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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828화 (827/1,239)

강철의 전사 82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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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사령관 칼리스투스(Callistus)〉. 아름다운 칼리스투스라고 불리며 복잡하고 다채로운 재능을 지니기 위해서 무성(無性)이지만, 대단히 여성적인 모습을 지닌 자였다.

그가 깊게 조아렸다.

상황이 급변한 상황에서도 여기에 도달했다. 검은 잔을 받아든 형제들이 핏물로 죽어갔음에도 드낙 앞에 섰다.

초월자들의 전쟁에서 부질없이 부러지는 게 필멸자였다.

“저희를 받아주십시오.”

남은 건 굴복뿐이다. 세상, 그 자체가 된 드낙을 거부한다면 나머지도 죽을 뿐이었다. 드낙은 그들에게 몇 가지 당부했다.

“너희들이 내 밑에서 나를 위해 살아간다면 몇 가지를 고려해서 확실하게 이행해야 한다.”

“말씀만 하십시오. 당신이 곧 진리입니다.”

칼리스투스가 아는 한 그를 이길 수 있는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주 먼 곳에서 잠들고 있는 종족, 드워프라면 가능할지도 몰랐지만, 그들이 드낙을 적대시할지는 의문이었다.

운이 필요한 일에 신경을 쓰는 건 어리석었다.

매우 저자세인 이들을 보며 드낙은 코를 쓱 만졌다. 워낙 몸이 거대해서 그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대단했다.

“뭐든지 기본만 해라. 큰 문제 없이 살아간다면 나도 너희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을 생각이다. 문제가 생기면 나한테 먼저 말하고, 그다음에 행동해라. 알았어?”

“예.”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칼리스투스는 받아들였다. 뒤에 있는 에르하르트는 불만이 있는 표정을 지었지만, 드낙에게 대들지 못했다.

이들은 이미 그런 각오를 하고 이곳에 왔다.

“이번 경우는...”

드낙이 조금 말을 골랐다. 엘프들에게 약속했지만, 그것을 지키지 못했다. 오크들의 대예언(大豫言)에 너무 집착한 것부터 일이 크게 틀어졌던 걸지도 모른다. 그 꼴만 안 보자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망가진 느낌이었다.

“너희, 엘프들에게 약속했던 것을 이루지 못하게 했기에 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는 내 빚이기도 하다.”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중립신을 내친 것은 저희 엘프들입니다. 그는 엘프의 멸망을 유도했고, 이렇게 몇천 명이라도 살아남았습니다. 멸망의 위기를 벗어났으니, 빚은 없으나 마찬가지입니다.”

“이해해줘서 고맙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그들에게 있어서는 드낙이 사과하는 게 이상했다. 믿음 없는 자비는 그저 부담스럽고, 거북할 뿐이다. 대가 없는 상냥함은 냉정한 엘프들에게 속이 쓰릴 뿐이다.

드낙과 엘프들은 시간이 필요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시간 속에서 그들의 관계는 빠르게 달라질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생존한 타락엘프들도 디아볼로스로 만들고 싶지만 그래서는 안 되겠지.’

어차피 신이 되면 떠날 이들이다. 그렇게 여겼기에 조금이라도 붙잡아둬서 이득을 보고 싶었다. 미안한 건 미안한 거고, 이득은 또 달랐다.

검은 잔을 보유하면서 타락한 엘프와 아예 격이 달라진 권속으로 올라선 것이 디아볼로스였다. 둘의 차이는 크다.

“숫자가 적으니까, 제국 동쪽에 자리를 잡고, 자치권을 행사해라. 그리고 신이 되도록 노력하라. 신의 반열에 오르면 이 차원계를 떠나는 것도 허락해주마. 단, 욕심 때문에 나중에라도 찾아오면 안 된다.”

“예.”

칼리스투스는 짧게 대답했다. 바라던 바였다.

엘프들이 날아올라 사라지고, 대장쥐를 비롯한 피숨결 검은 뿔쥐 70만 마리가 속속들이 도착하여 집결했다. 이들은 전원 진화를 마친 상태였다. 이 일대에 있는 엘프 시체를 먹어치운 드낙이 그 힘을 대부분 검은 뿔쥐들에게 줬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드낙은 그들이 가장 알고 싶어하는 것부터 하나씩 말해줬다.

“모든 핏빛쥐는 죽었다. 검은 돔에는 소수의 검은 뿔쥐와 10명의 위원들이 살아있다.”

대장쥐까지 합치면 리전의 위원들은 모두 살아남았다. 사실상 이곳에 순교하러 온 검은 뿔쥐들만 많이 살아남았다.

본능적으로 충성심과 신앙에 따라서 쥐어 빨렸기 때문에 드낙도 놀라울 정도로 선별되어있었다.

“일단은 검은 돔으로 돌아가라. 그곳에서 날 기다려라.”

“예!”

대장쥐가 크게 소리를 냈다. 드낙은 70만에 달하는 검은 뿔쥐들을 바라보았다. 모두 호흡할 때마다 피연기를 뿜어냈다. 압도적인 비주얼이었다.

“고맙다. 너희들이 와줘서 더 수월하게 일을 끝낼 수 있었다. 반드시 너희들이 보여준 용맹에 대한 보답을 해주겠다.”

“뜨나아아악!”

모두 할버드를 들어 올리며 괴성을 내질렀다.

“리고! 너도 마찬가지다. 일단은 돌아가라. 하나씩 상황을 해결할 테니.”

“알겠습니다!”

그것으로 일단은 상황을 뒤로 미뤘다. 하나씩 해결을 볼 생각이었다. 가장 우선시 되는 건 이 육체였다.

대신육체(大神肉體).

중립신(中立神), 엘 마르토 카사다민의 전투용 육체였다. 대(對) 악마 결전용 병기인 셈이다. 육체가 있는 편이 악마와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는데, 드낙과 중립신이 지닌 힘을 비교하면 중립신이 높았기 때문에 스펙싸움으로 끌고 갈 수 있어서였다.

‘전초극의 권능.’

대신육체에는 당연히 전초극의 권능이 녹아 들어가 있었다. 등 뒤에 정신체를 놔두고 육체와 정신을 이중으로 휘둘러서 싸우는 중립신의 모습은 대단히 압도적이다. 알아서 육체가 싸우도록 전초극의 권능이 탑재된 것이 대신육체였다.

‘하지만 아직은 난 사용할 수 없다.’

제대로 그 권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가 없었다. 중립신의 것이었고, 단순할 것처럼 보였던 전초극의 권능은 보면 볼수록 어려운 권능이었다. 효과만 간단할 뿐, 거기에 도달하여 사용하는 건 가히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디 한 번...’

그래도 부딪쳐보기로 했다.

전초극의 권능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서 다른 이들의 오른손에 작게 담게 하는 것만으로도 전투력이 크게 상승할 수 있어서였다. 이제 이 차원을 지켜야 하는 게 드낙의 입장이었다.

“어어억!”

발동하자마자 전신이 꺾였다. 목이 돌아갔다.

한 순간의 일이었다. 주체를 못 하고 사방팔방으로 날뛰는 전초극의 권능이 주는 방향성에 육체가 난리가 났다. 〈전투에 대한 시간선〉을 깊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전신(全身)에 전초극의 권능을 달고 사용하는 건 매우 위험했다.

각 육체의 부위마다 최적의 움직임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하하하!”

세파리아스가 쾌활하게 웃었다. 그 모습에 드낙의 꺾였던 목이 돌아오며 피를 토해낸 드낙이 세파리아스가 개입했기에 더 자극적으로 몸이 따로 놀았던 것을 깨닫고 잔뜩 화를 냈다.

“무슨 짓이야!”

말은 그렇게 소리를 질러도 드낙에게서 살의는 일어나지 않았다. 마음의 큰짐이 사라져버려서 아주 후덕한 품성을 지니게 되었다. 늘어졌다는 표현도 들어맞았다.

“뭘, 주제 넘치는 힘을 가지려는 놈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줬을 뿐이다. 그것보다 나도 공적이 있는데, 그냥 넘어갈 생각은 아니겠지?”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그 말에 세파리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중립신이 남긴 인간들을 지배하여 신제국의 황제가 되고 싶다.”

“그놈의 황제...”

드낙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세파리아스는 그런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것보다 세파리아스, 너도 신을 목표로 하는 게 어때? 내가 팍팍 밀어준다니까?”

“시끄럽다. 네 녀석의 도움 없이 초월자가 될 생각이니까.”

“야, 그건 아니다. 내가 후원을 엉? 따악 해주면 쉬운 길을 걸을 수 있다니까? 힘들게 등산하는 것보다는 편하게 가는 게 좋잖아?”

“흥.”

세파리아스가 고개를 살짝 틀었다.

“그래라. 알아서 잘해 봐. 중립신이 남긴 인간들도 정리를 하기는 해야 했는데, 네가 다 책임져주면 나야 고맙지.”

드낙은 대신 육체를 줄이기 시작했다. 살이 접히고, 접히고 뼈가 서로 잡아먹으며 줄어 들어갔다. 곧 인간의 탈을 쓴 반마반신(半魔半神)이 모습을 드러냈다. 너무 커지고 진해진 영혼이 몸에서 풀풀 나부끼고 있어서 흰색 기류가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이래서야 인간이라고 할 수가 없네.’

완전히 다른 종족이 되어버렸고, 숨길 수도 없었다. 만약 숨긴다면 마땅히 그 격에 맞는 힘을 소모해야 했다. 더는 편법을 취할 수 없었다.

“레우치터. 넌 세파리아스를 데리고 신제국으로 향해라. 남부 왕국의 인간들은 시간을 들여서 신제국으로 보내도록 할게.”

“알았다.”

세파리아스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강제이주나 다름없었지만, 이 세상의 필멸자들 중 그나마 많은 개체를 지닌 게 인간이었다.

‘그냥 한곳에 모아서 집중적으로 통치하는 게 더 편할지도.’

지방상생, 그런 것을 고려하기에는 귀찮음이 컸다.

무엇보다 드낙은 해야 할 일도 많았다.

‘로망도 있지.’

뒤섞여 살다 보면 모든 종족이 그럴듯하게 함께 살아갈 수 있어 보였다. 물론 당장 그런 말을 세파리아스나 그 외의 이들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피부색만 달라도 분쟁이 끝없이 일어나기 때문에 분단된 채로 최소한의 교류를 하는 것도 고려해봐야 할 일이었다.

홀로남은 드낙은 주변을 둘러봤다.

세상은 변한 게 없었다. 태양은 뉘엿뉘엿 기울어지고 있었고, 바람도 여전히 불어와 그의 피부를 스치고 지나간다. 피냄새가 맡아지는 것이 방금 있었던 일이 현실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구로 향한다. 그리고 내 여행의 종지부를 찍는다.’

중립신의 대계(大計)는 끝났다. 그가 남은 걸 자신의 것으로 만들며 종족을 부흥시키고, 지구로 향해서 자극적이고 소비성향이 짙은 그 문화를 들여오는 일만 남았다.

드낙은 오크들이 있는 백설산맥으로 향했다. 평야 몇 개를 보유하고 있는 오크들은 이 전쟁에서 가장 적은 피를 흘린, 아니 거의 흘리지 않은 종족 중 하나였다.

‘대예언을 나 몰래 했을 수도 있지.’

이제야 생각이 닿았지만 오크 놈들도 무시무시한 놈들이었다. 쥐죽은 듯이 있는 것부터 싸늘했다. 그렇기에 드낙은 가장 먼저 그들을 해결해야 했다.

‘피를 흘리지 않았으면, 다른 거로 해결을 봐야겠지.’

드낙의 눈이 탐욕으로 번졌다.

*

백설산맥(白雪山脈).

그곳에서 오크들의 영향력은 빠르게 줄어들고, 평야로 거처를 옮기는 오크들이 많았다.

그나마 오크가 많이 있는 곳은 자색 자주포가 건설된 거대한 산요새(Mountain-fortress)였다. 하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어마어마한 오크들의 인파가 모여있었다.

우중충한 날이었기에 더더욱 짙은 녹색의 오크들이 산 하나에 가득 몰려있는 광경은 썩 좋은 풍경은 아니었다. 마냥 신기할 수가 없었다.

마치 녹색 물결을 보는 것처럼 대단히 많은 오크들이 잔뜩 우글거렸다.

그곳에는 이번에 족장 중의 족장, 대족장이 된 규르소모스(Guurshormos, 다리 힘줄)가 떡하니 정상에 서 있었다.

수많은 예언과 몰래 진행한 대예언을 통해서 그간을 모두 지켜본 오크들이 한 일은 〈침묵〉이었다.

욕할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불합리하고 겁쟁이라 비난할 수 있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자기 종족을 불구덩이 속에 집어넣는 선택을 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거기에 드낙은 애초에 오크들의 참전을 종용하지 않았고, 그들을 녹색 도끼에서 빼내 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 소홀함이 만들어낸 결과일 뿐이다.

“왔다.”

규르소모스가 침을 삼키며 말했다. 이제, 마지막 관문이 남은 셈이었다.

야알타를 외치며 싸워야 할지, 그게 아니라면 계속해서 종족이 부흥할 수 있을지가 결정 난다.

우중충한 먹구름이 쩍 갈라지며 햇빛이 쏟아져나왔다. 작은 몸을 지닌 드낙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그 주위로 무형의 정신체가 일렁거렸다.

마치 날개처럼도 보였지만 그냥 정돈이 안 된 난잡한 정신과 영혼에 불과했다.

아직 반신(半神)이고, 그 역량조차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모습이었지만 오크들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초월자, 반갑다.”

규르소모스의 말에 드낙이 턱짓했다. 아주 건방졌지만, 오크들은 지금 화를 낼 기분도 나지 않았다.

긴장한 티가 역력한 오크들을 보며 드낙은 수월하게 그들에게 본론을 꺼낼 수 있었다.

“너희들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고 싶으냐? 대예언을 통해서 많은 걸 봤겠지.”

규르소모스가 나섰다. 그가 양피지를 꺼냈다. 주술사들이 심혈을 기울어서 만들어준 것이었다. 대놓고 컨닝하겠다는 심보였지만, 너무 자연스러워서 딴지를 걸지 못했다.

“어...우리들의 요구 조건은 자유다!”

“......그 다음은?”

일단은 나쁘지 않았다. 자유는 드낙도 오랫동안 갈구해온 것이기도 했다.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때 주술사가 손짓 발짓을 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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