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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819화 (818/1,239)

강철의 전사 81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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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낙의 모습에 세파리아스는 맥이 빠졌다. 드낙은 자신이 보유한 업을 인간, 디아볼로스, 지하 연합에게 배분하면서 세파리아스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덫〉을 만드는 것도 중요했지만, 당장은 세파리아스를 설득해야 했다.

그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헤이! 츄라이~ 츄라이~! 맛있는 걸 먹을 준비는 됐어?”

“미친놈.”

경박한 모습과 지금 하고 있는 행위는 너무 차이가 심했다. 씨익 웃은 드낙이 입을 열었다.

“중립신에게 선택을 맡겨보자. 넘어오면 중립신은 죽고. 가만히 있으면 너도 살고 나도 살고 놈도 산다.”

덫은 사냥감이 들어와야지 목을 움켜쥔다.

“바보 같은. 중립신이 걸려들 리가 없다. 엘프가 죽으면 다음은 네 차례고, 내 차례다.”

“너도 죽는다고?”

드낙의 말에 세파리아스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엘프와의 전쟁을 30일 내로 끝내고 시간선을 훑어볼 것이다. 그럼 지금 이 대화도 걸려들겠지. 중립신에게 있어서 나의 무력은 반드시 사라져야 할 정도로 위험한 힘이다.”

영향무력(影響武力).

고작 인간인 상태에서는 그저 그 주변의 세상에 들어온 상대에게 자상(刺傷)을 남기는 것뿐인 힘이다. 무기에 따른 차이도 크다. 하지만 그런데도 위험하다. 신은 정신체(精神體)의 일종이고 영향무력은 그런 정신, 초월에 대한 강력한 피해를 줄 수 있었다.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다.

“각개격파 당하기 싫으면 전력을 다해야지. 덫? 걸려들면 죽여? 중립신이 그렇게 쉽게 보이더냐?”

세파리아스의 말에 드낙은 되려 물었다.

“네가 생각할 수 있는 건 중립신도 생각할 수 있다. 아니, 생각하고 있다. 아닌가? 그럼 네가 하는 방법을 쓰면 안 된다. 너가 나보다 예측하기 쉬운 인간이다. 이에 동의하나?”

“......동의한다.”

자신이 모은 업을 다시 그를 믿는 이들에게 분배한 짓거리를 한 드낙이다. 이미 중립신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총칼 든 상대에게 백의의 옷을 입고 행진하는 꼴이다.

드낙의 논리적인 말에 세파리아스가 수긍했다. 확실히 세파리아스는 예측하기 쉬운 인간이었다. 그것도 드낙이 상대라면? 상대적으로 세파리아스는 예측 가능한 존재에 불과했다.

“오히려 내 제안을 따르는 게 좋지.”

세파리아스는 중립신을 믿지 못하고, 드낙 또한 세파리아스의 일을 통해서 중립신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실질적으로 모든 일이 끝났을 때, 남은 놈들을 그냥 죄다 업으로 녹여서 테라에 주입하고, 새로이 종족을 만들어 번성시키면 더 완벽하다.

더 완벽한 〈필멸자를 위한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예수 방주 스토리였나?’

드낙은 예시를 통해서 깊은 체감을 느꼈다. 확 다가 오는 맛이 있었다.

진짜 그럴 수 있었다. 그럴 확률이 매우 높았다. 초월자가 있다는 걸 기억하는 필멸자로 채우기보다는 그걸 기억하지 못하는 놈들로 채우는 게 더 완벽하고, 뒤끝도 없었다.

‘내가 중립신이었다면 각개격파하듯이 죄다 죽인다.’

그리고 그 판단의 가장 위험한 순간이 지금이었다.

세파리아스도 최고조에 달해있고. 엘프와 중립신은 전쟁을 하고 있다. 중립신은 그 전쟁에서 힘의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엘프 놈들이 꼴깍 죽기 전에 선택해야 했다.

‘곧, 지금이 적기다.’

통수를 치려면 지금 쳐야 했다.

“함께 할래, 말래?”

“일찍 그렇게 말했으면 좋았을 것을...”

세파리아스의 한탄에 드낙은 고개를 완고하게 저었다. 그랬다면 중립신을 속일 수 없고, 덫도 놓을 수 없었다. 세파리아스에게 분노했고, 그런 분노 속에서 얻은 영감으로 만든 〈덫〉이었다.

“이런 상황을 겪지 않았으면 만들 수 없는 덫이었어.”

“그 덫은 뭐지? 듣고 싶은데.”

“넌 덫이 뭐라고 생각하냐? 덫이 가져야 할 조건이 뭘 것 같아?”

그 말에 세파리아스가 손가락 3개를 들어 올렸다.

귀족은 모든 분야에 대해서 다방면으로 알고 있어야 했다. 거기에는 사냥꾼의 수법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깊게 알지는 못했다. 그저 다른 사냥꾼도 아는 정석을 알고 있을 뿐이다.

당장 필요 없는 지식은 얕고 넓게 아는 식이 귀족의 배움이었다.

“하나. 적이 그 위험을 알아차리면 안 된다. 리스크가 없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혹은 멍청한 사냥감을 노려야 한다.”

리스크가 없어 보이게 만들어야 하는 게 덫이다. 혹은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공을 들여야 하는 게 덫의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둘. 상대가 걸려들 매력이 있어야 한다. 매력이 없으면 순전히 운에 기대야 하기 때문이다.”

걸려들 매력이 있는 덫. 손을 뻗는 이득이 있어야 하는 게 덫의 정석이었다.

“셋. 적을 제압하거나 죽일 수 있는 위력이 있어야 한다. 끝이다.”

적이 위험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쥐가 치즈를 향해 고개를 들이밀어도 죽이거나 단단히 묶어두지 못하면 의미가 없었다. 그렇기에 위력은 덫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였다.

‘뭐야, 이 새끼?’

드낙은 세파리아스의 막힘없는 말에 기분이 확 나빠졌다. 사냥꾼도 아닌 새끼가 너무 잘 알고 있어서였다.

‘이게 아닌데?’

“어흠. 네 말이 맞다. 덫이 지닌 이점은 최고라고 해도 무방하지.”

순식간에 태세를 바꿨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웠기에 세파리아스는 이상함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중립신이 사냥감이라는 게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세파리아스가 그 말에 대꾸했다. 중립신이 함정에 걸리는 모습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세파리아스의 관점에서 보면 현재 드낙은 그냥 자폭한 상태였다.

“넌 그런 함정을 만들 여력이 안 된다. 네가 지금 가지고 있는 걸 봐라. 뭘 할 수 있나? 모든 게 끝이 났다.”

세파리아스도 X되고, 중립신도 어떻게 보면 X된 상태였다. 세파리아스의 생각대로 중립신이 마지막의 마지막에 가서 드낙을 통수치려 했다면 그는 충분한 격과 업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강제로 신〉으로 끌어올리려면 드낙은 충분한 업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현재 드낙은 그냥 반마(半魔)일 뿐이었다. 전처럼 업(業)이 더럽게 많은 졸부 반마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대신에 대항할 수 없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지.”

드낙이 손가락을 아래로 향하며 쿡쿡 찔렀다.

“중립신은 행성을 자신의 기질에 맞게 변경하고 있다. 그 진행률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아마 50%는 넘겠지.”

그 말에 세파리아스는 노련하게 그 퍼센트를 수정했다.

“최소 7할이다. 그리고 진행률이 아니라 중립신이 모은 모든 힘의 7할을 이미 행성에 집어넣었을 거다. 3할을 간직하고 있는 건 ‘만에 하나’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경우는 엘프를 상대하기 위해서겠지.”

“전체 힘의 70%를 행성에 넣었다고? 그렇게 큰 리스크를 짊어졌다고?”

“멍청한 놈. 중립신에겐 그건 리스크도 아니다. 확정된 길을 그저 한 번 더듬고 지나가는 수준에 불과하다. 7할의 힘을 행성에 이미 집어넣는 건 일도 아니다.”

스케일이 달랐다. 거기에 많은 시간선을 짚어볼 수 있다는 강점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자가 3할의 저금을 하는 것도 사실은 우스운 일이었다. 3일 뒤에 주가가 폭락한다는 걸 아는 사람이 3할의 주식을 팔지 않고 혹시 몰라서 간직하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투자하는 입장에서는 무조건 손해인 셈이다. 그만큼 치밀한 것이 중립신이었다. ‘만에 하나’를 항상 겨냥하고 있었다.

반면 세파리아스의 놀라운 통찰력을 통해서 의외의 사실을 안 드낙은 오히려 좋아했다. 5할이 7할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거, 승산이 있겠어.”

드낙의 눈에는 중립신이 일찍 샴페인을 터트린 것 같았다. 더는 적수가 없다고 여기고 혹은 적수에 대한 데이터를 확인하고 행성을 테라로 변환하는 데 힘을 쏟아부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계획은 틀어지고 있었다.

업을 다른 놈들에게 그냥 베풀어버리는 자살행위를 한 드낙이 그 물고를 틀었다. 댐의 가장 밑부분에 작은 균열이 일어나고, 물이 졸졸 흐르는 격이었다.

다만, 그것은 세파리아스조차도 가늠하지 못했다.

“대체 무슨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거냐?”

“덫...세팔아, 너 혹시 만약에 중립신과 이 행성이 서로 힘을 교환하려고 할 때 그걸 막을 수 있겠냐? 끊을 수 있냐는 말이다.”

“엘프들과 전투를 할 때 중립신이 우리에게 개입한다면, 가능하다. 중립신의 역량이 어느 정도 소모해야지 가능한 일이다.”

“좋아.”

‘영향무력으로 중립신과 행성의 교류를 막을 수 있다...’

승률이 올라갔다.

“네놈, 빨리 말해라...! 뭘 꾸미고 있는 거냐?”

드낙이 힐끔 세파리아스를 쳐다봤다가 이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패는 모두 모였다...!”

자신을 놀린다는 걸 깨달은 세파리아스가 한 걸음 다가가자 드낙이 세 걸음 물러났다.

“말해줄게. 뭘 그렇게 화를 내?”

인싸는 따돌림을 아주 싫어하는 법이었다. 세파리아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독한 늑대를 좋아하는 인싸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차피 의견을 나눠야 했다. 시간은 충분했다. 그리고 세파리아스에게 작전의 검수를 받는 건 드낙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중립신이 정말로 끝장을 볼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서 난 내 업을 모조리 털었지.”

“자살이지. 자살.”

세파리아스가 방금 장난을 친 것에 대해서 불만을 품은 듯 드낙을 쪼아댔다. 드낙과 같이 있으면 아무리 대단한 양반이라도 수준이 비슷해지기 마련이었다.

“아. 그럼 말 안 함. 그냥 바로 중립신한테 가야겠다.”

드낙이 몸을 돌렸다. 세파리아스가 그 어깨를 턱하고 잡았다. 이미 전투를 이어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 세파리아스는 드낙을 공격하지도 않았다.

“빨리 말 하라.”

그 말에 드낙은 한 번 더 튕겨서 재미를 볼까 싶었다. 세파리아스를 괴롭히는 일은 너무 재밌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지만.

“내가 보낸 업은 나와 연결된 이들의 연결로를 강화시켰다.”

세파리아스의 표정이 조금 움직였다.

“네놈...그렇게 아끼더니, 그들 모두를 죽일 생각을 가지고 있군?”

“난 바보가 아냐, 정말로 중립신이 날 노리고 있다면, 제대로 싸워야 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될지 모르지. 하지만 어차피 내가 죽으면 다 끝난다.”

드낙과 친한 이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죽게 될 것이다. 드낙의 눈이 내려갔다. 그는 땅을 쳐다봤다.

“네 의심이 그저 의심으로 끝나길 빈다. 중립신이 업을 비운 날 공격하지 않으면 모두 승리하는 시나리오에 닿을 수 있다.”

중립신은 테라를 얻고.

세파리아스는 딸과 손녀와 함께 나아갈 수 있다. 드낙이 보기 싫으면 드낙이 스스로 나서서 그들을 독립하게 도와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드낙 또한 평온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업이 텅 빈 널 중립신은 반드시 죽일거다. 반마의 격이라도 취해야 하니까. 그리고 엘프와의 전쟁을 생각하면 최대한 단기간 내에 죽여야 하지.”

조금이라도 그릇이 큰 게 싸움을 빨리 끝낼 수 있었다. 반마의 격을 흡수한다면 대신(大神)이라고 할지라도 〈그릇〉이 확실하게 더 넓고 더 깊어진다. 대신이라도 그건 무시할 수 없고, 거기서 나오는 잉여 자원은 엘프 전쟁에 대한 소모를 줄일 수 있었다.

동시에 드낙이 세파리아스를 ‘설득’하려한 과정을 단숨에 깨달을 것이다.

“내가 너한테 굴복한 것처럼 보이겠지. 수틀리면 막 나가는 내가 반마인 상태로 업을 소모했음에도 너한테 패배했고, 자신을 죽이려고 온 것처럼 여길 거다.”

그 말에 세파리아스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막 나가는 새끼가 막 나갔고, 패망했다.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평범한 결과에 불과했다. 그건 중립신에게도 좋은 상황이었다.

“전투가 시작되면 난 날 따르는 이들을 모두 내 손으로 죽여서라도 중립신을 고꾸라뜨린다. 중립신을 이기기 위해서는 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신(大神)에 대항한다는 건 그러한 것이었다.

모두 웃으면서 엘 마르토 카사다민을 죽일 수는 없었다. 놈은 마왕 발라쿠보다 강력한 존재였다. 놈을 죽이는데 100만에 달하는 생명이 죽어버렸다. 중립신과 싸우는 데에는 얼마나 많은 생명체가 죽을지 몰랐다.

고로, 드낙은 소망한다.

‘중립신이 선을 넘지 않기를...’

최소한의 양심을 지닌 채 드낙을 그저 보내주기를...드낙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도했다. 기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미 화살은 쏴진 상태였다.

업을 모조리 탕진한 것처럼 보이는 드낙은 중립신의 깊은 의도를 한 번쯤은 확인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퍽!

세파리아스가 드낙의 팔을 쳤다. 제법 아팠다.

“감상에 젖지마라. 엘프들의 숫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줄어들고 있다. 〈덫의 위력〉을 생각하면 한시가 아깝다.”

“설명하라던 놈이 시간 타령하고 있네.”

드낙은 그렇게 대꾸하면서 서둘러 움직였다. 도망친 레우치터는 어디로 간지 알 수 없어서 찾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드낙이 세파리아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뭐냐?”

으르렁거리는 세파리아스를 보며 드낙이 한숨을 내쉬었다.

“누군 좋아서 이러냐? 그림자로 변할테니까 빨리 잡아! 거지같은 비행마법은 너무 느려!”

세파리아스가 얼굴을 잔뜩 찡그린채로 드낙의 팔뚝에 손을 척 얹었다. 서로 아주 강하게 팔과 팔이 얽혔다. 단번에 드낙이 그림자로 변해서 질주했고, 세파리아스가 그대로 날아갔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숨도 못쉴 바람 속에서 세파리아스는 무리없이 ‘요령껏’ 호흡하고 있었다.

그걸 본 드낙은 세파리아스를 미친놈 보듯이 쳐다봤다.

“너 사실 인간 아니지?”

“......”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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