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79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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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의 사회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게 마력칩입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1만년 이하, 1만년 이상 2만년 미만의 엘프들에게 중요합니다.”
리산드로스가 마력칩에 대한 변동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세월이 흐르면서 당연히,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력칩을 생산하는 엘프는 많아도 다른 재화를 생산하고 보급하는 엘프의 숫자는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마력칩을 더 주고 그걸 사야 한다는 소리네. 반면 노동하기 싫은 엘프 때문에 ‘순번 엘프’라는 것까지 생겼으니...”
드낙이 그제야 윤곽을 훑었다.
부랑자 엘프가 대표적이다. 부랑자 주제에 제법 차림새도 좋고, 도박도 즐기는 놈들이다. 반면 호텔의 종업원은 오히려 대우가 좋았다. 그것만으로도 능히 추론이 가능했다.
엘프 재화인 마력칩의 가치가 형편없어지고 있었다. 오히려 서비스나 다른 것의 역전이 일어나고 있는 듯했다.
“근데 엘프한테는 폭풍의 요람이 있잖아. 애초에 마력칩도 이상한데. 그게 필요한가 싶은데...”
“폭풍의 요람을 어디 감히 나이 어린 엘프가 이용하고, 그 권리와 이득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리산드로스의 그 말에 드낙이 손으로 입을 가렸다. 토할 것 같았다.
충격과 공포였다. 마치 어린 것들은 발전소와 전력을 이용할 수 없는 세계나 다름없었다. 손발이 떨릴 지경이다.
‘생각보다 더 개 같은 곳이잖아?’
물론 드낙이 엘프로 태어났다면 정말 행복한 삶을 살았을 터였다. 그러든 말든 꿈이 원체 작기 때문이다.
“근데 전쟁이 시작되어서 가치가 오르지 않을까?”
“축적된 마력칩을 위쪽에서 풀고 있을 겁니다.”
“그렇게 나오는건가...”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주변 대기의 마력을 빨아들이는 폭풍의 요람에서 마음만 먹으면 생산 가능했고, 실제로 생산해서 잔뜩 축적한 상태일 것이다.
“그럼 애초에 의미 없는 게? 찌를 수가 없잖아.”
그렇게 축적했다면 마력칩의 가치를 높이거나 마력칩 경제를 잡아먹을 수가 없었다. 간단하게 저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반마 님. 검은 잔을 받은 엘프는 디아볼로스가 되기 위해서 피를 소모하여 혈석을 받아먹는 데 총력을 다할 겁니다. 또 총력을 다해도 본인의 피만 소모할 수 있습니다. 철저히 개인의 규모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렇지.”
드낙이 디아볼로스와 전투를 하면서 얻은 경험이었다. 엘프를 뭉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 동시에 그들을 최대한 오래 잡아두기 위해서였다. 그 뒤에 엘프신이 되면 독립시키면 그만이다.
‘9할을 훔쳐먹었으니, 보내주는 게 인지상정이지.’
지금도 9할을 처먹는 건 너무 악마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카드 회사 수수료도 90%는 아니다. 그렇게보니 정말 악마같았다.
‘대기업이고 나발이고 그냥 내가 나쁜 새끼가 된 것 아닌가?’
카드 수수료보다 높은 비율로 업을 처먹다니! 다른 이들이 알면 분명 카드 회사보다 나쁜 새끼라고 욕을 할 게 분명했다. 삼대가 눈물을 흘릴 정도로 악독한 짓이다.
‘바꾸기도 그렇고...’
이미 맛을 봤기에 양심대로 바꾸지도 못했다. 중간에 서서 걱정만 하는 셈!
“그런 엘프가 절반 생긴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엘프가 절반 생긴다?”
“마력칩을 생산하지 않고, 치유 마법으로 혈액을 만들기 바쁜 엘프가 절반입니다.”
리산드로스가 드낙의 판단을 조금 보정해줬다.
“그렇다면 마력칩의 가치가 높아...”
드낙이 가볍게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조금 더 의식이 앞으로 나아갔다. 달리는 멧돼지를 향해 화살을 쏘는 사냥꾼처럼, 사냥감이 아닌 사냥감이 달리는 길을 향해 쏘듯이.
“마력칩 경제가 사라진다...”
“결과론적으로는 그렇게 될 겁니다. 그리된다면, 꿀벌 도시는 유지될 이유가 있습니까?”
“도, 도시의 붕괴라는 말이냐?”
“모여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모여있으면 안 되겠죠. 그게 반마께서 원하시던 일 아닙니까. 철저한 개인 사회.”
피를 바쳐서 초월자가 되고 싶은 엘프가 도달하는 끝은 도인처럼 홀로 살아가며 날마다 검은 잔에 피를 바치는 삶이었다.
드낙이 그렇게 만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게 이렇게 된다고?’
그에게는 기절초풍할 일이었다. 그냥 디아볼로스가 되고, 힘을 갖춰도 자신에게 대항할 생각을 하지 않게 만들려고 한 일이 엘프 도시 사회의 붕괴를 일으키고 엘프 종족이 철저히 개인 사회로 남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의 자연인과는 다르게 엘프는 자력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었기에 완전한 고립 사회가 될 터였다.
‘아, 너무 넓다.’
드낙이 조금 현기증을 느꼈다. 도저히 그렇게 되면 어찌 될지 짐작할 수 없어서였다. 국제적인 판단을 해야하는 것과 같았다. 수많은 변수를 모두 생각할 수 없었다.
“물론 이는 아주 나중의 일이 될 겁니다. 적어도 모든 엘프가 반마님께 피를 바치는 사회가 되어야 그렇게 되겠죠. 그전에 노괴들이 막아설 겁니다. 또 당장은 사회가 크게 활성화된 것처럼 보일 겁니다.”
“검은 잔을 받지 않은 나머지 절반의 엘프 때문에?”
“예. 그렇기에 각 도시마다 검은 잔의 보급을 절반 이상 줘서는 안 됩니다.”
드낙이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어찌 되었든 그의 목표는 엘프가 X되게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이용해서 엘프 제국이 모든 총력을 다해서 영혼 제국으로 공격하게 하는 것이다.
‘개인 사회로 만들어봤자 소용이 없지. 아니, 그건 이미 사회라고도 할 수 없어.’
그렇게 생각하면 가장 중요했다. 버려지는 엘프...드낙이 내려주는 성배를 받지 못하는 엘프는 반드시 존재해야 했다. 그들에게는 실로 불행한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또한 드낙은 감회에 젖었다.
‘갈대처럼 상황에 휘둘리기 바빴는데, 이제는 내가 세상의 흐름을 만들고 있구나.’
뭔가, 척추가 바짝 서는 느낌이었다. 세상을 휘두른다는 기이한 감각이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높은 절벽에서 뛰어내릴 때의 순간 같은 위험한 쾌감을 손에 쥐고 휘두르는 감각이었다.
“그 결과, 노괴들에게 접촉 가능한 라인홀트를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거지?”
“예.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드낙이 몇 번 다시 훑어봤다. 그리고 대답했다.
“좋아. 진행시켜.”
아주 근엄하게 말했다.
“예!”
*
〈바다의 마리타(Marita)〉.
블루오션이라 불리는 대중적 엘프주를 만드는 주조장의 주인이다. 그녀는 근무표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야간 작업은 아예 불가능했고, 주간에도 제대로 돌릴 수도 없을 지경으로 노동력이 부족했다.
골램으로 보충하더라도 마력이 부족해서 가동률은 45%로 떨어졌다. 이대로면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몰랐다.
‘그렇게 된다면 블루오션 엘프주 또한 역사 속에 사라지게 되겠지.’
회의를 통해서 대공장의 물품으로 등록될 수는 없었다. 말 그대로 대중적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미 대공장은 프리미엄 엘프주를 생산하고 있었다. 블루 오션이 망하고 있는 이유는 아니었는데, 당연히 귀중품으로 등록되어 노괴들에게 보내지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세상이다.’
찌르르르...
독특한 마력 파장이 퍼져나갔고, 팔찌에 들러붙은 보석 중 하나가 빛이 났다. 아주 오래된 엘프 전통의 아티팩트 중 하나였다. 마리타 또한 충분히 오랜 삶을 살았고, 주조를 위해서 골램을 가동할 정도로 영향력 있는 엘프였다.
그녀가 세상을 욕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폭풍의 요람이 전쟁용으로 적출되고 생긴 고난을 세상을 향해서 울부짖는 것에 불과했다.
밖으로 나가자 엘프 하나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행색을 마리타가 살폈다. 아티팩트로 보이는 건 일절 없었다. 그냥 본인이 지닌 마력으로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는 놈인 듯했다.
“무슨 일입니까?”
품격있게 목례를 하며 그녀가 말하자 엘프가 냉큼 고개를 숙였다. 고개 숙이는 속력이 빨라서 너무 경박하고, 천박한 간신 같았다. 엘프에게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지식을 탐구하는 데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순번 엘프입니까?”
그 말에는 뼈가 있었다. 순번 엘프라면, 이렇게 마주하는 것조차도 시간이 아까웠다. 어차피 일정 비율로 배분받기 때문이다.
“그...나시르 님의 소개를 받고...”
“아! 어서, 어서 들어오십시오.”
마리타가 서둘러 그를 대우해줬다. 냉큼 블루오션 엘프주를 내어오고, 간단한 건과류를 꺼내왔다. 엘프는 이를 받아들었다.
“식사는 안 하셨습니까?”
“오늘 첫끼입니다.”
“아, 그렇다면 더 내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엘프는 허겁지겁 음식을 먹어치웠다. 드워프와는 다르게 신체 구조상 뭔가를 먹어야지 살 수 있었다. 엘프 정예병의 경우 영혼을 먼저 이동시켜서 압도적인 스피드와 힘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육체는 그리 대단하지 못했다.
베이면 갈라지고, 때리면 부서진다.
“취직하고 싶으신 게 맞습니까?”
“예.”
“지내고 있는 곳은?”
“없습니다.”
“그러면 빈방을 내어드리겠습니다. 식사 또한 제공해드릴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그것보다! 혹시 급여가 여기 적혀있는 대로 주는 게 맞습니까? 확실한 것이지요?”
‘음?’
대화를 하면서 마리타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이 엘프는 뭔가 쫓기듯이 말하고 있어서였다. 그가 원하는 건 마력칩인 듯했다. 하지만 그건 이상했다.
“예. 하지만 사실 지원자가 많아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역시...”
엘프의 말을 마리타가 단번에 알아들었다. 역시 무언가 일어나고 있는 듯했다. 절로 궁금증이 일어났지만 쉽게 일을 진행하지 않았다. 이 엘프 스스로 말을 내뱉을 터다.
“그놈들은 마력칩에 미친놈들입니다. 제대로 일도 안 할 겁니다!”
단번에 다른 놈들을 깎아내렸다. 부랑자로 살며, 일찍 패배자가 된 엘프라서 처세술의 깊이도 낮았다. 또 끼리끼리 어울리다 보니 경박하고 천박한 엘프가 된 지 오래였다.
“당신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예. 저는 맡은 바 임무를 다할 수 있습니다.”
“그들과 본인의 다른 점은 있습니까? 말로만 그래서야 신뢰하기 힘들겠죠.”
“그건...”
마리타가 일어났다. 엘프를 압박하기 위해서였다.
“전 최소한 선을 지킵니다. 그놈들은 빈혈로 대로에 쓰러져...”
그가 입을 다물었지만 마리타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당신, 음모론자로군.”
“무! 무슨 소리를! 전 그런 종자들이 아닙니다.”
“헛소리해봤자 소용없습니다. 당장 나가시오!”
윽박지르는 모습에 엘프가 허둥지둥 도망쳤다.
이렇게 실패하는 엘프도 있었지만, 성공하는 엘프도 있었다. 그들은 착실하게 마력칩을 급여로 받았고, 이를 치유 마법으로 치환하여 피를 내 드낙에게 바쳤다.
그건 점점 더, 점점 더 꿀벌 도시에 노동력을 제공했지만, 동시에 수요 자체를 거세했다. 마력칩으로 재화를 사는 엘프가 사라져 갔다. 치유 마법을 쓰기 바빴다. 자신의 피를 만드는데 아낌없이 써버렸다.
그건 검버섯처럼 퍼져나갔다.
드낙이 태도를 바꾸었고 이는 대공장장 엠마누엘에게도 전달되었다. 그는 본격적으로 검은 잔을 더 빨리 보급했고 이는 지표에 나타날 정도로 거대한 위협으로 다가왔다.
정보탑은 엘프 노괴들에게 이를 빠르게 데이터화해서 보내줬고 유례없는 일이 일어났다. 조용히 지내고 있던 〈벌꿀술(Honey Wine) 의회 의장 라인홀트(Reinhold)〉가 활동을 개시할 수밖에 없었다.
“벌꿀술 의회 부의장 제랄두(Geraldo)라고 합니다.”
“실로 오랜만입니다.”
“여전하십니다.”
〈천태상상위원 마리에트(Mariette)〉와 〈위원 아이누르(Aynur)〉가 동시에 일어나며 인사를 받아줬다. 특히 아이누르가 이들을 대우하는 모습은 실로 그답지 않았다. 지식이 가진 힘이었다.
“라인홀트 의장이 활동을 개시했다고 봐도 되겠습니까?”
“예. 가장 먼저 초법적인 권한을 위쪽에 올리고, 바로 행동을 개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아이누르 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어깨춤을 추고 싶은 기분이었다.
“모든 건 라인홀트 의장님께서 책임지실 겁니다. 지금 당장 대공장장 엠마누엘을 구속하고, 대공장을 모두 수색하며 대공장에서 일하는 이들과 접촉한 모든 엘프를 구속 조사하겠습니다.”
탁!
아이누르 위원이 단번에 일어났다. 그는 웃음을 감추지도 않고 미소를 흘리며 짧게 인사를 하고 바로 나가버렸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최대한 빠르게 판단해야만 했다.
“기다리십시오. 최종적으로는 진화학파의 드코라르바를 구속해야 합니다. 개별행동을 하시는 것보다는...”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제랄두 부의장, 당연히 도시 자체를 막아두면 모든 게 해결될 일입니다.”
“관련 없는 이들도 조사하겠다는 겁니까?”
“그런 말은 안 했습니다. 그저 저희 도시를 봉해두고 일을 진행시키면 될 일이라는 겁니다.”
“으음...오히려 효과는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실로 엘프다운 큰 행동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독 안에 든 쥐나 다름없고, 살려고 더더욱 격렬하게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사방이 가로막힌 벽을 껑충껑충 뛰는 쥐새끼의 모습이 절로 떠올랐다. 그건 제법 재미난 상상이었고, 우월한 엘프에게 있어서 상대가 그렇게 절박하게 행동하는 모습은 특히나 큰 재미를 주었다.
자신들의 위대함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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