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82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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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신이 가장 신뢰 있다고 여긴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그건, 대신육체를 만든 이유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는 드낙과 중립신의 관계에 있었다. 정확히는 드낙에 초점이 맞춰진 ‘드낙 맞춤형 상대법’이었다.
드낙은 중립신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정면으로 싸울 생각은 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중립신이 원하는 전쟁터에서 싸우는 것을 거부할 것이다.
최대한 자신에게 좋은 상황을 택할 터였다.
그렇기에 드낙은 육체를 키워서 중립신과 싸울 생각을 할 것이다. 정신과 정신의 싸움보다는 정신과 육체처럼 서로 다른 계통에서 싸우는 걸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똑같이 100m달리는 경기보다는 전혀 다른 경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건 심리적 안정에도 좋았다.
‘또,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하지 않겠지.’
엘프와 세파리아스를 이용하며 그들과 할 일을 분담하고 싶어 할 것이 분명했다. 엘프와 전쟁 중에 서둘러 달려온 것을 보면 빼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그는 인간에 집착하고, 육체가 없는 걸 원하지 않는다.
수많은 근거가 중립신의 계획을 뒷받침했다.
그대로 현실에 나타나야 했을 터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단번에 죽였다고 생각한 드낙은 오히려 육체를 버린 지 오래였다. 그는 중립신과 존재의 싸움을 하고자 했다. 말 그대로 중립신의 홈그라운드에 들어온 것과 같았다.
맨몸에 검 한 자루 쥐어지고 발길질 당해서 콜로세움의 대회장에 올라간 두 명의 검투사와 같은 형세다.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게 중립신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패배할 싸움을 선택했다.’
가장 먼저 드낙이 이길 수가 없어서였다. 자신의 육체를 버린다? 그것도 반마(半魔)가? 악마가 육체를 버리고 신과 맞짱뜨는 것과 같았다.
오히려 드낙에게는 그것보다 더 최악의 상황이었다. 반마가 육체를 버리고 대신과 맞짱을 뜨는 것이니까.
‘거기에 가지고 있는 업도 형편없다!’
초월자가 되면 업(業) 또한 중요한 자원이었다. 초월의 힘이라고 불러도 괜찮을 정도로 업을 잘 사용할 수 있었고 제어도 가능하다. 가늠과 관측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헌데 드낙은 그것조차도 없었다.
세파리아스와의 전투로 모두 소모한 듯했다. 그리고 굴복해서 이렇게 중립신과 싸우러 왔다.
‘자살행위가 아닌가.’
어차피 죽을 거 그냥 배 째라고 드러눕는 게 드낙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중립신과의 싸움을 택했다.
말 그대로 자살. 전초극의 권능조차도 드낙의 자살행위에 넘어갔다. 애초에 싸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텅텅빈 드낙은 말 그대로 찢겨졌다. 사라져야할 드낙이 중립신의 존재영역에서도 존재할 수 있어도 상황을 역전시킬 수 없었다.
의문이 커졌지만, 물음은 없었다. 그저 일을 빠르게 매듭짓는 효율적인 선택만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중립신은 이것이 함정이라고 깨달았다.
자신이 지닌 쌀알만큼의 허점을 드낙이 비집고 들어왔다.
‘뭘 노리고 있는 거냐?’
자신의 속으로 들어온 드낙과 중립신은 정신세계에서 서로를 마주했다.
드낙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세파리아스와의 전투.’
그것이 그를 깨닫게 했고, 발전하게 하였다. 그건 퇴화일지도 몰랐지만 변했다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세파리아스와 드낙의 전투는 누가 승리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드낙이 자살행위를 해서 세파리아스를 그만두게 했을 뿐인 전투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승리라고 할 수 없었다.
그냥 엿먹이기였다.
그렇기에 뛰어나지만 예측가능한 세파리아스를 멈추게 했다.
‘솔직히 내 패배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지.’
그는 드낙이 가지지 못한 걸 가지고, 승부를 걸어왔다. 몇 번이고 세파리아스는 드낙에게 조언을 해줬지만 실제로 드낙이 만든 건 없었다. 상대적으로 세파리아스와 비교하면 정말, 드낙이 보여준 게 없었다.
‘세파리아스는 무기를 만들었다.’
거대한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드낙을 쳤다. 그 너머에 있는 중립신에게 검을 꼬라박기 위해서 움직일 수 있었고, 일을 진행할 줄 알았다.
반면 드낙이 만든 무기는 무엇인가?
〈초월자〉라는 시선에서, 그들의 격(格)의 범위 내에서 드낙이 만든 무기는 무엇인가?
‘없다.’
부끄럽게도 존재하지 않았다.
〈영향무력(影響武力)〉
세파리아스가 만들어낸 새로운 초월의 힘. 오직 세파리아스를 위한 힘이기도 했다. 세계가 자신을 위해서 변하는 독특한 체계의 힘이기도 했다.
그 누구도 그런 힘을 다루지 못할 것이다.
오직, 세파리아스 전용의 힘이라고 할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초월자를 상대로 큰 효력을 지닌 힘이었다.
그런 독특하고 유니크한 힘을 보유해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드낙, 자신만의 힘을 개발했어야 했다. 암살, 그림자 그리고 사냥꾼.
소재는 많았지만 중립신을 깜짝 놀라게 해줄 힘으로 발전시키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육체를 깔끔하게 포기했다. 〈드낙이 지닌 모든 전투 자원〉은 중립신을 상대로 쓸모없는 것들이었다. 막히는 것들이고, 예상 가능한 자원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한 가지밖에 남지 않는다.’
도박이다.
카지노라는 놈이 쩍 벌린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는 도박사가 되어야 했다. 도박사가 확률이라는 괴물과의 싸움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싸움에 참가해야 하는 것처럼...드낙 또한 중립신과의 싸움에서는 말 그대로 모든 것. 전부를 내걸어야 했다.
‘판에 낄 수도 없는 게 나다.’
앞서 말했듯이 중립신을 죽일 수 있는 〈무기〉가 없는 게 드낙이었다. 그는 점당 100만 원짜리 판에 끼어들지도 못하는 자였다. 100만 원이 없기 때문이다. 세파리아스처럼 중립신을 위협하고, 상처를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있다고 해도 보편적이고 예상 가능한 것들뿐이었다. 영향무력 같은 말도 안 되는 초월의 힘을 휘두르는 세파리아스나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내가 중립신을 찌를 수 있는 방법은 바로 판돈을 획득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근데 드낙은 그런 판돈이 없다. 고로 판에도 낄 수 없었고 중립신이 그렇기에 드낙을 선택한 것이기도 했다. 드낙이 암살로 중립신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힘을 송곳처럼 날카롭게 모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게 중립신이었다.
그건 암살 재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드낙의 인간성〉이 지니는 결함이었다.
무력이 세파리아스급이라고해서 영향무력의 경지에 닿느냐? 아니다!
피를 깎는 고통. 3살 때부터 교육을 받아야 하는 북부 귀족의 잔혹함과 그런 잔혹함 속에서 화려하고 피처럼 붉게 꽃을 피운 것이 세파리아스 불파겐이다. 드낙은 결코 그럴 수 없었다.
똑같은 100년이라도 똑같은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더라도 두 인간의 종착역은 다른 법이었다.
고로, 영향무력 같은 판돈을 구할 수 없는 드낙은 판에 끼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아무리 체급을 키우고 그럴듯하게 보여도 결국 중립신의 아래인 셈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하나밖에 없지.’
단 하나의 진리를, 그 지엄한 잣대를 중립신과 자신에게 스스로 들이미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진리는 〈힘은 힘일 뿐이다〉라는 진리였다.
100m 경기에서 이기려면? 100m를 빨리 달리는 놈이 이긴다.
그렇기에 드낙은 자신의 강점이며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한 반마의 육체를 버리고 그대로 중립신의 내부로 들어갔다.
‘중립신의 눈에는 그저 자살행위로 보였겠지.’
드낙의 육체는 떡밥 걸린 낚시줄이다. 그걸 문 것만으로 중립신은 드낙을 배신했다. 드낙은 몇 번이나 중립신에게 믿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중립신은 단 한 번의 믿음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 결과가 이렇다.
‘세파리아스 같은 무기는 없다. 하지만 사냥은 꼭 칼이 있어야 가능한 것도 아니다. 상대의 목을 치는 건 전사의 방식이다.’
[죽어라.]
중립신이 힘으로 드낙의 남은 것을 지우려고 했다. 이에 드낙이 두 손을 모았다. 태아처럼 웅크렸다.
‘날 도와줘.’
드낙을 위해서 진정으로 헌신할 때가 왔다. 가장 먼저 이에 화답한 것은 당연히 지하 연합이었다.
황금과도 같은 빛 속에 검은 것과 붉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핏빛쥐들의 피는 드낙과의 연결로를 통해서 운반되었고, 그들의 영혼과 업은 깔끔하게 다시 드낙에게로 향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드낙에게 봉헌했다.
[싸우자아!!!!]
[뜨나아아악!]
중립신의 존재영역, 황금의 빛 속에 쥐떼들이 드낙의 몸에서 쏟아져나왔다. 핏빛쥐의 혼이고, 업이었으며 피였다.
드낙이 남은 업을 모두 자신을 믿는 이들에게 나눠주며 강화시킨 거미줄 연결로를 통해서 오롯이 그 연결로에 자신을 모두 담아낸 핏빛쥐들이 드낙의 몸에서 튀어나왔다.
피를 뿜어내고, 검은 점으로 보이기도 했다.
황금빛 영역 속에서 터져 나오며 눈처럼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내 휘몰아치며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화아아아악!
드낙을 휘감으며 모든 것을 거세게 휘몰아쳤다. 중립신의 압력과 부딪치며 빠르게 사그라들었지만 동시에 그만큼 쏟아져나왔다.
자의에 의해서 드낙을 보호하기 위해서 죽어가는 핏빛쥐들이 사라지면 검은 뿔쥐들이 죽을 것이고, 그다음에는 11인의 위원회가 죽어서 드낙을 위해 희생할 것이다.
‘최대한 빨리 일을 끝낸다.’
치킨 레이스는 시작되었다. 더는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중립신이 훨씬 더 불리했다. 그는 자신이 보유한 자원의 7할을 행성에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비단 핏빛쥐만 나오지 않았다. 드낙에 의해서 강제로 쥐어짜진 동부 인간들도 이지를 상실한 채 도구로써 자원으로 사용됐다.
끔찍한 전투였다.
동시에 드낙의 정신에 중립신이 개입했다.
밀랍과도 같은 중립신과 생생하게 뛰는 심장을 지닌 드낙이 서로 무기를 든 채 그대로 격돌했다. 처참하게 죽어가는 건 드낙이었다. 전신이 〈전초극의 권능〉으로 둘러싸여 진 중립신을 이기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푸욱!
중립신이 쥔 검이 우악스럽게 드낙의 눈알 깊이 박혀 들어갔다.
〈검은 꿈〉을 통한 정신 세계의 싸움 속에서 드낙은 그 검을 손으로 움켜잡아서 빼냈다.
고통은 있었지만 드낙의 눈에 절망은 한 점도 찾을 수 없었다.
둘 사이에 대화는 없었다.
단 한 번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은 중립신에게 입을 나불거릴 감정이 더는 남아있지 않은 게 드낙이었다.
하찮고 버러지 같은 드낙따위에게 먼저 말을 걸 정도로 중립신의 프라이드는 낮지 않았다. 지나가던 거지새끼에게 100달러를 줄 수는 있지만, 그를 친구로 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으아아아아아!!!!!”
드낙이 고함을 내질렀다.
엄청난 세월을 살아가고, 수많은 차원에서 거대한 역사를 써내려간 중립신과 정신 세계에서 버티려면 악을 지르고 또 질러야 했다.
반면 중립신은 감정 하나 내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드낙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더더욱 무덤덤한 모습을 보여줬다.
‘최대한 빨리 끝낸다.’
단숨에 드낙의 〈정신〉을 죽여서 상황을 끝낼 생각을 가졌다.
둘의 싸움은 두 곳에서 일어났다. 하나는 정신세계, 다른 하나는 현실세계였다. 현실세계에서는 드낙을 위해서 죽고, 드낙에 의해서 죽는 이들과의 힘 싸움이 존재 영역 내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현실에 있는 이들의 눈에는 빛과 피 그리고 검은 것의 싸움으로 보일 것이다.
*
“팝니다! 팔아요! 동부에서 직접 가져온 마법 물품이오!! 윽?!”
동부 상인이 박수를 치며 사람들을 모았다. 하지만 갑자기 그가 심장을 움켜쥐더니 그대로 넘어졌다. 누군가가 뭐라고 하기 전에 그대로 핏덩이가 되어서 무너졌다.
소란이 커졌다.
자의에 의해서 죽어가는 핏빛쥐들과는 다르게 동부 인간들은 죽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고로 드낙에 의해서 강제로 쥐어짜여졌다. 중립신은 동부 인간들에 대한 권한을 드낙에게 넘겼고, 드낙은 이를 지금 사용했다.
“콜록, 콜록! 컥!”
피부가 떨어져 나가고, 머리가 땅에 처박혔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적습이다! 적습!”
드낙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았고 그저 중립신과의 거래로 건네받은 동부 인간들은 곳곳에서 죽어 나갔다. 그들이 남부에 있어도 소용없었다.
중립신은 확실하게 동부 인간들을 모두 드낙에게 넘겨줬다.
“억!”
대장간에서 쓸 숯을 가져가는 젊은 노동자도 예외는 없었다.
좋은 일을 하기 위해 항상 신에게 감사하며 신성력을 행사해도 그게 〈동부인〉이라면 예외 없이 녹여졌다. 신성력은 사라지고, 중립신에게로 되돌아갈 뿐이었다.
그 끔찍한 현상은 전대륙에 이어졌고, 동부 왕국을 대혼란으로 몰고 가기 시작했다.
누구도 원인을 몰랐고, 애초에 원인을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무시무시한 역병처럼 모든 것을 덮쳤다. 쓰러진 이를 향해 달려가는 이가 무릎이 사라진 걸 깨달으며 엎어지면 핏물이 되어있었다.
화분에 물을 주던 여인네가 힘을 잃고 추락하며 피가 비처럼 흘러내렸다. 내장, 뼈 하나 남지 않았다. 모조리 드낙에게 업으로 빨렸다.
“아, 하하하! 악마다! 악마다아아아아!!!!!”
시끄러운 시장가에서 조용히 그걸 지켜보던 절름발이 노인네가 미친 듯이 웃었다. 그는 남부에서 흘러들어온 부랑자에 불과했지만 동부왕국의 사제들 덕분에 이곳에 자리 잡아 여생을 보낼 수 있었다.
언제나 북적거리는 이곳은 그가 항상 있는 곳이었지만 남은 것 피뿐이었다.
다만, 괴이할 정도로 남부인은 아무 일도 없었다. 마치 중립신과 남부인들의 연결고리가 끊긴 듯했다.
드워프들은 도움이 되지 않았고, 애초에 중립신과의 연결고리도 약한 편에 속했다. 유일하게 신의 봉화만이 연결고리일 정도였다.
이들은 중립신과 드낙의 싸움을 깨닫지 못했다. 중립신으로부터의 교신을 듣지 못했다.
그건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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