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79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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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안에 든 쥐.
엘프 노괴들은 그렇게 여기고, 자신들의 도시를 봉쇄했다. 하늘과 지상 그리고 지하를 단단히 틀어막았다. 이 노력을 하는데 도시의 높은 성벽이 보관하고 있는 마력이 모두 사용됐다.
보통 놈이 아니라는 걸 짐작하고 있었고, 철두철미했다.
무거운 한 걸음으로 모든 걸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그게 무엇보다 멋스럽기 때문이다.
세상을 군림(君臨)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에도 좋았다.
이들은 가장 먼저 음모론자의 중추로 여겨지는 대공장을 쳤다. 저항은 없었다. 그들은 전투력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었지만, 급습했고, 그 머리라고 할 수 있는 임마누엘은 뒤늦게 사태를 파악했다.
강제로 마력 정보를 차단했기 때문이었다. 대공장 자체가 셧다운 되어 기능을 상실한 상태에 진입했다.
적의 양다리를 자르고, 양팔을 구속했다.
수십 명의 후원자를 두고 나타난 임마누엘은 적과 대치했다.
“대공장장 임마누엘은 아이누르(Aynur) 위원, 마리에트(Mariette) 천태상상위원 , 라인홀트(Reinhold) 의장의 지령서를 받들라!”
“그대는 누구인가!”
“나는 마리에트 천태상상위원으로부터 십위원직을 맡고 있는 데키무스(Decimus)다!”
신분 정보가 든 백금카드가 쏘아졌고, 엠마누엘은 이를 받아들여서 확인했다. 마력이 백금카드를 훑었고, 그 마력은 다시 엠마누엘의 몸속으로 들어가며 정보화하여 뇌에 읽혔다.
“진화학파라는 사악한 학문을 퍼뜨리고, 실제로 음흉하기 짝이 없는 수단으로 동족을 타락시키려고 한 죄는 크다! 심문을 위해서 체포하겠다! 저항한다면 오로지 죽음뿐이다!”
“엘프의 권리는 죽지 않는 것도 포함되어있다. 지금 날 모욕하는 건가?”
“하위법은 상위법에 속하며 그 효력을 잃는다. 이것은 상위법의 호출령이기도 하다.”
엠마누엘은 그것으로 노괴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였다는 걸 확인했다. 적어도 십위원 데키무스가 독단으로 벌일 수 없었고, 그 위에 있는 마리에트는 원리주의자였다. 곧 라인홀트 의장이 모습을 드러낼 일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간단하다.’
무릎을 꿇고, 혁대의 끈을 풀어서 앞에 뒀다. 백금카드가 모두 딸려 나왔다.
“몸을 수색하십시오.”
데키무스와 함께 온 엘프가 엠마누엘의 품을 뒤졌다. 백금 카드는 나오지 않았다. 그대로 그를 일으켜 세웠다. 다른 구속은 일절 없었다. 엘프는 표면적으로 그 어떤 신체의 구속도 받지 않을 권리가 있었다.
하더라도 도시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도시구금형이 존재했지만, 매우 큰 죄를 저질러야 했다. 동족 살해가 대표적이다. 사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엘프를 죽일 권리는 엘프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른 이들도 모조리 심문을 받기 위해 동행해야 했다.
머리를 치고 나서는 도시 내부를 청소하기 시작했다. 이미 정보탑으로부터 데려올 놈들과 수색할 집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어려움은 없었고, 동선까지도 정해져 있었다.
“난 엘프다! 어디서 감히! 이건 권리침해다! 아악!”
반항하고, 품위 없이 반말하는 엘프가 있다면 단번에 몸을 구속했다. 폭행하는 것도 서슴없이 했다.
말 그대로 초법적인 행위.
법치국가에서 시민을 위한 경찰이 시민을 폭행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엘프 노괴들에게는 해당이 없었다. 법은 엘프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그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10만년 엘프, 5만년 엘프, 1만 년 엘프와 1만 년 미만 엘프로 나누어진 사회다. 그 피라미드는 조금 예외와 변동이 있을지언정 변하지 않는다. 변한 ‘척’하기 위해서 예외가 있을 뿐이다.
최소한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으로 쓸데없는 희망을 준다.
그 사회상이 단번에 역전되었다.
나이가 어린 엘프는 폭행당하고 끌려갔고, 권리가 있다고 여기던 가짜 권력자는 사로잡혀서 개처럼 운반되었다.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는 것이 엘프 사회에 여실히 드러났지만, 그런데도 그 누구도 몰랐다. 그저 꿀벌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헤프닝에 불과했다. 내일이면 당장 사라질 것 같은 신기루와 같은 일이었다.
나중에 책을 잡을 수도 없었다. 철저히 기득권 사회였기 때문이다.
세상을 향해 마이크를 집을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이들은 없었다. 있다고 해도 빼앗겼고, 다시 잡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검은 신전? 어리석군.”
아이누르가 검은 신전을 둘러봤다. 그의 녹안에서는 이 검은 신전은 그저 붉은 거미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엘프를 잡아먹는 신전이다. 하지만 검은 잔까지 사용하고 나서는 그 판단이 바로 엎어졌다.
‘혁명이다.’
진짜로 진화학파라는 이름에 걸맞은 효능을 지니고 있었다. 동시에 두려움을 느꼈다.
‘나보다 먼저 시작한 엘프를 죽여야 한다.’
흉심(凶心)마저 품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천태상상위원.”
“말 그대로 진화학파답습니다. 무엇보다 인간 혈통 개발을 엘프의 혈통 개조와 재조정을 통해서 진화의 길로 들어서게 한다는 게 인상적입니다. 꼭 그 알고리즘과 핵심 학문을 배우고 싶습니다.”
‘멍청한...’
그 말에 아이누르 위원이 속으로 그를 욕했다. 그런 것에 현혹되는 것보다 앞서 나간 경쟁자를 죽여야 한다.
‘엘프를 지배하는 엘프가 된 이후, 처음 있는 혁명이다. 여기에 선두를 잡지 못하면 다른 엘프에게 지배당하는 엘프가 되겠지.’
그 간단한 것을 마리에트는 못 알아차리고 있는 듯했다. 그것보다는 엘프 진화에 대한 관심이 더 컸고, 그 기쁨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좋지 않아.’
엘프를 죽이는 일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또 검은 잔을 부수는 것도 의심을 받을 터였다. 차라리 모든 걸 오픈하고 함께 일을 추진하는 게 좋았다.
앞으로 계속 지배하던 걸 다시 힘을 합쳐서 또 다른 혁명 이후에도 지배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는 훌륭한 교섭 도구로 여겨졌다.
“지금 검은 잔을 가진 엘프는 누구보다도 먼저 앞서나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지닌 검은 잔을 압수하고, 모든 엘프가 동시에 검은 잔을 이용하는 게 공평하지 않겠습니까?”
“공정하지 않습니다. 또, 그런 법이 없습니다.”
“법이 없으면 만들면 되는 것 아닙니까. 도시법령으로.”
“그런 걸 만든다면 큰 굴욕입니다. 어느 누가 남을 견제하려고 법을 만듭니까?”
그 말에 아이누르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지금 상위법령과 하위법령의 관계만 해도 여럿이 되는데, 우습습니다.”
“음.”
거기까지 말하자 마리에트가 입을 다물었다. 기득권이 지닌 법률의 상하관계는 실로 부끄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바꿀 수 없는 마리에트는 어쩔 도리가 없어서 행동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아도, 모든 엘프가 이를 받아들이고 있었기에 비단 마리에트가 욕먹을 거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마리에트는 실로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시 얼굴에 똥칠하는 방식으로 마리에트를 입 다물게 한 아이누르는 이를 밀어붙였다.
“모든 검은 잔의 압수를 하겠습니다.”
“잠깐, 이는 보통 일이 아니니 라인홀트 의장의 말을 들어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가만히 있던 벌꿀술 의회 부의장 제랄두(Geraldo)가 제안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 라인홀트 의장에게 뭘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모든 책임은 어차피 의장이지 않습니까?”
“그걸 지금 말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이누르가 가볍게 웃었다.
“막을 수 있으면 막아보던지. 거기에 지금 이렇게 할 여유가 있소? 누구라도 먼저 엘프신이 된다면 다른 엘프가 지닌 업을 모조리 취할텐데...”
“엘프는 그런 종족이 아닙니다. 수많은 종족신을 거느릴 기회를 걷어찰 리가 없습니다.”
“모를 일입니다...”
실로 흉악한 간계를 자꾸 말하자 마리에트도 걱정했고,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누르 같은 놈들이 몇 명이나 있을지 몰랐고, 적어도 착취당했던 엘프들은 무조건 노괴들을 싫어했다. 그런 마음이 내면에 없다고 할 수 없었다.
엘프의 사회 구조는 그 정도로 악랄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것을 고칠 수 없었다. 너도나도 섣불리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썩어버려서였다.
‘감당이 안 된다. 그리고 시간이 너무 지나버렸다.’
“쓸데없이 시간을 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직 드코라르바도 잡지 못했지만, 검은 신전은 확보했고, 검은 잔 또한 생산할 수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라인홀트 의장을 부르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나도 나대로 움직이겠습니다.”
아이누르의 말에 부의장이 마리에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그저 눈을 감았다.
아이누르 위원의 판단을 막지 않고, 지켜보겠다는 태도를 보여줬다.
“...좋습니다. 의장님은 며칠 내로 모습을 드러낼 겁니다.”
“오래 기다려줄 수는 없습니다.”
아이누르가 거듭 강조했다. 드코라르바 빼고는 모든 걸 확보했음에도 모습 하나 보이지 않아서였다.
보름이 지나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라인홀트를 보며 드낙이 어둠 속에서 혀를 찼다. 그는 단번에 라인홀트 의장이 노리는 바를 알고 있었다. 이만큼 시간을 투자했기에 그만큼 효과를 거두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모든 게 결정될 즈음에 나타나서 다 부수고, 자신의 입맛대로 바꾸겠지.’
조용히 은둔하는 권력자가 권력자로 남기 위해서는 이런 대사건에 크게 행동해야 했고, 인상을 강하게 남겨야 했다. 또한 다른 권력자들도 견제해야 했다. 그들이 이미 결정한 걸 부수는 일은 확실하게 그들을 견제할 수 있었다.
‘일석이조지. 하지만 미친놈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전쟁 중에 보름이라는 시간을 가만히 있다는 것 자체가 엘프 노괴들이 젊은 엘프들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다. 드낙은 끈기 있게 이를 기다리고 싶었지만 조급함이 일어났다.
왜냐하면 보름을 참지 못하고 아이누르와 마리에트가 첨예하게 대립하기 시작했고, 도시가 논쟁에 휩싸여서 이중구도로 서서히 변해갔기 때문이다.
“내 독단으로 움직이겠다! 검은 잔을 모두 회수하라! 또 검은 신전은 나의 것이다!”
“움직이지 마라! 움직인다면 검은 신전을 파괴하겠다! 이미 그 준비도 끝냈다!”
“네, 네놈...! 도시 내에 마법진을 통한 파괴 행위는 명백한 반역 행위다!”
“엘프에 대한 재산권을 위협하는 그쪽이 할 말은 아니다!”
불법과 불법이 난무했다. 미친놈을 정석대로 상대하겠다는 생각을 일찌감치 버린 마리에트였다. 실로 모순적이었다. 드낙은 이 원리주의자가 ‘위선자’임을 깨달았다. 또 그런 위선을 떨면서 그가 큰 쾌감과 강대한 자존감을 획득하고 있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노괴는 그냥 정상이 없다고 봐야겠다. 내가 나서야 할 것 같은데...계속 이러다가는 칼부림까지 나게 생겼다.’
특히나 미친놈의 원탑을 달리는 아이누르와 원리주의자인 마리에트는 물과 기름과 같았다. 안 그래도 엘프에 대한 혐오증이 있는 마리에트는 아이누르와 자주 보면 볼수록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앙금처럼 마음속에 가라앉기 시작했고, 아이누르 또한 ‘착한 척’을 하는 위선자 마리에트에 대한 증오의 탑을 쌓아올렸다.
드낙이 두 사람을 디아볼로스로 만들어서 라인홀트를 꾀어낼 각오를 했을 때, 제랄두가 싸움판을 벌이고 있는 회의장에 나타났다.
쾅!
큰 문이 마법에 의해서 거칠게 소리를 내며 벽과 부딪쳤다. 경첩마저 떨어져 나가 기울었지만 다른 이가 마법을 써서 이를 막고 벽에 기대게 세웠다.
“제랄두, 이놈! 무슨 낯짝으로 나타난 거냐!!!”
“경박한 언행은 그만하십시오! 라인홀트 의장이 오고 있습니다!”
족히 1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회의장이 그 말에 조용해졌다. 이리저리 흩어져 있던 엘프들이 편을 먹으며 차곡차곡 자리를 새로 잡았다. 곧 제랄두를 필두로 5만명에 달하는 엘프가 회의장을 가득 메웠다.
그들 모두가 엘프 노괴라고 부를 정도로 많은 수명을 지닌 자들이었다.
한 도시에 있는 노괴들이 총집합했다.
5만의 노괴를 이끄는 라인홀트와 각각 1만 5천의 협력자를 둔 아이누르와 마리에트가 한 자리에서 만났다.
“겨우 이런 일에 우리를 움직이게 하다니, 라인홀트 의장의 실력이 예전만도 못하지 않습니까?”
“허허, 나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알아서 해야지. 벌꿀술 의회의 의장직을 줘도 우리가 필요하다고 하니...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황당하고, 황당합니다.”
라인홀트의 세력권에서 조용히 지내던 노괴들은 표정이 하나같이 좋지 않았다. ‘취미’를 즐겨야 하는데 쓸데없는 문제 때문에 몸을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가장 마지막에 라인홀트는 주인공처럼 등장했다. 그를 나무라던 이들은 싹 사라지고 모두 일어나서 그를 향해 양손을 올리고, 목례했다.
그 광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소름이 돋을 정도로 깔끔하고, 권위 있는 모습이었다.
태양이 지상에 있는 기분이었다.
황금색의 관복에 말끔한 블루 사파이어로 치장한 은색의 서클렛에 붉은색의 루비를 깎아 만든 그리폰을 브로치처럼 가슴에 달고 있었다.
주변의 공기가 절로 그에게로 향했고, 그로부터 다시 주변으로 향하며 이 거대한 회의실을 지배했다.
오랫동안 공을 들린 지배자로서의 소문과 위업이 알아서 라인홀트를 대단하게 만들었고, 엘프들로부터 공포, 경계, 존경을 불러일으켰다.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얻어낸 권위다.
“실로 오랜만입니다. 아이누르 위원. 마리에트 천태상상위원.”
“아...아닙니다.”
아이누르는 외면했다.
“도시에 큰 사건이 터졌음에도 왜 이렇게 늦게 움직이신 겁니까.”
마리에트는 그를 탓하며 자신을 높였다.
“두 분이 있기에 제가 나서지 않아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서 제가 이렇게 여기에 오게 되었습니다. 자, 시작해봅시다. 이 도시에 봉착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의 말이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햇살이 사방에 뻗치는 것 같았다. 그만큼 이곳에 있는 엘프 모두 라인홀트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자주 볼 수 없었기에, 오랫동안 그들의 무의식에 권위를 심었기에 만들어질 수 있는 권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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