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80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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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둥지둥 중립신이 드낙에게 개입했다. 그저 검은 꿈으로 접속하게 한 것만으로도 개입할 수 있었다. 아껴뒀던 엘프에 대한 거래라는 명분도 있었다. 실제로 드낙은 중립신이 엘프에 대한 거래를 확정 짓지 않아서 안달이 나기도 했다.
‘위험했다.’
중립신은 실로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드낙은 자신의 지위가 바뀌자 거기에 따라서 갈대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건 태풍 앞에서 흔들리는 거목처럼 거대한 움직임이었고, 중립신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갈대인데 거목이다. 그게 드낙의 현 상황이었다.
그건, ‘두려움’이라고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또한 중립신도 그 감정을 수긍했다. 방금 중립신(中立神), 엘 마르토 카사다민은 드낙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화려하게 피어나는 장미가 꽃을 맞기 전의 봉우리의 움직임, 그 아름다운 떨림을 드낙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조잡하고, 조악하며 자신조차도 모름에도 불구하고 개화(開花)할 뻔했다.
‘내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드낙이 지닌 변수는 실로 무시할 수 없다.’
이타심(利他心)이라는 것은 드낙...아니, 박호훈이 가질 수 없다. 그렇기에 그가 흘러들어왔다. 이 세계로.
남을 사랑할 수 없는 존재를 불러 들어왔다.
그가 약자에게 베풀었던 것은 그저 작은 여흥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 아내의 머리통을 소주병으로 후려갈기고 나온 쓰레기가 노숙자에게 천 원 주는 것에 불과했다.
그건 이타심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드낙은 이타심을 보여줬다. 생식기마저 개조 및 변형되어서 노리개처럼 쓰이는 어린 엘프들에게 관심을 둬 준 것이고 그들의 감성에 물들었고, 동시에 악인도 약자라고 느꼈다.
이는 초월자에게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기도 했다.
악신이 될지, 선신이 될지의 분기점이었다.
드낙은 선신(善神)의 꽃잎을 보여줬지만, 오히려 그게 문제였다. 중립신이 당황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악(惡)이 되거나 그게 아니라면 선악의 기준도 못 잡는 갈대로 있어야하는데...’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그건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10년을 개망나니로 산 자가 10년을 봉사하며 살았다고 해서 다음 10년을 선인처럼 산다고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중립신이 드낙의 ‘깨달음’과 ‘자아성찰’을 막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는 악으로 남아야 했다. 혹은 현상 유지를 하던가.
그래야 중립신이 그를 좌지우지(左之右之)할 수 있었다. 다양한 방향성은 다양한 결과를 낼 수 있으며 이는 곧 대계의 유연성에도 영향을 준다. 모순적 존재 혹은 기존의 본질주의에서 드낙은 결코 벗어나면 안 된다.
중립신이 드낙을 죽여도 되고, 살려도 되는 것이 죽여서는 안 되는 것으로 변하면 골치 아픈 것이다.
앞으로 별이 탄생하고, 죽기를 수십 번 반복하며 악행을 저지르고 타락에 묻을 자를 죽이는 건 중립신의 프라이드에 전혀 상처가 없었다.
반대로, 누구도 사랑할 수 없게 되어버린 인간이 중립신의 시련을 견뎌내고 이타심을 깨달아 악마의 반열에도 오르고 신의 반열에도 오를 준비를 마쳤다면, 중립신으로서는 드낙을 놓아줄 수밖에 없다.
이것은 결정된 결과이며 대계와는 맞지 않았으며 더더욱 중립신이 지닌 유연성과도 맞지 않았다. 고로, 전후사정이 어찌 되었든 간에 방해하는 게 옳았다.
‘마지막 시련을 견뎌낸다면 넌 진정 나의 ‘자격’을 얻을 것이다.’
어차피 지금 이타심(利他心)이든 이기심(利己心)이든 그 외의 무엇이든 깨닫고 체득한다고 해도 초월의 힘이 부족하기에 신이든 악마든 멋대로 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다만, 마지막 시련을 위해서라도 깨달음을 방해해야 했다.
욕망의 고도화 내지는 진화는 위험했다. 드낙은 자신의 지위에 잡아먹히기 쉬워보였다. 말 그대로 의자가 사람을 바꾸는 것이나 다름없다. 중립신이 당황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직위에 잡아먹혀 변화하는 인간이라니, 너무 조악하다.
그저 빛나는 전구를 천으로 덮는 수준에 불과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실질적인 것에 목매고 있는 게 현대인이고, 인간이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철학보다는 외모가 있어야 철학자로서의 인기를 크게 얻었다. 고대 그리스는 못 생기면 단상에 오르지도 못했다.
예로부터 마음보다는 금이 있어야 신랑감으로 잘 어울렸다. 그게 아니라면 건장한 신체로 밥벌이는 할 줄 알아야 했다.
예로부터 그랬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아무리 ‘변수의 종족’이라고 해도 그것만은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중립신은 오늘의 일을 그저 헤프닝으로 삼았다.
드낙은 언제고 또 실수할 것이 분명했다.
중립신이 급하게 드낙을 저지한 것은 성공적이었다. 오히려 엘프에 대한 거래로 드낙의 머리가 치우쳐졌다. 이타심이고 나발이고, 자신을 관조하는 것보다는 실질적인 업의 거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겼다.
자본주의의 폐해였다.
예의를 알고, 법도를 터득하여 웃어른에게 큰절하는 것보다 그냥 5만 원 받고 큰 절하는 게 더 마음이 깊은 법이다.
인간은 수렵을 버리고 16시간 이상의 살인적인 노동을 해야 하는 농업의 노예로 살았고, 지금은 돈의 노예가 되어있었다.
‘이 거래에서 내가 할 것은 한 가지뿐이다.’
드낙을 배려하는 일이었다. 그가 재미난 표정을 지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것은 약속된 패배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중립신은 한 가지를 드낙에게서 가져온다.
그건 실체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마음가짐이라 불리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를 드낙은 하찮게 볼 것이다. 마음이란 것은 돈이 안 되고, 실체적 자원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원하는 거지?”
“엘프는 사실 업의 축적이 힘든 종족이다. 이미 ‘정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드낙이 수긍했다. 그도 잘 알고 있는 바였다. 엘프는 상상 이상으로 초월자가 되는 길이 막힌 종족이었다.
수준은 준수한데 벽은 막혀있으니, 절망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엘프가 헐떡거리며 바르르 떨며 쾌감에 쩔어버린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물론 인간이 지닌 업에 비하면 엘프는 월등히 높은 업을 보유하고 있었다. 종족값이 오우거와 비견되는 종족이다.
“검은 잔을 받아마신 엘프 두당 천 명.”
“완전히 다 내라는 거야? 말도 안 돼.”
엘프 한 개체가 지닌 업은 천 명의 인간과 비슷했다. 물론 태어나서 그저 소비될 뿐인 엘프는 그저 빈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다. 최소 500년은 지나야 어엿한 엘프고, 그런 엘프만이 엘프가 지닐 수 있는 업의 한계치에 도달할 수 있었다.
“검은 잔을 지닌 엘프의 숫자가 절반을 차지하면 안 된다는 것도 수정해라, 3할로.”
“그렇게 하면 역으로 잡아먹힐걸.”
드낙의 말에 중립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일단은 쟁점을 말했다.
하나는 드낙이 외계로 가져갈 엘프의 숫자에 제한을 두는 것.
둘은 변질되어 벽이 무너진 엘프에 대한 업의 양도.
이 두 쟁점 외에는 엘프에게 기댈 것이 중립신에게 없었다. 다만, 중립신은 이 두 가지 쟁점에서 적당히 패배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실로 의미가 없었다. 그걸 드낙이 깨달았을 때는 이미 모든 게 진행되고 나서야 알아차릴 것이다.
업을 돈처럼 여기는 그 마음가짐이 문제였다. 초월자에게 중요한 건 업이 아니다. 이것은 대신(大神)의 반열에 올라야지 생각할 수 있는 진리였다. 평범한 신도 사실은 업에 눈까닥이 휙 뒤집힌 짐승이다.
드낙으로서는 억울한 셈이었다. 데미-갓이 그레이트 갓과 경쟁하는 셈이다. 아홉 집을 내줘도 질 수밖에 없다. 중요하게 여기는 게 다르기 때문이다.
“500. 난 계속 분할해서 업을 받아먹을 텐데, 천을 곧이곧대로 줄 수는 없어.”
“어차피 테라를 떠나서 잘 먹고 잘살 텐데, 그때가 되면 나의 존재는 테라에 녹여지고 난 다음이다.”
청구할 수가 없는 셈이다. 채권자가 사라지면 채무자는? 땡큐인 셈이다!
“나 못 믿어? 착실하게 테라에 업을 수급하면 되는 일 아냐? 대신마저도 녹인 행성인데, 업도 자원처럼 쓰겠지.”
“......”
중립신은 순간 멈칫했다. 테라의 핵심을 드낙이 생각 없이 나불거렸기 때문이다. 의도치 않게 그의 맹점을 찔렀지만 어림도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900.”
“550.”
“흠.”
중립신이 강고한 드낙의 태도에 소리를 냈다. 고민하는 듯했다. 반면 드낙은 웬일로 중립신이 착하게 굴자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당장 업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지 못했을 때, 개돼지새끼처럼 처먹었다.
그때 비하면 정말 양심적인 장사꾼이 되어있었다.
“몇 가지 조건만 들어준다면 생각해보겠다.”
“들어보지.”
중립신의 말에 드낙이 냉큼 수락했다. 그에게는 업이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 또한 업의 개돼지였다.
다만 한 놈은 업을 너무 많이 처먹어서 내성이 있는 돼지였고, 다른 한 놈은 겨우 돼지가 되어서 업을 처먹기 바쁜 돼지였다.
“하나는 불파겐에 대한 것이다. 갈 때 그놈들도 다 가져가라.”
“테라의 수호는?”
“차원 자체를 닫아버릴 생각이다. 전에 말했을 텐데?”
“정말로 그런 짓이 가능한가?”
“가능하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그 시간은 너에게도 중요하지.”
차원 여행을 준비해야 했다. 외계로 떠나서 자리를 잡고, 그 외계 행성과 함께 차원 이동을 감행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몰랐지만, 인간에게나 오랜 시간이었다.
초월자에게는 그저 짧은 휴식기간에 불과했다.
‘...정말로 날 놓아줄 생각인가?’
드낙은 일말의 의심마저 흔들리는 걸 느꼈다. 하지만 단단히 움켜쥐었다. 아직은 방심하면 안 된다.
테라의 용광로에 같이 녹여진다는 보장이 없었다. 다만, 의심이 확정으로 가지 않게 되어버렸다.
“신이 되든, 악마가 되든 상관없다. 하지만 적어도 외계 행성으로 이주를 마친 뒤에 꽃을 피웠으면 한다. 이를 어기면 적으로 간주하겠다.”
“어렵지 않은 일이지. 애초에 아주 나중의 일이잖아?”
“그럴지도.”
중립신은 애매한 답을 내놓았다. 드낙은 이를 중립신이 아무 상관 없다는 것으로 알아들었다. 음흉한 뱀과도 같은 혓바닥이었다.
조건은 오로지 2가지뿐이다. 그 이상을 제시한다면 드낙이 알아차릴 것이라 여겼다.
“550명분의 업으로 결정하고, 검은 잔의 비율은 기존을 유지하도록 하겠다.”
드낙이 기분 좋게 웃었다.
거래 성립이다.
‘성공이다. 내가 그를 배려한다고 생각하게 하였다. 그는 나에게 편안함을 느끼겠지. 진정으로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할 터다.’
드낙을 편안하게 해주고 중립신이 얻는 마음가짐은 정확히 말하자면 드낙이 사냥꾼이 되지 않고, 암살자가 되지 않는 것이다. 적어도 중립신을 대상으로 그러지 않게 만드는 것이었다.
드낙이 중립신을 사냥꾼 내지는 사냥감이라고 크게 결심한다면 중립신은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또한 드낙이 중립신을 암살대상으로 여기거나 자신을 죽일 암살자라고 생각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전과는 태도가 달랐는데, 드낙이 개화(開花)의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건 마음의 전쟁이었다. 거기서 드낙은 가장 하등한 싸움꾼이었다. 마음을 내어주고, 업을 탐하는 배불뚝 고블린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너에게 감사할 테니 황금을 달라는 소리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
제국 서부. 마질란 성채는 임시 수도로 지정되었다. 다만, 실질적인 신제국의 경제는 〈시네 노미몬스(sine nomine mons) 분지〉에 집중된 형편이었다.
오로지 교통이 용이하기에 마질란 성채가 임시 수도로 정해졌으며 몇 번의 증축이 일어났다.
엘프 100만이 영혼 제국을 밀기 시작했고, 동부 영혼탑마저 그 영향력에 들어가고 있었기에 영혼 제국은 서부에서 새로 깃발을 높이든 신제국을 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신제국이 건국되었는지 몰랐다.
그저 드워프 때문에 서부의 영향력을 잃은 것으로 오판했다.
마법사와 패륜아 황제가 건국한 영혼 제국이었다. 오히려 세파리아스의 전략을 간파한다는 게 이상했다. 아무리 폭군이라고 해도 엘프가 활동하지 않았다면 남부 왕국은 세파리아스 불파겐의 손에 떨어지고도 남았다.
또한 10년 뒤에는 제국과 남부 왕국의 전쟁이 일어났을 것이다.
세파리아스 불파겐의 철혈통치는 인간을 인적자원으로밖에 여기지 않기 때문에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철인 통치는 효율적일 수밖에 없었다.
5명이 다인오더를 내리는 것보다는 1명이 일인오더를 내리는 게 더 이득인 셈이다. 그 일인오더를 내리는 놈이 괴물이기 때문이다.
민간인을 가축처럼 죽인다고 말해지지만, 그 당시의 북부는 사람이 죽어야지만 살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많은 인구는 많은 산업을 곤두박질치기에 충분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세파리아스 불파겐의 철혈통치를 옹호하기에는 그 손에 묻은 피가 너무 많았다.
인류 전체를 봤을 때는 엄청난 부흥이지만, 개개인에게는 백정인 것이 세파리아스였다.
이는 신제국에서도 여전할 것처럼 이루어졌다. 다만, 방식이 조금 드낙 때문에 유들유들해졌다. 팔과 팔뚝이 묶이고 목에 이어지는 삼각 포박술에 연행된 이들의 숫자는 100명을 헤아렸다.
이들은 세파리아스가 걸어가며 훑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질질 싸는 이들이 있었다.
압도적인 공포와 강인한 카리스마는 세파리아스의 명성과 함께 굳건해진 상태였다. 세파리아스가 몸을 돌려서 젊은 기사를 보며 물었다.
“이 자들인가?”
“예!!!!!!!!!!!!!!”
젊은 기사가 너무 긴장해서 너무 크게 소리를 내질렀다. 누가 보면 똥꼬에 장대가 박힌 줄 알 정도였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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