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815화 (814/1,239)

강철의 전사 815편

<-- -->

“널 도우면 중립신을 확실하게 죽일 수 있다고?”

“그래. 하지만 도박수다.”

도박이라는 말에 드낙의 마음이 들썩했다. 수틀리면 튀어 오르는 게 드낙이었다. 워낙 그가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어쩔 수 없었다. 세파리아스는 일부로 도박임을 언급했다.

드낙이 흥미로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세상에 나오고 영지를 가진 뒤로는 도박에 도박의 도박다운 행보뿐이었다.

고로 이번에도 드낙은 그 떡밥을 물 것이다.

도박으로 재미로 봤기 때문이다.

“...자세히 말해줄 수 있나?”

“가장 먼저 나와 함께 중립신과 엘프들의 전쟁터로 향한다. 엘프 놈들은 처참하게 죽어가고 있겠지만, 놈들의 숫자를 생각하면 가히 한 달간은 끝없는 소모전이 이어질 것이다.”

그 전쟁은 엘프가 단 한 마리도 남지 않았을 때, 끝날 것이다.

“그곳에 향해서 내가 죽고, 너도 중립신에게로 돌진한다. 엘프도 도울 수밖에 없을 터다.”

드낙은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만하자. 너 많이 취한 것 같애. 이러다가 진짜 큰일 날 수 있겠다. 너 딸도 있고, 너 딸이 낳은 딸도 있으니까, 딸딸이 보러 가자. 컴온!”

세파리아스가 가만히 있자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계속해보자고. 그렇게 해봤자 반마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어. 네가 큰 피해를 준다고 해도 마무리하기가 어려울 거야”

세파리아스는 곧바로 대답했다. 언제 입을 다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재빠르게 입을 놀렸다. 드낙의 말에 수긍하지 않고, 해결법을 제시했다. 그건 바로 또 다른 격의 획득이었다.

“반마(半魔)에 불과한 네가 반신(半神)의 격도 획득한다면, 상황은 달라지겠지.”

“난 아직 신의 반열에 오를 수 없어.”

“누가 신에 오르라고 했나? 반신의 경지에 오르라고 했지.”

“하지만 방법이 없는데.”

“왜 없지? 생각하면 금방 나올 텐데?”

눈치 좋은 드낙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의 표정이 굳어지자 세파리아스가 단호하게, 명령하듯이 지껄였다.

“죽여라. 네가 반신으로 오를 때까지 널 따르는 이들을 죽여라.”

“그게 네가 생각해낸 방법이냐?”

“그렇다.”

그는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서 핏빛쥐 백만 마리가 죽는 걸 경험했다. 자신의 생명력과 그릇을 돌보지 않는 마왕(魔王) 발라쿠는 이 세계의 지배자가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놈과 싸워서 이겼다는 게 지금으로 생각하면 요행의 요행의 요행이었다. 동시에 드낙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고 있는 핏빛쥐들에게 감사하고 있는 일이었다. 발라쿠 또한 핏빛쥐들의 거대한 군세를 경계해서 드낙이 상대적으로 편할 수 있었다.

그 생명의 빚은 반마가 되면서 드낙과 핏빛쥐의 강력한 연결을 통해서 깨달았고, 지금까지도 드낙에게 거대한 심장 소리로 들려오고 있었다.

드낙을 위해서 너무 위험한 곳으로 가다가 죽는 검은뿔쥐 정보꾼의 삶도.

용광로 작업장에서 열정에 타오르다가 흥분해서 탈수 증세를 뒤늦게 깨달아 기절해서 녹아 죽은 크놀 대장장이의 삶도.

모두 반마(半魔)에 오른 드낙에게 들어오고 있었다.

만약, 드낙이 아직 초월자가 아니었다면, 혹은 반마도, 반신도 아니었다면 세파리아스의 생각에 마음이 기울었을지도 몰랐다. 초월자가 아닌 상태라면 중립신에 대한 공포심은 더더욱 커졌을 테니까.

“지금 ‘때’를 놓치면 중립신을 죽일 기회는 더는 없다. 엘프들과 중립신을 싸우게 한 지금이야말로 기회다.”

세파리아스가 드낙을 닦달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게 옳다.”

중립신을 잡아먹고, 이 테라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그게 ‘정상적인 판단’이다.

“넌 중립신에게 세뇌도 당했다. 그걸 그냥 묻어버리고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말하지는 안 하겠지? 겁쟁이나 다름없다.”

드낙은 중립신을 찌를 명분도, 이유도 있었다. 중립신은 드낙에게 흉험한 짓을 몇 번이나 했다. 대계(大計)라는 이름 앞에 수많은 이들을 괴롭혔다. 검은 꿈에 연결된 드낙은 사실상 입맛대로 조종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건 세파리아스가 죽고 나서 당한 것과 비슷했다. 그렇기에 세파리아스의 외침은 정당한 분노였다. 드낙도 응당 분노해야 했다.

“지금 중립신을 잡아먹고, 네가 이곳의 신이 되어라. 난 중립신에게 나를 증명하고 죽겠다.”

거대한 유혹이나 다름없었다. 그 세파리아스 불파겐이 길을 여는 일이다. 걷는다면 황금으로 된 길을 걷는 것과 같았다. 걸리적거리는 것 하나 없을 터다.

“넌 그걸로 만족해?”

“물론, 이미 나는 한 번 죽었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있는 이유는 날 이용하려는 놈을 죽이는 것뿐이다.”

세파리아스의 〈죽음〉에 대한 달관은 드낙은 평생 가도 모를 일이었다. 한때는 그걸 이해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지금 생각하면 아니었다.

분명 드낙은 죽음보다 가치있는 것이 있었지만, 저렇게 쉽게 죽음을 선택할 수는 없었다. 고로 그는 세파리아스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인간이었다.

“흐흐.”

드낙이 웃음소리를 냈다. 그 모습은 흡사, 세파리아스를 비웃는 것처럼 들려서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

“왜 웃는 것이냐?”

“넌 대체 좋아하는 게 뭐냐?”

“뭐라?”

“재밌어하는 거, 살면서 재밌었던 게 뭐냐고.”

“그런 걸 왜 물어보는 거지? 지금 같은 순간에?”

세파리아스는 드낙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세리안이 낳은 손녀를 보고 싶은 생각은 없어?”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지금 이야기할 건 안 되지.”

세파리아스가 질문을 회피했다. 그 모습은 드낙에게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다이앤타는 할아버지를 그렇게 닮았더라...”

“뭐? 시끄럽다. 어서 내가 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나 해라.”

‘제법 강고하네. 하긴, 그러니까 딸도 조금 보고 바로 중립신을 죽이려고 노력했을 정도니까.’

가족을 보고 싶지만, 자신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것을 우선시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그 스케일이 너무 달라서 그냥 사이코패스처럼 보였다. 너무 과하면 항상 안 좋은 법이었다.

“내 대답은 NO다.”

드낙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세파리아스는 그런 드낙을 이해하지 못했다.

“밥을 차려줘도 못 먹는 게냐?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냐?”

“테라에 미련이 없어서다. 네가 영화랑 드라마랑 애니랑...”

“테라에 미련이 없다고? 개소리도 그만해라. 이 차원계를 먹고, 다른 차원으로 나아가는 게 더 쉬울 것 같나. 아니면 기반 없이 외계행성 하나 잡고 서둘러 차원을 떠나는 게 쉬울 것 같나? 내 앞에서 거짓말하지 마라.”

“진짜야. 넌 대단하신 양반이라서 모르겠지만, 난 중립신과 싸우고 싶지 않아.”

‘겁쟁이의 말로다.’

세파리아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꼬리를 내리다니, 황당했다.

“그리고 너도 그냥 나한테 와라.”

쉭!

롱소드가 빗살처럼 허공을 휘저었다.

분명히 피했음에도 드낙의 눈에서 피가 쏟아져나왔다.

푸슈우우웃!!

기괴하게도 생피였음에도 피가 검은색으로 변질되어있었다. 또 피를 토하는 것처럼 피의 압력이 대단해서 바닥이 흥건해졌다. 그건 찰나에 불과했지만, 분수처럼 쏟아져서 방의 구석까지 피가 튀어있었다.

어마어마한 양의 피가 작은 눈의 상처에서 쏟아져나왔다. 반마의 육체가 격렬한 반응을 끌어냈다. 드낙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것이 세파리아스의 롱소드가 지닌 힘이었다.

다만 오히려 다른 것에 당황했다.

‘피했는데, 당했다?’

분명히 회피했는데도 베였다. 아니, 애초에 〈닿지 않을 거리〉였다.

경악하는 드낙에게 세파리아스는 걸음을 옮기지 않고, 검에 묻은 피를 새하얀 손수건을 꺼내서 닦고, 바닥에 바로 버렸다.

“리치 밖의 일검(一劍)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네가 날 품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방 내부에 달빛이 비쳤다.

실크로 된 펑퍼짐한 잠옷을 입고 있었음에도 세파리아스는 카리스마가 넘쳤다. 달빛에 비치는 검신이 중단에 자리잡혔고, 검 끝은 드낙을 향해 고정되었다.

“창문으로 도망쳐서 마법 쓰면 그만인데?”

“내가 보이지 않는데, 나를 죽인다? 새로운 자살법인가.”

“......”

눈먼 마법에 당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또 세파리아스는 아직도 중립신의 챔피언이었다. 그의 피부에서 신성력이 끌어 올려졌다.

“날 공격하는 걸 중립신이 느낀다면 신성력은 금방 사라질걸?”

“이 정도 신성력에 네가 죽는다고 생각한다면 넌 너의 몸을 제대로 모르는 거다. 오히려 설득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

드낙이 살짝 몸을 뒤로 슬슬 뺐다. 그러면서도 설득에 설득을 이어나갔다.

“장인 어른, 아무리 난폭해도 검을 쓰는 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네가 언제부터 나한테 존댓말을 했다고. 장인 어른이라는 소리도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점점 세파리아스가 적의(敵意)를 쌓아올리고 살의(殺意)를 끌어올렸다.

“딸, 딸아이가 생각나지 않습니까? 손녀도 생각하셔야죠. 정 그러시다면 저도 노력해서 신제국인들이랑 같이 다른 차원계로 가면 되는 거 아닙니까? 까짓거 세팔이 너도 신은 찍어봐야지.”

“난 중립신이 대계를 완성하고 죽는 꼴은 못 본다. 놈은 내 손으로 죽인다.”

중립신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다.

그는 진정으로 테라에 녹아서 사라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건 그의 삶이 보여주고 있었다. 인신과 인간의 세상을 이룩하기 위해 노력했고, 실패한 이후에도 초월자 없는 차원을 하나 만들려고 하고 있었다.

그 목적성은 대범했고, 많은 피를 묻힐 터다. 그렇기에 오히려 진실성이 있었다.

“나에게 남은 시간은 별로 없다. 내가 두 번째 삶을 가지게 된 이유는 단 하나, 중립신의 죽음을 내 손으로 하는 것뿐이다.”

“다른 건 아무 상관 없는 거냐? 너도 주저하고 있지 않았나. 조금뿐이지만 그래도 가족 생각해야지.”

드낙이 그렇게 말했지만 세파리아스를 설득할 수는 없었다. 되려 세파리아스는 미소를 지었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하자. 난 내가 생각하는 것을 할 뿐이다. 죽음도 나를 막지 못한다. 오히려 이 여흥으로 중립신을 방심시킬 수 있겠지.”

한 달이라는 기간이 아직 남아있었다. 그전까지 중립신은 전력으로 엘프들을 죽이기 바빴다. 엘프 + 영혼 제국을 죽여서 생기는 힘의 절반 이상을 다 엘프와의 전쟁에 써야 할 것이다.

“아! 잠깐! 그럼 아예 그냥 나한테 네가 잡아먹혀라!”

“뭐라?”

황당한 발언에 세파리아스가 되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드낙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혈액이었다. 혈액에 깃든 드낙의 염(念)은 마법을 발현시켰고, 혈액이 타오르며 화염이 산탄총처럼 세파리아스의 전신을 뒤덮었다.

쨍그랑!

제국답게 창문도 나무가 아니라 비싼 유리였다. 유리를 깨고 드낙이 단번에 공중으로 솟구쳐올랐다.

‘다른 놈들 신경 써줄 여유는 없다. 싸워야 한다면, 싸울 뿐이다. 휘말려도 책임을 질 수 없다. 나도 내가 그리는 미래가 있는 사람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악귀라도 될 수 있는 게 드낙이었다. 내 똥고에 불붙었는데, 다른 사람이 그걸 꺼줄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 응당 악귀가 되어야 했다. 그게 드낙이, 박호훈이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주저함이 있었다.

훅!

잠깐의 주저함 속에서 투창하나가 드낙을 정확하게 노렸다. 벽을 부수고 허공으로 쏘아졌다. 그 속력은 실로 변변찮은 것이었다. 드낙은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맨손으로 이를 잡아서 그대로 되먹여 주었다.

쿠웅!

육중한 소리를 내며 벽을 뚫고 그 다음 층도 뚫고 깊은 바닥까지 처박혔다. 붕괴는 일어나지 않았다. 관통력이 강하기 때문에 주변으로 타격력이 넓게 펴지지 않았다.

“널 굴복시키고, 산 채로 잡아서 이 행성을 떠나겠다! 세리안 앞에서 내가 밥 떠먹여 줄 테니, 받아들여라!”

“주둥아리만 산 버러지 같은 놈!”

그 도발에 세파리아스가 욕지거리를 날렸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모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곳을 향해 드낙의 손이 움직였다. 주문을 읊고, 마법진을 그릴 필요가 없었다.

촤악!

피가 뿌려지며 허공에 떨어지는 사이에 그 자체가 마법이 되었다. 3m에 달하는 얼음창이 내성의 한 부분을 강타했다.

댕댕댕댕댕!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첨탑에서 불이 들어왔다. 곳곳에서 횃불이 득실거리기 시작했다. 궁수들은 지붕 위로 올라오고, 기사들은 풀플레이트 아머를 입었으며 마법사들은 서둘러 대피했다. 상황을 파악하고 전투에 투입되어야 하는 고급 전력은 확실한 통제가 필요했다.

이 성에 있는 신제국군의 군대는 고작 3천에 불과했다.

극단적으로 군비를 단축했기 때문이다. 아기 우는 소리가 울려 퍼져 드낙의 귓가에 들려왔다. 병사보다 민간인이 많았다.

화르르르르!

‘세파리아스가 내성에 있을 때 단기전으로 끝낸다.’

양손에 이글거리는 화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화염은 불기둥처럼 솟구쳐올랐다. 그리고 이내 압축되어가며 용암처럼 흘러내렸다.

텅!

세파리아스의 투창이 드낙의 면상에 꽂혔지만, 어느새 방어 마법이 이를 완벽하게 차단했다. 용암이 내성을 덮쳤다. 건물이 녹기 시작했다. 그런 드낙의 귀에 마법사들과 병사들이 혼란에 빠져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드낙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점점 더 하나로 뭉쳐갔다.

“신제국의 새로운 황제에 올라설, 우리들의 왕을 지켜야 한다!!”

와아아아아!!! 신세계로 향하자!

그 무리 속에는 솜털도 빠지지 않은 어린애도 있었다. 사람을 죽이지 않는 세파리아스는 위대한 영웅, 빛으로 가득한 왕일 뿐이었다. 시민들의 걱정거리를 해소시키는 해결사였다.

그러나 드낙은 무자비했다. 그는 가장 먼저 ‘허튼짓’을 할 수 있는 마법사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에게 패배라는 글자는 보이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6355자

평점 충첨 코멘트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