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78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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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한 번 대단한 분의 실력을 봐볼까?”
“연장자이신 만큼 엄청난 내공을 지니고 계시겠지?”
비아냥 속에서 드낙은 룰을 파악했다. 구조는 매우 단순한 것부터 복잡한 것까지 다양했다. 카드 패를 추가하거나 빼는 등으로 다채로운 변수를 주기도 했다.
‘정정당당하면 패배할 뿐이다.’
머리를 써야 하는 게 카드 놀이다. 확률 싸움이기도 했기 때문에 드낙은 당연히 정공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디아볼로스, 이놈들의 패를 확인해서 나한테 말해라.]
[예.]
그들은 엘프의 자긍심 따위는 사라졌다. 오로지 드낙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며 그 피를 하사받고 싶어하는 발정난 흡혈귀나 다름없었다.
동시에 드낙은 신체의 손과 안력을 높였다. 혹시라도 장난질 하는 놈이 있으면 단번에 잡아챌 생각이었다.
장난질은 시작부터 들어오지는 않았다.
“포기.”
“죽는다고 해야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데.”
드낙은 판에 올린 마력칩 1개를 잃었다. 도박꾼들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눈은 냉철하게 드낙의 이모저모를 파악하기 바빴다.
“오. 이겼다.”
이기게도 해줬다. 한 번 졌으니, 한 번 이기게 해줬다. 그다음에는 2번을 내리 졌다.
“부하들도 끌고 다니면서 뭐 이렇게 작게 놀아?”
마력칩을 단번에 7개를 쏟아부었다. 다음 차례인 드낙이 인상을 찌푸렸다. 계속하려면 칩 8개를 판에 집어넣어야 했다.
뜸을 들이자 곳곳에서 히히덕거렸다.
“또 죽네. 또 죽어. 칩만 질끔 찔끔 싸다가 가려나보네.”
“올인.”
오오.
감탄사가 절로 뿜어져 나왔다. 모두 연기였지만 드낙 또한 웃고 있었다. 저쪽에서 장난을 치지 않았고, 운 좋게 패가 좋았기 때문이며 상대의 패는 모두 디아볼로스들이 보고 있었다.
사람이 모여있었기에 좀 흩어져서 볼 수밖에 없었다. 너무 티나게 있지도 않았다.
드낙의 올인에 제법 동요가 왔다. 결국 마지막까지 버티는 이는 없었다. 이들 또한 규합되지 않은 부랑자들이었고, 같은 패거리가 아니었다. 서로 마력칩을 뜯고 뜯기는 사이에 불과했다.
드낙과 끝까지 승부를 하지 않았기에 드낙은 패를 보여주지 않고, 뒤집은 채로 패를 다시 섞었다. 7개의 마력칩이 순식간에 30개로 불어났다.
“올인.”
다음에 바로 드낙이 패도 보지 않고 지르자 부랑자들이 킬킬거렸다.
“마력칩 10개는 갚고 질러!”
구경하는 부랑자가 소리쳤다. 드낙에게 마력칩을 흔쾌히 빌려준 자였다. 드낙의 수행원이 6명이나 있어서 거침없이 빌려줬지만, 생각보다 드낙이 또라이였다.
“야, 날파리도 이런 날파리가 없다. 자기 패도 안 보고 지르네.”
‘넌 뒤졌다. 30개는 내 것이다.’
다음 엘프가 단번에 50개의 칩을 올렸다. 그다음 차례인 엘프가 지닌 마력칩이 딱 49개임을 알고 저질렀다.
“상도덕이 없네. 누구 없냐? 나 하나만.”
팅 거리는 소리와 함께 마력칩이 판에 올려졌다.
“고맙다. 올인.”
“그게 들어오네.”
구경하던 부랑자들이 한 두마디를 더욱 거들었다.
“누가 날파리인거야?”
“그놈이 그놈이네.”
패가 다시 한 번 2장 추가될 때, 드낙이 엘프의 손을 뒤집었다.
“꺼억!”
눈으로 쫓을 수 없는 속력. 그 속력에 모든 엘프들이 오싹함을 느꼈다. 엘프에게 있어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단련된 엘프라도 엘프는 엘프의 움직임을 볼 수밖에 없었다. 신체스펙이 대동소이했기 때문이다. 체격도 체중도 다를 순 있지만 큰 궤를 달리할 수는 없었다. 하물며 동체 수준을 뛰어넘은 거친 몸놀림은 등골이 서늘케 했다.
팔뚝에 들러붙은 카드를 드낙이 손으로 잡자 옷에서 주르륵 카드가 딸려 나왔다.
철썩!
그대로 드낙이 뺨을 후려갈겼다. 이빨이 튀어나오고, 성인에게 맞은 어린애처럼 바닥을 뒹굴었다.
“......”
찬물이 끼얹어진 것처럼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어디서 장난질이냐? 너희들 다 한 패냐?”
“어어, 전 아닙니다.”
모두 의자를 끌며 뒤로 도망치며 손사래를 크게 휘적거렸다. 하지만 드낙은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엘프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으면서도 잘 먹고 잘살고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놈들이다.
‘괘씸하다.’
누구는 살기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 꼬리에 불붙은 개처럼 달리고 있는데...
“그걸 내가 믿을 것 같으냐?”
쿠당탕탕!
의자가 뒤로 넘어가며 엘프 부랑자가 반항하려고 양손을 들어 올렸지만 결과는 같았다. 박투(搏鬪)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기술은 엘프가 우위를 점하고, 정교함에서도 뛰어날 수는 있어도 힘과 스피드로 팔을 잡고 잡아당기며 그대로 가드를 풀어서 싸대기를 때리면 그만이었다.
‘진지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나한테 충분히 승산이 있지.’
육체를 순간적으로 초월해서 영혼부터 이동시켜 마치 동시에 연격을 쏟아붓는 엘프 특유의 전투술이 아니라면 결코 드낙과 승부할 수 없었다.
하지만!
드낙이 모르는게 하나 있었다.
여기에 있는 집도 가지고 있지 않고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는 엘프 부랑자들은 당연히 그런 각고의 노력을 하지 않았다. 〈육체를 앞서 나가는 정신〉은 무(武)를 단련한 엘프나 가질 수 있는 경지였다.
1,000살 미만의 젊은 엘프의 경우 개정된 엘프 법령을 통해서 강제로 터득하게 수련시키지만, 이들은 그 정도로 나이가 젊지 않았다. 운 좋게 평화의 시대에 태어나서 흥청망청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자들이었다.
철썩!
철썩!
싸대기 한 방에 이빨이 뽑히고, 피가 바닥에 튀었다.
꿀꺽.
“가, 강화 마법도 없이 어떻게...”
무지막지한 힘이었다. 그저 뺨을 맞았을 뿐인데도 누구도 일어나지 못했다. 기절한 엘프도 있었다.
“마력칩을 회수해라. 거짓된 소득을 올리던 놈들이니 불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너!”
드낙에게 마력칩을 빌려준 자가 냉큼 나와서 고개를 숙였다.
“예.”
“너에게는 마력칩 20개를 주마.”
“감사합니다.”
엘프답지 않게 프라이드가 없었다. 경쟁에서 밀려난 엘프다웠지만 드낙은 그게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런 엘프들을 보려고 내가 온 게 아닌데.’
입이 썼다. 이런 놈들은 디아볼로스로 만들 가치조차 없기 때문이다. 대신 드낙은 여기에 작은 독을 풀었다.
“난 진화학파의 드코라르바(Dcolarva)다. 불만이 있으면 날 찾아오면 된다. 하지만 그때는 이런 하찮은 자들로는 그 어떤 사과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쿵!
드낙이 발을 굴렀다. 굉음이 주변 공기를 크게 떨게 했다.
이를 본 엘프들의 입술이 바짝 타들어 갔다.
‘말도 안 된다.’
‘어떤 마력도 사용되지 않았다.’
‘단순 근력으로...공기를 떨게 했...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저자는 엘프가 아냐! 당장 병영에 신고해야 한다. 병사를 동원해야 해!’
엘프 부랑자 몇몇은 의견을 나누고 병영으로 갔고, 그 외의 이들은 이를 정보로 삼아서 심심해하는 엘프들에게 마력칩을 받고 팔 생각을 가졌다.
어찌 되었건 드낙은 자신을 손쉽게 알렸다고 희희낙락해 했다.
반면 디아볼로스 장군 리산드로스는 비릿하게 웃었다. 엘프답지 않게 비열한 웃음이었다.
‘드디어 이 조용한 우물에 독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끝도 없이 깊은 파동 하나 없이 조용한 우물. 날개는 있어도 펼치지 못하고, 지느러미가 있어도 흔들며 맥동치는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고 가라앉아서 썩기만을 기다리는 이 사회에 속한 엘프는 선택해야 했다.
녹아서 죽던가.
녹아서 새로 태어나던가.
양자택일(兩者擇一).
1889세에 불과한 젊은 엘프며 누구보다도 높은 지위에 오르고 싶어 했던 리산드로스의 눈에는 활화산처럼 증오가 타올랐다.
“일단은 호텔로 가자고.”
“모시겠습니다.”
리산드로스가 당당하게 앞장섰다. 전혀 모르는 도시임에도 그는 이 도시를 빠삭하게 아는 듯했다.
“고향은 꿈의 도시인 뭐르만이라면서 지리를 알아?”
“아르만입니다. 그리고 도시의 구조를 외우는 건 사회점수 때문에 필수로 외워야 합니다.”
“사회 점수?”
“예. 반만년 이하의 나이를 지닌 엘프들에게 매겨지는 평가 점수입니다.”
듣기만 해도 X같은 냄새가 풍겨왔다.
‘시벌, 공산당이야, 뭐야?’
자기들은 해당 안 되는데 젊은 엘프는 해당 됨. 황당한 논리였다.
호텔은 대단히 좋아 보였다. 외관은 깔끔했고, 먼지가 하나도 앉아있지 않아서 선명했다. 창문의 윗부분에는 마치 유럽처럼 툭 튀어나온 조각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창문은 매우 길쭉했고 넓었다.
방 하나하나마다 규모가 큰 것처럼 보였다.
“너무 고급스러운데?”
“지금 가지고 계신 마력칩으로 능히 숙박이 가능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당장 마력칩을 만들어서 갈 수도 있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마력칩을 만들어서 가자.”
그 말에 청철 갑주를 입은 리산드로스의 등판에 잘 부착된 백금 카드가 뽑혀서 손에 잡혔다. 그곳에서 금속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바닥에 가서는 단번에 굳어서 동전 형태로 변했다.
드낙은 거기에 마력을 집어넣었다. 접촉할 필요는 없었는데, 무식한 마력과 제어력 덕분이었다.
단번에 수백개의 마력칩을 확보한 드낙이 그제야 안심하고 거대한 규모를 지닌 호텔 안으로 들어섰다.
[여긴 이름이 뭐지?]
[벌꿀의 품격이라는 호텔입니다. 가장 유명한 곳이기도 합니다.]
로비만 해도 규모가 대단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화려했으며 천장은 황금으로 되어있었고 샹들리에는 백색의 마법 등이 켜져 있었다.
“어서오십시오.”
“여기 가격이 어떻게 됩니까.”
드낙이 당당하게 물었다. 그 모습에 절로 카운터의 직원이 인상을 찡그렸다. 이에 리산드로스가 나서며 말했다.
“무례를 저질러서 죄송합니다. 오랫동안 감금되어있었던 엘프 분이셔서...많은 걸 잃으셨습니다.”
[엉? 직원한테 그렇게까지 해야 해?]
[전에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이분들은 그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기에 프라이드가 대단합니다. 직원이 왕입니다.]
‘뭐여, 직원이 왜 왕이야. 손님이 왕인데.’
“죄송합니다.”
드낙은 생각은 그렇게 해도 소시민답게 냉큼 고개를 숙였다. 또 자신이 잘못했기도 했다.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었다. 약자의 훌륭한 변명거리였다.
“사과하셨으니 다행입니다.”
“황금의 앵무새 브로치. 상당한 안목이시군요. 여름이 다가옴을 지저귀는 것을 기원하시다니, 자연의 이치를 존중하시는 분이십니까?”
“네.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고결한 엘프라면 더더욱 이런 시국에 평화를 외치고, 이 세계에 사는 생명체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들 모두가 잉태되는 여름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거침없이 말했다.
“총 7명이 개인실로 묵고 싶습니다. 함께 모여서 식사를 하고 싶은데 제법 큰 방도 하나 대실하고 싶습니다.”
리산드로스가 능숙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꿀벌의 도시에 와서 벌꿀의 품격조차 보지 못하고 간다면 다른 도시에 도착해서도 후회할 것이고 발걸음을 다시 되돌리고 싶어 할 겁니다. 그런 후회의 여행이 되지 않게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대단히 달변가십니다. 이런 품위 있는 분을 홀대할 수는 없지요. 칩은 100개를 받겠습니다.”
드낙은 100개를 지급했다.
[정가야?]
[고객마다 다릅니다. 그래도 조금 싸게는 해준 것 같습니다.]
[아니, 난 정반대에 걸겠어. 바가지야, 바가지.]
그러든 말든 이미 마력칩을 지급한 상태였다.
큰 방을 대여한 곳에서 저녁 식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짐을 개인실에 풀고 일행은 큰 방으로 왔다. 대회실 3번방이었다.
“와. 넓다. 거의 한 층의 절반을 잡아먹는데? 너무 아까운 거 아냐?”
규모는 대단했다. 이런 큰 방을 대실하다니, 드낙은 아까워 죽고 싶어졌다. 반면 다른 이들은 무덤덤했다.
“신께서 머무시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또 저녁 식사에는 몇 분이 더 찾아오실 겁니다. 이를 위해서입니다.”
“아까 했던 그 말이 그렇게 빨리 반응하게 한다고?”
“엘프의 규격을 넘어서는 힘을 보이셨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리산드로스가 확신해 찬 투로 말했다. 또 입을 계속 움직였다.
“엘프의 사회 계급은 반만년 계급, 만년 계급, 5만년 계급, 10만년 계급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정확히는 그 시대의 엘프들이 스스로 구분을 지어놓았습니다.”
5천 살 미만의 엘프는 아무리 나이를 먹고, 계속 살아가도 높은 계급에 도달할 수 없고, 아무리 발악해도 작은 도시의 위원이 되는 게 고작이었다. 그 위원은 그저 심부름꾼에 불과했다.
윗놈이 죽지 않기 때문이다.
“10만년 계급은 정말 정신 나간 것 같은데.”
“인간은 매번 전쟁을 통해서 자신들의 문화와 민족 정체성을 잃어갔으니까요. 대단히 생각하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건 그저 썩어 문드러진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그저...어둡기만하고 움직이지 않는 늪입니다.”
리산드로스가 토하듯이 말했다.
드낙은 괜히 몸이 불편해졌다. 그의 감정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권속이기에 육체에서 육체로 이어지는 감각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절로 나이든 엘프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드낙은 눈을 감고 말했다.
“이왕이면 젊은 엘프로 엘프 사회를 지배하고, 영혼 제국을 털고 싶지만 세상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예. 저도 알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딱 맞는 현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노크를 하며 큰 문의 한쪽을 열며 각양각색의 술이 놓였다. 간단한 안주도 작은 접시에 담겨 올라왔고, 수개의 나이프와 수저가 올라왔으며 고소한 향이 나는 스프도 올려졌다.
“일단은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예.”
드낙은 몸을 일으켜 세워서 술병을 들고 직접 잔을 채워줬다. 디아볼로스들이 매우 공손히 이를 받았다. 드낙은 술병에 이상한 감촉이 들어서 확인했다.
술병 자체에 마법이 깃들어 있었다. 또한 겉에는 금으로 도포가 되어있었는데 여기에도 또다른 마법이 새겨져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화려하네.’
술병에도 마법이 깃들 정도로 마법 아이템이 가치가 적은 세상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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