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82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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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낙이 울부짖었다.
세상이 그를 두려워하듯이 굴었고, 실제로 엘프들은 대신육체(大神肉體)를 파괴할 수가 없었다. 1만이 모여서 골램을 일으킨 것이 마지막 발악이었는데, 너무나도 쉽게 무너져내렸다.
당황해서 육체가 모두 완성되기 전에 드낙의 앞에 두었기 때문이다.
변신하려는 마법 소녀를 기다려줄 인성이 없는 게 드낙이었다. 당연히 완성 전에 곤죽을 내놓았다.
엘프들이 너무 흩어져 있어서 제대로 된 곳에 소환 마법이 이루어지지 않은 탓도 컸다. 1만 명의 엘프가 모여서 골램을 소환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 시작점이 조금만 달라져도 소환되는 곳이 크게 달라진다.
다시 소환하기에는 세파리아스라는 변수가 존재했다. 엘프들이 ‘우세’를 점하는 곳을 선제타격하는 세파리아스의 질주는 오로지 피와 죽음을 일으키는 살육의 길이었다.
거기에 검은 뿔쥐들이 엘프들의 시체를 먹고, 받아들이며 피숨결 검은 뿔쥐가 되는 것도 엘프들에게는 끔찍한 일이었다.
악마적 인자를 이미 받고 있지만, 종족값이 낮은 검은 뿔쥐에게 중립신과의 전투를 통해서 죽은 엘프가 너무나도 많아서 산과 골짜기, 피의 강을 만든 이런 환경은 진수성찬이 가득한 언덕과 다름없었다.
두 발을 그저 내리고, 달리는 것만으로도 엘프들의 피를 흡수할 수 있었다.
악마로서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엘프의 피를 조금만 받아들여도 비약적인 진화를 이룰 수 있었다. ‘피숨결’은 공통적인 발전이었다면 그 외에는 모두 제각각 진화를 이루어냈다.
몸집이 커지고, 다른 신체가 모습을 드러내고, 꼬리에 뿔이 더욱 돋아나거나 좁쌀과도 같은 눈이 눈 주변에 일어나는 등의 격렬한 진화도 존재했다.
싸우면 싸울수록 점점 격차가 좁혀지고 있었고, 송곳처럼 육체와 그림자에 치우친 전투 방향성을 지닌 검은 뿔쥐들은 전투에 있어서는 그렇게 차이가 나지도 않았다.
끝없는 난전 속에서 중심이 계속해서 드낙과 세파리아스에게 꺾이고 파괴되는 엘프들은 결국 전략적 후퇴를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살아서 미래를 도모하자!”
‘지금은 이길 수 없다.’
‘내가 살아야 한다. 나에게 엘프 지식이 많이 담겨 있어.’
다양한 변명들이 오고 갔다. 완전히 무너진 엘프들의 진형은 우세를 점하는 곳이 거의 없었다. 만들어지는 족족 부서졌기 때문이다.
“숭고한 사명을 이행하라!!!”
다급한 상황에서는 예의범절이라는 게 없었다. 괜히 변명거리 하나 내뱉고 자신을 보존하려 했다. 숫자가 많았을 때는 이길 수 있다는 보장과 엘프들의 영광이 크게 보였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건 없었다.
부러뜨려진 가치를 위해서 깊은 구덩이에 들어갈 엘프는 많지 않았다.
있다면, 〈엘프 진공군(進攻軍)〉 소속의 핵심 지휘권을 가지고 있는 18인의 벨룸 퓨에르(bellum puer)와 그들의 휘하에 있는 어린 엘프들이 전부일 것이다.
언제나 젊은 피는 사회에 뿌리기 좋은 거름이며, 이를 두고 ‘수혈’이라고 지칭하기에도 좋았다.
엘프들이 사방팔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하자 가장 먼저 분노한 건 드낙이었다.
‘이런 개새끼들을 봤나?’
가장 있어 보이는 새끼들이 빤스런을 치는 모습은 실로 화가 나는 일이었다. 도망칠 놈이 빤스입고 도망가는 것과 도망쳐서는 안 될 놈이 빤스입고 도망가는 건 큰 차이였다.
엘프는 도망쳐서는 안 될 놈에 속했다.
그들은 이 세계를 지배했고, 암중으로 모략하며 다른 필멸종족을 제어했다. 오크는 척박한 백설산맥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고, 진출을 하더라도 금방 막혔다.
인간은 실험 도구로 사용되었다.
엘프 노괴들은 동족조차도 인공으로 만들어 개처럼 휘둘렀으니, 그때 엘프에 대한 환상이 깨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어느 정도 남아있는 편이었다.
그게 완전히 붕괴되었다.
“싹다아 잡아 죽여라!!”
드낙이 쿵쿵거리며 달려나가서 훌쩍 뛰어 날아서 도망치는 엘프를 주먹으로 휘둘러서 떨어뜨리고 마법을 사용해서 이동경로를 방해하기도 했다.
수많은 검은 뿔쥐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모두 잡을 수는 없었다. 대략 30만이 넘는 엘프들이 도망쳤다.
차근차근 잡아서 반드시 죽여야 했다. 일정 숫자가 넘어가면 엘프는 매우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중립신이 죽은 이상 엘프들을 멸망시키는 건 이미 결정된 상태였다.
‘미적지근한 드워프들과도 확실하게 매듭을 지어야겠지.’
그건 드낙에게 깊은 고민이었다. 만약, 드워프들이 중립신의 이름을 외치며 자신을 죽이려 든다면? 그들을 처리해야 했다. 드낙은 드워프들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그들의 나태함과 귀차니즘은 드낙이 가장 깊게 이해하는 감정이기도 했다.
전투는 끝이 났다. 엘프를 추적하는 일도 보름 뒤면 끝내야 했다. 최대한 많은 엘프를 잡겠지만 그에 반하여 많은 엘프가 살아남을 터였다.
드낙은 대신 이 지역에 쌓여서 널브러진 엘프들의 시체로 시선을 돌렸다.
그 수는 어마어마했다. 수백만? 수천만? 몰랐다. 엘프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있었고, 중립신은 이들을 처리하는 기간만 30일을 잡아뒀다.
‘엄청난 시체들이다.’
드낙은 그 시체를 모조리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처음 시체를 먹으며 벌벌 떤 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인간이기에 적응력이 빨랐다.
대신육체가 변모하여 엘프들의 시체를 흡수하고, 드낙의 입이 엘프를 집어삼켰다. 그 모습을 세파리아스가 가만히 구경했다.
100m에 달하는 거대한 거인이 엘프를 집어삼키는 광경은 공포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지만, 세파리아스는 무덤덤했다. 오히려 그는 이 이후를 생각하기 바빴다.
‘드낙은 악마가 먼저 되어서는 안 되는데.’
신과 악마의 기질 차이는 확연하다. 드낙은 개성이 매우 뚜렷해서 그런 기질에 잡아먹히지는 않겠지만, 영향은 받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지금 움직여야 했다. 드낙을 말리기보다는 지금 먹고 있는 엘프 시체가 가진 힘을 다른 곳으로 흘려내야 했다.
고집불통 천방지축 어리둥절 드낙은 막으면 막을수록 어디로 튈지 모르는 슬라임과 같은 놈이었다. 세뇌에서 풀려나서 전처럼 돌아갈까 싶었지만 기우였다.
이미 드낙은 그전과 확연하게 다른 놈이 되어버렸다. 10년 전과 10년 후의 자신은 너무나도 달라서 동일시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은 매 순간 변화해나가는 종족이었다.
중립신의 세뇌로 미친 망아지 새끼가 된 건 드낙에게 장점도, 단점도 상관없이 그냥 그렇게 녹아버린 듯했다.
“어이! 드낙!”
세파리아스가 그를 부르자 드낙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거대해지면서 건방이 하늘을 찔렀다. 인간이었을 때보다 수백 배에 달하는 거대한 육체 출력을 내뿜는 만큼 세상이 쉬워 보이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거인이라는 것들이 하나같이 건방진 놈들이라는 걸 생각하면 어렵지 않게 납득할 수 있었다. 그저 덩치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지고 사회가 자신을 짓누르는 모습도 달라진다.
“가자.”
그 말에 옆에서 우두커니 서 있던 레우치터가 인상을 썼다. 하지만 그는 손쉽게 세파리아스의 날개가 되어서 이동해줬다.
그저 잠깐 함께 전장을 누빈 것으로 이미 세파리아스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터무니없는 카리스마였다. 거지꼴로 성에 들어가서 기사 여럿을 아래에 두고 성주의 목을 벨 수 있는 게 세파리아스의 패도(覇道)였다.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아도 그 강함에 매료되어버렸다.
자신보다 느리고 격도 낮고, 능력치도 변변찮은 게 자신보다 강하다. 그런 세파리아스의 명령을 듣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흐흐흐.”
드낙이 웃었다. 세파리아스가 진짜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건방 떨지 마라, 이놈.”
“엉? 뭐라고? 아! 이럴수가! 나보다 100배나 작은 세파리아스가 말을 하고 있잖아! 어마나 세상에! 이건 정말 엄청난 일이야!!!! 너무 작아서 들리지 않는다고!”
어깨를 흔들며 지랄병하는 드낙을 본 세파리아스가 눈을 질끈 감았다. 모든 일이 끝났고, 이제 남은 건 없었다. 그 때문에 드낙은 헤벌쭉해진 상태였다.
“아직도 엘프를 쫓고 있는 쥐놈들이 있지 않나. 여기서 얻은 힘은 그들에게 주는 게 어때?”
“응. 나도 그러려고 하고 있어.”
유일하게 그를 위해서 멀리까지 와줬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오지 않았다면, 이곳에 온 검은 뿔쥐들은 모두 죽었을 것이다.
‘장렬하게 산화했겠지.’
단순히 한 마디로 끝낼 정도에 불과한 공을 세웠을 터다. 허나, 그 속에 100만에 달하는 검은 뿔쥐의 죽음이 있었다. 마왕 발라쿠 전에서는 핏빛쥐들이 그렇게 당했지만, 그것보다 상위종이라고 할 수 있는 검은 뿔쥐와 대장쥐가 순교할 뻔한 이번 전투는 드낙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렇게 되지 않고, 대부분이 살아서 다행이다.’
많은 검은 뿔쥐가 죽었지만 그래도 산 검은 뿔쥐가 더 많았다는 게 안심되는 일이었다. 또한 피숨결 검은 뿔쥐라는 새로운 상위종이 되었다.
이를 생각한다면 솔직히 말해서 엘프들을 생산해서 검은 뿔쥐에게 보급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잔인하지만, 앞으로의 삶을 생각하면 강력한 권속이 필요했다.
검은 뿔쥐들은 그런 큰 힘을 얻을 자격이 있었다.
결코 드낙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엘프만큼 종족값을 높여야겠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지하 요새에서 오우거 리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휴우! 전투가 끝나서 겨우 나왔다!!!”
리고가 흡후, 흡후 거리며 상쾌한 공기를 맡았다.
“어, 네가 왜 거기서 나오냐?”
드낙이 황당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이에 리고가 서둘러 달려왔다.
“아니, 대체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덩치가 커졌습니까!”
절로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왜 거기서 나왔어?”
드낙이 재차 물어서야 리고가 대답했다.
“저 병신머저리 같은 공중 요새를 운용을 해야 하는데, 도움을 달라고 해서 참가했습니다. 나중에 아주 후하게 대우해주겠다고 해서...”
드낙은 아차 싶었다.
그렇다. 아무리 지하 연합이 대단하다고 해도 한계가 존재했다. 그 한계를 초월하기 위해서는 다른 요인이 필요했다.
〈검은 돔〉은 오우거를 끌어들이기로 한 것이다. 두둑한 보상은 오우거의 자치권 혹은 독립일 터였다.
‘뭐 상관없지.’
그걸 수긍하고 제대로 일을 마친 리고는 협력 가능한 오우거였다. 그들에게 자유를 주는 건 나쁘지 않았다.
“좋다! 그들이 약속했던 걸 나도 지키도록 노력하겠다!”
드낙이 대범하게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말했다. 검은 뿔쥐의 약속은 곧 자신의 약속이기도 했다. 그만큼 검은 뿔쥐와 드낙은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는 관계가 되었다. 피로 이어진 혈맹국이나 다름없다.
“그렇게까지 인정을 해주시다니, 마음이 크게 놓입니다.”
“뭘 원하느냐?”
“오우거가 마음 편히 살아갈 땅을 원합니다. 자식이 생기니까, 더더욱 안전한 삶을 원하게 되었습니다.”
“쉬운 일인걸.”
“감사합니다!”
드낙이 크게 웃었다. 그리고는 리고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혼자서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시체를 10일간 먹어치웠다. 나중에 가서는 말 그대로 몸을 불도저처럼 만들어서 밀어 다니며 흙이랑 마구잡이로 먹어치우기도 했다.
그 천박함에 세파리아스가 눈을 찌푸린 건 당연했다.
무슨 식으로든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는 자본주의식의 결정방식을 극도로 혐오할 것이 분명한 게 세파리아스였다. 그렇기에 시체를 먹어치우는 목적을 해결하기 위한 드낙의 거침없는 행동은 썩 귀족답지 못했다.
엉덩이를 하늘을 향해 올리고 입을 땅에 처박으며 질주하는 미친놈을 박수치며 좋아하는 또라이는 세상에 적은 법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했기에 드낙은 예정보다 빨리 도주 엘프들을 추적하는 검은 뿔쥐들의 종족값을 높일 수 있었다. 먹어치운 만큼 그들에게 힘을 준 것이다.
그 덕에 보름의 추격으로 25만에 달하는 엘프를 잡아 죽일 수 있었다. 살아남은 엘프는 고작 5만에 불과했다.
단번에 약소종족으로 내려가 버렸다. 앞으로도 차근차근 엘프를 찾아 죽여 말끔하게 멸망시켜야 했다.
‘언제 다시 반란을 일으킬지 모르니까.’
중립신조차도 배신한 게 엘프들이었다. 그들을 재사용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동시에 살아남은 디아볼로스와 엘프가 드낙에게 도착했다. 그들의 숫자는 고작 2,300명에 불과했다.
드낙이 그들을 살폈다. 하나 같이 참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들은 살아남은 엘프 진공군들이었다. 엘프 종족에게 의해서 강제로 전쟁에 동원된 젊고 어린 엘프들이다.
드낙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에게 연결되어 있는 놈들 중 살아남은 디아볼로스와 검은 잔을 받아들인 타락엘프를 파악해나갔다.
‘대부분 죽어버렸네.’
다른 도시에 있던 디아볼로스들은 일찌감치 녹아 죽어버렸고, 그 외에 검은 잔을 받은 엘프는 대부분이 인간보다 먼저 쥐어짜졌다.
디아볼로스 여왕으로 지명한 락테아 시오 그리고 자신과 함께 엘프 제국에 따라온 리산드로스과 5명의 디아볼로스. 그들이 살아남은건 당연했다. 드낙과 어떻게든 얽혀있으면서 정을 쌓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엘프진공군 소속의 18인의 벨룸 퓨에르(bellum puer)였다.
이들은 드낙에게 자신들의 순수함을 증명했다. 자연스럽게 엘프 진공군 소속의 젊은 엘프들도 2200여명 정도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게 드낙이 허락한 엘프들이었다. 그 외의 엘프는 모조리 죽었던 것이다. 고로, 이들은 자신들의 동족이 죽어 나자빠졌음에도 드낙에게 스스로 찾아왔다.
“중립신과의 전쟁이 끝났다. 너희들은 어떻게 하고 싶으냐?”
그 말에 총사령관 칼리스투스가 앞으로 나서서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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