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809화 (808/1,239)

강철의 전사 809편

<-- -->

인간 사회든, 고블린 사회든 이 세계에는 부족한 게 있다.

바로 식문화였다. 식재료는 단순화되어있으며, 굶어 죽지 않으면 족하다.

귀족이라고해도 고기를 풍족하게 먹는 것일 뿐, 누린내를 잡지는 못한다. 오히려 누린내야말로 상등품의 풍미라고 여기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거대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사탕수수 같은 단맛이 나는 식물은 꽃이 전부인 게 이 세상이었다. 짠맛은 알아도 단맛은 얻기가 힘들었다. 꽃을 집어먹어서 나오는 단맛은 매우 미약한 수준이었다.

그런 세상에서 단연코 비싼 게 있다면 바로 꿀이었다.

몇몇 지방의 마을은 집중적으로 벌꿀을 지키기도 했고, 동굴에 있는 박쥐나 조류를 공격하기도 했다. 농사를 짓지 않고 벌을 개체수를 늘리는 데 집중했다. 박쥐들이 살아가는 동굴에 벌꿀통을 겨울에 놓아서 여왕벌을 지키기도 했다.

다양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비싼 벌꿀을 관리하는 마을이었지만 그들은 벌꿀에 대한 권한이 없었다.

장기 계약에 묶여서 그나마 다른 이들보다 나은 삶을 살 뿐이었다. 노동이 적은 삶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런 것을 감안했을 때, 인간 사회의 식문화가 오히려 선진문화인 셈이었다.

특히 짠맛은 사람 미치게 하기 충분한 맛을 지니고 있었다. 지하 연합은 논외다. 그들은 생피도 그냥 먹는 곳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양봉 사업이 거대해졌다. 대산의 약초꾼 마을은 꿀을 담아서 출하시키는 일을 담당한 지 오래였다. 약초 사업을 접고, 차익을 얻을 수 있는 유통업에 진출했다.

카이야는 제법 불만이 있었지만, 드낙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여겼지만 그건 오래가지 않았다. 사람들이 만든 나무 벌꿀통의 효율성에 눈을 떴기 때문이다. 좁은 곳을 지키면 그만이었고, 효율성은 몇 배로 넓어졌다.

대산에서 생산되는 벌꿀은 곧 동부 왕국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단짠단짠을 알게 된 기득권층은 돈을 퍼부었다. 여기에는 세력 관계없는 큰 협력이 이루어졌다. 본격적으로 양봉 사업에 사적 자금이 투입되었고, 거기에 돈맛을 느낀 관리들도 힘을 모아서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세금까지 쏟아부어 버렸다.

벌의 천적이란 천적은 싹 다 잡고, 나무를 베고 꽃을 키웠다. 지반이 위험한 곳에는 흙과 자갈돌 같은걸 짊어지고 와서 풀어 평탄하고 완만하게 만들고 꽃씨앗을 심었다.

자연스럽게 기득권층이 소비하는 벌꿀양보다 생산량이 많아졌고, 민간에도 벌꿀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되었다.

“으음~.”

빵에 꿀을 바르고 먹는 것도 큰 인기를 구가했다. 맛있으니 더 먹게 되고, 더 먹으니 소비가 심해진다. 특히 먹고 사라지는 것이 음식이었기에 경제 활동에 선순환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무엇보다 운송업이 커지며 상업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를 지켜보는 건 비단 인간만 아니었다.

“후르릅..”

검은 뿔쥐가 꿀을 핥아 먹었다. 검은 뿔쥐 보급품 중에 하나였고, 아주 조금씩 1주마다 지급되는 기호품이기도 했다. 이 단맛을 위해서 위험하거나 힘든 일을 자처하는 검은 뿔쥐들이 많아졌다.

그덕에 ‘미완성 지상 요새’를 옮기는 일은 예상보다 500% 빠른 진행율을 보이고 있었다. 그건 충격적일 정도로 큰일이었는데, 배를 만들거나 수선하는 회사의 스케쥴처럼 절대 줄어들지는 않는 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 덕에 지하연합은 벌꿀을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크놀들이 그간 축적해둔 은과 금을 옮겨서 오크들을 통해서 꿀을 대량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곧, 동부 왕국에 금와 은의 축적량이 많아지게 되었고 화폐 가치의 안정화가 가속화되었다.

“웃기지도 않는군.”

그걸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곱지 않았다. 드낙이 만들어놓고 방치하듯이 두고 떠난 3마리의 괴물이 지하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한 놈의 체구는 워낙 컸다. 오로지 생산하기 위한 몸을 지니고 있었고, 실제로도 출산하는 여왕 개미와도 같은 존재였다. 생전에는 수컷이었지만, 이제는 여왕 암컷이 된 발바룽이었다.

그녀의 양옆에는 흰여우 새린과 포낙서스가 자리 잡고 있었다. 새린은 인간 크기였고, 포낙서스도 중형급 몬스터는 되었다.

“뭘 웃기지도 않아? 너도 신나게 먹어놓고는. 애초에 내가 모이라는 것도 꿀 때문이거든.”

새린이 손톱을 정돈하며 말했다. 새로운 육체를 얻고, 흰여우로 변신이 가능했지만 인간의 모습을 좋아하는 그녀였다. 특히나 하급 악마로서의 능력에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뭣이?”

헤드스 하이에나들의 보좌를 받아서 육중한 몸을 이끌고 온 발바룽이 분노를 표출했다. 출산을 하기 시작하면서 몸을 가누기가 더욱 어려워져있었는데, 중요하다고 불러놓고는 하는 말이 벌꿀 때문이라니.

“방금 말했다시피, 너도 맛있게 먹었잖아.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거야? 혹시 질투가 나는 거야?”

“질투는 무슨.”

발바룽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두 하급 악마의 모습을 포낙서스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녀는 하급 악마의 힘을 다루는데 온힘을 다하고 있었다. 여기에 온 것도 기분 전환을 하러 온 셈이다.

매번 수련만 하다 보니 정신이 마모될 정도였다. 육체를 초월의 힘으로 사용할 수 있는 하급 악마의 힘은 필멸자에 불과했던 포낙서스에게 엄청난 가치를 지닌 보물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이들 세 존재는 모두 드낙에게 업을 주려고 환장한 자들이었다. 드낙이 큰 명령을 내리지 않고 가버렸기 때문이다.

디아볼로스 락테아 시오는 그들에게 자신을 도우라고 했지만 그런 명령을 들을 리가 없었다. 진화의 못에서 세 명을 부활시키라는 것이 락테아 시오의 권한이었고, 그 이후에 대한 명령은 그 어떤 구속력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대신 이들은 자신들의 피를 모으고, 회복하는 것으로 드낙에게 인신공양과 비슷한 짓을 하고 있었다.

“헤드스 하이에나들은 회복물약의 재료를 가져오는데 100%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벌꿀을 만드는데 협력하라고? 미친 거냐?”

“조금 머리를 식혀. 똑똑한 발바룽이 왜 벌꿀을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거야?”

“장점보다 단점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넌 그 정도 규모의 판단을 종종 그르치잖아. 거기에 비효율적인 일을 하는 건 어느 사회에나 있어. 모두 효율적으로 만드는 건 이상론적이야.”

“어찌 되었든 반마님께 주는 우리들의 노력과 성과가 줄어든다는 건 변함이 없겠지. 아니면 설마 벌꿀을 통해서 물약을 대거 매입하려는 거냐?”

“그래. 인간들이나 지하연합이나 결국은 행복을 좇으니까. 난리도 아니던데?”

새린의 말에 포낙서스가 의견을 보태기 위해서 입을 열었다. 실제로 미리 언질을 받았다. 발바룽은 설득하기 힘들었기에 물밑작업이 필요했고, 미리 설득된 사람이 원탁회의에 함께 있어야 했다.

초장부터 기울어진 회의장에서 싸우는 셈이다.

“생각보다 더 많은 양의 피를 반마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이 상업이라는 건 그 정도로 큰 가능성을 지니고 있어요.”

“찾는 사람이 많으면 값이 비싸져. 그건 너희들도 잘 알 텐데? 벌꿀 차익 사업은 미친 짓이다!”

안 그래도 민간으로 이제 겨우 들어가는 벌꿀이었다. 그걸로 돈 벌 생각을 한다? 발바룽으로서는 믿기 힘들었다. 흰 여우 새린이 씨익 웃었다.

“그래서 이거야.”

큰 가슴에서 유리병이 튀어나왔다. 노리고 한 것이 틀림없었다.

“연금술로 만든 벌꿀이야. 성분상 차이는 없어. 색은 임의로 바꾸었지.”

발바룽의 턱짓에 헤드스 하이에나 한 마리가 유리병을 챙겨서 가져왔다. 단번에 마셨다.

“놀라운데. 재료는?”

“지하 연합에서 생산하는 지하 재료만으로도 만들 수 있어. 다만 한 가지가 부족해.”

“뭐지?”

“털이야. 털.”

“털?!”

새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연금 꿀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은데, 색을 내는 게 어려워서 말이지. 근데 딱 좋은 게 있거든. 황갈색의 털을 지닌...”

그녀의 눈이 헤드스 하이에나의 털로 향했다. 그가 움찔했다. 발바룽도 눈치가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헛웃음을 지었다.

“털로 염료를 만든다는 건 처음 들어보는데.”

“털이 비싸기 때문에 안 할 뿐이야. 연금술의 기초라고.”

“기초는 아니죠.”

포낙서스가 새린의 말에 태클을 걸었다. 그건 엘프의 연금술 지식이었다. 생체 연금술에도 관심을 가진 것이 엘프들이었다. 엘프에게 기본적인 연금술인 셈이다.

“어렵지 않은 일이지.”

“오케이. 한 번 크게 놀아보자고.”

연금 벌꿀로 돈을 벌고, 이를 통해서 치료 물약을 사 와서 자신들의 피를 드낙에게 헌납한다. 자연스럽게 세상에 변화를 준 만큼 업도 쌓여있다.

“하하하.”

발바룽이 그제야 크게 웃었다.

“그럴듯한 계획명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흥이 나서 말했다. 남들은 진짜 벌꿀인 줄 알겠지만, 사실은 연금 벌꿀인 셈. 하지만 떳떳했다. 성분은 완전히 똑같았다. 그저 꽃가루만 없을 뿐!

하급악마의 삼위일체라는 거창한 조직이 된 3명의 하급 악마의 최우선 순위는 드낙에게 업을 바치는 일이었다.

*

드낙은 유유히 동부 영혼탑을 즐겼다.

가장 큰 이유는 적들의 영혼력을 소모하는 데 있었기에 시간을 제법 소모할 생각이었다. 적의 방심을 유도하기에도 좋았다.

이렇게 크게 소란을 떠니, 정체불명의 존재가 물러났다고 여길 수 있었다.

‘놈이 어떤 방위체계를 지닌 지도 궁금하고.’

혹시나 자신을 공격할 수 있는 수단, 자신의 영향력을 넘어서 도망칠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적이 약하다고 방심하면 안 된다.

적 도한 자신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있는 놈은 겁쟁이일 가능성이 크다.’

더 나아가 영혼 제국의 중추 지배자도 겁쟁이일 터다. 전쟁은 전쟁대로 걸어놓고 후방에서 술 마시는 타입이다. 드낙이 가장 싫어하는 놈들이기도 했다.

적어도 드낙의 빤스런은 개인의 생존이 1순위다. 반면 이놈들은 자기들이 싸움을 걸어놓고 꽁꽁 숨어있었다.

동부 영혼탑의 가장 큰 특징은 지하 공간이었다. 지상에도 물론 설비가 있었지만, 진짜 중요한 건 지하에 존재했다.

엘프의 장거리 공격을 두려워하는 모습이 절로 보였다.

지상에 모습을 드러낸 스타라이트 스트라이크 사출기가 보였지만 흥미를 끌어내지 못했다. 곳곳에 접촉하고, 정보를 획득해나갔다.

영혼 기사의 발전 방향성.

그들이 입은 갑주에 대한 정보.

수많은 것이 드낙의 머리를 지나서 그대로 흘러갔다. 대부분 초월자에 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쩔 수 없네. 그냥 부딪혀 보는 수밖에.’

조금 더 고민해보면 그런 걸 남길 이유가 없었다. 자신의 약점을 노출하지 않았다. 다만, 이상한 것은 조금이라도 대비했다면 그런 흔적이 보여야 하는데 없었다.

‘후방에 있는 것만으로도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안일하다.’

드낙은 눈치 좋게 상대가 생각하는 걸 그려낼 수 있었다. 놈은, 진짜로 자신이 죽을 리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크게 떵떵 거린 건 두려워서가 아니다.

귀찮아서였다.

드낙은 영혼탑을 올라 최상층으로 향했다. 그 과정에서 아웃버스트가 행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소중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탑에서 볼 수 있었다.

‘미쳤네.’

머리가 잘린 여성이 살덩이에 파묻혀 있었다. 드낙이 살덩이를 만졌다. 강력한 반발력이 일어나도록 설계되어있었다. 하지만 드낙을 상대로는 발동되지 않았다. 그런 설계가 짓뭉개지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슬라임처럼 퍽 터지며 주르륵 흘러내렸다.

‘근육이 없다.’

뼈와 혈맥은 있었고, 다른 것도 모두 멀쩡했지만 움직이지 않았기에 근력이 거의 사라져 있었다. 풀려나더라도 혼자 설 수도 없고 기는 것조차 어려워 보였다.

여성의 팔을 만지며 근육량을 가늠한 드낙의 표정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수틀리면 어린애도 죽이는 게 드낙이었지만, 그것과 이건 달랐다.

‘임신했잖아?’

드낙이 무섭게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성큼 움직였다. 드낙과 접촉한 살덩이가 순식간에 터져나가며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새까만 액체가 담긴 관이 보였다. 그걸 잡아당겼다.

길쭉하게 딸려 나왔다. 주입구를 손으로 잡아 부숴서 액체를 손으로 만졌다.

찌꺼기 같은 게 느껴졌다. 이걸 머리가 없는 여성의 위장에 주입해서 몸을 유지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남자의 생식기관만 들어있는 살덩이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런 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니 지하에 마련을 못 했구나.’

상당한 소모가 일어나기에 넓게 유지할 수 없었고, 영혼이 모이는 곳에 집중해야 했다. 송곳처럼 쭉 뻗어있는 영혼탑은 써먹기 좋았을 터다. 누구도 들어올 수 없고, 하늘에서의 침입은 더더욱 힘들다.

그때, 이변을 깨닫고 골램이 우루루 몰려왔다. 그들은 통에서 살덩이를 후두두 쏟아냈고, 살덩이는 서로 뒤엉키며 다시 하나가 되었다.

골램들은 그대로 사라졌다.

드낙은 순식간에 최상층으로 향했다. 최상층의 3층은 모두 거주구역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목욕탕, 카드가 널브러진 비싸 보이는 테이블, 온갖 종류의 술이 진열된 곳 등 사치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복층으로 이루어진 것 같은 특이한 구조도 지니고 있어서 엄청나게 넓어 보였다. 천장이 높아서 절로 가슴이 탁 트이는 구조였다.

‘와, 이래서 쓰는 놈이 더 잘 쓴다고 말하는 건가?’

드낙도 하지 않은 짓거리를 당당하게 했다. 건물을 화려하게 만드는 것만큼 돈 드는 일도 없었다. 새로운 돈 쓰는 재미를 본 드낙은 감탄도 잠시 느껴지는 존재에게 다가갔다.

그는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다. 작지만 높은 단상에는 간단한 요깃거리가 놓여 있었다.

서걱!

아웃버스트의 머리가 그대로 반으로 쪼개졌다. 뇌수와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나왔다.

========== 작품 후기 ==========

6368자

평점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