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82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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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들이 드낙을 공격하는 이유는 간단하면서도 복잡했다.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다. 저놈만 죽인다면, 엘프는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
똑똑한 엘프였기에 현재 상황을 가장 잘 인지할 수 있었다.
낭떠러지에 서서 동족들이 피떡이 되어서 죽어갈 때는 희망을 품지 않았다. 그저 고결한 죽음을 택했다. 늙은 노괴들조차도 엘프라는 종족 앞에서 죽음을 선택했다. 중립신의 존재영역은 가장 먼저 지식이 많은 노괴들을 알아서 겨냥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원하지 않더라도 그 선택의 기로 앞에서는 엘프 종족을 위한 길을 선택했다.
그런 끝없는 소모전이 끝이 났다. 하지만 모든 게 끝나지 않았다.
승리한 초월자가 남은 것이다.
엘프들로서는 둘 다 죽는 게 무조건 이득일 수밖에 없는데, 한 놈이 살아남았다.
협상?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상대가 누군 줄 알고? 엘프들은 드낙의 인상착의에 대해서 몰랐다. 그는 위장해서 엘프 사회에 녹아들어 갔기 때문이다. 가명을 쓰고, 활동했다.
믿음이라는 건 부질없다는 걸 엘프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동맹이란 죽여야 할 대상의 순서를 가리는 것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두려움!
초월자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대신육체에게 짓밟히고, 땅을 부수며 걷어차며 쓸어버리는 대신육체(大神肉體)부터 그저 빛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죽는다.
불합리하고, 불합리하다.
그런 광경을 본 엘프들은 패닉 상태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이들은 모두 드낙을 죽이는 걸 선택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
엘프에게는 결코 용인돼서는 안 되는 존재가 바로 초월자였다.
이 싸움에서 엘프가 승리한다면, 엘프들은 가장 먼저 초월자가 탄생하기 전에 그들을 죽여야 할 감시자들을 만들 터였다.
물론 이러한 근거들을 제쳐놓고 드낙이 매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서 공격한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실제로 드낙의 상태는 끔찍했다.
“헉. 헉헉.”
헐떡거림 속에서 드낙이 몸을 숨겼다. 동시에 몸을 이동시켰다.
“컥!”
엘프들의 공격을 모두 회피해냈지만 드낙은 쓰러지며 입에서 피를 토했다.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식은땀이 쫙 나왔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많은 땀이 배출되어 흘러내렸다. 아찔한 현기증에 정신을 잃을 뻔했지만 겨우 참아냈다.
몇 번, 정신을 잃을만한 일을 겪은 드낙은 이제는 버틸 수 있는 끈기를 지니고 있었다.
“웨애액!”
안에 것을 게워내고 나서야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흐으, 흡.”
벌벌벌.
손이 미친 듯이 떨려왔다. 생각보다 중립신과의 전투는 드낙의 정신력을 엄청나게 깎아 먹었다. 세파리아스가 도와줬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조금씩 좋아지고 있을 뿐이었다.
‘이 상대로 싸우는 건 가능해도 승리를 쟁취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왠지 모르게 그런 기분이 들었다. 중립신을 잡아먹어서 생긴 본능에 가까운 선견지명이다.
평범하게 이 상태로 전투를 이어나간다면 드낙은 정신을 잃어버릴지도 몰랐다.
엘프들은 자신을 볼 수 없다고 해도 그 행위에 한계는 명확하게 정해져 있다. 중립신의 잔재를 먹어치웠기에 암살의 힘을 이용해서 모든 걸 속인 채 몸 상태를 점검할 수 있었다.
엘프들은 자신들을 서로 연결하며 이 일대를 구속하기 시작했다.
‘제기랄, 똑똑한 새끼들.’
그들도 알고 있었다. 모습을 숨겨도 멀리 가지 못했으며, 더더욱 자신들이 지금 승기를 잡았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
드낙이 갈등했다. 다른 선택지가 있었지만 그걸 선택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짓을 하면 더는 인간이라고 자신을 표현할 수 없어서였다. 그렇기에 그는 마치 자신에게 변명하듯이 사고를 이어나갔다.
이미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는데, 고민하는 꼴이었다. 천재가 이를 본다면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을 것이다. 쓸모없는 고민을 한다고.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걸 알잖아? 행동에 나서야 해.’
그가 내부를 관조했다.
거미줄은 많이 사라져 있었다. 지하 연합 중에 살아남은 건 핏빛쥐의 상위종이라고 할 수 있는 검은 뿔쥐가 전부였고, 그 외에는 아주 소수만, 말 그대로 명맥을 이어나갈 정도만 남았다.
너무나도 많은 숫자가 죽어버렸다.
드낙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져나왔다.
중립신이라는 거대한 놈에게 떠밀렸기에 한 선택이었지만, 그 대가는 너무나도 참혹했다. 자신의 손으로 쥐어짠 자들이었다. 중립신의 위협에 체감하지 못한 것을 이제야 느낄 수 있었다.
동부 인간은 수천 명만 살아남았다. 드낙의 본능은 이기적이었고, 그를 대단히 총애하는 이들보다는 그러지 않은 인간들부터 쥐어짜죽였다.
중립신을 집어삼켰기에 동부를 제외한 인간들과 드워프를 쥐어짤 수 있었지만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중립신 정도의 압박감과 위협도가 없으면 드낙이 그런 선택을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 상황에서 세파리아스의 영혼이 드낙에게 지껄였다.
[네이노오오옴! 뭘 하고 있느냐? 미적지근 숨어있지 말고 다 죽여라! 반마반신(半魔半神)에 도달해서 필멸자인 엘프를 두고 쥐새끼처럼 숨어 있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빌어먹을, 조용히 좀 있어 봐. 그냥 부딪친다고 다 되는 게 아냐!]
인간임에도 심장이 멈췄음에도 변장한 엘프를 다섯 쳐 죽인 괴물이 하는 조언을 들으면 병신 중의 상병신이었다. 세파리아스는 마지막에 중립신과 다른 노선을 보이고, 정신세계로 들어와 드낙을 도왔지만, 그 기질이 송두리째 바뀐 건 아니었다.
[1초가 지나갈수록 네 정신은 점점 바닥으로 향할 것이다. 그냥 도망치던지 너 알아서 해라.]
답답한 세파리아스의 말에 드낙의 눈빛이 흔들렸다.
도망친다?
그렇다면 엘프를 정리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아부어야 했다. 또한 새로운 리스크가 생긴다.
‘행성에 쏟아부은 중립신의 업과 힘.’
엘프들이 이를 연구한다면 이용할 수 있을 터였다. 고로 엘프를 반드시 죽여야 했다. 이 자리에서 그들이 승기를 잡았다고 할 때 최대한 많이 죽여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을 다시 한 번 버려야 했다. 이곳에 있는 시체를, 지금 자신을 적대하는 생명체를.
악마처럼 잡아먹어야지 드낙이 이길 수 있었다. 허나 그렇게 하지 못하고 갈등했다.
식인(食人)은 거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응?’
이도 저도 못하는 고민 속에서 드낙이 불현듯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반신의 경지에 들며 본능적으로 미래 예지의 능력을 얻었다. 그 능력을 발전시키면 중립신처럼 시간선을 수천, 수만 갈래로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저 본능적인 것에 불과했고, 순간적인 직관력으로 오해할 수 있을 정도에 불과했다.
드낙이 시선을 고정하고 십여 초.
쿠구구구...!
구름이 쩍 갈라졌다. 거대한 스팀 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굉음과 다를 바 없었다. 그만큼 거대한 소리였다. 이런 걸 숨겨왔다는 것부터 장난 아닌 것의 등장이었다. 물론 그들 입장에서는 더는 숨길 수 없기에 은폐 주술을 풀어버린 것에 지나지 않았다.
11개의 지상 요새가 무식하게 용접된 모습을 지닌 엉망진창 크기와 형태도 다른 거대한 덩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기는 웅장했지만, 모습은 조잡했다.
대장쥐가 어떻게든 이 전쟁에 숟가락을 얹으려고 급하게 만든 공중 요새는 아래로 내려오는 것만으로도 1개의 지상 요새가 뚝 부러져서 땅으로 추락했다. 연기가 매캐하게 올라왔다.
공중 요새에서 거대한 목소리가 퍼져나갔다.
드낙은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대장쥐의 목소리였다.
“살아있는 우리들의 신을 섬기지 않는 불온한 자들아! 죽음을 받아들여라!”
“살아있는 우리들의 신을 섬겨라!”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의 신을 모셔라!”
“우리가 바로 그분의 종이며, 신도이자 화신이다!!!”
“너희들이 모든 것이 바로 검은 뿔쥐이며! 지하 연합이다!!!”
그 목소리를 들은 검은 뿔쥐들이 준비했던 미사일을 발포했다. 모습은 미사일과 닮아있었지만 사실상 토템이었다.
“발사!”
“발사다! 발사!”
“죽이자! 죽여라!”
준비된 나무 토템이 발사되었다. 드낙이 현대인의 우월함에 빙의되어서 허무맹랑한 소리를 지껄였는데 지하 연합은 미사일은 실현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고, 공중 요새에 탑재한 상태였다.
투구더덩!
공중 요새의 위로 미사일이 10만 개가 쏘아지며 거대한 스팀이 뿜어졌다. 동시에 주술 특유의 녹색과 갈색 빛가루가 뿜어져 나왔다.
그건 곧바로 엘프들을 노리고 마구잡이로 회전하며 땅으로 처박혔다. 주체를 못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탄착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요격하기가 쉽지 않다는 장점도 지니고 있었다.
살아있는 것처럼 혹은 폭주하는 것처럼 보이는 나무 미사일이 그대로 엘프에게 처박혔다.
꽈직!
방어 마법 따위 소용없었다. 3m가 넘는 통나무의 내부를 깎아서 토템으로 만든 토템 미사일은 그냥 처맞아도 방어 마법을 유리처럼 관통할 정도로 거대했고, 하나하나가 대주술에 해당할 정도로 주력이 부여되어있었다.
관통당한 엘프는 찍소리도 못하고 짓이겨졌다. 중립신과 싸울 때와 확연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통나무를 상대로 자신을 희생할 엘프는 없었다.
개개인이 하나같이 자신을 위주로 방어막을 펼치고 있었다. 살 수 있다는 희망이 그 행동에 절로 드러났다.
충격을 받은 미사일이 폭발하듯이 충격파를 토해내며 동시에 화염이 쏟아져나와 그 충격파와 함께 이동해서 주변을 초토화했다.
삽시간이 50만 명이 넘는 엘프가 휩쓸렸고, 10만 명은 확실하게 죽었으며 그 주위에 있던 40만 명의 엘프들은 중경상을 입었다.
대혼란 속에서 곳곳에서 엘프들이 뭉치는 소리가 들렸다.
“대, 대응하라!!”
엘프들은 새로운 적의 등장에 한 타이밍 늦게 반응했다. 그만큼 공중 요새의 등장은 넋 놓고 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거대했으며 거기에 혼란을 크게 유도할 수밖에 없는 장면도 있었다.
공중 요새가 고도를 낮추면서 그의 한 부분이 붕괴하여 자멸하는 듯한 모습은 압도적이었다. 거기에 현란하기 짝이 없는 3만 개의 통나무 미사일의 화려함은 생각을 잠시 잊고 볼 정도로 대단했다.
밤하늘의 짧은 시간 수백억을 불꽃놀이에 쓰는 광경을 보는 사람처럼 굴었다.
“신을 위하여!!”
“여기가 우리가 죽을 전쟁터다!”
“성-전이다! 성전!”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무식하게 일을 추진할 정도로 검은 뿔쥐들과 핏빛쥐는 홀로 나아간 드낙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했다.
그 조급함의 결과 늦지 않게 이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연결시킨 요새 중 하나가 떨어져 나갔지만, 감수할 수 있었다. 오히려 떨어져 나간 곳에서 남아있던 검은 뿔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튀어나왔고, 검은 털이 노출되었다. 하지만 그건 곧 그림자로 변해서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찍찍!”
“컥!”
“저열한 열등종족을 죽여라! 털짐승을 막아라!!!”
순식간에 근접전이 일어났다. 마구잡이식 난전 속에서 통나무 미사일이 내려꽂히며 엘프와 검은 뿔쥐를 동시에 죽여버렸고, 화염을 동반한 충격파가 화려하게 대지에 퍼져나갔다.
“뜨나아아아악!”
불타는 검은 뿔쥐가 고함을 내지르며 다른 엘프에 그대로 돌격해서 함께 쓰러져서 나뒹굴었다.
이글거리는 화염창 마법이 놈을 그대로 스치고 지나갔다.
콰득!
그 이빨이 엘프의 목에 틀어박혔다.
“크으윽! 더러운 짐승놈이!”
엘프는 영혼이동술을 통해서 육체를 격렬하게 잡아당겨서 움직였지만,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이글거리는 광기 어린 날카로운 눈과 마주친 검은 뿔쥐가 화염에 의해서 이성이 날아갔음에도 짐승이 되어서 날뛰었다.
“키야아아아아악!!!!”
서걱!
백금 카드에서 검을 만들어 그 목을 벤 엘프가 옆으로 휙 날아갔다. 어느새 나타난 검은 뿔쥐가 그대로 덮친 것이다.
죽고 죽이고, 모든 것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쿠웅...!
“크아아아아아!!!!”
공중에서 떨어져 내린 포낙서스가 울부짖었다. 그의 수백 개가 넘는 촉수가 한꺼번에 엘프 수십 명을 휩쓸고, 관통하여 꿰어내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커헉! 크륵!”
엘프의 입에서 피가 쏟아져나왔다. 배를 잡았지만 그대로 채찍처럼 휘둘러져서 날아가 다른 엘프가 쳐놓은 방어마법에 부딪혀서 허리가 꺾였다. 즉사였다.
그 위에 촉수 하나를 허리에 단단히 묶은 채로 있는 흰여우 새린은 꼬리를 살랑거리며 그 꼬리에서 연금술로 만들 수 있는 독액을 사방에 뿌렸다.
치이이익!
“흐윽, 흐아아악!”
독액을 맞은 엘프의 피부가 타들어 갔다. 백금 마법이 와르르 쏟아져나오며 뭘 하려고 했지만, 마력만 토해낼 뿐 제대로 되는 게 없었다.
이 또한 중립신의 흉악한 면모가 존재했다. 전초극의 권능으로 알아서 가장 위협적인 엘프를 죽였기에 살아남은 232만의 엘프 중 대단한 정병(精兵)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검은 뿔쥐가 죽고, 공중 요새가 마법에 타격을 받는 이유는 그만큼 엘프들의 평균이 정해져 있어서였다.
실수하거나 방심해서 혹은 알아차리지 못해서 죽는 엘프가 많았지만 그러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는 엘프들도 분명 존재했다.
‘젠장!’
드낙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설마, 이렇게까지 자신을 도우려고 올 줄은 몰랐다. 감동했지만 동시에 자신 스스로를 탓했다.
그 거대한 파도에 드낙도 휩쓸렸다. 이것저것 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눈앞에서 검은 뿔쥐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드낙의 이름을 외쳤고, 엘프를 욕했으며 이성을 잃고 짐승처럼 울부짖기도 했다.
지상에 투입된 검은 뿔쥐는 소수였고, 통나무 미사일로 엘프들이 혼란에 빠졌지만 금방 회복하고 있었다. 곧 엘프들이 반격을 가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기 전에 검은 뿔쥐들이 만든 파도에 올라타야 했다.
더는 주체할 수 없었다.
우직! 우지직!
드낙의 육체가 변했다. 오로지 엘프를 먹기 위한 모습으로 변형되어갔다.
부우우욱!
가죽이 찢겨나가며 상체에 아가리가 튀어나오고 이빨이 솟아났다.
========== 작품 후기 ==========
6413자
평점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바깥 나들이를 갑니다. 거의 3개월 만에? 햇빛 보겠네요. 펌하고 커트하러 단골 미용실 갑니다.
오랜만에 전화했다고 미용실 갈아탄거 아니냐고 말씀하셔서 당황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