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81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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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신은 엘프 지방 도시를 그대로 지나쳤다. 이에 드낙이 외쳐서 물었다.
“왜 지나치는 거야? 엘프를 죽인다며?”
[전초극의 권능이 가리키는 곳으로 향하고 있다.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중립신은 친절하게 드낙에게 설명해줬다. 이미 전초극의 권능은 사용되고 있었다. 엘프와 중립신의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전초극의 권능은 전쟁의 승패 요인을 초월하여 점하는 데 사용되고 있었다.
[나 정도 되는 신도 시간선의 수 싸움을 하는 건 지겹고 힘든 일이지. 현실이란 것은 작은 태엽만으로도 모든 게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뒤엉키기도 쉽지.]
개연성 하나 없는 현실에서 미래를 예측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바둑판의 수 싸움조차도 머리가 아픈데 현실의 미래를 다룬다? 신에게도 귀찮고 어려운 일이었다. 머리가 터져도 수긍할 정도였고, 공돌이들도 학을 떼는 일이다.
그걸 꾸준히 하며 대계를 준비한 중립신은 정상이 아니었지만 그런 중립신 또한 힘에 버거울 때가 많았다. 그런 ‘시간의 수싸움’에 도움을 주는게 전초극의 권능이었다.
아주 편한 권능이기도 했고, 대신(大神)급의 힘을 보유하고 있어야지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드낙은 그저 백병전에서나 전초극의 권능을 한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오직 싸움, 전쟁에 한정된 권능이지만 확실하게 전쟁 요인의 우선순위를 가려낼 줄 알았다. 그건 이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초월의 힘 총량으로 따지면 현재 ‘규모의 엘프’는 대신과도 맞먹는 수준의 초월의 힘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넓게 퍼져 있고, 개체로 떨어 뜨려져 있었다.
중립신이 지방 도시를 지나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당장 그들은 중립신의 부활을 확인하고 대처를 하겠지만, 그것보다 중립신은 한발 더 나아가고 있었다.
전초극의 권능이 작은 도시를 지나치는 이유를 알고 싶다면 시간선을 헤집어보면 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전초극의 권능이 반응하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그들이 도착한 곳은 또 다른 지방 도시였다.
가장 북서쪽에 존재하는 음울하고 조용한 엘프 도시였다.
생기는 없고, 오직 무미건조한 병사들이 순찰을 하며 도시 안팎을 지키고 있었다. 종종 순찰대가 나가서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들은 거대한 전차를 몰고 자라나는 묘목을 짓밟아 죽이며 주변 일대를 평평하게 만들었다.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중립신의 존재감이 그런 엘프 도시를 뒤덮었다.
“헉?”
만찬을 즐기던 엘프 기득권이 포크를 떨구었다. 영혼이 먼저 앞으로 나가며 육체를 빠르게 당겨 초월적인 움직임을 내뱉었다.
“중립신이 부활했다!”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느껴지는 거대한 신의 존재감은 오직 중립신 뿐이었다.
“엘프들은 서둘러 도시에 마력을 공급해라!! 그의 간섭을 상쇄시켜야한다!”
엘프들이 소란스럽게 움직이며 시끄러워졌다. 그 누구도 이길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단순히 중립신의 수작질을 막으려고 할 뿐이었다.
그 광경을 내려다보는 드낙의 시간이 느려졌다.
‘와우.’
몇 번이고 경험한 것이었다. 킬 더 배틀이라 이름 지은 체감 시간의 증가였다. 그것보다 더 강한 효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모든 사물이 느리게 움직였다.
‘단순히 나한테만 적용되는 게 아냐...!’
중립신이 주변에 있는 중력을 짓눌러 시간이 느리게 움직이게 하였다. 하지만 괴이하게도 드낙은 그 어떤 중력의 짓눌림도 느낄 수 없었다. 주변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시간’만이 짓눌러져 느리게 흘렀다.
시간이라는 놈을 잡는데 뼈를 깎는 노력을 한 중립신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목표를 위해서 노력하는 신이었다. 숭고한 목표는 고행자(苦行者)를 손쉽게 만들 수 있었다.
부르르!
드낙은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내가 신을 너무 가볍게 봤구나.’
오래 살았다고 해서 신이 무조건 대단한 건 아니었다. 드낙은 능히 신과의 싸움에서 우위점을 터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너무나도 허황된 생각이었다.
‘아무리 대신이라지만 너무하다.’
중립신처럼 일권자(一權者)로 인신으로 살며 오직 대신이 되기 위한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내달리고, 대신(大神)이 되고 나서는 다른 인신을 규합하여 거대한 신들의 단체를 만들어 신들의 땅의 정복을 시작했다.
그 열정과 걸어온 길은 드낙이 감히 평가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단순히 그 길이 실패했다고 조롱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계속 다른 목표로 수정하며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중립신은 무섭고, 두려운 존재였다. 마치, 인간처럼 아득바득 노력했다는 게 느껴졌다. 다른 요인은 건드리지 않고 시간만을 느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젠장...’
세월의 격차가 아니라 노력의 격차에 드낙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부활한 중립신은 그저 대단하게 보일 뿐이었고, 드낙은 끝없이 부끄러움을 느꼈다. 중립신은 드낙의 행보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그 열등감은 시간이 지나면 강렬한 열정으로 변환될 것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대단하다.’
순수하게 감탄하기도 했다. 감히 자신이 반말로 지껄일 존재가 아니었다. 대신이 되어서 단번에 걸어가는 중립신은 드낙과는 확연하게 다른 존재였다.
한 시대를 풍미하고 수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하며 평가받는 영웅을 직접 목전에 두면 고개를 숙이기 바쁜 게 범인(凡人)이었다.
한 회사의 사장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드낙은 그렇기에 더더욱 소름이 끼쳤다.
[이 도시는 자비의 도시 지오바나(Giovanna)다. 전초극의 권능이 가리킨 곳이기도 하지. 찾아보니 은폐 도시 중 하나이며 역사적으로 위협적인 엘프들이 갇혀있는 곳이다. 그대들이 말하는 엘프 노괴들이 계획한 도시이기도 하다.]
느려진 시간 속에서 중립신이 말을 걸어왔다. 이건, 드낙에 대한 배려이기도 했다. 그는 훌륭히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이행했다. 그렇기에 중립신은 드낙이 자신에게 반기를 들지 않았으면 해서 자신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오직 ‘시간’만을 짓누르는 중력을 느낄 수 있는 건 드낙의 격이 반마(半魔)에 섰기 때문이다. 반면 다른 엘프들은 그저 공포에 질려있을 것이다.
몸은 느리고, 정신은 멀쩡하다. 오히려 점점 날카롭게 변해갔다. 엘프의 녹안(綠眼)이 지닌 효능은 정신을 더더욱 차갑게 시켰다.
불가해(不可解)의 현상 때문에 시리도록 차가운 이성이 엘프를 더욱 압박했다.
그들 스스로 자신의 목을 조르는 것과 같았다.
[이 도시에 감금되어있는 지식 개발에 뛰어난 엘프들은 기득권에게 위협적이다. 노괴 엘프들은 위험한 연구를 하는 엘프를 이곳에 가두고 있었다. 동시에 완성되지 않은 연구를 중단시키고 관련자들을 끌고 오기도 했지.]
도시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며 중립신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에게는 손쉬운 일이었다. 육체가 없었기에 어디서든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황금과도 같은 햇빛은 모든 걸 뚫고 모든 곳에 닿아있었다.
[그들을 감금한 이유는 위험하기 때문이고, 필요할 때 쓰기 위함이다. 바로 엘프의 대적자가 나타났을 때 상대하기 위함이지.]
지금이 그러했다.
이 도시는 연구원들의 무덤이나 다름없었다.
[엘프 연구소는 이런 자들을 선별하는 실험장이나 다름없지.]
언뜻 보면 무한한 지원이 이루어지는 연구소의 내면은 지식 개발에 재능있는 엘프를 선별하여 가두기 위한 거대한 실험장이었다.
‘진짜 미친 권능이고, 말도 안 되는 형태의 존재다.’
드낙은 전초극 권능의 힘과 대신의 존재가 지닌 장점에 혀를 내둘렀다.
모르지만 일단 가보면 전쟁에서 이길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능력과 존재가 닿으면 모든 걸 알 수 있는 대신의 정신체.
서로가 서로에게 강력한 시너지를 제공하고 있었다.
‘신들과의 전쟁에서는 육체도 가졌었겠지.’
육체가 있으면 더더욱 좋은 게 전초극의 권능이었다. 육체에서 존재를 빼내어 언제든지 어느 곳으로도 갈 수 있었다. 정신체가 지닌 유틸성은 숨을 턱 막히게 할 지경이었다.
결과적으로 전초극의 권능은 본인의 격이 더 높을수록,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게 전초극의 권능이었다. 드낙은 그저 오른팔에 잠시동안 넣어서 사용할 수 있었다.
그건 그저 백병전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지만, 중립신 정도가 되면 뭐든지, 어디에든지 적용할 수 있었다.
[엘프들의 혁신을 차단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이 전쟁의 핵심이지. 그걸 싹부터 자르는 건 필수적인 일이다. 그렇기에 전초극의 권능은 나를 여기로 이끌었다. 내가 수 싸움에 들어갈 필요도 없이 이곳에 오게끔 했지.]
‘자동핵이나 다름없네.’
[엘프들은 고정된 존재이기에 ‘규모의 엘프’라고 칭할 수 있다. 불쌍한 존재들이야. 그들을 죽이는 이유는 늙어서 죽지 않는다는 게 크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뭇자들은 완성되었다고 하겠지만, 대신의 눈으로 봤을 때는 그저 고정된 존재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들이 위험한 건 늙어서 죽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필멸자의 정신은 썩기 쉽다.
신의 피와 살조각을 먹은 대가였다. 그건 엘프가 원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엘프로서는 황당하겠네.’
아무리 초월의 힘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드낙을 보지 못한 것처럼 격(格)에서 생기는 힘은 엘프에게는 불가해의 영역으로 보여질 것이다.
그저 힘만 강한 게 아니었다.
드낙이 암살의 격이 남다르다면 중립신 또한 그에 걸맞은 격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조용하지만 중립신의 힘이 사용되며 파동이 크게 일어났다. 변하는 것은 없었지만 드낙은 중립신이 뭔가를 했다는 걸 체감했다.
[들어가서 확인해라, 나름 흥미로울 것이다.]
서둘러 마을 내부로 들어간 드낙은 흠칫했다. 어느새 엘프들이 죽어있었기 때문이다. 중립신이 어느새 손을 댄 것이다. 시체를 확인했는데, 심장은 아직도 뛰고 있었다. 그러나 뇌는 죽어있었다.
머리에서 흘리는 피가 드낙의 손에 묻었다. 아주 자그마한 상처가 만져졌다. 피부가 까져있고, 뼈가 만져지는 정도에 불과했다. 깊은 상처였지만 좁았고, 뼈도 뚫지 못해서 피만 흘릴 뿐이고 그마저도 응고가 될 터였다.
건강한 엘프이기 때문에 위협적인 상처는 아니었다.
‘뇌에 충격을 줘서 죽였다. 하지만 그 충격량은 너무 적은데?’
드낙의 그런 의문에 중립신의 정신파동이 들려왔다.
[엘프의 진짜 약점은 뇌와 귀다. 그들은 귀가 길어서 평형 감각을 유지시키는 전정 기관이 지나칠 정도로 발달해있다. 청각이 좋은 건 두말할 것도 없지. 전투에서 균형을 잡기도 쉽다.]
[영혼을 뻗어 육체를 잡아당기는 기법에도 사용되지. 뛰어난 균형감각이 있으니까. 하지만 난청이 없는데도 이명이 들릴 정도로 귀는 뇌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법이지.]
‘우웁...’
드낙이 이과가 내는 소리에 질색했다. 전문가가 떠드는 소리를 듣는 군중의 마음이었다.
‘전정 기관이 뭔 뜻이야, 시벌...’
단어에도 쥐약이었다. 제법 풀어서 말해줬기에 어느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귀가 대단히 발달한 종족이라서 오히려 두개골을 치면 남들보다 더 큰 피해를 입는다는 소리야?”
[간단히 말하면 그렇다.]
본능적으로 균형을 잡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기에 타격을 흘러내는 게 아니라 받아낸다는 소리였다.
[최소한의 힘으로 엘프를 죽이는 방법은 적당한 타격력으로 머리를 치는 것. 그거 하나만 있으면 된다.]
이런 엘프들의 약점 또한 전초극의 권능이 알아서 파악한 것이다. 불에 약한 종족은 불로 태우도록 하고, 균형감각이 뛰어나면 이를 역산하여 스스로를 죽이는 단점으로 만들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손쉬운 전쟁 도구나 다름없었다. 적 나아가 전쟁 구도 자체에 적용하는 권능이다. 황당했지만 가능하다는 게 어처구니없었다.
“참으로 간단해 보이십니다.”
드낙이 비꼬았지만, 대답은 없었다.
“그럼 여기 도시에 있는 모든 엘프를 죽인 거야?”
[그렇다. 실험 도시라서 검은 잔을 받은 엘프는 없다. 검은 신전이 있는 도시와의 거리도 멀지.]
“......너무 지나친 권능인데. 그런 걸 무서워하지 않은 놈들이 있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전초극의 진면모를 제대로 관측하는 건 그대가 유일하다.]
유일하다고 말해도 그걸 파훼하는 방법은 오직 정공법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정공법은 통하지 않을 공산이 컸다. 테라가 완성되면 이 차원계를 비롯한 테라라는 행성은 계속 커지기 때문이다.
“난 비밀 그런 거 듣는 게 가장 싫은데.”
드낙은 또 한 번 질색했다. 비밀, 그런 걸 알면 명줄이 당겨질 뿐이었다. 영화나 그런데 보면 가장 먼저 죽는 건 비밀을 처음으로 목격한 놈이다.
[그대가 잘하면 괜찮겠지. 난 이후에 수동적인 존재가 되니까.]
“어련하시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드낙은 날카로운 표정을 지었다. 대신(大神) 중립신의 공격법을 눈치 있게 갈무리할 수 있어서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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