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79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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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누르 위원과 천태상상위원 마리에트가 서로 마주했다. 넓은 정원에 백색의 대리석으로 만든 원탁에 앉았다.
“얼굴도 보기 힘든 위원께서 이렇게 절 찾아오시다니, 놀랄 일입니다. 하지만 그 붉은색 브로치는 과하신 것 같소.”
적색의 브로치는 실로 오만하게 여겨졌다. 감히 부탁을 하러 오는 주제에 주인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이누르 위원은 작게 웃으며 마리에트의 말을 받아쳤다.
“제가 브로치를 착각할 것 같습니까? 그렇다고 실수를 할 것 같습니까? 천태상위원도 지금의 위기를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위기? 무슨 위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모르지 않을 겁니다. 그 때문에 열 명의 위원들이 열 일하고 있다는 걸 알고 왔습니다.”
“제가 하는 일까지 꼼꼼하게 살피고 오신 것을 보니 기특하십니다.”
“이...!”
아이누르가 순간 매우 분노하며 덜컹거리며 행동을 크게 보였지만 이내 눈을 감으며 한숨을 내리 푹푹 쉬었다. 그 모습을 마리에트는 실로 고소하다는 듯이 보고 있었다. 이럴 때가 아니면 아이누르 위원을 괴롭힐 순간이 없었다.
애초에 기질 자체가 엘프답지 않은 아이누르 위원을 매우 싫어하는 게 마리에트였다.
‘엘프라면, 응당 자신의 수준에 맞는 위원회를 만들고, 다른 이들과 경쟁하고 제국을 번영시키려고 노력을 해야지. 숨기기 급급하다니.’
숨기는 이유도 자신을 몰라보는 엘프를 조지기 위해서였다.
미친놈이었지만, 엘프로 태어난 이유로 아직도 살아있는 놈이고, 권세를 잔뜩 누리고 있는 자였다.
엘프들의 권리 때문에 사실상 암살 자체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어나면 다른 엘프 위원회가 엄청나게 쑤셔대기 때문이고, 관련되거나 의심되는 위원회를 공중분해 시켜버린다.
한 번 암살을 성공하면 그 재미에 물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늙어서는 죽지 않는 엘프들이었기에 암살에 대단히 민감했다. 그건 오래 산 엘프일수록 더 민감했다.
“후우우우우! 됐고, 알고 있지 않습니까.”
“예. 형편없는 종교에 물든 하찮은 음모론자들의 모임 아닙니까.”
“또 말도 안 되는 소리를...그쪽의 십위원 데키무스(Decimus)가 여기 없는데, 그는 어디에 갔습니까?”
그 말에 마리에트가 깜짝 놀랐다.
“대단하십니다. 갑자기 성장하신 듯한 모습을 보여주시다니, 대견하십니다.”
마리에트는 박수는 치지 않았다. 천박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몸을 부딪쳐서 소리를 내다니? 인간 같은 하등한 종족이나 할 행동이었다.
쾅!
마법에 강화된 주먹이 백색 대리석 원탁을 쳤지만 마법으로 강화된 원탁은 금도 가지 않았다. 대신 소리만 크게 울렸다.
“더는 농담한다면 돌아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진화학파의 드코라르바’가 이 도시에 오고부터 행방이 묘연해졌고, 대신 음모가 들끓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그 윤곽과 실재가 드러나면서 저 또한 아이누르 위원이나 라인홀트 의장과 만나려고 했습니다.”
“라인홀트 의장과 연락이 됩니까?”
“시도해봤지만...안 됩니다. 그래서 조언자들에게 청해놓았습니다. 영혼과 정신을 가꾸는 정원사들에게는 라인홀트님이 인자하시다는 걸 그대도 알고 있을 겁니다.”
아이누르 위원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성의 없는 모습이었는데, 결과만 딱 보고 흥미를 잃어서였다.
“의장께서 아무것도 안 한다면 우리가 하면 될 일 아닙니까? 지금 당장 치안군을 이용해서 의심스러운 놈들의 집을 수색하고 고문을 하고 싶습니다.”
아이누르 위원이 본격적으로 이빨을 드러냈다. 그는 엘프를 죽이고 겁박하는데 거리낌 없는 모습을 주었다. 하지만 마리에트가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엘프의 권리를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사형수라도 햇빛을 볼 자격이 있는 게 엘프의 위대한 품격이며 권리입니다.”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오! 라인홀트 의장이 오면 내가 책임지고 벌을 받을 테니, 단숨에 박살을 내자는 것입니다!”
“적법한 절차를 밟을 것입니다.”
마리에트는 그런데도 요지부동이었다.
“위원들조차도 몸을 돌려서 그 음모에 가담하고 있는데, 지금 장난하자는 겁니까? 그럼 내가 왜 여기까지 왔습니까?”
“엘프답게 행동하십시오. 어디서든 기품을 잃지 마십시오. 이를 그대에게 경고하려고 그대를 기다렸습니다. 아직도 제 곁에는 절 따르는 이들이 있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동시에 아이누르 위원 때문에 마리에트의 권력은 더 커져 있었다. 라이벌 효과이기도 했고, 미치광이라 소문이 무성한 아이누르를 찍어 누르고 견제할 자는 마리에트 뿐이라는 걸 다른 엘프도 알고 있었다.
아이누르가 엘프주를 단숨에 한 병 마시고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긁었다. 두피가 뜯어지며 피가 손톱에 묻어져 나왔다. 그 모습에 참관하고 있는 이들이 눈을 찌푸렸다. 그러든 말든 아이누르 위원은 자기 할 말을 했다.
“적법한 절차라면 어디까지를 생각하고 있습니까? 몇 개는 건너뛰어야 하지 않습니까.”
“재밌는 소리를 하십니다. 천태상상위원인 제가 적법한 절차라고 말했습니다. 가장 먼저 긴급회의령을 내려서 찬반을 확인할 겁니다.”
“맙소사. 진심입니까?”
“예. 진심입니다. 모든 걸 정석대로 할 겁니다. 그래야만 엘프가 바로 섭니다.”
아이누르 위원이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가 말하는 첫 행동만으로도 다음 행동을 예측할 수 있었다.
10만년 이상의 나이를 지닌 엘프를 모집하여 회의를 하는 것이 긴급회의령이었다. 엉덩이가 무겁도록 소문이 난 것이 10만년 엘프들이다. 매우 급진적인 엘프들은 이들을 씹년이라고 말하지만, 그들이 지닌 영향력은 대단했다.
동시에 꼬장도 심했다. 〈엘프의 권리〉라 말해지는 것도 그들이 주축으로 만들었다. 현 엘프 제국의 가장 오래된 틀딱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면죄부는 당연하고, 그들은 다른 법을 받을 정도다. 또 사형수가 되더라도 햇빛을 볼 수 있고, 큰 저택에서도 살 수 있었으며 무엇하나 부족함 없이 지낼 수도 있었다. 취미는 말할 것도 없다.
그만큼 엘프가 지닌 본연의 권리를 중요시하는 자들이었다.
이런 놈들이 한자리에 모이니 찬반 토론만 해도 많은 시간이 걸릴 터다.
‘거기서 끝이 아니지.’
아이누르 위원은 눈앞이 깜깜해지는 걸 느꼈다. 이 정신이 나간 원리주의자는 진짜로 다 할 생각인 듯했다.
10만년 엘프들이 모였다. 당연히 그들의 심보는 고약하다. 자기들도 모였으니 5만년 엘프도 모여야 한다고 여길 것이다.
효율성? 그런 거 없다. 나도 했으니 너도 해야 한다는 틀딱 마인드 뿐이었다.
사실 5만년 엘프는 그래도 정기적으로 회의를 하는 편이었다. 그들 아래에 있는 꾸물거리는 1만년 엘프와 1만년 미만 엘프를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가장 골치아픈 도시 탄생율을 관리하는 것도 5만년 엘프들이었다.
거의 중간관리자 포지션인 셈이다.
그렇게 정식 회의령을 내려서 5만년 엘프들로부터 의견을 모으고 확정한다.
거기서 끝나느냐? 아니다. 1만년 엘프들이 남아있다. 왜냐하면 5만년 엘프들도 일정이 아닌 날에 모였으니 1만년 엘프들 또한 모여야 한다고 여길 것이다. 물론 중요한 자리를 꿰차고 있는 엘프들에 한 할 것이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시간이 소요된다. 긴급 민간출령은 지금까지 엘프 역사상 나온 적이 거의 없었다. 하위계급에 불과한 1만년 엘프들이 모여서 회의를 할 건더기가 없었다.
‘놈은 분명 거기까지 하겠지.’
음모론 때문에 도시 내의 엘프들이 분열되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고 이를 확인하려 들 것이다. 확인하는데 회의만큼 확실하게 표정과 태도를 볼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 이후에 가칭이지만 민간 조사법으로 음모론자들의 가택과 그들을 조사할 생각입니다.”
“너무 늦을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하하. 엘프가 시간을 따지는 것을 보니 재밌습니다.”
아이누르 위원이 인상을 팍 찡그렸다.
“지금 그런 절차를 밟을 때가 아닙니다. 진화학파는...”
“말조심하십시오.”
마리에트가 그의 말을 끊었다. 매우 무례했지만 아이누르 또한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그의 위치를 생각하면 그 단어를 꺼낸 것만으로도 음모가 진실임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이는 매우, 아주 위험한 행동이었다.
“실언했습니다. 하지만 빠른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빨리 행동해봐야 다른 엘프들은 더더욱 음모에 가담할 뿐이오.”
마리에트가 몸을 일으켰다. 더 할 말은 없었다. 아이누르는 중요한 순간에 폭군처럼 나오지 않는 단순한 겁쟁이에 불과했다. 오늘은 그 경고를 한 것만으로도 목적을 달성했다.
“푸른 하늘 아래, 위대한 종족은 오로지 단 하나뿐. 창천의 종족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시오.”
그가 걸어가자 그를 따르는 이들 또한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 숫자는 아이누르가 끌고 온 숫자의 다섯 배에 달했다.
위기 속에서 빛나는 것이 있다면 전이나 지금이나 결코 변하지 않는 엘프다. 이런 사건이 일어났을 때 수많은 엘프의 지지를 받는 것이 마리에트였다.
긴급회의령의 공표는 꿀벌 도시에 사는 모든 엘프에게 공개되었다.
실로 대범한 행동이었다.
‘후후, 드디어.’
드낙이 좋아했다. 곧 라인홀트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고 그때 놈을 사로잡아서 거래를 한 다음에 타락시켜버리면 꿀벌 도시는 자신의 손에 들어온다. 만약 안 들어와도 검버섯처럼 퍼지는 진화학파의 검은 잔은 모든 엘프를 집어삼킬 것이다.
그때가 되면 법을 만들어 모든 엘프들이 전쟁에 참가하도록 만들어 놓을 수 있었다. 바로 법의 제정을 통해서.
‘개 같은 놈들이지.’
총동원령이라고 해놓고서는 젊은 엘프 100만을 전쟁터로 보냈다. 드낙이 보기에는 진짜 개새끼들이었다.
자신이 내리는 힘을 스스로 타락이라고 말했지만, 이미 엘프들은 세대 차이로 인해서 타락한 것일지도 몰랐다. 엘프가 엘프를 노예로 삼는 것처럼도 느껴졌다.
[디아볼로스, 어셈블!]
[예?]
[다 집합!]
[예!]
6명의 디아볼로스가 드낙이 있는 곳에 모였다. 엠마누엘이 마련해준 저택의 지하에서 그들은 마치 음모를 꾸미듯이 음울진 공간에 불만 살짝 켜놓고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들었을 거다. 그 긴급회의령인지 뭔가 하는 거. 이제 곧 라인홀트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드낙의 말에 다른 디아볼로스들이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엉? 왜? 뭐가 달라?”
“예. 그것이...”
리산드로스가 말을 흐리며 헛기침 한 번 하고 다시 이야기해나갔다.
“10만년 엘프를 모이게 하는 긴급회의령을 통해서 앞으로 그들의 행동을 유추해나갈 수 있습니다. 적어도...최소 3개월, 최대 반년은 걸릴 대회의의 시작입니다.”
“뭐? 반년?”
그제야 드낙은 리산드로스의 말에 이 엘프들이 뭘 하려는지를 알게 되었다.
“미쳐버렸구만.”
‘지랄하고 자빠졌구나.’
탁상공론? 그것과 비슷했지만 조금 달랐다. 그냥 해야 하는 게 많았다. 문제는 확실하게 처리 될 것이다. 엘프라는 종족값 때문이다. 그들은 확실하게 결과를 낼 것이다.
반마가 되었기에 드낙은 엘프들을 아래로 보고 있었고, 디아볼로스 1만 5천과의 전투 이후에 완전히 내리깔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엘프는 대단한 종족이었다.
“아무래도 잘 못 짚은 것 같다. 음모를 퍼뜨려 그 윤곽이 드러나도 이 정도인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른 방법으로 선회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모두 동의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낙의 판단은 옳았다. 간 좀 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빠질 줄 아는 게 드낙이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귀가 팔랑거리는 것도 모두 자신이 위대하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건 여전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는 단연코 발군의 효력을 발휘했다.
“차라리 엘프 사회에 도움을 주면 어떻습니까?”
“도움을 준다?”
리산드로스의 말에 드낙은 반문했지만 다른 이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상당한 아이디어였고, 단번에 그 이후를 짚어낼 수 있었다.
“대단한 방법입니다. 전 찬성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라인홀트 의장도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기득권이 가장 무서워하는 일이 벌어질 겁니다.”
“아니, 아니! 잠까안! 제대로 설명을 해 봐.”
“예.”
리산드로는 아예 의자에서 일어났다. 백금 카드를 테이블에 여럿 두었다. 단번에 다양한 지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중에서도 매우 큰 편차를 지닌게 드낙의 눈에 보였다.
“이건 뭡니까?”
“시중에 나오는 마력칩의 숫자입니다. 급격하게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검은 잔이 많이 보급이 이루어졌다는 뜻이었다. 몸을 치료하고 혈액을 만들어서 바치기 급급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마력칩이 시중에 나오는 숫자가 줄어들고, 오히려 여유가 있는 엘프는 마력칩을 구매해서 치료 마법으로 써버린다.
드낙에게 더 많은 피를 바치고, 더 많은 업을 주고 그 반대급부로 콩알만한 업을 취득하기 위해서였다.
“이게 해결책이라고? 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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