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79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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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이 어긋나고 있다. 하지만 예상범위 내(內)다.’
하지만 실패는 없다. 대계(大計)라는 것은 흐름이다.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게 대계라는 이름의, 초장 기간에 걸친 전략이었다. 중립신의 전략은 유연성이 대단하다. 그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었다.
드낙의 통통 튀는 게 예상 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전체적 흐름을 보면 달라진 게 없었다. 엘프가 모든 힘을 쏟아붓더라도 이미 늦었기 때문이다.
‘영혼 마법의 한계 때문이다.’
통달의 대마법사, 아웃버스트는 자신의 한계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이후에 할 일은 뻔하다. 단기전을 노리고, 병사와 병과에 집중하게 될 터였다. 쓸데없이 신이 되니 마네 노력하지 않는다.
‘바르시아라면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아쉽게 됐어.’
아웃버스트의 실수라면 바르시아의 혈족을 단 한 명 살려뒀다는 점이다. 제2, 제3의 계책을 준비하지 않았다.
‘결국에는 그저 마법사였다는 것이지.’
자신이 믿는 실력과 진리가 모든 것이라 여기는 족속들이다.
중립신이었다면 바르시아의 혈족을 노예로 부리거나 사지를 잘라 모아놓은 다음에 그들 하나하나를 연결했을 터였다.
영혼을 그나마 많이 담을 수 있는 혈족을 모아서 하나로 만드는 것이다. 그건 영혼을 하나로 만드는 것보다 저항력이 적었다.
경유하기 때문이다. 효율은 떨어지겠지만, 필멸자가 ‘감히’ 불멸자도 다루지 않는 영혼을 다룬다면 그 대가는 크다.
‘이건 그저 한밤의 특별한 일에 불과하다.’
운 좋게 인생 속에서 일식을 본 그런 날에 불과했다. 바르시아라는 혈족이 만들어낸 변수가 영혼 제국을 탄생시켰다. 본래는 인간의 포용성을 극대화한 혈족이지만, 동시에 영혼을 담는 그릇마저 커졌다.
아웃버스트에게는 먹음직스러운 도구로 보였을 터다.
그게 영혼 제국의 모든 것이다.
바르시아라는 재료.
아웃버스트라는 일류 요리사의 솜씨.
제국이라는 배경.
모든 것이 일품이었지만 요리사의 실수로 재료가 단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100명, 1000명, 나아가 전대륙에 요리를 대접해야 하는데 바르시아라는 재료는 하나 뿐인 셈.
‘아이를 잉태시켜도 피는 계속 희석될 뿐이지.’
철저하게 근친교배로 피를 진하게 만들었던 제국이다. 권력의 분산을 막기 위함도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그 고리는 부서졌다.
‘영혼 건축물의 효율성이 지나치게 나쁜 걸 보고 아웃버스트는 한계를 깨달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병사와 병과로서의 가치를 높이고 세상을 지배한 뒤에 인간의 변수를 통해서 신에 도달하려 할 것이다.’
아웃버스트가 생각할 수 있는 마지막 길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영혼 제국은 무너진 것이나 진배없다.
한 가지 길을 걷는 지배자가 도달할 곳은 희망의 땅이 아니라 교수대다.
수많은 시간대를 손으로 짚으며 눈을 감은 중립신의 시야에 모든 경우의 수가 손에 잡혀 뽑혀 올려졌다.
필멸자는 3차원의 존재다. 그들은 결코 4차원에 해당하는 ‘시간’을 자신의 인식범위에 넣지 못한다. 드낙은 반마(半魔)지만 아직 시간을 다룰 수 없었다.
‘익숙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저 드낙은 누구보다 인간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상황에 휘둘리는 형편없고 나약한 존재, 자신의 주관이 있는 ‘척’하는 불쌍한 존재였다. 당장 사회의 법이 무너지면 사람이 달라질 터다.
시체, 귀신, 좀비 같은 것을 앞에 두고 평소처럼 행동하는 사람은 없다.
그게 인간이었다.
적어도 단 하나의 권능으로 대신까지 오른 중립신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그는 배신당하는 당혹스러운 위기 속에서도 평정심을 가지고, 이 세계에 피와 살을 뿌리며 기회를 만들었다.
‘발악해도 늦었다. 아웃버스트가 먼저 한계에 도달해서 영혼 제국의 군편제를 개편하는 게 엘프보다 더 빠르다.’
그리고 자신이 취할 것은 단 하나였다.
검은 잔을 통해서 엘프들의 피를 착취하고 그 피를 업으로 전환해서 받아먹고 있는 드낙과 거래하는 일이었다.
‘드낙을 내 손에서 놓아준 건 아무리 생각해도 나한테 큰 이득이다.’
그는 추구하는 목표가 너무 저급했다. 당장의 생명에 집착하는 모습이었다. 어지간히도 마왕 발라쿠와의 결전이 충격이 큰 듯했다.
그 마음의 병이 치유되기란 오랜 세월이 걸릴 게 분명했다.
중립신은 그저 그걸 이용하면 될 뿐이었다.
인간의 감성으로는 심장이 덜컥거리는 그 백만 마리의 무게가 드낙에게 있는 한 중립신은 계속해서 이득을 볼 수밖에 없었다.
*
이야기의 도시, 라위야(Rawiya).
드낙은 그다음 도시에 들어섰다. 입은 벌써 웃고 있었는데, 분명 정보탑을 통해서 진화학파의 드코라르바의 위대함이 알려져 있을 게 분명했다.
경비병은 뭘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백금 카드를 통해서 창을 띄워놓고 집중하다가 그들이 오는 걸 보고 서둘러 정리를 하고, 무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 정리라는 게 이상했다.
백금 카드를 여러 곳에 뿌려둔 것이다. 그곳에서 출력되는 마력빛은 마법이 사용되었다는 흔적이었다.
드낙은 6인의 디아볼로스에게 속으로 말했다.
[긴장해라.]
[예. 하지만 위협적인 마법은 아닌 듯합니다.]
[확실한 건 모르지만 정보 마법 계통인 듯합니다. 독특한 마법 체계입니다.]
“멈춰라!”
신분증을 확인하려는 순번 엘프 경비병이 호쾌하게 고함을 질렀다. 잔뜩 힘을 주며 고대엘프들이 사용하던 무식하게 긴 할버드로 땅을 찧기도 했다.
너무 대놓고 연출을 하는 모습에 드낙이 어리둥절해 했다. 자연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엘프 경비병 2명은 그러든 말든 허세를 부리기 바빴다.
조금 거리를 두면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었다.
엄청 진지하고 힘을 잔뜩 준 엘프 경비병 2명과 그들을 전혀 보지 않고 딴 곳을 확인하는 드낙의 모습은 정말 웃긴 상황이었다.
“어딜 보는 겁니까. 신분증을! 제시하십시오!”
“큽! 콜록!”
연극투로 말하는 모습에 드낙이 순간 급체한 것처럼 소리를 크게 냈다. 웃음이 빵 터질 뻔했다. 공장에 출근하기 위해서 지하철을 탔는데 한본어를 쓰는 사람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본인은 그럴 생각이 없겠지만 당하는 사람은 호환마마가 다리를 물고 산으로 끌고 가는 것처럼 웃음 동산에 끌려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찌어찌 신분을 확인했다.
순번 엘프는 드코라르바를 보며 놀라운 표정을 짓기보다는 역병을 달고 다니는 병자를 보는 듯이 굴었다.
눈치 빠른 드낙은 이를 단번에 잡아냈고, 속으로 말했다.
[어이, 리산드로스! 네가 저 뿌린 백금카드에 대해서 물어봐.]
[예.]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리산드로스가 이를 묻자 경비병들은 쿨하게 대답해줬다.
“마나 미디어에 올리기 위한 마법입니다. 이 도시에서는 불법이 아닙니다.”
“허, 정말입니까? 그럼 사회혼란이 심할텐데요.”
“외부인이 걱정할 일입니까?”
“주제넘었습니다.”
“괜찮습니다. 매번 듣는 말입니다. 그만큼 자극적이니까요.”
경비병들은 그들을 통과시켜줬다. 물론 마나 미디어에 올리기 위해서 그들의 모습을 저장해도 결코 불쾌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는 걸 잊지 않았다.
[마나 미디어가 뭔데?]
[중고급의 정보 교류 시스템입니다. 보통은 민간에게 개방이 되지 않는 루트인데, 이 도시는 어찌 된 영문인지 그게 많이 퍼져 있는 것 같습니다. 마력칩이 감당하지 못할 텐데, 의심스럽군요.]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드낙은 생각하기 귀찮았기 때문에 아무 생각이 없었다. 대신 생각해줄 사람이 있다는 것 정말이지 편하다는 걸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기에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의심스럽다?]
[생각보다 이 도시는 더 저급하고 잔혹한 도시일 수 있다는 겁니다.]
[엘프들은 도시마다 고립되어있나?]
[사회 이동이 멈춘 만큼 도시 이동을 하는 엘프도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직업의 대물림과 비슷했다. 대장장이의 아들은 대장장이 외에 다른 걸 할 자유가 없고,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알았기에 대장장이가 된다. 농부의 자식도 마찬가지다. 영주의 자식도 똑같다.
심지어 엘프는 도시 이동의 자유조차도 생각하기 힘들다. 모든 걸 포기한 엘프나 도시 이동이 가능했다. 완전히 망해야지만 선택할 수 있었다.
리산드로스의 걱정과는 다르게 드낙은 이 도시가 생각보다 더 엉망진창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도시에 들어가자마자 곳곳에 마력의 빛이 보였다.
[대단한데? 폭풍의 요람이 적출당하고도 마력빛에 도시가 뒤덮여 있는 것 같아.]
수많은 가게들이 있었는데 대부분이 똑같은 용도의 가게였다. 마나 미디어에 업로드하고 다운로드하는 곳이었고, 엘프들은 수면장치 같은 것에 들어가서 눈을 감은 채 마력에 뒤덮인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저들, 마력을 착취당하고 있습니다.]
[나도 느꼈다.]
정보라는 이름의 자원으로 엘프의 소비 경제를 만든 것이 분명했다. 그걸 잘 알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게 드낙이었다. 그리고 그건 드낙에게 실로 짜증나는 일이었다. 나는 되는데, 너는 안 된다는 심보가 있었다.
“여, 역명의 드코라르바!”
일단의 무리가 튀어나오며 연극투로 소리를 질렀다. 단번에 자신들을 둘러쌌다. 당연히 백금카드가 마력의 빛을 뿌리고 있었다. 주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뭡니까?”
드낙의 말에 그들 중 한 엘프가 나와서 자신을 소개했다.
“내 이름은 보리스(Boris)! 신과 같은 자이며 이 도시의 눈표범이라 불리고 있다!”
“내 이름은 아르투르(Arthur)! 뒷골목의 불곰이지!”
“내 이름은...”
드낙이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미친놈들.’
“그만! 그대들의 이름 모두를 듣고 싶을 여유는 없습니다. 왜 우리를 막았습니까?”
리산드로스가 드낙의 행동을 보고 서둘러 나섰다. 그와 제법 함께 한 날이 많아지면서 드낙이 인내심이 그렇게 많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끔찍한 계획을 막기 위해서지.”
“끔찍한 계획?”
“노예의 잔 말이다! 요즘 가장 큰 핫티스트(Hottest)인데도 모르나 보지?”
“노예의 잔이 뭡니까?”
“우릴 속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실로 경박한 언행이었다. 아니면 이 도시만의 특징일지도 몰랐다. 지나칠 정도로 작위적이기도 했다. 모두 무슨 용사가 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였다. 과장이 지나칠 정도로 심했다.
“됐습니다. 비키시죠.”
드낙이 강행 돌파를 했다. 엘프들은 그를 막을 생각으로 몸에 힘을 줬는데, 드낙은 어깨를 부딪치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옆으로 쓰러지게 하였다.
“크윽!”
그들이 실로 굴욕적인 표정을 지었다. 몇몇은 너무나도 충격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드낙이 지닌 힘이 ‘엘프답지 않다.’라는 걸 깨달아서였다. 이들이 서둘러 돌아가자는 말을 했고, 무리가 도망쳤다.
[아무래도 정보를 확인해야겠는데?]
[개입하실 생각이십니까? 저로서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싶어졌거든.]
드낙이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가 이렇게 딴짓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엠마누엘과 라인홀트가 이미 따로 일을 진행하고 있었으며, 라인홀트가 1년이라는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엘프였기에 그는 실제로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터였다.
‘이제 좀 쉴 때도 되었지.’
엘프에게 자신의 힘이 잘 통한다는 걸 확인했다. 특히 라인홀트의 반응은 실로 놀라웠다. 10만년 이상을 산 엘프인 센툼 밀리아(centum milia)에게 드낙의 힘은 마약보다도 더 강력한 효력을 주고 있었다.
그건 검은 잔으로도 해소하기 힘들 터였다.
‘분명한 건 라인홀트나 다른 이들은 혈석을 모아서 한 번에 섭취할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는 점이다.’
조금이라도 드낙이 보여준 맛을 보기 위해서다. 특히 디아볼로스가 된 아이누르는 더더욱 그게 심각할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놈을 죽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꿀벌 도시의 지배력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다 끝나고 손절하면 그만이지.’
오히려 그게 더 고통스러울 터다. 아무튼 드낙은 조금 즐기고 싶었다.
[마나 미디어에 나도 참전한다.]
[무슨 일을 벌이실 생각이십니까?]
리산드로스가 절로 불안해했다.
[흐흐, 감히 날 역병 취급했겠다? 자신들의 처지가 어떤 상태인지 가르쳐줘야겠어.]
[그래도 아직은 조심해야 합니다.]
[알고 있다. 일단 도시를 점령하고, 이놈들에게 보여줄 생각이다.]
질질 싸는 엘프의 모습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워낙 정보가 쏟아져나오는 라위야 도시였기에 드낙은 수많은 엘프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그들 모두가 드코라르바라는 재료를 써서 마나 미디어에서 큰 인기몰이를 하고 싶은 듯했다.
[이 도시는 지나칠 정도로 활기찬데...]
초대장들을 보며 말하는 것도 귀찮은 드낙은 속으로 말했고, 디아볼로스들은 이에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특별함을 느낄 수 있어서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도시 법령은 도시마다 다르기도 합니다. 몇몇 곳은 사회 시험을 하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드낙이 흥미를 느꼈다.
[예를 들면?]
[그건...]
감히 대답하지 못했는데, 엘프의 어둠이기 때문이었다.
[빨리 말해.]
강압적인 태도에 디아볼로스, 드낙의 권속이자 하급 악마에 불과한 리산드로스가 대답했다.
[가장 대표적으로 알려진 ‘시험 도시’로는 증오의 도시 율리시즈(Ulysses)가 있습니다.]
[뭐 하는 곳인데?]
[그건...]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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