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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791화 (790/1,239)

강철의 전사 79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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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장장 임마누엘은 진화학파의 드코라르바와 그 측근 6명에게서 양도받은 검은 신전을 확실하게 이용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대공장을 함께 운영하며 나름 신념이 있고 노력을 하는 측근들에게 ‘진화의 성배’를 내어줬다.

그들은 피를 소모해서 혈석이 만들어진다는 것에 큰 거부감을 느꼈다. 하지만 엠마누엘의 거듭된 설득으로 한 번만 하기로 하고, 혈석을 복용했다. 그들은 그 날 곧바로 진화학파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으며 드코라르바와 식사 한 번 같이하는 게 최고의 꿈으로 변했다.

“이건 혁명입니다!”

특히 공장 관리원 피암마(Fiamma)는 대단히 열성적인 광신도가 되었다. 정확히는 진화학파라는 학문과 연구 성과를 맹신하게 되었다.

“모든 엘프가 하루라도 빨리 누려야 합니다.”

이 눈이 먼 맹신자는 이를 모든 엘프들에게 공개하고자 했다.

“그건 안 됩니다. 보셨다시피 피를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잘못하다가는 사적으로 몰려, 악마의 소행으로 찍혀 사라질 수 있습니다.”

“기득권들이 가만히 둘리 없습니다.”

“1만 년, 아니 5만 년 이하의 엘프들 조차도 거세하고 그 위의 엘프들이 이를 독점할 생각을 가질 것입니다. 거대한 내분이 일어날 가능성도 열어둬야 합니다.”

“영혼 제국과의 전쟁이 이를 막아줄 겁니다.”

엠마누엘은 실로 냉혹한 웃음을 지었다.

“아직도 그들을 모릅니까?”

그는 자신과 노괴들을 분리했다.

“차라리 아랫세대의 탄생률을 극대화하고 마법으로 생장시켜서 인형처럼 쓰다 버릴 선택을 할 겁니다. 전선을 유지하고, 내분을 종식해 승리자가 만들어질 겁니다. 그러면...여기에 있는 여러분들은 그때쯤 모두 죽어있을 겁니다. 저를 포함해서 말입니다.”

“청철 갑주를 노획한다면...”

이내 피암마가 입을 다물었다. 우스운 가정이었다.

“인정하겠습니다. 결국 차근차근 진행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차근차근 이라기보다는 그들이 스스로 원하도록 해야겠지요.”

“스스로 원하도록...한다...”

음흉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기에 피암마는 이를 따라서 중얼거리며 썩 좋은 표정은 짓지 못했다. 마치 음모론자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불명예스러웠다.

절로 말 속에 망설임이 깃들었다.

“조심하자는 겁니다. 이 진화의 잔이 음모입니까? 아니면 해결법입니까?”

“종족을 관통하는 최강의 성과입니다.”

엠마누엘의 말에 피암마가 즉답했다. 그것으로 망설임은 사라졌다.

“드코라르바 님께서는 어디에 계십니까?”

“그분은 몸을 피하고 계십니다. 생각보다 나이 든 엘프들의 계급, 그들이 지닌 기득권을 두려워하시고 계십니다.”

물론 거짓이었다. 드낙은 드낙 다름대로 생각이 있었다.

‘최대한 많은 도시에 검은 신전을 퍼뜨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꿀벌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의 과정을 최대한 손을 대지 않고 지켜봐야 한다.’

처음에는 벌꿀술 의회 의장 라인홀트를 찾아서 단번에 도시 영향력의 절반을 확보하고 단숨에 끝내려고 했지만 그를 못 찾았기에 방향을 돌렸다.

‘이리 안 되면 저리 하면 될 뿐이다.’

뭘 해도 흐르는 물처럼 흘러가는 중립신을 닮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욕심이었다.

드낙이 손을 내뻗지 않아도 알아서 잘 유지된다면 드낙은 그를 만나지 않고 그냥 다른 도시로 가서 검은 신전을 만들고 관리하도록 하면 되었다.

이를 위한 방치였다.

적당한 엘프가 어찌 행동하는지를 보고 도시 전체에 진화학파가 크게 득세한다면 드낙도 믿고 다른 도시로 갈 수 있었다. 어디에 있는지 모를 라인홀트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그때부터 조용히 근면적인 엘프들에게서 진화학파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갔다.

도시를 흐르는 하수구처럼 은밀했고, 자세히 아는 이는 누구도 없었다. 마치 마피아를 찾아내야 하는 것처럼 뜬구름에 불과했다.

그것은 검은 것으로 비유되기도 했고.

진화학파에 대한 얄팍한 추측에 불과했다.

드코라르바를 심문했던 병사나 그날 그 소식을 접했던 순번 엘프들은 ‘드코라르바’에 대한 음모를 입에 담기도 했다. 그것은 제법 재미난 일이었다. 오히려 순번 엘프들은 마치 자신이 진화학파의 일원인 것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으슥한 골목에서 모든 열정이 사라진 순번 엘프는 특히나 음모에 깊게 동화되었다.

“모르는 건가? 아니면 정말로 알고 온 건가?”

“그저...궁금해서 왔습니다.”

이렇게 가짜 진화학파 행세를 하는 순번 엘프들은 거침없이 반말을 써제끼며 동족을 내려다보며 오만하게 굴었다.

몇몇 순번 엘프는 당연히 잡혀서 감금되기도 했다.

누가 봐도 진화학파에 대한 소문은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으으,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 정말입니다!!”

벌벌 떨며 순번 엘프가 고함을 내질렀다.

“안 돼애애애애! 제발, 이 고문실에서 나가게 해줘! 난 모든 걸 말했어!!!!! 아무것도 모른다고! 술집에서, 마약을 먹는 놈들이 의미심장하게 나누는 단어를 그냥 조잡하게! 헉.”

고상함 따위 하나도 없는 모습이었다. 그는 고문대 위에 올라가자마자 오줌을 지렸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동그란 바닥이 살짝 위로 올라가고, 마력이 발해졌다.

시리도록 차가운 마력이 그 엘프의 눈에 담겼고, 찰나의 순간에 그는 22가지에 달하는 고문과 22가지의 죽음을 경험했다. 22 고문실에서 끌려 나온 엘프는 혼이 빠진 모습이었다.

그 앞에 드래곤과 그리폰, 검과 보석, 나뭇가지와 나비의 6가지 브로치를 달고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온갖 종류의 훈장이 달려있었다. 백금, 백은, 금, 은, 동과 화려한 붉고 푸른, 실로 다양하고 다채로운 훈장만 10종을 넘어섰다.

“으으...”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는 놈의 상태를 확인한 상공 서무관 프란츠(Franz)가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과했어. 아이누르 님께서는 확실한 걸 원하신다고 해도 자아가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군.”

맛탱이가 가버렸다. 수련도, 단련도 수박 겉핥기로 하고 순번 엘프로 전락하여 마력이나 보급하는 하위 엘프였다. 그 정신과 영혼은 아무리 불변하는 엘프라고해도 물렁물렁했다. 세월에 의해서 망가진 듯했다.

“이토록 약한 엘프는 처음 봅니다.”

“흥. 이놈들은 패배자들입니다. 지식을 얻으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 엘프는 세대를 걸쳐서 꾸준히 나타나는 종자들입니다.”

“아직도 엘프는 멀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엘프의 조기 교육 체계를 바꿔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하하. 아주 위험한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변화와 개혁이라뇨.”

상공 서무관의 웃음에 대답하는 엘프의 혈색이 안 좋아졌다.

“아무튼, 확실히 알고 있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말해주십시오.”

“예.”

프란츠는 서둘러 〈위원 아이누르(Aynur)〉에게로 향했다. 그는 실로 달빛과 잘 어울리는 엘프였고, 다른 엘프와는 다르게 달빛을 좋아해서 머리색조차도 은색이었다.

13만 살로 엘프 기득권에 확실하게 들어가 있는 자였다.

“어찌 되었느냐?”

“의심할 만한 곳에 언질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답장이 오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아이누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코가 찡그려졌지만 곧 무표정해졌다.

“됐다. 더는 돌려봤자 의미가 없다.”

쿵. 쿵. 쿵.

나이프로 테이블을 찍기 시작했다. 새하얀 실크가 놓인 테이블에 자국이 생기고, 실크가 찢기며 실오라기가 살랑거렸다.

주륵...

상공 서무관 프란츠가 땀을 흘렸다.

‘소노(小怒)다.’

기분 나쁘면 엘프 몇 죽이는 것도 일도 아닌 게 아이누르였다. 이 도시에서 가장 얽혀서는 안 되는 존재이기도 했다. 그런 주제에 자신에 대한 정보가 흘러나오는 걸 참지 못하는 자이기도 했다.

위험 인물인데 위험 인물인 줄을 모르는 것이다.

그걸 즐기는 괴짜이기도 했다.

휙. 푹.

“으윽.”

프란츠가 소리를 냈다.

“그 검은 것인지 진화학파인지, 날 무시하고 있다는 뜻이다. 놈들을 흉내 내는 놈들부터 쳐내야겠다. 너무 난잡해.”

“순번 엘프들을 말씀이십니까?”

“난 두 번 말하지 않는다. 싹 다 잡아서 나한테 데려와. 실종되고 있다는 걸 알면 함부로 입을 놀리는 놈은 없게 될 것이고, 정보탑은 확실한 정보를 물어다 줄 것이다.”

“예!”

“잠깐.”

“예!”

아이누르가 프란츠를 멈춰 세웠다. 조금 생각하더니 이내 물었다.

“마리에트와 라인홀트는 행동을 개시했나?”

“라인홀트는 여전히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마리에트는 도시가 시끄러워졌다며 치안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을 뿐입니다.”

“좋다. 나가봐라.”

“예!”

프란츠가 서둘러 빠져나갔다. 그는 누구보다도 지식을 탐하는 존재였고, 아이누르의 곁에서 지식을 빨아먹으며 사는 엘프였다. 고통 속에서도 그는 진리의 끝에 도달하고자 했다.

그 고결함에 피가 아무리 묻어봤자 더럽혀질 리가 없었다.

이미 해온 햇수만 해도 8만 8천 년을 넘어가고 있었다. 여기서 등을 돌리기에 걸어온 길이 너무나도 길었다.

‘아이누르가 중노(中怒)하기 전에 수를 내야 한다.’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천태상상위원 마리에트와 벌꿀술 의회 의장 라인홀트가 관심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 덕분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더 발작을 일으키지 않았다.

프란츠가 떠나가자 아이누르가 몸을 일으켜서 로비를 가로질러 통로를 걸어갔다. 통로는 매우 넓었고, 웅장했다.

하지만 삭막했다.

그 누구도 없었고. 그 어떤 온기도 없었다.

브레스를 뿜어내는 거대한 드래곤을 사냥하는 엘프의 그림에는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누구도 포악한 악룡을 사냥했던 아이누르의 명예를 닦아주지 않았다.

말 그대로 세월이 묻힌 명예다.

그건 아이누르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 벽보에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신경질적으로 발을 옮겨서 도착한 곳에는 약물에 취해있는 엘프가 사지가 묶인 채 묶여있는 곳이었다.

투명한 막을 통해서 똑같이 묶인 이들이 마치 거울처럼 다다다다다닥 연결되어있었는데 그 규모는 수백, 수천을 헤아렸다.

“파랑새야, 넌 어떠냐? 어떻게 생각하느냐? 말 해봐라, 아네트(Annette), 내 사랑아. 뭐라고 말해봐!”

철썩!

문 옆의 벽에 걸린 피묻은 가죽 채찍을 집어 들며 아이누르가 낄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채찍이 거세게 육편을 다지는 소리가 났음에도 엘프의 고통스러운 소리는 단 한 마디도 일어나지 않았다.

*

꺼어어어어억!

드워프가 트림을 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세파리아스 불파겐은 인상을 찡그렸다. 전이었다면 드워프라고해도 목을 쳤을 터였다.

기분 나쁘기 때문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심판하는 건 그에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변했다. 멍청한 것들은 일부러 그런 짓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변하지도 않지.’

수만 명을 쳐 죽여도 그 본성을 고칠 줄 모른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똑똑하고 우월한 자신이 양보를 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트림하지 마라. 경박하다.”

“안 했는데?”

드워프 전사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정말로 자신이 트림을 길게 한 걸 모르는 눈치였다. 세파리아스는 분노가 피어오르는 걸 느꼈지만 드낙보다는 낫다는 식으로 마음을 다스렸다.

이건 세파리아스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마인드 컨트롤 방법이었다.

‘드낙보단 낫다.’

드워프 덕분에 세파리아스는 서부의 영혼 진지를 대부분 격파했고, 52만 명에 달하는 제국 피난민들과 민병대, 패잔병을 규합할 수 있었다.

특히 드워프의 피해만 컸고(사실상 시간을 두고 본다면 전무했다.) 인간은 많이 죽지도 않았다. 대부분 진지 공사 때 사고를 당해서 죽거나, 보급 과정 중에서 독버섯을 먹는 등 이상한 짓을 해서 죽었다.

그런 사상자 빼고는 피해가 없었다.

‘다리 하나도 보강하며 죽어 나자빠지는 것들이라니.’

그냥 도강하려고 나무 다리 만드는데 8명이 익사한 건 세파리아스에게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 개인이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하는 옛날과는 다르게 마도 사회에 도달한 제국인은 못질도 못 하는 남자도 있었다.

부유해질수록 그 경향이 심했다.

‘영혼 제국은 이제 선택하겠지.’

엘프를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게 될 터였다. 시간을 끌면 고립되는 건 자신들임을 자각했을 것이다. 둔감한 드워프가 굳이 제국까지 올 이유는 엘프 때문인 걸 모를 리가 없었다.

‘드워프의 숫자는 적다. 적들도 본진을 노리지는 못하리라고 생각할 것이니, 서부에 선을 긋고, 소규모 분쟁만 유도하겠지.’

세파리아스가 전황을 훑어나갔다. 전쟁터를 수없이 겪어보았던 그였다. 짐작하는 건 매우 쉬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중립신의 명령을 토대로 추측하는 것이라 신뢰성도 높았다.

탁.

세파리아스가 무릎을 치며 일어났다.

‘변수는 하나. 중립신의 손바닥 안에 있을 거냐, 아니면 그 손바닥을 뛰쳐나올 거냐.’

거기에 따라서 세파리아스의 선택도 달라질 것이다. 그는 드낙에게 모든 걸 건 상태였다. 분명 중립신과 녹색 도끼의 예상을 뛰어넘는 행보를 보여줄 것이라 믿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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