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80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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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룸 퓨에르(bellum puer) 프로젝트.
전장의 아이들이라 불리는 18명의 엘프.
그들은 1500년에 달하는 커리큘럼을 이수한 엘프들이었으며, ‘규모의 엘프’가 만들어낸 최고의 전투 엘프들이었다. 그 이면에는 10만에 달하는 희생이 있었지만, 잊힌 역사일 뿐이었다.
기록이 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찾지 않는 역사일 뿐이다.
이들 18명의 전장의 아이들은 벨룸 퓨에르라는 〈계급〉을 가지고 있었다. 특권계층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특혜와 특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엘프를 죽일 권리조차도 가지고 있다. 물론 그 권한은 오직 1만 년 미만의 엘프인 노벰(novem)과 5만 년 미만의 엘프인 데셈 아노스(Decem annos)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었다.
철저한 나이 계급.
오로지 늙으면 늙을수록. 허락된 지식만큼의 권력을 지니는 게 엘프들의 사회였다.
총사령관이자 아름다운 칼리스투스로 불리는 이 벨룸 퓨에르는 100만의 엘프를 거느린 장군이었는데, 그 100만에는 1만 년 미만의 노벰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노벰 중에서도 열정이 있는 자들로 꾸려졌다.
그렇기에 실제 나이는 5천 년 미만의 아주 젊은 엘프들이었다.
100만을 이끌고 있음에도 원탁회의에 참석한 엘프의 숫자는 고작 18명에 불과했다. 그들 모두 벨룸 퓨에르라는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럴 때 써먹으라고 만들어놓고, 300년 동안 얼려놓았다가 해동시켜서 출정을 명령한 것이다. 전쟁터에 나갔음에도 벨룸 퓨에르 18명의 표정은 밝았다.
그들의 유대관계는 종족을 초월하고 있었다.
지옥 같았던 1500년의 커리큘럼 끝에 기다리고 있던 것은 엘프를 위한 헌신이 아니었다. 시리도록 차가운 얼음 감옥이었다. 그저 100년마다 해동되어서 새로운 최고의 지식을 배우고 다시 얼려질 뿐이다.
“이건 우리에게 큰 기회라는 걸 잘 알 것이다.”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특히 폭풍의 요람을 소유하고 있다는 게 중요했다. 주변 대기의 마력 상황을 보고 운용해야 했기에 집중 운용을 위해서는 다른 곳에 옮겨놓았다가 다시 가져와서 사용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한 번 충전하면 같이 데리고 다닐 수 있었다.
“드디어 노괴들에게 복수를 할 수 있다.”
“엘프 멸망전 이후를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의 대계는 펼쳐봤자 소용없어. 그저 영혼 제국만 좋아할 뿐이겠지.”
영혼 제국에게 있어서 인간은 자원일 뿐이다. 그건 엘프들의 판단이기도 했다. 그만큼 인간은 나약하고 볼품없었으며 조악한 존재였다. 세파리아스를 봤는데도 그런다고? 세파리아스 사후, 그런 인간은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100만의 엘프가 있다. 그들 대부분이 노벰이고, 노벰 중에서도 중산층이다.”
중산층 미만의 노벰 엘프는 징집되지 않았다. 그들은 지식이 부족했고, 노력도 하지 않아서 전투술의 연마에도 뒤처진 이들이었다.
“차라리 그들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가 신세계로 향하는 게 어떨까.”
다른 대륙으로의 이주. 신세계로의 이주. 100만의 규모를 이룬 엘프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의 마력을 한데 모으고, 18명의 벨룸 퓨에르 특권 계급이 지식을 사용한다면 능히 가능했다.
“예정된 멸망만이 기다리고 있겠지...”
“엘프의 역량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아닌가? 폭풍 요람을 돌려주고 이주한다면...”
“그리고 우리들의 복수심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난 다른 곳으로 가더라도 어떻게든 엘프 제국에게 큰 피해를 주고 가고 싶다.”
“폭풍의 요람 생산기지를 대파시키는 피해 정도는 되어야 속이 풀리겠죠.”
“그게 아니라면 센툼 밀리아 노괴 새끼들을 수십만 죽이던가.”
“난 최고회의에 참석 가능한 놈들을...”
너도나도 복수심을 불태웠다. 하지만 쉽게 결정하지는 못했다. 그 분노는 쉽게 사그라들었기 때문이었는데, 엘프의 녹안 때문이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감히 싸움을 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잘못하면 양쪽에서 두들겨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혼 제국이 동맹이나 피아 구분을 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영혼 제국과의 외교 시도는 해볼 가치는 있겠지만...”
“덧없이 사절단이 죽을 수 있으니, 선택하는 건 어렵겠죠.”
소모에 대한 걱정이 이들의 가장 민감한 부분이기도 했다.
이 모든 걸 듣고 있던 드낙은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서로 반말을 하고 있었고, 존대를 넘어선 친밀의 유대관계를 보유하고 있었다. 동시에 그들은 그들만을 생각하지 않고, 100만이 넘는 피지배계층을 품으려고 하고 있었다.
고귀한 행동이다.
끝을 모르고 숨어서 떵떵거리고 사는 엘프 노괴들의 사회의 일면을 보고 손절한 드낙과는 달랐다. 확실하게 종족 문제를 직시하고, 신세계를 꿈꾸고 있었다. 다만, 결단이 약하다.
‘나라면 바로 빤스런칠텐데.’
드낙다운 가벼운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저들의 일은 그가 깊게 고민해야 할 일이 아니기도 했다.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보다는 이들을 휘어잡을 생각을 했다.
100만 엘프 군대의 정통성과 그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도 복수는 필요했다.
“모든 엘프는 자유로워야 한다. 애초에 엘프는 위아래를 나눌 필요가 없어. 그러지 않나?”
“동의한다. 정치하고 싶은 엘프가 있다면 나이가 어려도 하면 그만이지. 굶어 죽을 리가 없으니까.”
모든 걸 취미처럼 할 수 있는 게 엘프였다. 마도 사회의 장점이기도 했다. 이들은 신엘프 자유주의를 크게 드높이고 있었다.
“실례합니다.”
드낙이 원탁에 그대로 뚝 떨어졌다. 눈으로는 그저 검은 그림자가 슬라임처럼 떨어지고, 엘프가 모습을 드러낸 것에 불과했지만,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신속했다.
전원 정복에서 순식간에 청철 갑옷으로 바뀌었다. 백금 카드가 빛났으며 할 수 있는 모든 마법이 토해졌다. 이글거리는 불꽃이 천장을 틀어막았다.
군막이 알아서 타올랐다. 전쟁터를 넓게 가는 건 다수의 강점을 살리는 길이다. 동시에 하늘로 솟구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있었고, 도망치더라도 마력 불꽃이 존재하는 한, 정보 마법에서 벗어날 도리가 없다.
즉, 화염 마법을 허공에 쓴 것만으로도 2가지의 이득을 더 취할 수 있었다.
정보마법이 드낙을 매우 세심하게 훑으며 사그라들었다. 적발의 효용은 이미 드낙의 전신으로 번져있었고, 그에 대해서 알 수가 없었다.
“웬 놈이냐!”
다른 엘프들 또한 매우 기민하게 모여들었다. 그 속력을 보며 드낙이 혀를 내둘렀다. 그가 양손을 들어 올리며 빙긋 웃었다.
“진정하시지요. 전 진화학파의 드코라르바라고 합니다.”
긴 장창이 드낙의 목에 놓였다.
“그런 놈, 모른다!”
젊은 엘프에게 정보가 닿지 않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결국 드낙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눈을 깜빡이고 있는 엘프는 없었음에도 드낙은 말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마른침을 삼키는 벨룸 퓨에르 중 〈총사령관 칼리스투스(Callistus)〉의 뒤를 잡았다.
원탁 회의를 염탐했기에 누가 리더쉽을 휘두르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팔을 두르며 목을 단숨에 잡았다. 칼리스투스가 버둥거렸지만, 드낙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이런 상황을 상정했는지, 다른 이들의 판단은 빨랐다.
가장 먼저 〈용기의 에르하르트(Erhard)〉가 달려들었다. 다른 이들도 그 뒤를 따랐다.
‘어랍쇼?’
대장을 잡았는데도 덤벼드는 모습에 드낙이 황당해 했다. 그는 모를 수밖에 없었다.
18명의 벨룸 퓨에르의 고귀한 철칙을. 누가 잡혀도 결코 협상하지 않는 그들은 가장 강력한 대적자였다.
다만, 상대가 나빴다.
드낙은 단번에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화염이 그를 덮었지만,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마법 상쇄에 도가 튼 놈이다! 육탄전으로 끌고 가야 한다!!”
에르하르트가 고함을 내지르며 드낙에게 접근하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그림자가 그 두 다리를 잡더니 채찍처럼 휘둘러서 땅에 처박았다. 그 순간에도 방어 마법을 사용해서 피해를 막은 에르하르트가 몸을 일으켰다.
“흐아아앙!”
다차원적 사고의 극대화를 위해서 여성적인 면모를 지닌 칼리스투스의 머리카락이 검게 변해갔다. 그녀가 몸을 떨었다. 자신을 단단하게 압박하고 있는 사슬이 끊어지고, 해방감에 피부가 떨려왔다.
고작 1800년을 살았지만 1500년의 커리큘럼 속에서 엘프의 모든 것을 담은 것이 18인의 벨룸 퓨에르였다. 그리고 그들의 리더를 맡고 있는 ‘아름다운 칼리스투스’였다.
극한에 닿은 엘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가장 ‘벽’에 근접한 자이기도 했다.
역설적으로 엘프의 지식을 모두 담은 개체이기 때문에 드낙의 힘에 쉽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드낙이 주는 힘은 너무나도 불합리한 은혜였다. 원한 적이 없음에도 가장 갈망하는 것을 내어주는 은혜로움이었다.
동시에 작은 세계에서 갇혀 살았던 칼리스투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드낙은 그가 디아볼로스가 된 걸 보고 그대로 놓아줬다. 몸에 들러붙은 그림자가 알아서 지면 충돌의 피해를 줄여줄 것이다. 또한 엘프들이 마법을 통해서 그를 받는 모습도 보였다.
“크악!”
매우 거친 행동을 보이는 용기의 에르하르트도 목을 움켜잡고 디아볼로스로 만들었다. 그는 여성적 형질 변환을 겪은 칼리스투스와는 반대로 남성적 형질 변환을 겪은 엘프였다.
체격은 비슷했지만, 남자라고 생각하기 쉬운 얼굴을 지니고 있었으며 가슴도 나오지 않았다.
그 뒤를 이어서 다른 16인의 벨룸 퓨에르도 디아볼로스로 만들었다.
‘사태 진정을 위해서는 모습을 감췄다가, 다시 나타나야지.’
그들 스스로 깨달을 것이다. 무엇이 변했는지. 그 어떤 엘프보다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을 터였다.
‘결코 평범한 놈들이 아냐. 가장 쓸만한 놈들이다.’
지금까지 본 엘프 중 가장 기대를 할만했다. 그렇기에 드낙은 18명을 단숨에 디아볼로스, 하급 악마로 삼았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이들이 지닌 엘프 사회에 대한 반감이었다. 이를 이용한다면, 드낙의 휘하에 더 쉽게 들어올 수 있어 보였다.
‘새로운 엘프 사회의 중추로 정치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건 큰 가치를 지니고 있지.’
드낙이 검게 웃었다.
*
〈검은 돔〉에서는 중대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리전의 관리를 위해서 흩어져 있었던 이들이 모여서 회의를 열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큰 일보였고, 이런 중앙 집권 체제는 생각보다 더 검은 뿔쥐들을 통합하고 있었다.
가장 큰 것은 사회 계급의 기틀이 마련된 것이다.
검은 뿔쥐 밑에 핏빛쥐가 자리 잡게 되었고, 그들은 순순히 하위 계급이 되었다. 물론 계급 이동은 확실하게 이루어진다. 검은 뿔쥐로 변태하면 상위 계급으로 바로 올라갈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열린 확실한 사회 이동은 핏빛쥐 사회의 가장 큰 힘이기도 했다.
또한 털이 검게 변하면 바로 다른 곳으로 향해서 미리 교육을 받기 때문에 문제도 크게 생기지 않는다. 왜 그렇게까지 그들을 대우하냐면 리전이 나누어져 있고, 검은 뿔쥐 인력에 대한 다툼과 경쟁이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로써 우리 뿔쥐는 그간 있었던 큰 소모를 수복했음을 공표하는 바이다!”
대장쥐의 외침에 10인의 위원들이 모두 박수를 치며 어깨를 들썩였다. 마왕 발라쿠 전쟁으로 겪은 소모에 대한 회복이 오늘로써 끝이었다. 이제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가 왔다.
여기서 회복이란 것은 단순 인구 회복이 아닌, 역량의 회복을 의미했다.
“거대 프로젝트를 하나 더 할 수 있다는 뜻이지.”
“당연히 인간 놈들이 만들고 있는 〈이동 성채〉를 우리 또한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뿔쥐들은 철도부터 시작해서 교통 수단의 고도화에 많은 힘을 사용했다. 모두 뿔쥐들이 우월하다는 걸 드낙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이미 전부터 진행하고 있었던 일 아닌가?”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도 모두 제각각 추진하고 있었다. 리전 내에서의 경쟁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리전별로 개발한다고해도 그 진행도가 미미하다는 건 모두 알고 있을 텐데?”
“하지만 소유권 주장이 어려워지지 않을까? 찍찍.”
“핵심 부품을 만든다면 지분을 높게 요구해야겠지.”
“자재를 많이 부담하는 리전이 더 지분이 높아야지!”
“그마아아안!”
대장쥐의 입 주변의 털이 위아래로 크게 움직였다.
“지금 이럴 때인가? 우리의 장점은 규합력이다! 지금 동부 왕국은 유례없는 통합을 이루어냈고, 오크들과 드워프와도 잘 지내고 있다! 거기에 비밀리에 디아볼로스들이 지식을 전수해주고 있지...”
“우리 또한 첩자를 통해서 지식을 빨아먹고 있다!”
“아니! 진짜 무서운 건 종족 연합의 시너지다!!”
대장쥐의 눈이 더욱 붉게 타올랐다.
“인간 놈들을 비롯한 다른 종족이 지상 요새를 건축한다면 우린 공중 요새를 건축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리전이 다시 한 번 힘을 합쳐야 한다! 공평한 지분! 평등한 노력!”
“찍찍...”
웅성거림은 커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11인의 뿔쥐 위원회도 머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만장일치로 의견이 합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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