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808편
<-- -->
아웃버스트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다.
‘반혼(半魂)의 인간에 도달했다. 이제 남은 건 바르시아 혈통을 내 몸에 집어넣고, 나의 형질을 변환시키면 된다.’
오랫동안 바르시아 제국을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했다.
계산적인 마법사가 그렇게 할 이유는 음흉한 속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신에 닿기 위함이었다.
‘절반의 육체. 절반의 영혼.’
그 경지에는 일찍이 도달했지만, 그 이상을 넘보려면 시간이 필요했고, 많은 연구가 필요했다. 무엇보다 인간과 영혼 마법 사이의 데이터가 많이 축적되어야 했다.
그러기 위한 영혼 제국이었다.
몸의 절반은 육을 멸하고 혼으로 욱여넣었다. 그걸 키메라처럼 뜨개질을 해서 ‘영혼의 양’을 늘리고, 격을 획득한다.
그게 바로 아웃버스트의 노림수였다. 단기간 내에 신의 반열에 도달한다면 지성을 잃지 않고 신이 될 수 있었다. 엄청난 도박수였지만, 그는 수명이 다하여 죽고 싶지 않았다. 영원을 손에 얻고 싶었다.
‘이왕이면 육체의 제한을 뛰어넘어 신이 되고 싶다. 그 정도는 되는 게 나의 격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야.”
기틀은 마련했고, 그릇도 완성했다. 하지만 부족한 게 있었다.
‘엘프의 영혼!’
또한 이런 반쪽짜리 영혼의 짜깁기에는 엘프의 영혼이 꼭 필요했다. 불완전한 인간의 영혼에 대한 안정성을 부여하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엘프 새끼들, 더러운 새끼들!’
멀리서, 아예 시야 밖에서 펑펑 쏴 재끼는 미치광이 전쟁광 놈들이었다. 욕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느 세계든 네가 와라 전법에 당하는 기분은 엄마 욕을 할 정도로 더러웠다.
엘프의 높은 귀를 잡아당겨서 뜯어내고 싶을 정도로 아웃버스트의 엘프에 대한 증오는 대단했다. 제넬루 바르시아를 이용해서 제국을 집어삼켰음에도 얻은 엘프의 혼은 손에 꼽았다.
제넬루 파르시아 흑황제의 눈을 피해서 엘프 영혼을 조금 먹었지만, 아직도 부족했다. 더 많은 엘프의 혼이 있어야 그것보다 더 많은 인간 영혼을 통해서 자신의 격을 높일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엘프에게 근접해야 한다.’
그들의 마력 포화를 뚫고 근접전을 걸어야 했다. 그럼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엘프는 다른 건 몰라도 육체는 조금 약하기 때문이다. 그 약점을 찔러야 했다.
‘하늘...’
야심한 밤을 틈타서 별동별이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통달의 대마법사, 반혼의 인간, 아웃버스트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반격의 때다. 아이디어는 완벽해.’
단번에 구상했다. 목표로 하는 것은 충격을 흡수하는 벌집통이다. 그걸 사출해서 엘프가 있는 곳으로 쏘아 보내는 것이다. 또한, 자체적으로 추진력과 비행이 가능하도록 해서 먼 거리를 날아갈 수 있게 할 생각이었다.
사출하는 힘이 강하면 감당하지 못할 덩치도 비행능력의 도움을 어느 정도 받을 수 있었다. 대마법사 정도 되면 그 정도는 껌이다.
스타라이트 스트라이크.
통칭 SS사출기라 불리는 마법 구조물의 계획을 잡았다. 예상되는 사거리는 1,500km에 달했는데 구조물이 쏘아보내고 난 다음에 계속 감소하기는 하지만 알아서 비행을 유지할 수 있어서였다.
“이걸로 간다.”
그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영혼 제국에서 계속 끝없이 일할 수 있는 영혼 병졸들은 강력한 노동꾼이기도 했다.
*
드낙은 동부 영혼탑을 목적지로 삼았지만, 곧바로 그곳으로 향하지는 않았다. 직선으로 이동하며 보이는 영혼 진지를 노렸다.
최대한 일정에 벗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싶었지만, 최대한 외곽을 노렸다. 다소의 경계를 피하기 위함이다.
드낙이 영혼 진지를 노리는 이유는 영혼 마법이 어떤 것인지 보고 싶고, 경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편제가 너무 경직되어있네.’
전에 본 편제였다.
영혼 기사 한 기.
영혼 병사 일백 기.
그들의 힘을 생각하면 적은 숫자임에도 처리하기 힘들어 보였다. 적어도 군세 5천은 동원해야 했고, 피해를 아주 적게 보면서 이기려면 1만의 군세를 쏟아붓는 게 좋았다.
영혼 진지는 난잡하게 자리 잡고 있었기에 5천이나 1만으로 한 두 개를 파괴하더라도 곧 다른 곳에서 소식을 들은 영혼 진지 주둔군이 뭉쳐서 타격할 것이고 그러면 되레 잡아먹히는 건 1만의 군세였다.
‘함정인 셈이지.’
소규모의 점조직으로 주변을 방위하고, 피해가 생기거나 적이 제법 강하게 나오면 뭉쳐서 친다. 더군다나 보급도 필요 없었기에 영혼 제국이 쓸 수 있는 최고의 전략이었다.
다만, 상대가 나빴다.
꽈자작!
전신갑주가 그대로 찌그러들며 우악스러운 손이 영혼관을 잡고, 그대로 뜯어냈다. 단번에 영혼 기사가 바닥에 투구부터 처박았다.
영혼 병사들이 움직이기도 전에 땅에서 핏줄이 튀어나와서는 날카롭게 갑옷을 꿰뚫었다.
퍼석!
영혼관이 정확하게 부서지며 영혼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것은 다시 땅이 들러붙어 가장 가까이 있는 영혼 진지로 스며들어 갔다. 드낙이 영혼 진지를 확인했다.
그것은 거대한 반지하 구조물이었다.
땅으로는 8개의 철 구조물이 가시처럼 혹은 거미 다리처럼 뻗어 나가 있었고, 중앙에는 거대한 홀이 깊게 패 있었다. 또 홀의 중앙에는 아주 얇은 철대가 올라와서 위로 쭉 뻗어있었다.
이를 보호하는 구멍이 숭숭 뚫리고 뭔가 디자인 학과 전공한 사람이 만든 삼각형 구조물이 이를 덮고 있었다.
내부에는 사람이 얼마든지 드나들 수 있었다.
드낙은 손으로 곳곳을 만져보며 내부를 파악해나갔다. 반마에 마법사를 수십 명을 죽여서 핥아먹은 드낙은 이론 깡패나 다름없었다.
입으로 챌린저 유저를 브론즈 취급하는 건 드낙의 장기이기도 했다.
‘요놈 봐라?’
드낙의 눈에서 광채가 흘렀다. 마치 식빵에 고소한 버터를 올려놓고 거기에 꿀을 사악 발라서 먹는 기분에 휩싸였다.
영혼 진지는 개량에 개선에 변화를 계속 맞이했고, 그 최종결정체가 바로 〈삼각 반지하 영혼진지〉였다.
가장 먼저 서서히 마수를 뻗고 있는 몬스터로부터 보호할 수 있었다. 단단했고, 자체 수리 기능이 탑재되어있었다.
‘공격 마법은 하수지.’
몬스터의 종류는 매우 다양했다. 거기에 맞지 않는 공격 마법은 효율만 낮을 뿐이다. 초월의 힘은 만능이 아니었고, 사용하면 힘을 소비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적을 공격하는 공격 마법은 확실한 이성 판단으로 분별 되어서 사용돼야 했고, 이런 영혼 진지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차라리 흥미를 잃을 때까지 버티는 방어 마법이 더 좋았다.
그런 면에서 드낙은 또 한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내 검은 신전은 방어 마법 같은 게 없어.’
만약 나중에 그런 시설물을 설치할 때 공격 마법이 아닌 적의 접근을 막는 형식의 방어 구조물을 만드는 게 훨씬 이득임을 알 수 있었다. 길을 좁게 만들거나 굴 같은 곳도 다른 광물이나 돌로 막는 식으로 야만적으로 해도 능히 방어력을 획득할 수 있을 터였다.
‘너무 먼 얘기인가.’
이 깨달음을 언제 적용할지는 모를 일이었다.
삼각형이 방어하는 덮개라면 그 아래에 있는 8개의 강철 가지가 영혼들을 빨아들이는 수단이었고, 중앙 깊은 구멍에 있는 홀은 저장소일 가능성이 컸다. 구멍에 혼자 쭉 뻗어있는 철사 같은 건 필요한 영혼 자원을 배출할 때 사용되는 듯했다.
그 구조물을 해석하며 드낙은 인상을 찌푸렸다.
안에서 생명력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구멍 속으로 드낙이 들어갔다. 한꺼번에 사람 열 명은 훅 집어넣을 정도로 크고 넓은 구멍 속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드낙은 내부를 확연하게 볼 수 있었다.
그건 시체구덩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미약한 생명력으로 실낱같은 숨을 지닌 것들이 존재했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손발이 잘려있었고, 봉합되어 지혈되어있었다. 하지만 반복적인 치료 행위를 받지 못해서 곪아있었다.
다람쥐, 여우, 늑대부터 사람, 고블린, 소형 몬스터까지.
다양한 것들이 들어가 있었다. 드낙이 이들을 알아차리지 못한 이유는 너무 미약해서였다. 그들의 심장에는 조악한 장치가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있었다.
드낙이 이를 건드렸다. 반마의 격이 모든 구조를 해석하고, 마법사의 지식이 이를 이해하도록 만들었다.
‘영혼 심흡착기.’
영혼을 흡수하는 장치였다. 야금야금 먹어서 더 많은 양의 영혼을 흡수할 수 있었다. 영혼은 회복되는 성질을 지녔기 때문이다.
‘소동물의 영혼까지 이용하려 하다니, 지독하구만.’
드낙은 곳곳으로 떨어지는 물방울도 볼 수 있었다. 약간 따뜻했고, 팔다리가 잘린 생명들은 그걸 받아먹고 벌레처럼 기어 다니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는 무엇도 볼 수 없었다. 구멍의 위에는 삼각형의 구조물이 막고 있어서 햇빛도 가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단순하면서도 간악한 것이 구멍과 8개의 가지와 내부의 철 구덩이를 분리해서 배치했다. 이렇게 되면 드낙이 구조물에 닿아도 구덩이는 그냥 지나칠 수 있었다. 반마의 격 때문에 아주 미세한 생명력도 느낀 것이 크게 유효했다.
드낙은 이들을 치료해주고 모두 위로 올려줬다. 종족별로 나눠서 도망치게 하였다.
저 덧없는 것들을 중립신은 어찌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자연의 선택처럼 놔두면 알아서 해결되기 때문이다. 대자연의 선택에 맡기는 셈이다.
‘개자식이라는 건 변하지 않네.’
자신의 목적에 큰 변수를 지니지 않으면 관리조차 안 하는 무신경함이었다. 여우 한 마리의 값은 그 정도에 불과했다. 여기서 보낸 시간조차도 중립신은 아깝다고 여길 터였다.
살아남은 이들에게 드낙은 많은 걸 해줄 수는 없었다. 영혼 진지를 파괴하지도 못했다.
영혼 제국의 지배자가 경계할 수 있었다.
결국, 드낙이 베푼 것은 그저 자기변호에 불과한 조그만 은혜일 뿐이었다. 반마나 되는 놈이 328개체를 구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뿌듯허다!’
하지만 드낙은 웃었다. 눈으로 보이는 328개체의 숫자는 굉장한 숫자였다. 그는 수십만의 피해를 낸 마왕 발라쿠 전에서도 마음의 짐이 컸다.
그런 남자였다.
드낙은 곧바로 동부 영혼탑으로 향했다. 그곳에 흑황제가 있기를 빌었다. 하지만 바로 그곳에 도달하지 못했다.
지나치면 지나칠수록 영혼 진지에서 숨죽인 채 죽을 날만 기다리는 팔다리 잘린 생명들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결국 영혼 진지는 파괴하지 않고, 지키는 병사들과 기사를 박살 내고, 안에 있는 생명들을 치료해주고 꺼냈다. 동물들은 허둥지둥 도망쳤다.
살고 싶어서였다.
그나마 지성이 있는 이들은 드낙에게 감사를 표했다. 모든 걸 포기했는데, 살아남아서였다. 여기에 드낙은 보름을 써버렸다.
그 이후에 동부 영혼탑의 근처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방비가 되어있었다.
보름, 15일, 360시간 동안 영혼 진지 300곳을 털었다. 영혼 진지는 멀쩡했지만, 생명체는 도망쳤다. 영혼 기사와 병사들의 정기 연락도 끊겼다. 딱 10일에 한 번씩 이루어지는 최소한의 보안 체계였다.
드낙은 욕심을 부렸고, 보름을 하찮고 부질없는 생명체를 위해 소모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내어 줘야만 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영혼 탑의 꼭대기에서 거대한 파동이 울려 퍼졌다. 그건 ‘사념파’에 가까웠는데 특이한 점이 있다면 영혼력을 통해 만든 메시지 마법 계통과 파동이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고로, 드낙 또한 쉽게 들을 수 있었다.
[정체 불명의 존재가 영혼 진지 300곳에 있는 영혼 군대를 박살 냈다! 하지만 놈은 영혼 진지는 파괴하지 않았다! 강력한 기만술이 지금 동부 영혼탑에 스며들어있다! 모오든 영혼 기사들은 24시간 철통 경비를 서라!]
[특수 장비를 받지 않은 기사와 병사가 있다면 반드시 착용하라! 장비 변경은 지상 1층의 모든 건물에서 받을 수 있다!]
관측되지 않는 정체불명의 존재.
정보 마법에도 누락되는 악랄한 ‘암살자’가 있다는 걸 적은 알아차린 듯했다. 동부 영혼탑 기준으로 10km에 끊임없이 정보 마법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드낙에게는 의미 없는 일이었는데, 이미 1만5천의 디아볼로스와 싸우면서 정보 마법도 피할 수 있는 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건 드낙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저 악마가 지닌 육체의 힘이기도 했다.
경험을 쌓으면서 육체 또한 다양하게 발달하는 게 악마의 육체였다.
끔찍한 화상을 겪은 악마의 육체는 화상에 대한 저항 신체 조직이 만들어지는 것과 비슷했다. 악마마다 모두 육체의 형질이 세월에 따라서 크게 달라지는 편이었다.
드낙은 거침없이 질주했다.
그 누구도 그를 알아차리지 못했으며.
그 무엇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한 점의 암흑조차도 보이지 않았고, 관측되지 않는 존재가 동부 영혼탑에 스며들어갔다.
========== 작품 후기 ==========
5850자
평점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