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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800화 (799/1,239)

강철의 전사 80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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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학파의 드코라르바와 접촉하려는 유력자는 많았다. 센툼 밀리아(centum milia)가 오는 건 당연했고 퀸쿼진타(Quinquaginta)가 오는 건 만용으로 여겨졌다. 데셈 아노스(Decem annos)의 방문은 거절되었다.

그리고 거절되지 않은 이들은 리산드로스와 다른 디아볼로스와 만남을 가지고, 수확 없이 되돌아가기는 개뿔, 그런걸 드낙이 원할 리가 없었다.

오면, 확실하게 검은 잔을 수행원의 수x3만큼 챙겨줬다.

3배수는 어디서나 있을법한 숫자였고, 특히 드낙은 대국처럼 행세하고 싶어서 방문한 이들의 품속을 넉넉하게 해주기로 했다. 한창 국뽕에 차있을 때, 조선이 중국으로부터 공물을 바치고 선물을 잔뜩 받아왔다는 걸 어디서 듣고 기억하고 있어서였다.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그게 국뽕이기 때문이었다. 다 죽을 때가 되어도 이순신을 까먹는 사람은 없다. 그런 것과 비슷했다.

수많이 온 초대장을 노린 행동이기도 했다. 드코라르바보다 자신이 우월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엘프들은 죽만 쓴 꼴이 되었고, 초대장이 아닌 직접 방문이나 하수인을 통해서 방문한 이들은 큰 이득을 봤다.

직접 방문과 하수인 방문 또한 서로 달랐는데, 수행 인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걸 x3 하면 특히나 더 명확하게 차이가 나는 법이었다.

또한 한 번 방문한 유력자는 다시 받지 않았다.

초대장 중에 드낙은 오로지 3장만 챙겼다.

‘짧고 길게...아니, 굵고 짧게 간다.’

본능적으로 짧고 길게라는 말을 했지만, 서둘러 수정했다. 빨리 이런 걸 고쳐야 했지만 고치기가 쉽지 않은 편이었다. 드낙은 누구보다 인간적인 반마(半魔)였기 때문이다. 능력과 권능을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는 반신(半神)에도 닿아있었다.

다만, 육체가 살아있었기에 반신으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는 않고 있었다. 또 능력과 권능을 다룸에 있어서 악마의 방식을 취한 것도 반신으로서의 역량을 숨기게 했다.

가장 먼저 노린 건 전령 의장 헤르미오네였다. 찌라시의 대마왕, 이 도시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생산하고 소모하고 있었지만 그나마 양반인 의장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냥 미친놈이네...’

몸에 결함이 존재하는 소년들의 후장을 괴롭히는 엘프였다. 그 고통스러워하고 자극적인 맛에 큰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았고, 죽은 어린 엘프가 ‘처리’되는 과정도 끔찍했다. 육편으로 다져지고, 사료로 변해 살아있는 어린 엘프들의 입으로 들어갔다.

효율적이지만, 비윤리적이었다.

빌딩의 철저한 시스템이었지만 엘프가 다니는 통로를 이용해서 마법에 걸리지 않고 도착한 드낙은 백금 카드를 이용해서 모든 정보를 기록했다. 그것은 단순한 시각정보가 아니었다.

엘프가 지닐 수 있는 모든 감각에 대한 다채로운 정보였다.

‘그것은 흉기나 다름없다.’

물론 엘프가 사용하면 그저 시각 정보, 후각 정보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드낙은 달랐다. 그는 ‘악몽’을 만들 수 있었다.

악마는 육체의 힘을 통해서 초월하는 자.

즉, 육편이 되어 다져지는 기분 또한 어느 정도 백금 카드에 담을 수 있었다. 처리 과정을 겪는 어린 엘프에 혈관을 통해서 연결하면 그만이었다. 이 또한 간접적 체험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큰 충격을 줄 게 분명했다.

“아리나이의 강에...”

노래를 부르며 헤르미오네는 맨발로 정신을 잃은 채 쓰러진 어린 엘프의 배와 목을 누르면서 발장난을 치고 있었다.

라인홀트 의장의 경우에는 검소한 삶을 살고, 필요할 때만 나타나며 어느 정도의 사치는 부렸지만, 그 영향력에 비하면 실로 검소한 삶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반면, 이 도시는 정보의 자극성과 방대함 때문에 미친놈들뿐인 듯했다.

그림자가 뚝 떨어졌다. 동시에 백금카드가 퍼져나가며 정보를 획득해나갔다.

“어?”

어둠이 헤르미오네의 모든 시야를 뒤덮었다. 그가 그대로 넘어졌다. 하지만 앞에 있을 테이블은 사라져 있었다. 뒤를 더듬었지만 쇼파가 있어야 할 곳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건 기이한 일이었으며, 헤르미오네는 자신의 팔도, 다리도 볼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어둠에 집어삼켜 진 자신을 볼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마력을 토해냈지만, 흘러나오지 않는다. 드낙의 그림자는 이제 ‘그런 것’도 할 수 있었다. 반마는 육체를 다루는 마법사와 비교할 수 있다. 적발 또한 신체 부위 중에 하나. 그렇다면 초월에 닿은 반마라면 그 인자를 그림자에 녹여낼 수도 있었다.

드낙이 가지고 있는 ‘본능적’이고 이해하지 못한 그림자에 대한 이해는 모순적으로 그림자에 대한 깊은 통달(通達)한 것과 같았다.

허우적거리는 헤르미오네는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혼을 이용했다. 마법이 통하지 않으면 육체를 이용하면 된다. 엘프 정예병은 단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적게는 10회에서 많게는 30회에 이르는 참격을 날리는 속력을 영혼 이동술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다.

이를 응용한다면 축지법 같은 짓거리도 가능하다.

다만 그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그림자의 밖은 아수라장이 되어있었고, 헤르미오네가 아무리 뛰어도 괜찮을 만큼 방이 넓었으며, 방향조차 관측할 수 없을 만큼 그림자 속은 어둡다는 점이었다.

사방팔방을 날뛰어도 오로지 바닥만 체감할 수 있었고, 그 외에는 불가능했다.

그림자가 슬라임처럼 들러붙은 체 헤르미오네의 피부 감각을 교란시켰다.

쳇바퀴처럼 방을 날뛰어도 그는 그저 일직선으로 달리고 있다는 착각에 휩싸여있었다.

“허억! 허억!”

그가 절망을 느꼈을 때, 드낙은 그림자를 걷었다. 백금 카드에 그 모든 정보가 담겼다. 그림자 지옥은 체험하는 엘프에게는 즐거움을 줄 것이다.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방식으로 관측된 백금 카드로는 엘프를 햄스터처럼 만들어버렸다.

그것도 전령 의장 헤르미오네를!

그 꼴사나운 모습이 그림자에서 드러났다.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육체를 초월한 영혼을 입맛대로 운용할 수 있는게 엘프였다. 그건 그저 전투적인 면모에서밖에 사용 못 하는 수준으로 조악했지만, 단시간 내에 엄청난 운동력을 소모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엘프의 땀 전부가 운동량으로 생긴 건 아니었다. 나머지 절반은 식은땀이었다.

“살면서 처음 느끼는 공포였겠지?”

드낙의 비웃음이 담긴 말에 헤르미오네가 일어섰다. 하지만 다시 뒤로 성대하게 넘어졌다. 쿠당거리는 소리보다는 그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진창에 있는 것처럼 질퍽이거나 철퍽거리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저 푹신하고 물컹거리는 감각이 엉덩이로 전해져왔다.

“웃...”

그림자가 들러붙었다가 후두둑 떨어졌다. 서둘러 일어났지만 교묘한 그림자 바닥의 움직임에 주체를 하지 못했다. 지진 때문에 일어서지 못하고 짐승처럼 바닥을 기는 인간과 같았다.

자신의 꼴사나운 모습에 헤르미오네는 결국 아무 행동도 못한 채 주저앉고 말았다.

“네놈은 드코라르바구나. 왜 이런 짓을 벌인 거지? 그리고 뭐냐? 이 그림자 마법은...!”

“진화학파의 힘이라고 해두지. 엘프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하지만 너희들의 도시는 날 역병 취급했지. 어떻게 생각하나?”

“어떻게 생각하냐니? 당연하다. 검은 잔의 실체는 위험해. 그리고 꿀벌 도시의 엠마누엘은 검은 잔의 보급에 소극적이다! 선별 당하는 상황에서 다른 엘프에게 정보를 공개할...”

“하하하하하.”

드낙이 그 말을 끊고 웃었다. 말도 안 되는 변명이다.

“내가 그런 변명을 듣고 설득될 거로 생각해? 왜 이렇게 멍청하지?”

“......!”

헤르미오네는 분노했지만 단 한 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떠들어봤자 드코라르바가 이해할 리가 없었다. 그와 자신은 완전히 다른 세상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선’을 넘은 엘프였고, 자신은 선을 넘어야 하는 엘프였다.

계급의 차이. 지위의 차이. 그런 게 아니었다.

‘격의 차이다.’

“힘의 차이...”

살면서 단 한 번도 내지 못한 말을 내뱉었다. 모든 엘프가 비슷비슷한 세계에서 지식의 차이라는 말은 많이 해도 힘의 차이라는 말은 좀처럼 나오기 힘들다.

뭘 처먹어도 신장, 체격까지 비슷한 게 엘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힘의 차이다.”

드낙이 헤르미오네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는 그걸 거부할 생각도 하지 못한 듯했다. 처음으로 느끼는 패배감 때문에 전의가 꺾였다.

‘규모의 엘프’라 불리는 것만큼 개개인은 생각보다 강자에게 약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뭉치면 강하지만 흩어지면 호랑이를 향해 단검을 뽑을 용기가 없어 보였다. 단, 이건 드낙이 엘프의 모습을 취해서 극대화된 면이 있었다.

“아!!”

힘이 넘실거리듯이 차올랐다.

‘문이...열린다!’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기분에 전신에 소름이 쫙 돋았다. 하지만 그건 오래가지 않았다. 드낙이 다시 회수했기 때문이다.

끔찍한 강탈감이 헤르미오네를 뒤덮었다.

“아, 안 돼! 진화학파의 힘을!”

헤르미오네가 버둥거리다가 넘어졌다. 일어서려고 했기 때문에 그림자 바닥에 의해서 다시 한 번 엎어졌다. 손이 땅을 짚었고, 손목이 시큰거리며 붉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돌려줘!”

드낙의 다리를 손으로 잡았다. 드낙은 그걸 알면서도 한 걸음 내디뎠고, 그대로 질질 끌려졌다.

‘재밌다.’

이 정보가 풀리면 엘프들은 무슨 표정을 지을까? 생각만 해도 재밌었다. 줬다가 뺏는 건 실로 재미난 일이었다.

아득바득 기는 헤르미오네를 힐끔 내려다본 드낙은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눈에 그 모습을 담는 순간, 왠지 모를 거북함이 올라왔다.

‘어?’

그건 드낙으로서도 당황스러울 정도로 생소한 현상이었다. 과거의 자신이었다면 이런 광경 따위 얼마든지 즐길 수 있었다.

마치, 낙태에 대한 아무 생각도 없는 사람이 우연히 낙태를 오랫동안 집도한 늙은 의사에게 낙태의 과정을 세세하게 듣고 낙태에 대한 단어만 들어도 구역질이 올라는 사람처럼 된 기분이었다.

한순간에 사람이 뒤바뀌는 광경을 겪은 것처럼 드낙은 자신이 변했음을 직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당황했다.

애연가가 담배에서 역함을 느끼고 당황하는 것과 비슷했다.

‘가슴이 답답하다. 왜지?’

드낙이 뒷걸음질 쳤다. 가슴마저 답답해졌기 때문이다. 그건, 너무 위선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드낙의 마음에 불을 지피기 충분했다.

머리채를 잡고 들어 올려 무릎 꿇게 만들었다.

“빌어봐, 그러면 검은 잔을 내려줄 테니.”

“흐, 흐흐흐.”

헤르미오네는 팔뚝에 닭살이 돋으며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비볐다. 파리처럼 싹싹 빌었다. 드낙의 품에서 큼지막한 검은 성배가 툭 하고 떨어졌다. 그림자 바닥도 사라지고, 드낙도 사라졌다.

카드에 담긴 정보는 편집되어서 이 도시의 정보탑에 정보를 투입할 것이다.

도망친 드낙은 빌딩 밖에 있는 작은 정원에 앉았다.

머리가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적이 살면서 없었던 건 아니다.

대표적으로 입맛이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입맛이 한 번 바꿨던 적이 있고, 군대 전후로 입맛이 바뀌기도 했다. 좋아하던 생선도 나이가 들면서 멀리하게 되었다. 향기롭게 느껴지던 생선 비린내를 싫어하게 된 건 취업활동에서 오는 자괴감 때문이었다.

몇 번이고 입맛이 바뀌고 취향도 바뀌고 좋아하던 것이 지겨워지는 건 이상한 게 아니다.

‘하지만 이건 당황스럽네.’

조금 ‘저급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은 이런 짓을 하기에는 너무 큰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일 수도 있었다. 드낙은 그중에서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더불어 더 중요한 건 더는 약자를 괴롭히면서 오는 쾌감을 곧이곧대로 즐길 수 없다는 점이었다.

‘양학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건데...’

일부러 낮은 티어에 머무르며 신나게 남들을 쥐어패고 게임에서 프라이드를 찾았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드낙은 약자를 크게 도운 적이 별로 없었다. 있다고해도 자신의 영향력 내에서 행했다. 또한 그는 상황에서 도망치는 걸 선택할 때가 많았다.

근데 그런 취향이 어느새 변해있었다.

‘중립신이나 세파리아스 같은 놈들과 만나서 그런가?’

거기에 물들기보다는 거기에 영향을 받았다는 게 더 옳은 표현 같았다. 드낙은 그 두 놈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대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감성을 지닌 드낙은 싫어도 두 존재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선후관계가 달라져도 결국 결과는 같았다.

동시에 이제 드낙의 자존감은 적정 수준을 뛰어넘었음을 의미했다. 그가 지닌 격과 업이 드낙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만 드낙은 혼란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 혼란스러움을 틈타서 중립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연기가 자욱하게 시야를 가렸다.

“너...”

“엘프에게 이토록 손을 대다니, 그대는 나한테 얼마만큼의 업을 줄 생각으로 일을 벌이고 있는 건가?”

========== 작품 후기 ==========

5934자

평점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수능 보신 분이 계시다면 고생하셨습니다! 하나가 끝이났고, 다른 하나가 시작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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