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82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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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하아!”
피연기를 내뿜으며 대장쥐가 질주했다. 그 눈에 엘프들이 하늘을 수놓는 수많은 다수마법과 대인 마법이 보였다. 또한, 수많은 종류의 방어 마법을 사용하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대장쥐는 그런 엘프들의 모습을 보며 검은 뿔쥐의 승리를 9할로 점쳤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엘프들은 이런 ‘동등한 전투’를 경험하지 못한 듯했다. 반면 핏빛쥐들은 언제나 강적과 싸웠다. 무엇보다 〈마왕(魔王) 발라쿠〉와의 결전(決戰) 경험은 엄청난 깨달음을 그들에게 줬다.
그 전략적 깨달음은 엘프와의 전투에서도 사용됐다.
‘어리석은 놈들.’
엘프를 어리석은 놈으로 낮춰서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엘프가 하는 짓은 자신들의 장점에 대한 지대하고 오만했다. 누구를 표적으로 삼지 않은 바보같은 다수 마법과 누구를 표적해서 쏘는 대인 공격 마법으로 나누어졌고 심지어 방어 마법까지 쓰고 있었다.
생존 본능에 따른 힘의 분배는 3갈래로 나누어져 분산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게 되면 검은 뿔쥐에게로 투입되는 공격력이 실질 엘프들이 가진 힘의 절반밖에 투입되지 못한다. 엘프가 전력으로 검은 뿔쥐와 부딪치지 않고 힘의 절반으로만 때리는 격이었다.
‘엘프의 무서움은 마법이 가장 1순위고, 영혼 이동술이 2순위다.’
마법은 타고난 것이고, 영혼 이동술은 노력을 해서 얻을 수 있는 몇 없는 기술 중의 하나였다. 영혼부터 먼저 이동해서 육체를 잡아당겨서 초월적인 스피드를 이룩하게 하는게 영혼 이동술이고 모든 엘프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즉 공통된 전력으로 치기 어려웠다.
고로 남은 건 마법 하나뿐이다.
전방위에 쓸 수 있는 수재들이 엘프라는 종족이었기에 특출난 건 그것 하나뿐이었다. 영혼 이동술은 모든 엘프가 사용할 수 없으므로 논외다. 〈예외〉에 해당되는 것에 불과했다.
‘그걸 분산해서 사용했다.’
어리석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엘프들에게도 변명의 여지는 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서 무리가 없어서였다.
반대로 엘프들은 진정으로 자신들과 맞부딪칠 군대와 마주한 것이다.
대장쥐의 손에서 나뭇잎이 쏟아져나오고, 다리에서는 갈색의 빛무리가 나무 뿌리처럼 돋아나더니 뭉쳐졌다.
주력(呪力).
주술을 사용하기 위한 자원이었고, 검은 뿔쥐가 되면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힘 중의 하나였다.
탁, 타닥!
고블린들에게서 배운 발바닥 주문법이 대장쥐의 몸에서 이루어졌다. 이는 하나의 흐름이 되어 주술로 이어졌다.
〈수호의 잠자리〉
모든, 말 그대로 모든 주력이 하나의 주술만을 사용했다. 그 통일성은 엘프와는 현격하게 다른 종류의 힘이었다.
하나가 된다는 것.
그리고 그곳에 몸을 담구는 것.
개체 하나하나가 웅덩이가 되고 곧 거대한 호수가 되어갔다.
하늘을 잠자리가 뒤덮었다.
나뭇잎색으로 빛나는 날개와 나무색의 갈색으로 이루어진 몸체는 다수 마법과 대인 마법에 자살 돌격하듯이 부딪혀서 엘프들의 공격 마법을 덮었다.
엘프는 그대로 압도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피해를 입는 일은 전혀 없었다.
‘수호의 잠자리 주술’은 공격 주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로지 대인 마법과 다수 마법을 노리는 요격형 방어 주술이었다.
“뜨나아아악!!!”
대장쥐가 거침없이 방어 마법에 돌진했다. 엘프의 백금 카드가 뽑히며 화염을 일으켰지만, 그곳에 수호의 잠자리떼가 들러붙었다. 일으키는 즉시 잠자리와 함께 사그라들었다.
쾅!
대장쥐의 할버드에서 마법이 토해졌다. 드낙과 강력한 연결고리를 지닌 검은 뿔쥐들은 오우거 리고 때문에 마법과 주술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는 걸 확인했고, 드낙으로부터 마력사용 인자를 이어받았다.
거대한 마법 망치가 먼저 날아가 엘프의 방어막을 꿰뚫었다. 면을 보호하는 보호막과 점을 찔러 쑤시는 망치.
무엇이 더 효율적인지는 불 보듯 뻔했고, 그 구멍 속으로 대장쥐가 그림자가 되어 그대로 쑥 들어가 엘프의 목을 치려고 했다. 간발의 차로 백금 카드에서 검이 형성된다. 동시에 엘프의 영혼이 머리에서 툭 튀어나왔다.
육체를 영혼이 잡아당겼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속력으로 엘프의 머리가 기괴한 궤도를 가졌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움직임에 목의 근육이 길게 잡아 당겨지며 멍이 들었다.
솨악!
할버드가 공기를 갈랐다. 하지만 이어지는 대장쥐의 무릎이 엘프의 움직여진 턱을 박살을 냈다.
“큭!”
한 수는 피해냈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했다. 영혼 이동술을 자주 사용할 수 없는 반푼이 엘프였다. 정예라고 부르기에도 아깝다.
서걱!
촤아아악!
엘프의 피가 대장쥐의 털을 덮었다. 기괴하게도 그 피는 빠르게 흡수되었다.
대장쥐 또한 엘프를 섭취했고, 피숨결 검은 뿔쥐라는 하급 악마의 말석에 위치해있었다. 이건 당연한 일이었다.
곳곳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졌다.
피숨결 검은 뿔쥐가 되지 못해도 그들은 엘프와의 근접전에서 우위를 점했다. 그 엘프가 영혼 이동술을 완벽하게 터득한 게 아니면 더더욱 실패하지 않는 우위를 유지했다.
드낙으로부터 총애를 받는 검은 뿔쥐들의 능력치는 대단히 육체능력에 기울어져 있었다. 반마(半魔)의 피를 받았는데, 육체가 부실하다고는 할 수 없었고 그들은 지성종족이라기에는 털이 너무 많은 짐승과도 같은 몸을 지녔다.
이성을 유지하는 게 이상할 지경이다.
또한 〈피의 잔〉을 통해서 힘을 제공받아서 사용하는 그림자는 엘프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기만할 수 있었다.
마법을 형편없이 마음껏 써버린 것이 엘프들의 패착이었다.
세계를 7할 지배했기에 강자의 논리에 휩싸여 있던 엘프들은 검은 뿔쥐 100만이 쏟아내는 수호 잠자리에 의해서 자신들의 강점을 잃어버렸고, 방어 마법은 강력한 망치 마법으로 부쉈다.
오로지 죽음.
그들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죽음뿐이었다.
*
드낙은 포식을 통해서 생명체를 집어먹는 걸 끔찍하게 여기는 것도 아주 잠시뿐이었다. 이제는 적극적으로 엘프들을 집어삼켜 먹었다.
그 덕에 정신을 회복하고, 짧은 시간 동안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시간이 더 득이 되었다. 그리고 드낙의 눈에 고꾸라져서 마치 산맥처럼 누워있는 100m에 달하는 거대한 중립신의 대신육체(大神肉體)가 눈에 들어왔다.
‘저거다!’
엘프를 집어먹는 건 상황이 극변하는 지금으로써는 그 효과가 미미했다. 더 거대해지기에는 기절할지도 몰랐다. 정신력이 아직 충분히 회복되지 않아서였다.
드낙이 눈을 빛내며 서둘러 대신육체로 향했다. 그러는 사이에 세파리아스의 영혼이 드낙의 내면에서 소리를 질렀다.
[나부터 내 쓰러진 육체에 다시 영혼을 집어넣어라! 그렇게 하면 더 빨리 엘프들을 죽일 수 있다!]
[어딨는데?]
[저기!]
드낙의 눈이 움직였다. 정신 나간 세파리아스의 영혼이 드낙의 신체를 움직이게 한 것이다. 소름이 쫙 끼쳤다. 정신력으로 세파리아스에게서 반항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 몸을 지배할 수도 있으니까, 그냥 세파리아스의 몸에 다시 영혼을 넣어주는 게 좋겠다.’
정신세계에서 중립신도 세파리아스에게 개털렸다. 무신의 권능이라고해도 부족하지 않은 영향무력이라는 정신 나간 힘을 개발한 세파리아스는 놓아주는 게 신상에 좋았다. 세파리아스 불파겐은 그야말로 강철의 전사였다.
“콜록!”
기침 한 번 하고 세파리아스가 눈을 뜨며 일어났다. 놀라울 정도의 육체 제어력이었다.
드낙이었으면 눈물 콧물 질질 짜며 피까지 토하다가 어지러워서 한 번 넘어지고 입에 흙 좀 들어가야 정신을 차릴 텐데, 세파리아스는 기침 한 번이면 족했다.
일어난 세파리아스의 그림자에서 레우치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너! 살아있었구나! 잘했다!”
드낙이 크게 반가워했지만 세파리아스가 드낙의 무릎을 주먹으로 쳤다. 상당히 커진 드낙은 괴물이나 다름없었다.
“빨리 가라. 레우치터! 넌 내 말이 되어라.”
드낙이 대신육체로 향하는 사이에 세파리아스가 레우치터에게 명령하자 레우치터가 인상을 쓰며 반문했다.
“말?”
“그래. 말!”
세파리아스가 우직하게 다가오자 레우치터가 뒷걸음질 쳤다. 본능적이었다. 영향무력을 초월의 힘으로 다루는 세파리아스는 육체를 지니지 않은 존재에게 치명적이다. 청소년처럼 보이는 레우치터는 그냥 그림자를 변환시킨 것뿐이고 진짜 육체라고 할 수 없었다.
“원하는 걸로 바꿀 수 있잖아? 날개보다는 말이 나한테는 편해.”
세파리아스의 말에 레우치터가 입을 꾹 다물었다. 세파리아스가 물러설 기미가 없기에 레우치터가 말로 변했다. 반질반질 윤기가 나는 단모(短毛)를 지닌 흑마(黑馬)였다. 뜨거운 체온이 느껴졌다.
단번에 올라탄 세파리아스가 그대로 말을 몰았다.
그를 보고 마법이 쏘아졌지만 영향무력의 간극(間隙)에 도달하자마자 알아서 베어져 터져나갔다.
그의 눈이 전황을 살폈다.
“저곳으로 가자. 엘프 수백명이 모여있는 곳의 중심을 돌파해라!”
레우치터의 발이 그림자로 변하며 그대로 질주했다. 말이 말 같지 않았다. 하지만 시각적으로 그들의 모습은 엘프들의 눈에 들어왔다.
이것이 세파리아스의 노림수였다. 레우치터의 몸에서 그림자가 줄기차게 뻗어 나가며 다가오는 위협을 쳐냈다. 그에게 집중된 힘만큼 검은 뿔쥐들은 더 많은 여유를 확보했다.
순식간에 엘프들의 진형에 도착한 세파리아스를 보며 방어 마법을 펼쳤지만 자상(刺傷)이 허공에 그어지며 와장창 무너졌다.
다가닥!
말발굽 소리를 가장 앞에 있는 엘프가 들었다.
행동하기 전에 머리가 쪼개졌다. 쪼개지는 과정에서 엘프의 영혼이 튀어나왔지만 부질없었다.
거침없이 세파리아스가 엘프 최정예 무리 속을 돌파해나갔다.
“막아라!!”
“죽여라!”
“우리가 성공해야 역전이 마련된다!”
전원 영혼 이동술이 사용 가능한 진형이었다. 428명의 정예 엘프가 순식간에 집중되었다. 세파리아스를 막기 위해 단번에 영혼이 앞당겨지며 뒤에 있는 육체를 잡아당겼다.
엘프의 오른팔이 영혼 때문에 잔상이 남겨질 정도로 빠르게 세 번 휘둘러졌다. 동시에 왼팔에서는 백금카드가 뽑혔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모습은 절륜(絶倫)했다. 허나 세파리아스에게 있어서 하찮은 잔재주에 불과했다.
서걱!
하나가 베어지는 소리, 하지만 오른손목이 깔끔하게 잘리며 땅에 떨어지고, 왼팔은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다. 그 팔이 붕 뜨며 백금 카드가 허공에서 회전하며 떨어지다가 다른 엘프의 얼굴이 가로로 쩍 두 쪽으로 갈라지며 동시에 반 토막이 나서 땅으로 함께 떨어졌다.
조각난 백금카드에 엘프의 피가 잔뜩 묻었다.
“흐아아아아!!!!”
엘프가 고함을 질렀다. 그의 큰 귀가 펄럭거렸다. 하지만 일초지적도 되지 않았다. 검이 땅!하는 소리와 함께 떨어져 나갔고, 그 검에 다른 엘프의 목이 베어진다. 그리고 세파리아스의 영향검이 덤벼든 엘프의 심장을 꿰뚫고 지나갔다.
물흐르듯이 모든 환경이, 상황이 세파리아스를 위주로 돌아갔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일이었고, 세파리아스의 중심으로 피가 단 한 번도 끊이질 않고 쏟아졌다.
엘프들의 수준이 높았기에 가능했다. 죽어가는 엘프들 사이에 엘프가 몸을 낮추며 매서운 눈과 냉철한 판단으로 세파리아스의 빈틈을 노렸다.
그 정도가 가능했기에 피가 끊이질 않고 쏟아질 수 있었다.
엘프들의 육체가 땅에 떨어지지 않는 순간이 없었다. 동시에 그곳에서 영혼이 비틀거리며 사그라들었다.
일필휘지(一筆揮之).
단번에 이를 돌파한 세파리아스는 280명에 달하는 엘프를 단숨에 격살했다. 이미 와해된 뒤를 볼 이유도 없고, 여유도 없었다.
이 싸움에는 〈스트라이커〉가 부족했다.
엘프가 뭉치면 검은 뿔쥐들은 많은 피해를 볼 수 있었다. 혹은 역전의 발판이 마련될지도 모른다. 실패하고 또 실패하고 저지에 또 실패한다면 엘프는 몸을 추수를 수 있었다.
이를 막는 게 세파리아스였다.
그는 전황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고, 우글우글 거리는 전쟁터의 거대함 속에서 흐름을 찾을 수 있었다. 엘프가 우세를 점하는 점이 선이 되고 면이 되는 걸 차단하는 일은 맹장(猛將)의 재능 중 하나였다.
거칠게 내달리는 레우치터에 올라탄 세파리아스의 등뒤로 거대한 중립신의 육체가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게 보였다.
“우, 하, 하, 하!!!”
드낙이 입을 움직이며 웃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의 눈은 지금, 말 그대로 거대한 시야를 가지고 있었으며, 몸에서 느껴지는 활력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인간의 수백 배에 달하는 면적을 지닌 거체(巨體)를 소유하고 지배해서 오는 쾌감은 대단했다.
마치, 인간으로 살아가다가 생체 스포츠카가 된 기분이었다.
수천 마력(馬力)을 내뿜는 출력이 전신에서 느껴졌다.
“후, 후오오오오오오!!!!!”
드낙이 힘을 담아서 고함을 내질렀다. 그 고함은 단순하면서도 파괴적이었다. 수천에 달하는 엘프가 날아갔다. 태풍에 휩쓸린 것처럼 형편없이 방어 마법과 함께 통째로 날아가 뒤엉켜 땅을 굴렀다.
쿠웅...!
거칠게 한 발을 내디뎠다. 양팔에서 핏줄이 잔뜩 돋아나며 빛을 쏘아냈다. 중립신이 설계한 대신육체는 〈빛〉을 쏘기에 적합한 설계가 되어있었다. 그 빛에 노출된 엘프들은 엄청난 힘에 짓눌러 곤죽이 되어 쓰러졌다.
쿠구구구!!!
땅이 끌어모아지며 거대해져 갔다. 엘프 1만 명이 힘을 모아서 대지의 골램을 일으켜 세웠다. 드낙이 몸을 움직였다. 만들어지는 대지의 골램을 주먹으로 올려쳐서 그대로 중심을 박살 내며 몸으로 부딪쳐 지나갔다.
콰과과가!
흙이 산사태처럼 무너지며 주변에 있는 엘프를 매장시켰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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