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82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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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력도 없는 세파리아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싸움의 구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세파리아스였다.
중립신은 짧고, 짧은 시간을 투자해서 시간선을 훑었지만 이 싸움에 대한 것에는 닿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1순위로 드낙을 뽑았다.
제비뽑기에서 실패한 놈의 말로는 뻔하다.
허나, 결코 방심할 수는 없었다. 중립신은 그렇게 간단한 상대가 아니었다.
‘하나만 삐끗해도 전부가 무너진다.’
그리고 중립신은 드낙을 노릴 게 뻔했다. 가장 고꾸라지기 좋은 놈이었다. 엘프는 여럿이기에 일정 규모까지 줄여야 한다. 가장 보편적으로 평범하게 효과를 낼 수 있는 게 엘프 숫자 줄이기였지만,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중간을 선택하는 건 어렵다.
신성력을 빼앗긴 세파리아스를 노리기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거리상 가장 멀기 때문이다. 중립신과 가장 거리가 가까운 상태로 싸우고 있는 건 드낙〉엘프〉세파리아스의 순서였다.
엘프와 거리를 뒀지만 지금의 싸움에 대한 시간선을 훑어본 중립신의 시간 소모 때문에 전투가 시작되고 바로 엘프들이 도달했다. 그에게 많은 시간을 주지 않은 건 세파리아스의 흉계였다.
진짜로 둘이 서로 화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세파리아스는 중립신을 죽이기 위해서 존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딸과 손녀를 보고, 그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보다 더 큰 일을 저버릴 정도로 감정이 많지 않았다.
드낙에게 약한 모습을 보인 건 진심이었지만 딸과 손녀는 멀리 있었고, 중립신은 가까이 있었다.
중요한 건 그것뿐이었다.
화아아악!
거친 바람이 세파리아스의 얼굴을 때렸다. 수분이 날아가며 눈이 시려왔지만 그가 눈을 감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모래가 눈에 들어가도 참을 수 있었다.
9살 때의 일이다. 작은 몸으로 목검 대련이었지만 평기사의 목에 칼침을 놓은 세파리아스는 상보다는 모래를 먼저 얻어맞아야 했다.
세파리아스의 아비는 무(武)의 재능이 남다른 걸 알고 자기 자식의 눈에 모래를 뿌리며 수련을 시켰다. 회복물약이 뿌려지고 모래가 눈에서 빠져나오고 그걸 되풀이했다.
기사는 그 어느 순간에도 눈을 감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라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세파리아스는 그 경지에 올랐다.
서걱-!
세파리아스가 무언가를 베어냈다. 허공을 베었음에도 뭔가가 일렁거리며 끊어졌다. 중립신과 행성의 연결고리였다. 그 연결고리는 만약을 대비해서 하나가 아니라 3개였지만 레우치터 덕분에 엄청난 기동성을 자랑하는 세파리아스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다.
중립신은 계속해서 행성과의 연결고리를 이었지만, 번번이 세파리아스에게 잘렸다. 동시에 중립신이 자신의 권속들을 쥐어짜려는 행위 자체도 잘라냈다.
그 찰나의 순간 속에서 행성과 남부 인간, 드워프에게서 힘을 뽑아내서 드낙과의 싸움에 보태고 있었지만 아주 일부분에 불과했다. 종종 완벽하게 실패하기도 했다.
세파리아스와 대적한다는 건 한 푼도 이득을 얻지 못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세파리아스는 전황을 살폈다.
기사의 눈으로 상황을 파악해나갔다. 황금빛과 비처럼 내리는 피와 검은 가루들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서로 잡아먹고, 잡아먹히고를 반복했다.
신과 신의 싸움과 다를 바 없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 놈은 격(格)에 도달하지 못했음에도 대신과 싸우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승부는 그 누구도 보장할 수 없었다.
‘중립신을 내가 한 방에 죽일 수 있을 때까지만 버텨라.’
중립신이 외부로 손을 뻗는걸 〈영향무력〉으로 끊어내면서 세파리아스는 중립신을 공격할 마음을 먹고 있었다. 전에 말했던 방법으로 중립신의 숨통을 잘라낼 생각이었다.
세파리아스의 무(武)를 통해서 보는 눈은 중립신과 드낙이 결국 공멸할 것임을 알고 있었고, 그걸 피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은 죽어서 영혼으로 중립신에게 들어가서 한 방을 크게 먹여줘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중립신을 못 죽인다면, 행성과 연결해서 다시 힘을 보충하겠지.’
그 때문에 세파리아스는 바로 자결하지 않았다. 무력으로 보는 눈동자에 중립신을 단칼에 죽일 수 있을지 없을지를 알 수 있었기에 세파리아스는 자주, 반복해서 황홀한 빛을 눈에 새겼다.
놈에게 마무리 타격을 입혀서 공을 가로채려는 마음은 없었다.
그저 빌어먹을 제자놈은 살려야 했다. 생(生)에 대한 미련은 있다. 하지만 이미 한 번 죽었던 몸이었다. 반면 망할 놈은 자신과 다르다. 또한 자신이 살아남는 것보다 저 호구 같은 놈이 살아남는 것이 더 세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산의 정상에 올랐기에 세파리아스는 단언할 수 있었다.
뛰어났지만 세파리아스는 기사와 장군에 어울리는 자였고.
자신보다 부족한 드낙은 되려 영주와 왕에 어울리는 자였다.
만약, 신분의 차이가 존재하고 소영주 드낙과 기사 세파리아스로 계급이 위아래로 나뉘었다면 세파리아스는 드낙을 위해서 싸웠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디서 사고 치는 소영주님에게 말을 타고 질주하는 기사의 모습은 진짜로 어디엔가에 있을 법한 광경이었다.
*
엘프들은 곧바로 드낙 노선을 탔다. 서로 말을 나누고 의견을 교환할 이유도 없었다.
중립신과 계속 전투를 하며 죽어 자빠지기 바빴던 엘프에게 있어서 이것은 큰 기회였다. 또한 중립신과 전투한 직후였기에 그에 대한 적개심도 대단했다.
그런 엘프가 드낙을 저버리는 건 있을 수 없었다. 애초에 이 싸움 속에서 그런 건 무의미했다. 누군가가 중립신과 싸우고 있다는 게 중요했다.
“뭉쳐라! 초월 대마법을 사용한다!”
인간 수준으로 100명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게 대마법이라면, 엘프 1,000명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마법은 초월 대마법이었다. 그들은 사활을 걸고 있었다. 거대함은 곧 효율적이다.
종족의 안위가 그들에게 달려있다. 잡담 따위 나누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제대로 상황을 판단하고 있지 않았음에도 엘프들은 중립신과 싸우는 존재에게 판돈을 쑥 집어넣었다. 동시에 중립신을 죽이는데 모든 걸 바쳤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이었다.
“크아악!”
피 한 줌, 뼈 하나 남기지 않고 스스로를 희생하는 엘프들의 모습은 곳곳에서 목격되었다. 그들은 마력으로 환원되어서 힘을 보탰다.
준수한, 오우거와 맞먹는 종족값을 지닌 엘프들의 희생은 고결했다. 그리고 그 힘은 중립신만을 때리는 마법이 되었다.
쿠구궁...콰릉!
천둥 소리와 함께 번개가 빛을 때렸다. 오직 ‘빛’만을 타격하고 있었고, 드낙은 영향력을 받지 않았다. 마법이 지닌 특별함이었다. 빵 파는 소녀의 뒤에 음모를 꾸미는 이들만 박살을 낼 수 있는 게 마법의 편리함이었다.
그건 중립신의 관심을 받을 정도로 위협적인 행위들이었다. 드낙, 세파리아스를 제쳐놓고도 엘프는 중립신의 큰 걸림돌이었다.
드낙과 세파리아스의 싸움은 고작 하루도 안 되는 사이에 끝났다.
그 덕에 엘프들은 생각보다 많이 죽지 않았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렇게 승기를 잡을 것처럼 보였지만 중립신의 한 곳에 집중된 빛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서 비추기 시작했다.
중심이 되는 곳을 기점으로 십여 갈래로 변한 빛이 곳곳을 비추며 엘프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빛을 마주한 엘프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죽지 않았다.
“엘프를 위하여!”
펑!
단번에 폭사했다. 엘프 스스로 자신의 모든 것을 사용해서 중립신에게 죽기 전에 그냥 터트려버렸다. 마력이 폭발하며 중립신은 상처를 입었다. 그가 지닌 힘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지만, 그런데도 엘프를 죽일 때마다 이러면 무시할 수 없었다.
곳곳에서 엘프들이 마력폭발을 일으키며 죽는소리가 났다.
빛과 같은 중립신의 손길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방어 마법은 떨어지는 바위를 계란으로 막는 격이었다. 그렇기에 죽음을 각오하고 터지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건 종족 승리였다. 그런 희망이 있었다.
세파리아스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그는 그곳에 없었다. 호다닥이 아니다. 빤스런이 아니다!
〈전략적 후퇴〉를 감행한 채 중립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수치화했다.
‘나누어진 빛갈래는 18개.’
압도적이다. 동시에 죽일 수 있는 엘프의 숫자는 매번 달랐지만 1천 내외였다. 끔찍한 교환비였다. 하지만 엘프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걸 모두 하고 죽었기에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죽는 만큼 떼처럼 몰려서 오기 때문이다. 전과는 상황 자체가 달랐다.
드낙이 중립신을 내부에서 싸우고 있고, 붙잡아뒀다. 세파리아스가 행성과 중립신의 권속과의 연결을 영향무력으로 쳐내고 있었다.
엘프가 중립신의 남은 여력을 몸으로 마력으로 맞서고 있었다.
한 손으로 그 많은 걸 감당하기는 힘들었다. 끝없이 하늘에서 쏟아져나오는 엘프의 비는 단연코 압도적이었다.
그 속에서 중립신은 엘프를 빠르게 죽임과 동시에 계속해서 자신의 영향력이 뻗어 나가는 것을 잘라내는 세파리아스를 노렸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에 돌아갔다. 인간의 몸으로 초월자를 공격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른 세파리아스는 자신에게 간섭하려는 것에도 자상(刺傷)을 입히며 잘라냈다.
제 기능을 상실케 했고, 결코 자신에게 닿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전초극의 권능은 〈세파리아스〉라는 요소를 거세당한 것처럼 기능했고, 이는 걷잡을 수 없이 중립신을 사지로 몰아가고 있었다.
중립신의 빛이 세파리아스를 삼면에서 휘어잡으려고 했지만 엘프에 의해서 한 곳이 무너졌고, 레우치터가 그곳으로 세파리아스를 이동시켰다.
아슬하게 빛이 세파리아스를 스쳐 지나가려고 했지만 그 마저도 검에 베이듯이 잘렸다.
혼돈 속에서 중립신이 무너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죽고 죽이는 피의 잔치만 벌어지고 있었다. 영원토록 계속될 전쟁처럼 보였기에 평범한 사람이 이 전투를 지켜본다면 마음이 꺾여버릴 지경이었다.
7일간의 대전투.
피는 언덕이 되고, 산이 되었고 그 골짜기에 피의 강이 흘렀다. 세파리아스는 엘프의 피를 마시며 목을 축였고, 그 생살을 뜯어 먹으며 칼로리를 얻었다.
더는 자연물을 볼 수 없고 오로지 엘프들의 시체만 주변 30km에 가득 보일 뿐이었다.
이변은 드낙과 중립신이 맞부딪치고 있는 정신세계에서 일어났다.
수많은 요소에 대행해야 하는 중립신과 단 한 놈과 싸우면 되는 드낙은 처지가 매우 달랐다.
“헉. 헉!”
무릎을 꿇은 드낙이 벌벌 떨었다. 그를 보호하는 이들은 그의 정신과 영혼까지는 보호해주지 못했다. 오히려 7일 동안 드낙이 자아를 유지한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악다구니 하나가 이뤄낸 위업은 아니었다.
손에 잡힐 듯한 미래가 있었기에 드낙은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한계에 도달했다.
꽈악.
중립신이 드낙의 머리통을 한 손으로 잡아서 들어 올렸다. 드낙이 그대로 들어 올려졌다. 드낙이 입술을 오물거렸지만 말 한마디 나오지 않았다. 그전까지 말을 지껄일 힘조차도 중립신의 맹공을 버티는데 써버렸다.
반대로 중립신은 그런 드낙을 한심한 눈으로 쳐다봤다.
처음에는 대혼란의 연속이었지만 결국 그 끝에는 드낙이 있었다.
‘크게 봤을 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게 드낙이지.’
세파리아스를 죽여봤자 중립신만 더 큰 피해를 입을 뿐이었다. 그를 죽일 것처럼 군 것은 중립신의 의도를 숨기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중립신은 그를 공격해서 죽여야 할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본심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엘프에게 공격당했지만 한 곳에서 계속 싸운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처음과 동일하게 몇 가지 행동 변화를 줬지만 움직이지 않았다는 건 드낙과의 싸움을 최대한 빨리 끝내기 위해서였다.
[널 죽이고, 너에게 보내는 업과 힘을 내가 대신 취하겠다.]
[크, 크아아악!]
드낙이 끔찍한 소리를 내며 버둥거렸다. 모든 것이 새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아무런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정신이 아찔해지고, 그저 버티는 것밖에 할 수 없었지만 그런데도 확실하게 무너져가는 자신이 있었다.
콱.
그런데도 드낙은 발악했다. 그의 양팔이 쩍 벌려지며 아가리가 되어 중립신을 물었다. 중립신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반대로 중립신은 드낙의 모든 것을 탐닉했다.
속도로 봤을 때 패배하는 것은 중립신이 아니라 드낙이었다.
업(業), 힘(力), 격(格).
모든 면에서 중립신의 경험치가 높았고, 위치도 우월했다. 그럼에도 드낙의 눈에는 희망이 존재했다.
[세파리아스를 믿고 있는 거냐? 아쉽지만 놈은 잘못된 선택을 할 것이다. 지금 놈이 날 죽이려고 한들, 내가 지닌 존재의 힘은 놈이 날 베어도 남게 되어있다.]
그가 자결해서 중립신을 벤다고 해도 중립신은 큰 피해를 입지만 죽지 않고, 그렇기에 행성에 다시 연결로를 쌓고, 드워프와 남부 인간들을 쥐어짜서 힘을 회복할 수 있었다.
[너희는 날 따로따로 상대하지 말았어야 했다.]
드낙은 혼자서 중립신의 내부로 들어왔고, 세파리아스는 혼자서 중립신의 연결로를 차단하는 역할을 맡았다. 엘프는 혼자서 중립신의 존재 영역에 존재하는 힘을 상쇄하려고 했다.
중립신을 막고, 피해를 주는데는 성공했지만, 역설적으로 중립신을 죽이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세파리아스가 영혼이 되어 날 상처입혀도 죽지 않을 자신이 있지. 힘은 힘일 뿐이기 때문이다, 드낙. 차라리 내 〈힘〉을 공략하는데 모든 걸 집중했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르지.]
엘프, 드낙, 세파리아스 모두 중립신의 힘만을 노렸다면 정말로 어찌 되었을지 중립신조차도 몰랐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흩어져서 중립신의 요소요소를 공략했고 그 결과 보물상자에 모두 도달하지 못했다.
엘프는 중립신의 힘을 충분히 줄이지 못했고.
세파리아스는 중립신의 외부 요소를 차단하는 것에 그쳤으며.
드낙은 지금 이렇게 중립신의 내면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대신을 뭘로 보는 것이냐? 대체 무엇으로 본 것이냐?]
그 물음에 드낙은 헐떡이며 반문했다.
[모든 게 끝났다면, 날 놓아줄 생각은 있었...냐?]
그 말에 중립신이 감정을 드러낼 생각을 가졌다. 드낙의 정신을 무너뜨리기에는 이런 기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게 만든다면 힘을 집어삼키는데 더 수월할 것이 분명했다.
그건 훌륭한 선택일 것이고, 인간을 제어하는데에 필요한 감성이기도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 100년의 시간에 걸쳐서 철저하게 테라를 만드는 용광로에 집어넣었을 것이다.]
드낙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애초에 무감성한 존재라고 말할 정도로 감정이 적은 중립신에게 있어서 〈효율적인 행동〉이란 토사구팽(兎死狗烹)과 맥락이 같았다. 권력자가 여럿 있으면 안 된다. 고로 죽여서 절대권력을 추구한다.
당연한 귀결이다.
차원을 깔끔하게 닫아서 필멸자의 세상이 되어야 하는 테라에 있어서 증거, 흔적, 생존자 따위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 그 누구도 모르는 세계가 되어야 한다.
황제의 묘를 만들고 떼 몰살 당하는 인부들과 설계자와 같았다.
드낙은 그저 자신이 죽을 자리를 파는 잡초에 불과했다. 살려줄 것이라는 믿음을 지니고 삽질하는 병사에 불과했다. 말을 잘 들으면 살려줄지도 모른다. 그렇게 믿었다.
[으, 으흐흐흑.]
드낙이 구슬프게 울었다.
그의 두 개로 쩍 벌려진 아가리가 중립신의 모든 걸 빨아들이고 있었지만 그것보다 3배는 빠르게 중립신이 자신의 자아와 정신 그리고 혼과 그 외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지금 세파리아스와 엘프가 중립신을 외부에서 타격하더라도 내면에 존재하는 드낙이 죽으면 소용이 없었다. 그가 지닌 모든 것이 중립신에게 넘어가면 아직 남아있는 드낙의 권속들까지도 중립신에게 쥐여짜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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