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810화 (809/1,239)

강철의 전사 810편

<-- -->

‘싱겁다.’

드낙의 감평이었다.

머리를 쪼개고 난 다음에는 당연한 순서로 전신을 수백 조각으로 만들었다. 튀어나오는 영혼도 간섭해서 흩뜨렸다. 반발력이 느껴졌지만, 영혼 자체를 없애는 게 아니라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체계를 무너뜨리는 것이었기에 버틸 만 했다.

철퍽! 철퍽!

핏덩이에서 피가 꾸역꾸역 쏟아지며 바닥을 적셨다. 그곳에서 뼈와 근육 그리고 피부가 생성되며 아웃버스트가 괴성을 내질렀다. 피부가 다 덮이지 않은 목젖에서 공기가 새어 나왔다.

잘 회복되던 육체에서 눈알 하나가 툭 하고 떨어졌다.

“으, 어째서...!”

아웃버스트가 허둥거렸다.

그가 안전하게 작업하고 연구하던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마법사는 전투에 약하다. 실제로도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통달의 대마법사, 반혼의 인간인 아웃버스트는 전투 상황에서의 대처법을 가지고 있었다.

이 대처법의 가장 중요한 건 생존이며 도망이었다.

“말도 안 돼...웨애애애액!”

입에서 토를 했는데 튀어나오는 뇌수였다. 두개골이 움푹해지며 머리가 툭 하고 떨어졌다가 다시 생성되어갔다.

‘이럴 수는 없다! 내가 준비한 것이 얼마나 되는데!’

아웃버스트가 발악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고,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기에 납득할 수 없었고 이해하지도 못했다.

그는 자신을 불멸이라고 칭할 정도로 단단히 준비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영혼탑과 연결되어있었다. 고로 힘을 얼마든지 끌어쓰는 게 가능했다. 또한 영혼력은 마력보다도 효율이 높고, 힘이 좋았다.

조그마한 주문식으로도 거대한 효과를 얻는 것 또한 가능했다.

아무것도 안 해도 반쪽짜리 육신이 회복하는 건 이 때문이었다. 대마법사의 무의식으로 주문식이 완성되어 계속 재생이 되는 것이다. 그건 아웃버스트가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개조를 했기 때문이다.

“으아아아아!”

아웃버스트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영혼 육체가 우악스럽게 공간을 지배하며 있는 모든 것을 부서뜨렸다. 드낙은 호다닥 도망쳤다가 다시 튀어나왔다. 결코, 그런 큰 행동을 오래 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서였다.

실제로 몸의 반쪽에 들러붙어 있던 영혼의 짜깁기조차도 붕괴하여갔다. 다닥다닥 붙어서 큰 영혼이 된 것도 나무가 낙엽을 떨어뜨리듯이 흩날리고 있었다. 그 영혼은 다시 영혼탑으로 들어갔다가 아웃버스트에게로 향하여 다시 짜깁기되어 엮어졌다.

완벽한 선순환의 고리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아웃버스트가 불멸하게끔 하고 있었다.

“끄으으으윽!”

아웃버스트가 벌벌 떨었다. 고통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신경까지 연결되어있구나.’

드낙이 단박에 이해했다. 영혼력이 토해지고, 다시 들어가고를 반복하며 아웃버스트에게 신경통을 주고 있었다. 다른 놈의 영혼을 다루기 위해서 자신의 영혼을 희생했기 때문에 환각통과 연관이 있을 수 있었다.

몸통 반쪽이 사라지고 영혼으로 찼기 때문에 정신이 착각하고 있는 듯했다.

“끄르륵...!”

길고 굵직한 송곳이 머리에 때려 박히는 듯한 강렬한 통증이었으며 시리도록 차가운 한기를 동반했다.

끊임없이 반복해서 재생하는 모습을 보며 드낙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건 손쉬운 고문을 할 수 있어 보였다.

“어째서...크으으으!”

아웃버스트의 버둥거리며 엎어졌다. 팔의 관절이 뚝 끊겼다. 이에 드낙이 속삭였다.

“당연히 체계를 무너뜨렸으니까 그렇지. 이제 곧 재생도 안 될 거다.”

드낙은 단순히 아웃버스트의 머리를 쪼개지 않았다.

척 봐도 미친 짓거리를 하는 놈인데, 평범한 놈이 아닐 공산이 컸다.

머리를 쪼개는 그 한 수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았다. 그게 바로 암살자의 공격이고, 수법이었다. 상황에 따라서 할 수 있는 ‘총공격’을 해야 하는 게 암살자였다.

드낙의 모든 것을 받아들인 아웃버스트는 완벽하게 끝장이 났다.

단 한 방에 모든 게 끝나버렸다. 암살자의 존재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드낙은 그의 모든 것을 헤집었다.

드낙에게 공격을 당한 직후, 육체는 만들어지자마자 붕괴하였다. 아웃버스트의 〈무의식 재생 마법 체계〉가 드낙이 지닌 적발의 힘에 노출되어서 부서지고,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그 붕괴율은 재생되면 될수록 기괴해지고,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지금만 해도 머리가 재생된 부분에 다리가 재생되기도 했다. 마법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다시 고치기에는 영혼에 새긴 것이기에 공정과 준비가 필요했다.

결국 돌연변이 같은 재생 마법이 되어버린 셈이었다. 마법사는 드낙의 밥그릇에 불과했다. 짜깁기 영혼 또한 〈영혼 마법 체계〉와 같았기에 드낙 앞에서는 무력했다. 그저 뭉치는 영혼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고, 그중 일부만 영혼의 덩치를 키우는데 들러붙을 수 있었다.

9할, 8할, 7할.

영혼 마법의 효율성 또한 빠르게 감소했다.

곧, 죽게 될 것을 아웃버스트가 깨닫는 건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그가 눈물을 주륵주륵 흘렀다.

“으흐흐흐.”

피웅덩이에 눈이 하나 더 재생되었다. 시뻘겋게 충혈되며 달아오르는 눈이 마치 분해되듯이 핏덩이로 변해갔다. 엉망진창이었다.

“억울하게 생각하지 마라.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잖아? 조용히 시골에 짱박혀서 살았어야지.”

드낙이 그를 도발했다. 수많은 사람을 괴롭힌 아웃버스트였기에 드낙의 반응은 좋을 수가 없었다.

“꼬우면 반박해보던가.”

붕괴하는 아웃버스트에게 천박한 소리를 지껄였다.

“내가, 이런 놈한테...!”

아웃버스트의 이빨이 우수수 떨어졌다. 이제는 잇몸마저도 재생이 되지 않았다. 남은 건 그저 핏덩이에 불과했다. 드낙은 불의 마법을 통해서 그마저도 모조리 태웠다. 영혼탑의 영혼력이 계속해서 아웃버스트에게 들어갔다면 끝없는 싸움이 되었겠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암살자가 된 드낙을 막을 수 있는건 육체를 지니지 않고,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중립신과 중립신으로부터 신성력을 서포트 받는 세파리아스 정도였다.

격이나 초월의 힘으로 숨은 걸 볼 수는 없어도 무(武)로 세상을 보는 세파리아스는 최소한의 요구조건만 충족하면 능히 드낙을 감당할 수 있었다.

유일하게 힘의 격차가 통용되지 않는 존재가 세파리아스였다.

드낙은 동부 영혼탑의 균형을 무너뜨려서 쓰러뜨렸다. 여기에 있던 영혼은 해방되어 중립신에게로 향할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중립신은 진짜로 엘프를 상대할 준비를 해야 했다.

‘할까, 말까, 싶었겠지.’

드낙이 블러핑을 한다고 여겼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드낙은 그렇게까지 수 싸움을 머리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10억 줄 테니 5억짜리 시장을 장악해봐라 보다는 그냥 1억 먹고 땡이 좋았다.

‘5억, 10억, 지랄이지.’

돈 쓰는 놈들이나 그 정도 돈에 만족하는 법이었지만 드낙은 아니었다. 엘프가 몇천만, 몇억이건 솔직히 알 바 아니었다. 중립신의 대계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빤스런쳐서 자신과 함께하는 이들을 좀 보살펴주면서 문화를 즐기며 사는 게 최고였다.

동시에 핏빛쥐라는 보험도 있었다. 부동산 임대업으로 큰 자산을 가지고 있는데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고, 발에 땀 나도록 다니는 것도 사양이다.

엘프와 싸우는 건 생각 이상으로 피로감을 주는 일이기도 했다.

워낙 거지 같은 짓거리를 하는 엘프 노괴들이 많았다. 그들은 도시를 지배하고 암중으로 동족을 입맛대로 변형시켜서 즐기기도 했다.

썩어도 너무 썩은 사회였다.

‘남은 건 영혼 제국 중간에 있는 흑황제.’

영혼탑처럼 강력한 기지는 단 2곳. 제국 중앙과 제국 동부였다. 나머지는 대부분 영혼 진지로서 기능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머리도 2명이라 여겼다. 1명은 죽였고, 다른 한 놈만 처리하면 끝이다.

*

검은 연기가 공간을 뒤덮듯이 흐르고 있었다.

중립신은 그곳에서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중립신의 앞에는 ‘테라’라 불리는 행성이 이미지화되어서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행성은 뚝 뜯어져서 내부가 보이기도 했고, 입맛대로 조각내어 떨어져 나가 빙글빙글 돌려지기도 했다.

모두 테라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대신(大神)의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행성 개발은 필수적이었다. 겉으로는 바뀐 게 없지만 초월의 힘으로보면 거대한 기계장치나 다름없었다. 수많은 체계가 자리잡혀 있었다.

테라의 가장 큰 목적은 필멸자만 존재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에 있었다. 그렇기에 챔피언은 있어도 신은 있어서는 안 된다.

드낙은 어찌 되었건 떨어져 나가는 존재였다. 몇 번이나 그를 시험하고, 위협했지만 그는 잘 버텨냈다. 진짜로 큰 이득을 보고 몸을 돌리는 사람은 잘 없다. 드낙은 스스로 만족했고, 중립신은 다시 한 번 이를 확인했다.

그걸로 중립신과 드낙의 관계는 비로소 굳혀졌다.

‘아웃버스트의 영혼은 흡수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철저하게 행동했어.’

점점 그때의 드낙으로 돌아오는 걸지도 몰랐다. 세뇌는 풀렸지만, 그 영향력의 앙금은 존재하는 법인데, 회복속도가 굉장히 빠른 편이었다.

‘하지만 예상범위 안이다.’

테라가 완성되고 나서나 비수를 뽑을 것이다. 안일했던 자신을 비난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미 그때는 늦었다.

모든 일에는 선과 후가 중요하다. 뭐부터 먼저 하느냐에 따라서 현격히 상황은 변한다. 그걸 단순하게 생각하는 이들은 결코 그 가벼워 보이지만 무거운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엘프를 죽이는 일은 간단하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게 아쉬울 뿐이다.’

부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립신은 자신이 부활하지 않고, 그 상태 그대로 테라에 녹아들고 싶었다. 그것만큼 효율적인 게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신으로서 부활을 하게 된다면, 힘의 소비가 이루어지고 그것만큼 테라는 상대적으로 약화된 상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중립신이 두 번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가 굳이 부활하지 않는 이유는 의외로 그 손실이 큰 것도 있었다. 무엇보다 드낙이 영혼을 모조리 탐하거나 엘프를 잡아먹는 데 집중했다면, 대신으로 부활하여 견제했겠지만 드낙은 깔끔하게 손을 털었다.

중립신으로서는 고마운 일이지만 반대로 엘프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않고 홱 돌린 채로 배 째라고 드러누워 버렸으니 어찌 되었든 대신으로서 부활을 해야 했다.

‘골치 아픈 인간이다.’

엉망진창이었다. 그런데도 중립신이 결국 드낙을 죽이지 못하는 건 그런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경계해야 하고 위협적이지만 치명적이지는 못하다. 결단력이 없기 때문이다.

적당히 겁줘서 달리게 하기에도 좋았다.

어찌 되었든 중립신은 엘프에 간섭해야 했다.

‘현재 테라의 준비 진행율은 72%. 여기서 일시중지하는 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엘프를 드낙이 정리하지 않으면 엘프는 그들끼리 도망치게 된다. 다른 차원계로 충분히 갈 수 있는 게 엘프들이었다. ‘규모’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테라에 대한 좌표를 알고 엘프들이 도망치게 놔둘 생각은 중립신에게 없었다. 드낙은 좌표를 알고 있지만, 반마가 되어도 그 심성이 비틀린 채로 있는 걸 보니까 언제나 그렇게 살 것이다.

‘필멸자들에게는 나쁘지 않은 신이 되겠지.’

비루하기 짝이 없는 하급 계층으로 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건 드낙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재능이기도 했다. 평범한 신은 드낙처럼 행동하지는 않을 터다. 아마, 신이 된 드낙을 이해할 수 있는 신은 녹색 도끼나 피의 신 아토라신 정도일 것이다.

중립신의 몸 안으로 검은 연기가 모조리 들어오기 시작했다.

‘드낙이 준 업이 많아도 너무 많다. 예정을 앞당기기 충분하다.’

핏빛쥐의 존재는 드낙의 즉흥적인 판단에 의해서 탄생한 것치고는 완벽했다. 중립신은 가장 큰 수혜자 중 하나였다.

쩌적.

심해와도 같은 깊은 구덩이 같은 공간이 갈라졌다. 새하얀 빛이 쏟아져나왔다.

오래전, 인신(人神) 중에서 대신(大神)이 탄생했다.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인신들은 권능을 만들기 바빴고, 뭘 해도 부족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인신이 모여도 녹색 도끼 하나 버티지 못했다.

그런 인신들 중에 대신이 나온 건 혁명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싹 사라졌다. 그 대신이라는 작자가 지닌 권능은 오직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중립신은 일권자(一權者)라 불렸다. 신으로서의 권리인 권능을 하나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인신들이 일권자의 업과 격을 탐냈다. 그를 잡아먹으면 순식간에 대신의 반열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고작 권능 하나만 가진 신이다. 밥 한그릇 뚝딱이라 여겼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중립신은 180명이 넘는 인신들을 아래에 두고 거대한 세력을 만들었다.

일권자에서 악신도 선신도 상관없이 오직 인신이라면 굴복시켜 세력을 만든 그는 그때부터 중립신(中立神)이라 불렸다.

수많은 인신이 들어오며 중립신은 〈신들의 땅〉을 점거하러 나섰다.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

신에게 관리받으며 행복하게 지내는 인간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초월적인 네크로맨서인 죽음의 세바리악에 인신의 세력은 패배했고, 도망쳤다.

인간을 권속으로 다루는 신이었기에 네크로맨서가 쥐약이었다.

도망치는 중에 깨달음을 얻은 중립신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 필멸자의 천국’을 꿈꿨고, 그의 남매에게 배신당해 떨어졌다.

꽈자자작!

늪, 심해, 알 속 같은 공간이 완전히 부서졌다. 중립신의 밀랍 같은 몸도 가루로 변해 사라졌다. 신은 악마와는 다르게 육체를 필수적으로 요구하지는 않는다. 다만, 필요로 육신을 만들기도 했다.

중립신은 육체를 필요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부활의 파동이 행성을 뻗어 나가 우주의 끝자락까지 닿았다.

가장 큰 반응을 보인 건 엘프와 드워프였다.

========== 작품 후기 ==========

6316자

평점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