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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823화 (822/1,239)

강철의 전사 82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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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절규하고 끝낼 것이냐.’

드낙은 끝없는 절망 속에서 세파리아스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유일하게 그에게 조언해준 자가 있다면 툴툴거리는 세파리아스 밖에 없었다.

살면서 드낙이 스승이라고 부를만한 자는 그 정도로 숫자가 적었다.

‘이게 내 끝이라고?’

드낙이 눈물을 줄줄 흘렸다. 이렇게 오랜만에 눈물을 흘리니까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중립신은 드낙을 기만하기 위해서 진실을 이야기하고, 감정을 보여줬다. 그런데도 드낙은 무너지지 않았다.

질질 쳐 울었기에 버틸 수가 있었다.

눈물은 훌륭한 감정 배출 기능을 발휘했고, 그 덕에 드낙은 조금이라도 더 냉정을 찾을 수 있었다. 겉으로는 폭발하는 용광로처럼 보였지만 내부에서는 살 길을 끝없이 찾았다.

활로(活路)는 반드시 있다.

드낙의 촉은 중립신이 말한 것을 생각해냈다.

각개격파.

엘프는 엘프대로, 세파리아스는 세파리아스대로, 드낙은 드낙대로 각자의 싸움에 임했다. 중립신의 사지를 봉하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죽이지는 못하는 싸움이 되었다.

7일의 결과가 이따위였다.

‘정신세계에서 나갈 수 있을까?’

가장 먼저 도망을 생각했다. 도망쳐서 세파리아스와 엘프들과 합류해서 힘싸움으로 가는 게 좋아 보였다.

‘불가능해.’

이 정신세계는 검은 꿈에 노출된 기간만큼 잘 닦여진 정신세계였다. 단단하고 견고했다. 〈드낙의 정신〉을 죽이기에 안성맞춤인 감옥이었다.

여길 무너뜨리는 일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중립신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붕괴하는 걸 중립신 스스로 막을 수 있고, 다시 건설할 수 있었다.

‘젠장.’

드낙은 반마(半魔)에 들어서고 나서 〈검은 꿈〉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는 게 후회되었다.

중립신에게 굽신거리기 바빴기에 그런 의심받을 짓을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사냥꾼이 자신의 사냥터를 돌보지 않고, 자세히 파악하지 않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중립신에게 자신의 믿음을 보였다.

그런데 그건 돌고 돌아서 드낙에게로 향했다.

중립신의 마인드는 너무나도 가혹하고 잔혹했다. 테라에 방해되는 놈들을 우선적으로 처리하고, 그다음에 협력자를 죽이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파국이 예정된 동맹관계.

지나칠 정도로 현실적인 협력관계.

대업이 끝나고 뿌려지는 피의 잔치는 역사적으로 얼마든지 있었다. 아쉽게도 박호훈은 역사 공부를 게을리하는 자였다. 그걸 실생활에 적용하기에는 공부가 부족했다. 설사 역사를 알고 있어도 이를 실천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 또한 경지에 닿아야지만 가능한 일이다.

이는 곧 성인(聖人)과 다를 바 없었다. ‘거짓말하며 살지 말라.’라는 말이 주는 교훈을 모르는 자는 없다. 그 진리를 죽을 때까지 지키며 그 단 한 문장을 철칙으로 삼으며 살아가는 건 어렵다.

말은 쉬울 뿐이다. 행동은 언제나 오래 걸리며, 힘들고, 어려울 뿐이었다. 그렇기에 인간은 영웅을 원한다.

그리고 드낙은 영웅이라 할 수 없는 자였다.

〈덫〉에 걸려든 중립신은 전초극의 권능과 짧은 시간을 들인 시간선의 확보로 드낙을 궁지에 몰아넣는 데 성공했다.

울음까지 멎은 드낙에게 중립신이 물었다. 더욱더 그를 압박하고 벽 끝으로 몰아가기 위해서였다.

[체념한건가?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편안한 죽음은 누구나 원하는 죽음이지.]

드낙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도발에 응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 웃음소리를 냈다.

[흐흐흐흐.]

‘내가 나갈 수 없다면, 다른 놈을 불러오는 수밖에 없다.’

드낙은 검은 꿈이라는 오랜 기간에 걸쳐서 유지된 정신세계를 통해서 중립신과 연결되어있었다. 그 연결고리는 강하고, 굳건하고, 단단하며 견고하다.

서로 힘을 빼앗고 빼앗기고를 반복하는 것도 그 정도 힘이 교환될 정도로 이 정신세계가 단단하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중립신은 이곳을 〈승리의 시작〉으로 잡고 있었다.

드낙, 엘프, 세파리아스 중 가장 먼저 무너지는 놈은 드낙이었다.

인간이 되고 싶고, 인간다운 드낙은 가장 죽이기 쉬워 보이는 정신인 것도 한 몫 했다.

세파리아스는 〈전초극의 권능〉을 영향무력(影響武力)을 이용해서 자상(刺傷)을 입혀서 차단했기에 중립신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와라, 빌어먹을 놈아.’

드낙이 심연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서 세파리아스의 모습이 보였다. 손을 쭉 내밀기도 전에 세파리아스가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렸다. 눈이 딱 맞았다.

이번에는 서로 통했다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서로의 손이 강하게 움켜쥐었고, 드낙이 이를 잡아당겼다.

[아!]

중립신이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드낙이 너무 먹음직스러웠고, 쉬운 길이었기에 그 길에 감춰진 덫을 깨닫지 못했다. 솔직히 드낙도 깨닫지 못한 것이었다. 자신의 정신과 혼을 노린 중립신의 한 수는 강렬했다.

엎치락뒤치락 하다 보니 이런 기회를 생각했을 뿐이었다. 임기응변으로 닿은 결과였다.

드낙의 등 뒤에 기생하듯이 상체만 튀어나온 세파리아스가 버둥거리며 중립신을 힐끔 보며 흉악하게 웃었다.

[이런 방법이 있었다니, 놀랄 놀자로다. 안 그런가? 중립신?]

그의 덩치가 커졌다.

정신세계에서 세파리아스는 무적(無敵)이나 다름없었다. 엘 마르토 카사다민 또한 자연스럽게 몸집을 키워나갔다. 내려다보는 시야가 좁쌀처럼 작아졌다.

두 존재의 거대해진 모습을 본 드낙은 몸을 바짝 낮췄다.

‘제기랄,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것도 아니고, 이건 내가 원하는 그림이 아닌데?’

드낙도 몸을 키울 생각을 했지만 금방 포기했다. 기절할 것처럼 정신력 소모를 느껴서였다. 반대로 중립신은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이용해서 몸집을 키웠다. 세파리아스는 오직 정신력 하나만으로 거대해졌다.

[대단하군.]

중립신은 솔직하게 놀랐다. 눈앞의 대영웅(大英雄)이 지닌 영혼과 정신은 감히, 무엄하게도 대신(大神)과 견주어도 꿇리는 것이 없었다.

쿠웅!

서로의 주먹이 부딪쳤다. 동시에 중립신의 몸이 반으로 쩍 갈라졌다. 이곳에서도 영향무력이 사용 가능한 세파리아스였다. 반대로 세파리아스의 팔이 뚝 떨어져 나가며 피가 사방으로 쏟아져 내려갔다.

이곳은 중립신과 드낙의 힘으로 만들어진 정신세계. 그곳에 세파리아스도 있었지만, 그는 손님일 뿐, 주인은 아니었다.

[아아아아아!!!]

세파리아스가 기합을 내지르며 중립신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팔 하나 떨어진 것으로 무너질 세파리아스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이곳에서 자신의 거대함을 인식했다.

인간의 몸에 비집고 들어가 있던 거대한 혼이 해방되어서 청량감마저 느꼈다.

그 사이에 드낙은 중립신에게 얽혀있는 자신의 아가리를 더욱 침투시켰다.

세파리아스를 믿기로 했다.

‘그는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고 날 살리려고 와줬다.’

하나를 취하면 하나를 버려야 했다.

세파리아스는 자결하지 않고, 드낙을 통해서 이곳에 왔다. 이는 곧 세파리아스의 영혼이 드낙에게 담기는 일이었고, 더는 다시 중립신에게로 환원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중립신의 영혼으로 들어가 큰 피해를 준다는 세파리아스, 자신의 계획을 버린 셈이다.

그렇게 하면서까지 드낙의 부름에 응했다.

그것만으로도 드낙은 세파리아스를 크게 믿을 수 있었다. 적어도 중립신과는 달랐다. 중립신을 죽이는 건 변함이 없었지만, 드낙도 살리는 길을 선택해줬다.

중립신을 보다가 세파리아스를 보니 세파리아스가 선녀처럼 보이는 셈이다.

‘아무나 이겨라, 제기랄!’

중립신의 정신과 세파리아스의 정신이 서로 격렬한 싸움으로 들어갈 때 드낙은 야금야금, 중립신이 위협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그의 힘을 훔쳐먹기 시작했다. 그는 드낙까지 신경 써줄 여유가 없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각개격파를 설정한 중립신이었기에 이런 합공에서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줬다.

드낙의 눈에 점점 생기가 돌았다.

세파리아스의 검이 점점 시린빛을 띠고, 달빛처럼 빛났으며 점점 그 빛의 광도가 커졌다. 이 정신세계에 무(武)가 점점 적응하고 있었다.

시한폭탄처럼 심지가 타들어가고 그 끝에는 이곳에서의 싸움 경험을 녹인 새로운 무력(武力)이 탄생해 중립신의 정신을 찢어발길 것이다.

인간의 변수. 그 최고점에 도달해있는 세파리아스는 1초가 지날 때마다 변화하고 있었다. 그저 팔 두 개에 검 하나였던 세파리아스의 정신은 삼두육비를 넘어서서 영향검만 12자루를 쥔 12개의 팔을 놀리고 있었다.

중립신도 그만큼의 노력을 쏟아부었지만 대등한 것도 찰나에 불과했다. 빠르게 밀리고 있었다. 무신(武神)과 인신(人神)의 차이나 다를바 없었다. 이곳은 정신세계였고, 영향무력을 창조한 세파리아스는 무의 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세파리아스의 적응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쿠구구궁...!

정신세계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중립신이 결국 드낙과 자신의 연결지점에 있는 검은 꿈의 공간을 파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딜!’

웅크리며 엉금엉금 기어서 중립신의 발가락에 아예 들러붙어서 기형체처럼 전신이 이어진 드낙이 검은꿈의 정신세계를 지키기 위해서 힘을 사용했다.

쩌적!

균열 속에 검은 연기가 쏟아져나왔다. 그곳에 드낙의 손길이 닿았다. 피가 콸콸콸 쏟아지더니 살덩이가 꾸물꾸물 애벌레처럼 기어올라서 이를 틀어막았다. 그림자가 피막처럼 자리 잡으며 검은 연기가 들어오는 걸 막았다.

전투는 세파리아스에게 맡기고, 드낙은 다른 점을 보완해줬다. 중립신이 다리를 털었지만, 일체화된 드낙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함을 바락바락 질러댔다.

[야이 호로상놈의 중립신 개새끼야! 네가 날 잡아 먹으려고 해? 내가 이 새끼야! 여기까지 어떻게 올라온 줄 알아! 싸악 다 죽이고 올라왔어! 이 상놈의 자식아!! 내가 이대로 죽을 것 같아! 이렇게 된 이상 끝까지 간다! 너 죽고 나 죽고다!!]

드낙이 악을 내지르더니 이빨로 중립신의 발가락을 앙 물었다. 피가 새어 나왔다. 그걸 씹어먹기 시작했다. 악마다운 특성까지 살리기 시작했다. 이런 짓까지 하고 싶지 않았지만, 생각해보니까 더 열 받았고, 말하다 보니까 더 화가 났다.

짐승처럼 굴더라도 중립신에게 피해를 더 주는 선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래에서는 포식하는 인간탈을 쓴 짐승새끼가 있었고, 눈앞에는 리미트가 해제되어 인간에서 벗어난 정신과 혼이 이 정신세계에 끝없이 진화하고 적응하는 괴물이 있었다.

‘이거 진다.’

내가 패배한다.

중립신의 발목이 붕괴했다. 일부분을 버림으로써 드낙을 떨쳐냈다. 하지만 드낙이 껑충 뛰며 다른 곳에 들러붙었다. 털어냈지만 포기를 몰랐다.

바닥을 뒹굴어도 벌떡 일어났다. 중립신이 자신을 떨쳐내려고 노력하는 모습만으로도 드낙은 사그라들었던 열정이 활활 타오르는 걸 느꼈다.

‘할 만하다!’

재미도 있었다. 중립신에게 복수하고 피해를 주는 일은 재미가 있었다. 강력한 충격에 드낙은 입에서 이빨 하나를 퉤 뱉어냈다. 피가 뒤섞여있었지만 그걸 보지도 않고 달려나갔다.

세파리아스와 드낙의 협공에 직면한 중립신은 계속해서 뒷걸음질 치며 정신세계의 붕괴에 힘썼다. 허나, 그렇게 해서는 끝이 이미 정해져 있었다. 뭘 해도 안 된다는 걸 확인한 중립신은 결국 타협안을 내놓았다.

[그만! 협상을 하자! 이대로 끝까지 간다면 드낙, 너도 많은 걸 잃게 될 것이다!]

그 누구도 이에 응하지 않았다. 드낙은 이미 중립신이 자신을 진짜로 죽이려고 한 것에 치를 떨었다. 세파리아스는 말할 것도 없었다. 오히려 그는 이 정신세계에서 중립신을 압도한 것에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중립신의 목이 세파리아스의 거대한 검에 잘려나갔다.

정신이 죽은 중립신은 현실에서도 멈췄다. 빛이 고정되는 현상은 비현실적이었다. 달리지 않는 빛은 입자처럼 고정되어서 점처럼 보였다.

“끄, 끝난건가?”

모든 엘프가 침묵했다. 하지만 그들 중 늙은 노괴 몇몇이 고함을 꽤액 내질렀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중립신과 싸운 초월자도 죽여야 한다! 그래야지만 우리가 살 수 있다!”

“그가 엘프의 적이라는 보장이 없지 않소!”

중립신이라는 거대한 적이 죽어 나자빠지자 바로 엘프 사이에서 내분이 일어났다. 모두 비슷비슷한 힘을 지녔기에 누군가가 홀로 엘프를 이끌어가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빛이 빠르게 모이고, 검은 것들과 핏가루들도 하나 되어 모여 형체를 이루자 엘프들의 싸움도 서서히 줄어들어서, 그곳에 시선이 모였다.

드낙이 악마의 힘을 이용해서 육체를 가진 채로 눈을 떴다. 너무나도 지쳐있었고,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숨을 헐떡였다. 전신에서 땀이 줄줄 흘렀다.

중립신을 먹은 그는 무형의 존재영역을 휘두르고 있었다. 완전한 빛은 아니고, 거무죽죽하게 죽은 빛이 엘프들의 눈에 담겼다. 그리고 심하게 지친 모습도 들어왔다.

“죽여라아아아아아!!!!!”

한 엘프가 소리를 지르자 살아남은 232만 명의 엘프들이 드낙을 향해 마법을 폭격하기 시작했다. 중립신에 의해서 대부분이 죽었지만, 아직도 그만큼이나 남아있었다.

콰앙! 쿠구궁!

폭음과 굉음이 쏟아졌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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