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811화 (810/1,239)

강철의 전사 811편

<-- 대신 -->

대신의 부활이 이루어지자 행성 자체에 변화가 찾아왔다. 중립신은 행성이 자신의 모든 것을 잘 받아내도록 설계를 하고 있었고 그 진행률은 70%가 넘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가장 먼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활력이 커지고, 격렬해졌다. 불모지에 오랫동안 죽은 듯이 지냈던 메마른 씨앗에서 떡잎이 나왔다. 동시에 행성 자체의 크기도 서서히 커졌다.

행성은 중립신의 영향을 받고 있었고, 중립신이 대신으로 격상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에 맞춰서 덩치가 커졌다. 지진은 일어나지 않았고 아주 안정적으로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땅이 밀려나는 듯한 감각마저 안 들 정도로 전체적으로 미세한 움직임이었다. 그건 어느 정도 진행되다가 중단될 것이다. 계속 이어지게 하려면 중립신이 죽어서 테라에 흡수되어야 했고, 아직 그럴 단계는 아니었다.

대지에서 시작되는 생명의 파동은 드워프들의 눈에도 담겼다.

그들은 잠을 덜 자게 되었고, 깨어있는 내내 각성제를 먹은 것처럼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드워프들은 서로의 눈을 보자마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못 볼 것을 본 것이나 다름없었다.

“왜 이렇게 눈이 초롱초롱해?”

“너야말로 눈까리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애새끼처럼 맑고 커져 버렸잖아!”

“너야말로!”

서로 멱살을 잡았다. 투닥거릴 정도로 정신이 건강해지고 활력이 높아졌다.

이 때문에 드워프 사회는 빠르게 눈을 가리는 문화가 자리 잡게 될 것이다. 그들이 중립신과 교류하기 위해서 만들었던 신의 봉화는 나무가 자라나고, 열매가 맺혔으며 꽃이 가득 피워져 있었다.

그곳에서는 신성력이 뿜어져 나와서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 중립신을 계속 믿어온 드워프들에게 주는 중립신의 선물이기도 했다. 새롭게 형태를 갖춘 신의 봉화는 드워프들의 정신에 있는 피로도를 흡수하며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

꾸준히 효과가 있는 정신과 치료와 상담을 받는 것과 비슷했다.

또한 본디 인신이었기에 인간들의 변화도 컸다.

“콜록! 콜록! 캬아아아아아아아악! 퉤!”

기관지가 약화된 노인이 죽을 것처럼 굴었다. 하지만 으레 있는 일이라 누구도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많이 걱정했지만 그러면서도 계속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내일도 이런 상태가 이어지리라고 믿고 있었다.

“크흠. 큼!”

그 기침 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이내 말하면서도 기침을 하지 않게 되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인간 개체는 많았지만, 그들에게 아주 미약한 신성력 가루 같은 게 꾸준히 주어지고 있었다. 그저 대신이 된 것만으로도 그러한 효과가 인간들에게 부여되었다.

인신들이 너도나도 대신이 된 중립신을 노렸던 이유 중 하나였다.

인간은 나약했고, 질병과 부상에 시달리는 하찮은 존재였다. 그걸 큰 힘의 소비 없이 유지하게 만들었기에 인간 규모를 매우 키울 수 있었다. 다만, 중립신은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와서 오직 고통받는 이들에게만 이러한 은혜를 베풀었다.

평범한 대신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중립신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인간에 대한 편애를 없애기 위해서였다. 그는 한 번의 추락을 경험했고, 거기서 또 깨달음을 얻었다. 필멸자를 위한 세상은 곧 동식물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었다.

모든 생명체가 작고 미약한 신성력으로 질병에서 해방되어 행복을 누리고, 서로 잡아먹고 먹히며 생태계를 이루는 건 모순적이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지는 광경이기도 했다.

생존과 즐거움을 위해 잡아먹는 것과는 다르게, 그저 병에 걸려서 골골거리고 죽는 건 덧없기 때문이고, 무미건조하다. 그 어떤 드라마도 없었다.

그런 대신은 드낙에게로 향했다.

‘흑황제라도 흡수했겠지.’

단 한 명이라도 드낙이 호로록 영혼 제국의 영혼을 흡수하기를 중립신은 기대했다. 이를 통해서 최대한 단기간 내에 드낙을 내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아웃버스트가 죽자마자 동부 영혼탑이 붕괴했고, 영혼은 흐트러졌다. 영혼 진지는 유지되었고, 기사와 병사도 멀쩡했지만, 핵심 기지가 붕괴했다는 건 드낙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이놈이 머리였구나.’

자신이 죽지 않는다는 확신을 지닌 것과는 다르게 허망하게 죽었다. 드낙은 서둘러 제국 중앙에 있는 영혼 탑으로 향했다.

그것도 마찬가지로 무너져 있었는데, 흑황제를 찾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는 건 불안했지만, 좋게 끝난 것 같지는 않았다.

아웃버스트가 만든 안전장치는 자신이 죽으면 영혼탑도 붕괴하는 것도 있었던 듯했다. 실로 마법사다운 장치였다.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유산을 그 누구에게도 주지 않겠다는 치졸한 생각이 담긴 모습이었다. 드낙은 영혼 마법에 관심이 있었지만 그게 싹 사라져버린 것에 아쉬움을 느꼈다.

‘배울 점이 제법 있었는데.’

죽은 이의 영혼을 통해서 군대를 조직하는 건 매력적인 일이었다. 물론 그만큼 드낙이 얻을 업은 사라지겠지만, 방위산업에 큰 힘을 부여하는 것만으로도 평온한 삶이 가능해 보였다.

그게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싹 사라져버렸다.

중립신에게 업을 통해서 거래한다고 해도 이제는 안 들어줄 것처럼 보였다. ‘영혼 마법’이 지닌 위협성 때문이다. 그걸 드낙에게 줄까? 어림도 없을 터였다.

그렇기에 드낙은 애초에 거래할 생각도 접어버렸다. 다만 구질구질하게 기웃거리고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영혼 강철 그리핀을 타고 다니는 용기병! 그것도 인력이 들지 않음!

‘오우야...’

그걸 빼앗아 먹었다면? 마치 중세 드라큘라들이 떵떵거리며 성에서 살 때 그들을 지켜주는 가고일을 딱 세워두는 것과 같았다. 간지가 철철 흐를 것이다.

‘나중에 골램 기술을 높이도록 기술자 놈들을 갈아 넣어야겠어.’

폐허를 거닐며 드낙이 그런 생각을 먹었을 때, 폐허의 잔해가 들썩이며 웬 놈이 튀어나왔다. 사람처럼 생겼지만, 눈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전신에서 주체를 못 하는 영혼력이 배출되고 있었다.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영혼력 이상을 보유해서 나타나는 과잉 현상이었다.

‘잡았다. 요놈!’

드낙이 단번에 뒤를 잡고 머리채를 쑥 잡아당겼다. 단번에 몸이 폐허에서 튀어나왔고, 휘둘러서 내다 꽂았다.

쾅!

먼지가 크게 일어났다. 주변에서 깨진 영혼관들의 영혼들이 곳곳에서 들고 일어나 퍼져나갔다. 영혼탑이 무너지면서 이곳 일대는 영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때문에 흑황제의 위치도 불분명했고, 파악할 수 없었다.

생명력을 영혼력이 가려버릴 정도로 많은 영혼력을 보유하고 있어서였다.

“크아아악!”

그가 버둥거렸다. 얼굴이 완전히 뭉개져 있었다. 해파리같이 영혼력이 줄기처럼 들고 일어나서 육체를 회복시켰다. 몸 곳곳에 뭔가 끼워 넣은 듯한 흉터들이 가득한 게 제넬루 바르시아였다.

인간이지만 인간 같지 않았고, 생체 실험당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자비는 없었다.

중립신과의 약속을 위해서라도 드낙은 영혼을 탐내면 안 되었기에 단숨에 흑황제를 죽이고, 육체를 갈기갈기 찢어버렸으며 영혼을 해방시켰다.

동시에 구름이 걷히며 이 일대에 밤임에도 황금빛의 햇빛이 쏟아져 내려왔다.

드낙은 느낄 수 있었다. 거대한 존재가 지금 이 자리에 있다.

[잘 해주었다. 적어도 흑황제는 흡수할 줄 알았는데, 그도 버렸군. 이유가 있나?]

아쉬움이 조금 묻어 있었다. 드낙은 어깨를 으쓱했다.

“싫증이 나서 그래. 하루빨리 너의 대계(大計)를 끝내고 쉬고 싶어. 오면서 봤거든. 일부러 만든 큰 수족관인데 마법으로 유리관을 엄청나게 강화했더라고. 거의 1km짜리? 그 정도로 큰 수족관이었어.”

아마 제국이 멸망하고도 유지되고 있던 이유는 흑황제의 취미 생활이었을 것이다.

“골램도 여러 마리 붙여놓고 관리를 하고 있더라고, 거품 내는 골램이나 똥치우는 골램. 먹이 주는 골램...”

드낙의 말을 중립신이 매우 주의 깊게 경청했다.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 드낙의 방향성과 목적성은 천방지축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이번에는 어떤 소리를 하는지 듣고 싶었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수중 생물들이 작은놈부터 큰놈까지 사는데 저런 거 하면 돈 참 많이 들겠다는 생각을 한 거지.”

[......? 끝인가?]

“엉. 나도 그런 거 빨리하고 싶다고. 난 상어랑 악어를 키워볼 거야. 이름도 이미 정했어. 왁왁이랑 꽉꽉이야. 귀엽지? 두 놈은 특히 순한 놈으로 정할껀데...그래도 거북이 정도면...”

[그만.]

중립신이 입을 다물게 했다. 더는 듣고 싶지 않았고, 시시했다. 애초에 그런 취미에 흥미가 없는 게 중립신이었다. 그가 흥미를 느끼고 있는 건 오로지 인류 나아가 필멸자들이었다.

드낙도 더 말하지는 않았다. 이것 또한 보험이었다.

“영혼은 잘 마무리 된 거야? 흡수하지 않네?”

[난 다시 죽어 없어진다. 테라에 녹아들겠지. 그렇기에 내가 영혼을 흡수하는 것보다 테라에 설계를 해두어 영혼을 행성에 녹이는 게 오히려 손실이 적고, 효율이 높다.]

“이제 다 끝난 건가? 엘프는 어쩌려고?”

[내 손으로 죽인다.]

‘오우, 구경 개꿀이겠는데?’

드낙이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다. 따라가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육체도 없는 게 어떻게 죽이려고? 거기에 네 권능은 하나뿐이잖아. 오른팔로 뭘 한다고.”

[전에 말했을 터다. 인간에게 부여할 수 있는 건 오른팔이었을 뿐, 내 전초극(戰超克)의 권능은 전신에 가능하며, 운명까지도 초월할 수 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백병전의 싸움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대규모 전쟁까지만 뻗어 나가는 게 아니지. 싸움과 전쟁을 초월하여 이기는 것이다.]

드낙은 그 말을 들었음에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따라와라, 어차피 그대도 디아볼로스를 회수하려면 같이 가야 하니.]

검은 잔을 받아들인 엘프를 회수할 때였다. 그리고 그건 엘프의 절반의 절반도 안 되는 숫자에 불과했다.

드낙이 영혼 제국을 단숨에 무너뜨린 것처럼, 중립신도 그 속도에 맞춰서 대신으로 부활했다. 드낙에게 몇 없는 주도권 중 하나였지만 중립신은 아주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그냥 빨리 부활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것도 손실이 크지만 엘프가 많이 남아있고, 인간의 영혼도 많이 챙겼다. 어렵지 않은 선택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드낙이 이산사판으로 파산이고 나발이고 디아볼로스로 만들고 다녔으면 어찌 되었을지 몰랐다. 중립신에게 중요한 것은 결국 그러한 것들이었다.

엘프의 숫자는 얼마나 되는 양인가.

인간 영혼의 숫자는 어느 정도 되는 양인가.

효율과 이득에 따라서 좌지우지되는 게 중립신이었다. 되려 드낙이 제정신을 차려서 타협한 것부터 잘못이 컸다.

빛이 드낙을 인도했다. 대신(大神)의 육체는 없었지만, 그의 존재는 숨길 수가 없었다. 칠흑처럼 어두운 연기를 휘둘렀던 것과는 다르게 부활한 중립신은 따뜻한 햇살을 대지에 비추는 태양과도 같았다.

드낙은 손을 휘적거렸다. 햇빛이 일그러지며 분해되는 걸 볼 수 있었다.

[하지마라.]

“하지마라.”

[따라 하지마라.]

“뜨르흐즈므르.”

말은 그렇게 해도 드낙은 손을 회수했다. 다만, 중립신과 싸우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대신이 지닌 격(格)과 중립신의 마음이 처음으로 드낙에게 보였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따뜻한 신이구만.’

코를 쓱 비볐다. 그저 배신을 당해서 애가 경계심이 좀 커진 것뿐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마음까지 따스해지는 햇볕과도 같은 모습을 갖출 수 없었다. 속였다기에는 분해까지 해봤기에 그 속에 담긴 걸 볼 수 있었다.

무협으로 치면 중립신은 정도(正道)를 걷는 도사였다.

그가 부활하기 전에는 모든게 의심스러웠지만 중립신이 부활하며 그를 마주한 드낙은 안심할 수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중립신은 음흉하지 않았고, 오히려 빛(光)에 가까웠다.

‘그의 목적만 봐도 알 수 있었는데, 왜 그때는 그렇게 중립신이 나쁘게 보였을까.’

지나간 일이었다. 드낙이 서둘러 빛을 따라갔다. 그 속도는 매우 빨랐고, 드낙을 배려해주고 있었다. 정신체인 중립신은 대신으로서 완전히 부활한 상태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도움을 준 게 드낙이었다.

석유 부족 국가에 석유 정유공장을 내어준 격이다.

인신(人神)의 역사에서 오직 단 1명만 대신(大神) 오를 수 있었다. 그런 인신의 대신이 엘프에게로 향했다.

햇빛에 닿는 모든 생명체는 다시 꽃을 피웠다. 싹이 돋아나고, 이끼가 무성하게 자라났다. 꽃망울이 나오고, 나무에서 열매가 단번에 몸집을 키우다가 무게를 못 버티고 땅으로 떨어졌다.

생명의 길이 만들어졌다. 그건 행성의 덩치에 비하면 아주 작은 곳에 대한 변화일 뿐이었다. 테라의 진행률에 따라서 중립신과 행성이 동일시 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고, 생전의 중립신이 어떤 신이었는지 알 수 있는 단초였다.

오로지, 생명.

오로지 생명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중립신의 존재는 드낙의 의심을 지우기에 충분했다. 단지 아쉬운 것은 중립신이 배신당해서 생긴 경계심이 너무나도 위협적이었다는 점이고, 자신을 숨기기 위해서 너무나도 어둡고 악랄해 보이는 검은 연기를 취했다는 점이었다.

========== 작품 후기 ==========

6108자

평점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