또한 현실적으로도 드낙에게 이미 패배한 것처럼 굴었다. 그건 대예언과 자잘한 단편적인 예언 덕분이었는데, 드낙과의 전투를 상정해봤기 때문이다.

그 길고, 짧은 예언 속에서 드낙은 그야말로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미치광이였다.

“승전을 축하한다!”

냉큼 규르소모스가 깜빡했던 승전을 축하해줬다.

“고맙다.”

드낙은 가볍게 이를 받아들였다.

“귀 큰 놈들은 싹 다 죽여버려야 하는 게 세상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아주 음흉한 놈들이다!”

“그래! 맞는 말이다!”

엘프에 대한 뒷담화가 나오자마자 드낙이 크게 동의했다. 신나게 엘프욕을 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서로 매우 만족한 표정이었다.

“요구조건은 그 두 개가 끝인가?”

“아니! 현상 유지 또한 원한다.”

“좋다.”

역시 예언으로 훑었기에 협상을 할 줄 알았다. 드낙이 원하지 않는 일을 요구하지 않았다.

“녹색 도끼는 여길 어떻게 생각하고 있지?”

“어쩌고 자시고도 없다.”

너무 많은 뜻과 의미를 담은 규르소모스의 말에 뒤에 있던 주술사가 외쳤다.

“그분은 우리들의 아버지시다! 돌아갈 곳을 마련할 뿐, 차원을 점령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으시다!”

자식 하는 일에 관여를 잘 안 하고, 폭압을 받으면 떨쳐 일어나지만, 이 또한 자주 보이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저 죽어서 돌아온 자식을 쓰다듬어줄 뿐이었다.

“그걸 어떻게 믿어?”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초월자의 싸움에는 관심이 없다?”

“<신들의 땅>에 단 한 번 행차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녹색 도끼는 중립이다. 건들지만 않으면 말이다.”

“어떨 때가 건드리는 건데?”

드낙이 흥미를 가지고 물었다. 녹색 도끼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아야지 이 땅에 오크가 살게 해줄 수 있었다. 그게 안 된다면 오크도 그냥 녹색 도끼가 지배하고 있는 곳에 보내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크로서는 자신들이 태어난 고향을 등지게 되지만, 드낙은 뒤통수가 얼얼한 상태로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보통은 의미 없는 학살이지. 압도적인 패배가 약속되어있다면 강림하여 반반싸움으로 만들어주신다.”

손을 주억거리며 규르소모스가 흉악하게 웃었다.

“전사의 길을 만들어주시는 분이지.”

드낙은 반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확신이 필요했다.

“녹색 도끼를 불러올 수 있나?”

“그건 많은 준비를 필요로 한다.”

“내가 지원해주겠다.”

확실한 매듭. 그것이 있어야지 드낙은 오크들을 인정할 수 있었다.

“그 확인이 끝나면 백설산맥과 주변 평야에 대한 영토를 인정해주마.”

“좋다.”

오크들이 합의했다. 오크들이 준비를 하는 사이에 드낙은 다이앤타를 비롯한 자식들이 보고 싶어졌다. 꼬물거리는 아기들은 언제봐도 행복했다.

‘이제 정말 끝이다.’

하나씩 정리한 다음 돌아가면 된다. 그리고 다른 종족과 힘을 합쳐서 지구로 향하는 길을 열 것이다. 동시에 이 차원을 노리는 다른 초월자로부터 승리할 방어 시스템을 건설하며 전종족 공통의 시스템 프로토콜 또한 개발해야 했다.

다종족(多種族)의 세상이 이곳이었다. 주력 종족을 밀기야 밀겠지만, 그 우위 싸움을 위해서 드낙이 약소 종족을 탄압하고, 죽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래서야 귀찮기만 할 뿐이다.’

최대한 많은 생명체가 천수를 누리고 죽는 세상. 그게 드낙이 원하는 것이기도 했다. 중립신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면서도 최대한 놀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

그 모순된 계획을 추진하려는 게 드낙이었다.

이미 오크 종족의 주력이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에 준비는 금방 끝났다. 통나무가 대전사들의 양어깨에 올려져서 옮겨지고, 노련한 주술사들의 손으로 토템이 완성되었다.

1024개의 토템이 자리잡혔다. 1024라는 숫자는 몇 가지 수학적 특징을 지니고 있었지만 드낙은 알지 못했다.

주술사들과 함께 드낙이 힘을 사용하자 토템에서 흙이 쏟아져 내려왔다. 그 중앙에 선 드낙의 몸이 곧 그 흙에 파묻혔다.

괴이한 것은 흙 속에서도 숨 쉬는데 무리가 없다는 점이었다.

쿠구구구...

땅이 울렸다. 동시에 드낙은 자신의 정신에 접속하려는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이를 열어주자 숲의 향기가 확 퍼져나가며 묵직한 도끼가 어둠을 쩍 갈라냈다.

드낙과 녹색 도끼 사이에 완충지대가 마련되었다.

절반은 드낙, 나머지 절반은 녹색 도끼의 정신이 마주하며 뒤엉켰다. 서로 우위를 잡지 않고, 균형을 맞추려는데 노력했다.

피 그리고 빛과 어둠이 뒤섞인 것이 혈관처럼 뻗어 나가고, 반대로 나뭇잎이 무성한 나뭇가지와 나무뿌리가 사방으로 돋아났다.

“녹색 도끼?”

모습을 드러낸 녹색 도끼는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털이 제법 있었다. 남자였지만 젖과 배가 퉁퉁하게 덜렁거렸고, 허벅지도 지방으로 가득했다.

썩 좋은 아빠로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누가 봐도 으레 보이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먹는 걸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았다.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다른데.”

얼굴도 평범에서 조금 후달렸다. 오크도 미남이 있었고, 추남도 있었는데 녹색 도끼는 애매했다. 다만, 전체적으로 맹~해 보였다.

“그렇다.”

중후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드낙은 팔뚝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셀 수도 없이 수라장을 건너온 듯한 절륜한 조언자를 마주한 기분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 있는 오크들을 이용해서 이 세계를 지배할 생각을 하고 있나?”

“너 하기 나름이지.”

녹색 도끼가 손으로 등을 긁으며 말했다. 입에서는 하품을 뿜어대었다.

“확답을 듣고 싶은데.”

그 말에 녹색 도끼가 흘흘 웃어 보였다.

“난 내 자식들이 뭘 해도 방해할 생각이 없다. 그저 그들이 날 필요로 할 때 상황을 보고 도와줄지 말지를 결정한다.”

“그 기준이 뭔데?”

“너도 부모가 되었으니, 곧 깨닫게 될 것이다. 자식을 대단하게 만드는 건 쉽지만, 자식에게 사랑받는 부모가 되기란 어려운 법이지.”

드낙은 그 뜬구름 잡는 말을 어렵지 않게 이해했다. 적어도 무슨무슨 법칙 같은 게 아니었다.

‘기본적으로는 방임. 큰 위협 속에서 개입의 경중을 나누어 도와준다.’

심하면 녹색 도끼가 스스로 빙의하여 오크들을 이끈다. 그리고 오크들이 죽으면 그들을 받아들이며 껴안아준다.

“놈.”

드낙이 하찮은 모습으로 자신을 속이고 있는 녹색 도끼를 욕했다. 그 모습에 녹색 도끼가 웃음을 크게 세 번 터트렸다.

“하하하!”

허나 모습을 본래대로 바꾸지는 않는다. 드낙은 녹색 도끼의 서슬퍼런 눈동자에 깃든 흉포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정신세계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녹색 도끼 스스로 멀어지고 있었다.

“더 할 말은 없는 거냐!”

“지키는 것보다 흩뿌리는 게 편하다. 그리고 차원을 침공하는 놈들을 조심해라. 남이 가꾼 밭을 서리하고 파괴하는 멧돼지 같은 놈들은 사정 봐주지 않는다.”

녹색 도끼는 그 말을 하고 사라졌다. 어떤 조언인지 드낙은 잘 알 수 있었다. 오크들은 전차원에 뿌려져 있다. 녹색 도끼는 그들을 상관하지 않는다. 죽으면 죽는 대로 자신에게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멸망의 기로에 있다면 빙의해서 도와주면 그만이고, 위기가 닥친다면 한 오크를 챔피언으로 삼으면 된다.

그게 녹색 도끼의 자식 사랑이었다.

야지(野地)를 내달리는 오크다운 방식이었다.

‘그걸 실천하라고 조언해주다니, 황당할 노릇이다.’

물론 그런 것도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방식만 취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동시에 드낙은 ‘문제’를 얻었다.

녹색 도끼의 방식.

중립신의 방식.

그리고 이제 드낙의 방식을 결정해야 했다.

‘내가 이 차원을 관리해야 한다.’

그 방식을 결정해야 했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필멸자들을 통해서 차원 방위를 하는 방법이었다. 허나 한계가 존재했다. 결국 그들은 자원일 뿐이라는 걸 초월자와의 전투로 깨달아서였다.

‘그래도 모이면 엘프처럼 초월자에게도 대항할 수 있겠지.’

그 궤도에 오르는게 중요했다. 너무 큰 문제였고,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드낙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모든 종족의 대표자를 뽑을 생각을 가졌다.

깜빡.

눈을 깜빡이며 현실세계에 돌아온 드낙을 이 주변에 있는 오크들이 모두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

“어떤 대화를 했나?”

모두 궁금한 눈치였다. 드낙의 힘이 없었다면 녹색 도끼와 대화를 나누는 건 대단히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애초에 잘 받아주지도 않는다. 무리해서 접촉하려고 하면, 그 힘으로 번성에 힘써라는 짧은 말만 나오고 끝이다.

살아있을 때, 오크들이 건강할 때는 무뚝뚝한 아버지가 녹색 도끼였다. 오직 그들이 녹색 도끼를 피맺힌 목소리로 외칠 때 극적으로 등장해야 하는 게 녹색 도끼였다.

그만큼 모두가 궁금해했다.

“대단한 신이었어. 딱 보자마자 알겠더라. 압도되는 느낌...!”

“오오오옷!!!”

드낙은 사회생활을 한 번 해주고, 오크들에게 미래에 대해서 짧게 이야기해줬다.

“착하게 살면 복이 온다는 말을 실현하게 해주겠다.”

중립신이 이미 행성작업을 7할이나 해뒀기에 이를 꾸준히 발전해나간다면 <테라>를 완성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세월은 어마어마하다. 비단 드낙만 노력해서 되는 일도 아니었다.

대신이 죽어서 완성하는 <테라>와 비슷한 테라가 만들어질 뿐이었다.

‘충분해.’

초고도로 발달한 사회를 만든다면, 솔직히 영토따위는 그렇게 많이 중요하지 않았다. 100평짜리 100층 아파트면 인구밀도를 극단적으로 높일 수 있었고, 마법을 통해서 도시의 단점도 줄이는 게 능히 가능했다.

‘엘프 사회를 봤기 때문에 난 가능하다고 본다.’

골램이 일을 하는 시대.

마력을 담은 칩이 화폐인 시대였다.

이를 봤기 때문에 드낙은 능히 이 행성을 키울 생각을 가졌다. 적어도 현대 지구와 힘과 경제에서 밀리면 안 된다. 종이 쪼가리보다 훨씬 우월한 가치를 지닌 마력칩을 화폐로 삼는다면 현대 지구는 그 칩 하나를 위해서 엄청난 대가를 지급해야 할 터였다.

이는 곧 강력한 경제 방어도구였다.

“자색 대포는 쓸 수 없게 되어버렸구먼.”

자색 대포를 개발하고 있던 드워프들이 구경을 나와 있었는데, 맥빠진 소리를 냈다. 그렇게 열심히 ‘대예언’을 믿고 개발에 착수했는데, 쓰지도 못했다.

“자주포다!”

드낙이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냈다.

“그리고 자주포는 앞으로 차원 탐색을 진행할 때 아주 요긴하게 쓰일 거다.”

아득히 먼 거리를 뛰어넘어 타격하는 자주포는 강력한 방위 수단 중 하나였다. 앞으로 꾸준히 계속 개발할 생각을 가졌다. 차원을 침공하는 놈들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수 있어서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

‘우주에도 진출을 하는 게 좋겠지.’

마법은 훌륭한 우주 개척 수단이 될 수 있었다. 중력도 손쉽게 유지할 수 있고, 대기권을 돌파하는데에도 어려움이 없다. 수학? 그런 거 필요 없고 힘으로 오르면 된다.

드낙도 있어서 일단 올려놓고 계속 확충해나간다면 테라 옆에 거대 우주 거주구를 만드는 것도 쉬울 터였다.

‘악마가 침공해도 화력으로 쓸어버리면 꽁지가 빠지게 튀겠지.’

악마의 목적은 업의 수급이다. 사업하는 입장에서 불모지에 돈을 쏟아붓는 일은 피해야 할 일이다. 그게 악마에게는 자신들의 권속들이다.

중립신이었다면 차원을 막으면 그만이지만, 드낙은 지구로 가야 했기에 닫을 수 없었다. 고로 수많은 준비를 해야 했다.

‘오크들의 생명력을 생각하면 우주 방위군으로 오크를 쓰고 싶은데.’

절로 드낙의 눈이 오크들의 몸을 훑었다. 시선을 느낀 오크들은 옷을 여 맸다. 기분 나쁜 시선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을 하지 않고, 현상 유지에, 사실상 항복이나 다름없었다.

‘오크 인구가 포화상태에 돌아가기 전에 우주 공중 요새 프로젝트를 시작해야겠어.’

호전적인 오크들이었다. 그들을 계속해서 관리하기에는 귀찮음이 컸다.

“지하 연합과 계속 교류해라. 그리고 종족 대표자를 뽑아라. 규르소모스, 네가 계속 대표자를 한다면 그렇게 하고.”

드낙의 말에 반론을 제기하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테라의 오크 대표자는 규르소모스가 되었다. 동시에 드낙은 오크들에게 외쳤다.

“평화와 자유를 위해서 살아가라! 그리고 날 귀찮게 하지마라! 기본만 잘하자!”

그 말에 오크들이 무기를 들어 올리며 드낙의 이름을 외쳤다.

자신들의 영토를 약속받았다. 그것만으로도 드낙의 이름을 외칠 마음이 절로 일어났다. 드낙은 곧바로 동부 왕국으로 향했다. 인간 중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곳이기도 했다.

대부분이 죽어버렸고, 남은 생존자는 고작 수천에 불과했다.

자신의 손으로 쥐어짜서 써버렸지만, 드낙의 표정에는 참담함이 있었다. 호수 성채에는 드낙보다 먼저 온 불청객이 있었다.

‘이런 씹?’

드낙의 눈썹이 절로 꿈틀거렸다. 다이앤타를 품에 안은채 덩실덩실 거리고 있는 세파리아스가 눈에 들어왔다.

“오~구! 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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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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