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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797화 (796/1,239)

강철의 전사 79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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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만 년의 역사 속에서 엘프는 오로지, 오로지 영광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건 자신들의 어버이, 중립신(中立神) 엘 마르토 카사다민에 대한 신앙심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업(業)’에 대한 연구 끝에 아무리 오래 살아도 그것조차도 고정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인간과는 달랐다. 그들이 지닌 변수는 어찌나 엉망진창인지 인간 주제에 별의 힘을 이어받을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인간이었기에 그 힘은 한정되어있기에 거창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다.

엘프들의 절망은 곧 중립신에 대한 분노와 증오로 변질되었고, 무신론자들이 많아졌다. 폭풍의 요람이 도시의 핵(核)으로 들어서면서 규모의 종족이 되기로 결의했다.

종족 전체가 지닌 힘으로 거대한 부흥을 이끌어내 이 행성에서 살아가는 행성 종족이 아닌, 다른 차원을 지배하고, 다른 행성을 획득하는 차원 종족으로 올라설 준비를 했다.

죽지 않았기에 그에 동참하고, 동화되는 엘프의 숫자는 증가해갔다.

‘영광의 문이 열렸다.’

쾌락이 줄어들면서 꼴사납게 엎어진 상태에서 라인홀트 의장은 그것부터 생각했다. 자신은 엘프신이 될 수 있었다. 그 가능성은 실로 버티기 힘든 생각이었다.

‘내가 엘프신이 된다...?’

믿기 힘들었기에 의심했다. 하지만 디아볼로스가 된 라인홀트는 결국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만 있다면 충분히 신이 될 수 있었다. 검은 잔만 가지고 있는 엘프와는 현격히 다른 성장을 이룩해냈다. 그 성장이 곧 증거였다.

‘소수에게 허락된 문이다.’

모든 엘프에게 허락된 문이 아니다. 그것 또한 우월감을 줬다. 사회지위, 허락된 지식의 양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오로지 자신에 대한 우월감이었다.

몸집을 키우는 재미에 맛 들린 헬스인처럼, 세계 신기록을 이뤄낸 챔피언처럼.

자신에 대해서 곧추세울 수 있다는 건 가슴 떨리는 일이었다.

“......”

쾌락이 끝난 라인홀트가 몸을 일으켰다. 더는 황금색이 아닌 검은색의 머리카락이 그 눈에 들어왔다. 조금, 감정이 격해졌다.

라인홀트의 나이는 19만 살.

19만 년 동안 고정된 채로 살아왔다. 그런 그에게 변화는 일순간 모든 것이 망가질 정도로 자극적인 일이었다. 그 증거인 검은 머리카락은 눈시울을 붉게 만들 정도였다.

드낙은 이를 차분히 기다려줬다.

왠지 모르게 코가 찡했다.

‘그는 신인가?’

“그대는 신입니까?”

“아직은 아닙니다. 하지만 곧 그리될 것입니다.”

‘그는 신이야!’

적어도 자신보다 먼저 엘프신이 될 것이 분명했다. 드낙은 진실을 말했음에도 라인홀트는 믿지 않았다. 그저 겸손을 떠는 것으로 여겼다.

주먹을 줬다 펴는 것만으로도 라인홀트는 자신의 육체가 족히 3배는 강해졌다는 것도 깨닫고 있었다. 19만 년 동안 똑같은 수준을 유지했던 육체였다. 그 오랜 세월 동안 각인된 육체가 달라졌다. 깨우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엘프는 뛰어난 종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은 남는다.’

의문도 존재했다.

“혹,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몇 가지 질문해도 됩니까?”

“네. 하십시오”

“왜 홀로 엘프신이 되지 않고, 이곳에 와서 다른 엘프에게 계단을 올라갈 기회를 주고 계신 겁니까?”

드낙은 조금 고민하고 대답했다.

“영혼 제국 때문입니다. 그들은 엘프를 노릴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의 영혼만으로는...”

말끝을 흐렸다. 사실 디테일하게 말하기에는 라인홀트의 질문은 갑작스러웠다. 그 대신에 그가 대신 대답했다.

“확실히, 변수가 큰 인간 영혼은 다루기도 힘들고, 다시 회수하더라도 소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전에 엘프 영혼을 통해서 뭔가 탈출구를 만들거나 다리를 단단히 다지려고 할 겁니다.”

인간에게 없는 게 엘프에게 있었고, 엘프에게 없는 게 인간에게 있었다. 두 종족은 큰 격차를 지니고 있었지만 어떻게 보면 대척점에 존재하는 라이벌로 볼 수도 있었다.

“인간 영혼이 하나가 되어 용광로에 쏟아졌으니,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 수도 없지 않습니까?”

드코라르바의 말에 라인홀트가 수긍했다. 동시에 새삼 존경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공익(公益)을 위해서 진화학파의 과실을 내어준 것이다. 그 결정은 감히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갈등 끝에 내린 결과였을 터다.

“그래서 아까 영혼 제국을 모든 힘을 합쳐서 공격하자고 말씀하셨던 것입니까?”

“예. 서둘러 치지 않으면 어찌 될지 모르지 않습니까? 전 엘프들이 이렇게 미지근하게 대응하는 게 보기가 좀 그렇습니다.”

“하하, 드코라르바님이 보시기에는 그럴지 모르겠지만, 영혼 제국은 그냥 놔두면 자멸합니다.”

“자멸을 한다고요? 사실입니까?”

“사실이고 말고요. 그 어떤 것도 인간 영혼을 한곳에 모아두고 성공한 적이 없습니다.”

‘그럴 리가.’

드낙은 그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단기에 사라질 거면 지금까지 안 사라진 게 이상했다. 벌써 몇 년이나 흘러버렸기 때문이다.

“몇 년간 버텼는데, 앞으로도 계속 버티는 것 아닙니까?”

“그럴 리가 없습니다. 영혼 마법은 엘프들조차도 포기한 학문입니다.”

라인홀트의 말에 드낙은 한숨을 내쉬었다. 엄청난 고집이 느껴졌다.

“어찌 되었든 전 단기전을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진화학파를 엘프에게 보급하는 것이고요.”

엘프들은 결코 검은 신전이나 검은 잔을 따라 할 수 없었다. 반마(半魔)가 되어야 하며 동시에 반신(半神)이어야 했다. 핏빛쥐를 비롯한 수많은 종족으로부터 신앙과 믿음, 업을 받아야 했다.

두 가지 조건이 모두 존재해야 했다.

‘모방하면 그만.’

그걸 잘 모르는 일단은 진화학파의 드코라르바, 그가 말하는 말을 들어주며 적당히 시간을 벌 생각을 지녔다. 그가 시간을 끄는 만큼 검은 머리의 엘프가 나오는 속도는 줄어들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영향력 있는 센툼 밀리아(centum milia)들에게 힘을 부여해서 엘프가 단기전을 노리게 만들 겁니다.”

드낙의 말에 라인홀트가 단번에 대답했다.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엘프는 내전에 휩싸일 게 분명합니다.”

“어째서 그런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이들만 적당히 큰 이점을 준다면, 그들은 자연스럽게 따라 나올 수밖에 없는데?”

“영광의 문을 열어주고, 계단을 오르게 하는 엘프가 오로지 당신뿐이기 때문입니다. 저를 포함해서라도 그들은 수동적인 입장이고, 이를 탈피하고 싶어 할 겁니다.”

드낙은 쉽게 반박하지 못했다. 라인홀트 의장의 욕심이 보였지만, 동시에 숫자가 갖추어진 디아볼로스들의 반란이 생각났고, 그것이 드낙의 발목을 잡아서였다. 라인홀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엘프라는 족속들은 결코 믿을 수 없었으며, 그들은 수동적인 형태의 구조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 분명했다.

드낙이 살길을 열어줬음에도 눈이 다른 곳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겠나?”

“꿀벌 도시에 뿌리를 박으십시오. 이곳에 있는 센툼 밀리아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다른 이에게는 검은 잔을 내려주십시오. 그렇게 한 다음에 다른 도시의 유력자가 찾아오면 협상을 하면 그만입니다.”

드낙은 고개를 저었다. 도시마다 절반의 엘프는 검은 잔을 가지지 못한다.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다.

“꿀벌 도시를 나를 지키는 장벽으로 만드는 것은 할 수 없다. 또 그런 거로 엘프들이 영혼 제국과의 전쟁에 큰 힘을 투자할 것 같지는 않은데...또 한다고 해봤자 도시당 최소 5명에게 큰 가능성을 열어줄 뿐이다.”

말해보니 디아볼로스 반란이 다시 일어날 것 같지는 않았다. 애초에 꿀벌 도시에 와서도 많아 봤자 아이누르와 마리에트, 라인홀트만 디아볼로스가 될 자격이 있었다. 나머지 엘프가 알아서 그들의 충성심을 높여줄 터였다.

그들의 대체품은 널리고 널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나만 손해다!’

라인홀트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하지만 위험할 수 있습니다.”

“도시 전체의 힘으로도 날 잡지 못했지 않나.”

즉흥적인 대화 속에서는 아무리 똑똑한 엘프라도 허점이 존재했다. 드낙은 라인홀트의 욕심을 보고 속으로 혀를 찼지만 대놓고 비난하지는 않았다. 그의 마음을 충분히 알고 있어서였다.

“그래서? 나중에 도시 지배자들을 한꺼번에 다 모을 생각이다. 엘프들의 총력전, 아니 최소한 5만년 이하의 엘프들...퀸쿼지타(Quinquaginta)만이라도 동원했으면 한다.”

“아마, 하게 된다면 그런 식으로는 안 될 겁니다.”

“그럼 어떤 식으로 된다는 것이냐?”

“지배자들을 제외한 모든 엘프가 전쟁에 동원될 겁니다. 규모의 힘으로 영혼 제국을 찍어누르기 위함입니다.”

전쟁은 전력의 차이가 심해질수록 아군의 피해는 줄어든다. 그 간단한 정석을 엘프는 추구할 수 있었다.

‘나쁘지 않아. 오히려 그렇게 되면 난 땡큐다.’

중립신이 나중에 부족한 분의 업을 달라고 할지도 몰랐지만, 자신에게 손을 대지 않겠다는 약속 내지는 권능과 능력을 통한 맹약을 통해서 건네주면 그만이다. 오히려 훌륭한 계기가 될 수 있었다.

“라인홀트...의장, 만약에...정말 만약인데...”

드낙이 다가와서 그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누구보다도 앞서나갈 수 있다면, 그대는 영혼 제국 전쟁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총력전을 얼마나 앞당길 수 있겠느냐? 조력자가 필요하면 그들 또한 포섭해줄 자신은 있다.”

“조력자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그저 제가 날뛸 수 있는 배경만 만들어주시면 됩니다.”

그 배경이란 꿀벌 도시처럼 3~5인의 유력자만 디아볼로스로 만들고, 적당히 검은 잔을 보급하는 일이었다.

“1년 만에 끌어낼 자신이 있습니다.”

“좋다. 이건 그 증거다.”

드낙이 라인홀트의 손을 다시 한 번 잡았다. 접촉하자마자 피를 주입했다.

“그읏...”

중성적 외모를 지닌 라인홀트가 쾌락에 몸을 가누지 못했다. 그건 실로 야릇한 광경이었지만 드낙은 영혼 제국을 무너뜨릴 그림이 완성되었음에 기뻐하기 바빴다.

완성된 존재인 엘프는 암수의 구분이 없었기에 대부분이 중성적인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인간 사회에서의 연인도, 사랑도, 가족도 존재하지 않는다. 고대 엘프의 경우에는 그저 필요에 의해서 혼자서 출산을 할 뿐이다.

모든 엘프가 자궁을 가지고 있고, 혼자서 마음먹으면 엘프 아기를 잉태할 수 있었다.

라인홀트를 선봉으로 세우고, 드낙은 리산드로스와 5명의 디아볼로스와 함께 엘프 도시를 순회하기 시작했다. 엠마누엘은 검은 잔의 보급을 맡았다.

철저하게 절반의 엘프가 버려지도록 검은 잔의 보급은 매우 신경 써야 했다. 엠마누엘은 믿음직한 디아볼로스였다. 남들과 앞서나가고 있었고, 검은 잔으로 계속 혈석을 받아먹고 있는 것으로 크게 만족하고 있어서 배신의 여지가 없었다.

‘다른 대체품도 많으니까.’

도시를 떠난 드낙이 갑자기 입을 가렸다.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고 했기 때문이다. 곁에 엘프인 디아볼로스가 있어서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깨가 들썩이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자신을 가꾸는 엘프들은 사실 대체품이 가득한 닭장의 닭이나 다름없어서였다. 하지만 이내 그것은 참을 수 없는 괴로움으로 다가왔다.

‘대체품이 가득한 사회에서 엘프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했을까?’

편의점, 택배 상하차, 공장, 인력소...

그 또한 사회의 부품으로 살아왔다. 간단히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대체품으로 살아왔기에 엘프들의 괴로움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 젠장...결국 사는 데는 똑같다는 건가?’

사람 사는 곳 다 똑같다.

그런 말이 생각났다. 하지만 곧 드낙은 초롱초롱한 눈을 했다. 자신이라면 그것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중립신에 대해서 조금 더 이해한 기분이었다.

‘그 또한 결국 결론에 도달한 것이겠지. 윗물부터 맑게 변한 것의 최종형태가 중립신이다.’

행성에 아예 자신의 모든 것을 녹여서 필멸자들의 낙원을 만드는 것이 중립신이었다. 분명 그 속에 살아갈 필멸자들은 행복할 것이다. 테라는 필멸자들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 계속해서 확장하고 커지는 행성이다.

자원 걱정 없는 삶은 필멸자들이 가장 원하는 삶이기도 했다.

‘나는...아직까지 확실하게는 말하지 못하겠다.’

만약 자신이 악마든 신이든 뭐든 되어서 신격을 획득한다면, 무엇을 목표로 잡고, 추구해야 하는가.

하늘로 날아오르며 드낙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자신답지 않게 깊은 미래에 대해서 고민했다. 그 누구도 이 고민을 방해하지 않았다.

드낙은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어내고 있었다.

평소와는 크게 달랐다.

품은 만큼 사람은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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