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78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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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가 흉포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림자였기에 그 누구에게도 관측되지 않았다. 전쟁을 위해서 젊은 엘프드로가 함께 도려내어 진 도시의 핵, 폭풍의 요람이 없었기에 엘프들의 도시 방위는 사실상 많이 무너진 상태나 다름없었다.
그 덕분에 드낙은 곳곳을 돌아다니며, 이 꿀벌 도시라고 불리는 곳을 지배하고 있는 태초의 엘프를 찾았다. 〈벌꿀술(Honey Wine) 의회 의장 라인홀트(Reinhold)〉.
‘놈만 찾으면 이 도시의 절반을 먹은 것이나 다름없다.’
마을이 탄생할 때, 그곳의 일원일 뿐만 아니라, 촌장이었던 라인홀트는 이 마을이 도시가 될 때도 시장으로 존재했다. 이제 그는 자신을 숨기고, 도시를 제어하고 있었으며 이 꿀벌 도시에 살아가는 모든 엘프를 지배하고 있었다.
왕이 되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인적이 드물지만 엘프 도시의 규모는 현대의 가장 발달한 도시보다 2배는 면적이 큰 초거대 도시였다. 그곳을 지배하고 있어서 왕이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적어도 권력만큼은 왕보다도 높았다.
‘저건 또 뭐야.’
드낙이 멈췄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걸 봤기 때문이다. 신전 같은 곳이었는데, 사람 그림자 하나 없었다. 마치 옛날 그리스의 도서관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곳을 돌아다니는 유령 같은 무언가였다.
‘보물이라도 숨겨놨나?’
반마의 힘으로 드낙은 조용히 마법 악령에게서 들키지 않고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높이가 50m가 넘는 거대 건축물은 관광을 위해서 세워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멋스러우므로 가득했다.
드낙은 그 경이로움에 감탄하면서도 코를 킁킁거렸다.
알싸하게 느껴지는 책냄새가 맡아졌다. 하지만 더는 진행할 수 없었는데, 건물 전체에 마법이 활성화되어있었다. 들어가려면 감지될 수밖에 없었다. 드낙의 눈에 엘프 2명이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것도 보였다.
초월적인 방법으로는 마법이 스며든 건물 때문에 들어갈 수 없고, 물리적으로는 엘프 때문에 들어갈 수 없었다. 죽인다면, 그때부터 꿀벌 도시는 경각심을 가지게 될 터였다.
드낙은 엘프가 자신을 적대적으로 보는 걸 최대한 늦추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평생 아군이라 여기게 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이 녀석들 봐라? 보통 놈들이 아니다. 최정예다.’
복장 또한 독특했다. 전투에 적합하다고 도저히 볼 수 없는 높은 투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양옆으로 펼쳐진 황금의 넓고 긴 뿔은 8개에 달했다. 또한 규칙적으로 옅은 빛이 뿔의 끝으로 질주하며 빛을 내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저 투구의 뿔이 아티팩트라고 여겼겠지만, 드낙은 아니었다.
‘엘프의 호흡에 맞춰서 일정하게 빛이 뿜어진다.’
신기했다.
엘프를 죽여서 중립신으로부터 그 지식을 얻고 싶을 정도로 호기심이 생겼다. 왜냐하면 〈호흡〉이라는 것은 이 세계에서 매우 중요했다. 인간이 스타일리쉬하게 역습하는 수단 중 하나였다.
‘과민반응이겠지.’
〈지식의 도서관〉이라 불리는 엘프 도시의 중요 건물에서 드낙은 어렵지 않게 염탐하고 또 빠져나왔다. 오로지 수비, 혹은 자국 영토에서밖에 활동할 수 없도록 법으로 손발이 묶여있는 무용(武勇)의 엘프와 조우했지만 싸우지는 않았다.
대화도 없었다.
족히 100층 빌딩과 견줄 수 있어 보이는 큰 건물도 볼 수 있었다. 현대의 건물과 차이점이 있다면, 1층이 엄청나게 큰 규모인 것과 층이 높아질수록 층의 규모가 작아진다는 점이었다.
마법으로도 건축술의 한계는 존재하는 듯했다.
‘여기 최상층으로 가볼까?’
[어이. 누구 있나?]
[예. 듣고 있습니다!]
6명의 디아볼로스가 모두 일제히 대답했다. 모두 개인 시간을 즐기고 있었지만 드낙의 말에 냉큼 대답하며 주변을 서둘러 정리했다.
[여기 대단히 큰 탑 같은 건 뭐 하는 곳이지?]
[아마, 정보 첨탑일 겁니다. 도시에 있는 모든 엘프의 정보가 유통되고 저장되는 곳입니다.]
[아하. 혹, 최고층에는 누가 있는지 아나?]
[정보총장이 있을 겁니다.]
정보에 대한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드낙이었다. 조금 더 물어봤다.
[누구인지는 아나? 중요한 인물 같은데.]
[전혀 아닙니다. 정보 총장은 엘프이지만, 그는 결코 땅을 밟을 수 없습니다. 그런 자들만이 정보 총장이 될 수 있고, 각 도시마다 1명씩만 존재하고 있습니다.]
[탑에서 못 나온다고?]
[예. 나오더라도 마법이 전신에 새겨져 있어서 몸이 폭발합니다.]
드낙이 절로 끔찍해 했다. 말 그대로 허울 좋은 직책일 뿐이었다.
[누가 그런 곳에 가려고 하는 거지?]
[보통 정보 총장이 필요하면 태어나기 전부터 그런 자로 키우기 시작합니다. 선택받은 삶인 셈입니다.]
‘소름돋네.’
드낙이 침을 꼴깍 삼켰다. 태어나기 전부터 계획되어서 태어난 엘프가 정보 총장이 되고 그는 결코 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몸을 지니게 된다.
그저 하나의 부품이다.
‘무섭다.’
태어나서부터 공예된 엘프가 정보 총장의 직에서 충실히 그 임무를 다하고 있었다. 타락도 걱정 없었다. 적당한 주기에 교체될 것이 분명했다. 은퇴라는 이름 아래 은퇴한 정보 총장은 비로소 자유로운 엘프가 된다.
그 어떤 영향력도 가지지 못한 중산층 엘프가 되어서 끝없이 연금처럼 쏟아지는 마력칩 속에서 살아간다. 퇴직금 하나만큼은 빵빵했다. 하지만 드낙은 전혀 부럽지 않았다.
‘옛날이었다면 부러워했겠지만.’
다시 군대 가면 3억. 많은 이들이 손을 번쩍 들어 올릴 것이다. 다만, 정보 총장에서 은퇴해서 그 어떤 사회적 영향력을 보유하지 않은 삶을 엘프가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렇게 설정되어서 태어난 엘프이기 때문이다.
[근데 빛이 잘 안 나오는데, 많은 마력을 사용하는 거 아닌가?]
[폭풍의 요람이 징발되었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을 겁니다.]
[알았다.]
[반마시여, 혹 라인홀트를 찾으셨습니까?]
[아직.]
그 말을 남기고 드낙은 엘프 도시를 이 잡듯이 뒤졌다. 지상에는 없었고, 의심스러운 곳은 철저하게 방비가 이루어진 심처까지 확보할 수는 없었다.
‘생각보다 까다롭다.’
건축에 있어서 마법이 스며들어 갈 수밖에 없었고, 드낙의 그림자는 자연스럽게 이를 건드릴 수밖에 없었다. 잘못하면 건물에 있는 마법을 훼손시키거나 파괴, 마모시킬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마도 사회를 이룩했기에 당연하게 초월을 대적(對敵)하고 있다.’
드낙으로서는 아쉬운 일이었다. 결국, 라인홀트를 잡으려면 그가 직접 진화학파의 드코라르바(Dcolarva)를 찾아오도록 만들어야 했다.
‘정공법은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지.’
오히려 시간이 적게 들어가는 게 정공법이었다. 하지만 드낙의 이런 생각과는 다르게 디아볼로스들은 드낙이 하려는 정공법을 정공법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거대한 괴리감이 그 사이에 존재했다.
드낙에게 있어서 정정당당함이란 선동과 날조였다. 팩트는 비겁할 뿐이었다. 또 진실을 검증하려면 매우 귀찮은 일들을 오랫동안 제시해야 했기에 드낙과 잘 어울리지도 않았다.
다음 날, 드코라르바는 엠마누엘의 대공장을 방문했다. 도시의 외벽을 넘어서 존재하고 있는 툭 튀어나온 보조 구역이며, 위성 구역이었다.
출입구는 오로지 한 방향에만 있었고, 모든 이들이 검증을 받고 들어와야 했다. 예외는 존재하지 않았다. 엠마누엘조차도 법을 지켰다. 그는 고작 2,999살에 불과한 엘프였다. 그 법을 어기려면 1만 살은 되어야 했다.
법령 자체도 오천 법, 일만 법 등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기득권에게 부여되는 법은 실로 흉악, 그 자체였다.
드코라르바 또한 검사대에 섰다. 신분 정보가 든 백금 카드를 보여주고, 신원이 맞는지 마법이 그를 훑었다.
그 이후에 대공장 내부로 들어설 수 있었다.
매우 이례적으로 대공장장 엠마누엘이 드낙과 6인의 디아볼로스를 홀로 안내했다. 작업하는 엘프들의 눈은 그곳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규모가 엄청나군요.”
드낙이 엠마누엘에게 대공장의 위용에 대해서 말했다. 뻥 뚫린 구조물. 임원급 직함을 지닌 이들이 내려다보기 좋은 통로에서 그걸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엘프의 위대함을 볼 수 있었다.
“여기서는 뭘 생산합니까? 혹시 청철 갑주도 생산합니까?”
“하하. 아닙니다. 가장 엘프 영토의 중심에 위치한 공장에서나 전략 물자를 생산합니다. 저희들은 보통 다른 도시에서 소모되는 생필품이나 중고위급의 백금 카드를 제작합니다.”
“그게 정해져 있습니까?”
“네. 의외로 생활 편의성을 좋게 하는 마법 물품들의 소비가 대단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대공장을 구경한 다음으로는 공장 내부에서 사용하지 않는 곳에 도달했다.
“창고로 쓰이고 있는 곳입니다. 지하에 있고, 규모도 큽니다.”
“쓰이지 않은 지 오래된 것 같은데, 이유가 있습니까?”
“전쟁 때문에 물자가 비축될 시간이 없습니다. 여기 일하는 엘프들도 대부분 골램의 유지 보수에 동원되고 있는 정도입니다. 그마저도 하루 4시간밖에 안 합니다.”
젊은 엘프의 부재로 순번대로 와서 노동해야 했기에 당연히 일을 오래 할 엘프가 매우 적었다. 비축될 물량이 있을 리가 없었다.
‘쎄하다.’
드낙은 왠지 모르게 영혼 제국보다 엘프 제국의 체력이 더 낮은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마력으로 모든 게 된다고 여기는 풍토가 느껴져서였다.
“물량은 제대로 맞춰지고 있습니까?”
“예. 순번은 제대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세대별 탄생율을 조절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드낙은 그 말에 거짓이 한 점 없음을 알고 그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중요한 건 퍼져있는 이 엘프들의 역량을 영혼 제국에게 집중시켜야 한다는 것이겠지.’
대예언이 찾아오기 전에 엘프와 영혼 제국이 공멸하면 그것만큼 드낙이 원하는 일도 없었다.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예. 하지만 조금 뒤에 드리겠습니다. 잠시 자리를 비켜주실 수 있습니까?”
엠마누엘이 고개를 숙이며 물러갔다. 그는 진화학파의 성과를 더 맛보고 싶어 했지만 상황이 받쳐주질 못했다. 서로 오가는 게 있어야 했고, 이걸로는 부족한 듯했다.
하사 받아야 하는 입장이기에 대놓고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엠마누엘은 그를 반마(半魔)의 존재가 아닌 진화학을 통해서 진화한 드코라르바로 여기고 있었다.
1만5천의 디아볼로스를 단 5천만 남기고 모조리 죽인 그 결과에서 드낙이 얻은 값진 경험이기도 했다.
디아볼로스 6명이 큰 규모의 창고에 섰다. 각자 4방을 맞고, 2명은 좌우의 중심에 섰다. 창고 전체의 중심에는 드낙이 자리 잡았다.
드낙의 전신에서 피가 흘러내려 왔다. 입고 있는 복장에서 단 한 방울도 흡수되지 않고, 거침없이 흘러내렸다. 곧 창고 전체에 찰박거릴 정도로 차올랐다.
“후우우우....”
드낙이 숨을 크게 들이 쉰 다음 천천히 내뱉었다. 곧 정신을 집중했고, 창고에 뼈대를 쌓아나갔다. 디아볼로스들은 여기에 동참하여 정교함으로 드낙을 도왔다.
검은 기둥이 자리잡혔고, 그 테두리에 검붉은 표식이 이어졌다. 새롭게 생각하고 있는 능력이었다. 이는 디아볼로스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로 주제넘은 짓이었기에 당연히 드낙의 권능으로 자리 잡았다.
아홉 번째 권능 〈검은 신전〉.
지하 창고는 드낙의 신전이 자리 잡았다. 기둥은 6곳에 자리잡혀있었다. 각 방의 모서리와 창고를 반으로 갈랐을 때, 양쪽의 중심 측에 자리잡혀 있었다. 드낙이 있는 곳에는 검붉은 색의 빛의 기둥이 존재하고 있었다.
눈으로 보이는 빛의 기둥은 음울했고 어두웠다. 기둥 내부는 매우 선명했지만, 밖으로는 마치 검은 막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 명암이 급격하게 낮아졌다. 극한의 효율성을 위해서였다.
“그를 다시 불러라.”
모든 것을 완료한 드낙이 엠마누엘을 불렀다. 하지만 순식간에 딴소리를 했다.
“아니, 그 전에 모두 지친 기색을 해야겠다.”
“네?”
단번에 드낙이 디아볼로스 여섯의 몸에 손을 대고 그 피를 빼앗아갔다. 탈력감에 디아볼로스들이 비틀거렸다. 드낙의 피를 받아든 피였기에 악마에게 있어서는 매우 손쉬운 일이었다.
동시에 드낙의 권속이며, 드낙의 하급 악마인 것이 디아볼로스들이었다.
“빼앗은 피는 오늘 내로 돌려주마.”
“예...”
드낙 또한 육체 변형을 통해서 숨을 몰아쉬고, 식은땀을 흘렸으며 안색이 새파래졌다.
엠마누엘이 들어오자 순식간에 바뀐 창고의 모습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지친 기색에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드낙을 보고 서둘러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까? 안색이 매우 나쁩니다.”
“조금 있으면 나아집니다. 잠시 쉬고 말을 이어나가겠습니다.”
“예. 혹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저에게 말씀해주십시오.”
디아볼로스가 된 이후 피 한 방울 얻지 못한 엠마누엘이었다. 또한 그는 드낙의 피 때문에 자신이 변한 것도 몰랐다. 그저 드코라르바가 자신의 육체에 뭔가를 했다고밖에 몰랐다.
‘이게 그 실마리인가.’
엠마누엘의 눈에 검붉은 빛의 기둥이 보였다. 엘프의 녹안을 통해서 〈검은 신전〉을 훑었다. 영혼조차도 볼 수 있고, 눈으로 악령을 볼 수 있는게 엘프의 녹안(綠眼)이었다.
기둥 6개. 빛의 기둥 하나.
천장과 바닥은 검은색으로 도금한 것처럼 변해있었지만, 엘프의 녹안으로는 그 너머를 엿볼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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