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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785화 (784/1,239)

강철의 전사 78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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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도시, 데브라(Deborah)

엘프들은 100만 군대를 일으켰고, 전 도시에 존재하는 폭풍의 요람을 차출했다. 그 핵은 엄청난 수준의 마법 건축물에 보호받고 있었지만, 총력전 앞에서는 무력하게 끌려나가야 했다.

야심한 밤에 그 도시를 드낙이 내려다봤다.

“생각한 것보다 번화했다고는 보이지 않는데.”

불 꺼진 도시와 비슷했다. 몇몇 곳에서는 화려하게 마력의 빛이 쏟아져 내렸지만 다른 곳은 암전되어 있었다.

“폭풍의 요람이 차출되었기 때문입니다. 도시마다 단 하나만 소유되는 걸 허락받은 전략 설비가 사라졌기에 도시의 기능도 크게 반감이 된 상태입니다.”

“원래라면 다르다는 소리인가?”

“예. 밤이든 낮이든 빛으로 가득한 도시가 바로 엘프의 도시입니다.”

드낙은 이제 가물가물한 현대의 도시를 떠올렸다.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더욱 옅어지는 기억이다. 그때 살던 박호훈은 지금의 드낙과 같다고 할 수 있을까? 그저 자아만 같다고 여길지도 몰랐다.

거센 파도에 휩쓸려버렸다.

갈대처럼 흔들리는 인간은 거기에 물들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는 내려서 가야 합니다. 엘프 도시는 엄격합니다. 허락된 자들만 날아다닐 수 있죠.”

“누군 되고 누군 안 된다?”

“모두가 날아다니면 사건, 사고도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고의는 타의든 혼잡함 속에 빛나는 단검의 흉악한 칼날을 보는 건 어렵다.

반마(半魔)에 올라서고 다양한 종족으로부터 바쳐지는 업을 통해서 점점 그 격이 미세하게 오르고 있는 드낙의 육체는 악마의 육체. 걸어 다니는 〈초월의 힘〉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성문을 지키는 엘프 경비병들의 말도 멀리서도 들을 수 있었다.

“빌어먹을, 어떻게 된 순번이야? 내가 여기에 올 짬이 아닌데. 난 벌써 1332년차라고. 332년 전부터 경비병 짬밥은 아니다, 이 말이야.”

“모든 게 전쟁 때문이 아닙니까. 그래도 요즘 마력칩의 시세가 높아지는 만큼 그걸 받을 수 있다는 게 중요하지 않습니까.”

“마력칩 배당? 내가 그런 걸 고민할 짬밥이냐고. 내 나이가 1332년이다. 그동안 모아놓은 마력칩으로도 적당히 살 수 있다고. 엉? 라떼는 말이야! 마력칩 같은 건 전혀 생각도 하지 않았어. 그런데 요즘 것들은 마력칩에 미쳐서는...쯧쯧! 그냥 세월이 흐르면 쌓이는 것을...”

거친 입담이 엘프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드낙이 어리둥절했다. 그가 본 엘프는 서로에게 존대하며 서로를 예우해줬기 때문이다. 그 낌새에 리산드로스가 속으로 대답했다.

전화를 걸었다.

[민간 엘프들 중에서는 나이를 먹을수록 뻔뻔해지는 엘프가 많습니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지만, 나이가 적은 엘프에게는 막 대하는 경향이 심합니다.]

강약, 약강의 존재였다.

[민간 엘프? 원정대나 전쟁에 동원되는 이들은 다르다는 건가?]

[그들도 그들 나름입니다. 모든 게 똑같은 엘프지만 성격이나 기질이 후천적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어떤 계기를 통해서도 변할 수 있었다.

[특히나 전쟁이나 원정대에 투입되는 엘프는 젊은 엘프들이라 더더욱 서로를 예우하는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공을 탐하는 고위 엘프의 경우 높은 직함을 지니고 원정대와 전쟁터에 들어서는데 그들의 경우에는 본인의 프라이드만큼 동족들을 크게 대해주는 편입니다.]

[성문을 지키는 경박한 엘프라는건가?]

[지식을 담으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 엘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외로 리산드로스가 작은 분노를 담아서 말했다. 그 또한 젊었고, 절망 속에서 발악했다. 그 프라이드는 적을 마주하며 피에 젖은 언덕 위에 홀로 굳건하게 선 전사만큼이나 컸다.

1332년이나 살았음에도 경비병인 엘프를 하찮게 보는 게 당연했다. 오히려 매우 정당한 분노로까지 보였다.

리산드로스가 백금 카드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주변 대기에서 마력이 응축되며 백금 카드에 들러부터 액화되었고, 액체가 송골송골 맺혔다.

곧 빛이 새어 나왔고, 그것이 경비병 2명에게도 보였다. 단번에 그들이 대화를 멈추고 복장을 고쳐잡으며 자세를 잡았다.

무기는 전통적으로 은색의 할버드였다. 그 길이는 6m가 넘었다. 고대 엘프의 경비병들은 체격 때문이라도 긴 리치의 무기를 선택해야 했다.

전면전을 선택했기에 그들은 청철 갑주를 보유하고 있었다.

전방에 힘이 흘러갔기에, 내부의 힘은 조촐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최신형 무기가 경비병들에게도 전해져야 했다.

‘엘프는 결코 멍청하지 않다.’

힘도 세력도 있었기에 모든 걸 그저 정석대로만 해도 압도적이고, 위협적이었다. 덩치가 컸기에 도박수를 던지지 않아도 괜찮았다.

“패를 보여주십시오.”

“예.”

미리 마력을 집어넣은 백금 카드를 건네줬다. 액체마력은 시간이 지나면 금방 증발하기 때문에 만지는데 거부감은 없었다.

백금 카드에서 푸른 마력이 거미줄처럼 뻗어 나가며 엘프 경비병의 갑주를 지나가 어깨를 타고 올라 머리까지 전해졌다.

엘프 경비병의 녹안에 푸른 거미줄이 번졌다.

리산드로스의 신분이 마력을 타고 정보화되어 뇌에 흘러들어 갔다.

“이름은 어찌 되십니까.”

“리산드로스입니다.”

“나이는 어떻게 되십니까.”

“1889세입니다.”

“고향은 어디십니까.”

“꿈의 도시 아르만입니다.”

“그곳에서 가장 최근에 얻었던 직함은 무엇입니까.”

“제3 무기고 관리장입니다.”

경비병이 교차하며 서로 기대고 있던 은색 할버드를 치웠다. 엘프들의 키에 비해서 지나칠 정도로 비대한 할버드였기에 기괴했다.

“뒤에 계신 다른 분들 또한 신분을 보여주셔야겠습니다.”

“예. 하지만 한 명은 신분패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예?”

“백금 카드가 도입된 지 어연 500년. 하지만 그전에 실종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음! 자세한 사정을 말씀해주셔야겠습니다.”

마력으로 만들어진 백색 새가 허공으로 치솟아서 도시 내부로 들어갔다. 경비부대장을 부르기 위함이었다.

곧 그들은 다른 경비병에 인도되어서 병영으로 향했다. 병영에서 조사실로 향했다. 오직 드낙만 들어갔다. 다른 이들은 다른 곳에서 똑같은 질문을 받게 될 터였다.

“드코라르바 씨. 500년 전에 실종이 되셨다고.”

“예.”

“일단은 피부터 뽑아도 되겠습니까? 연금술을 통해서 엘프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작업을 하겠습니다. 이를 통해서 나이 또한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엘프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건 동족임을 확인하는 것과 나이였다.

살아온 세월이 모든 것을 정하는 가치였다.

그 외에는 자잘한 지식의 차등. 말 그대로 논공행상을 통해서 베풀어지는 지식이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계급을 만든다.

고로 드낙의 나이를 가장 먼저 신뢰 있는 연금술을 통해서 파악하는 게 먼저였다. 엘프 사회에서 가장 발달한 지식과 기술이 바로 ‘엘프 나이 추정’이었다.

드낙이 자신의 피를 한 방울 떨어뜨렸다. 당연히 악마적인 변형을 통해서 순수한 엘프의 피였다. 초월자의 경계에 선 악마가 엘프의 순정한 피도 따라하지 못하면 악마가 아니었다.

‘병신이지.’

또옥.

피가 떨어지자마자 녹색의 빛이 일어났다.

“순수한 엘프시군요. 나이는...”

피는 번지고 번져갔다. 아주 얇게 번지고 마치 막처럼 변했으며 색도 옅어졌다. 곧 아래에 푸른 마력을 통해서 숫자가 적혔다.

“3...3100살...최대 위원급이십니다.”

병사는 제법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상류층의 가장 밑바닥인 위원급이다. 중간관리의 최고봉이 바로 위원이었다. 그들 중 가장 젊은 이가 3천 살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났습니까. 인간에게 억류되어있던 세월이 500년이군요.”

드낙이 참담한 표정을 했다.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다.’

병사는 실로 그 참담함에 동의했다.

나이가 많아도 결국 500년을 공으로 보냈고 그 덕에 모든 게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며 그간 발달한 엘프의 지식을 따라잡아야 했다. 아득할 터였다.

“500년 전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전, 인간이 지닌 변수에 큰 관심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너무 겁도 없이 굴었고 잡혔습니다.”

“아...”

엘프의 시대상과 절로 맞물리는 개인사였다. 그냥 고개가 바로 끄덕여졌다.

마도 사회도 무르익고, 발전 속도는 매우 더뎌졌다. 그리고 엘프는 다른 외적인 부분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게 딱 그 시대였다.

“실제로 드코라르바 씨처럼 그때 엘프의 실종 수가 상당합니다. 대부분 자결했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고결한 엘프였다. 갇혀서 지식을 토해내는 것보다는 그냥 자결하는 게 동족을 위하는 길이었으며, 위대하고 고결한 엘프다운 길을 선택했을 터였다. 노예가 되기보다는 죽음을 선택했다.

“제 정신력은 남들보다 강인해서 그 어떤 것으로도 굴복시킬 수 없었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그저 운 좋게 도망칠 수 있었고, 그간 숨어서 지냈습니다. 너무 인간 세상에 깊이 들어와서 쉽게 엘프 쪽에 갈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날아가면 그만 아닙니까?”

“예. 하지만 정신적 피해가 너무 커서 마력을 끌어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저런...”

드낙은 능숙하게 구라를 쳤다. 7명이 머리를 싸매서 만든 캐릭터 배경이었다. 병사 하나 병신으로 만드는 건 쉬웠다. 비단 그뿐만 아니라 모두 속을 터였다.

“새로운 신분패입니다. 요즘에는 대부분의 것들이 이 백금 카드를 통해서 저장, 변환이 됩니다.”

“예. 감사합니다.”

드낙이 백금 카드를 받았지만, 병사가 놓아주지 않았다.

“무슨...”

“아. 죄송합니다. 그냥 가져가시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말씀을 안 드렸군요.”

“네?”

드낙이 얼빵한 표정을 지었다. 실로 엘프답지 않은 백치미였다.

“여기에 마력을 집어넣으세요. 반발력이 느껴지면 멈추시면 됩니다. 천천히 마력을 아주 느긋하게 부여하세요. 잘못하면 더 마력을 주입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안 돌려드립니다.”

“네.”

드낙은 천천히 양손을 대었다. 그저 평평한 철판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손을 대자마자 흡착력이 느껴졌다. 매우 신기한 기구였다.

마력을 부여하자 마력조차도 당기는 느낌이 상당했다. 그 느낌은 서서히 사그라들었고 이내 반발하기 시작하자 드낙이 마력을 부여하는 걸 멈췄다. 수치를 확인한 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백금 카드 값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신분패가 든 백금 카드라 그나마 가치가 작습니다.”

“네. 그럼 이제 가봐도 됩니까?”

“예. 휴가자들과 함께하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저희가 도울 일은 없는 듯합니다.”

“휴가자들?”

“리산드로스와 5명의 엘프 전사들 말입니다. 전쟁에서도 차례차례 휴가자들을 본국으로 보냅니다. 들어보니 실로 자비로운 총사령관을 두었습니다. 나이를 구간별로 나누어서 젊은 엘프도 섞여 있다니.”

운이 좋군.

그렇게 말하며 병사는 그들을 병영 밖으로 인도했다. 좋은 사령관을 만나기 위해서는 운이 좋아야 할 정도로 엘프 사회는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하나?”

“호텔을 잡으셔야 합니다. 다른 도시에 온 엘프들이 머무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걷기 시작했을 때, 대로의 한쪽에서 나무 밑에서 불빛 하나를 두고 엘프들이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척 봐도 10명 이상 모여있는 게 심상치 않았다.

“나이도 많은 새끼가 어디서 개수작이야? 그 틀니라도 내가 압수해줄까?”

“이거 생니야, 이 나이 말아먹은 년아.”

‘정말로 심상치 않은데?’

틀딱이 모든 사회의 힘을 쥐고 있는 경직된 피라미드 사회가 엘프 사회였다. 그런 사회에서 나이가 많은 사람을 욕한다? 심상치 않았다.

드낙이 절로 흥미가 생겨서 그곳으로 향했다. 리산드로스를 비롯한 다른 디아볼로스는 그를 막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일상이었다.

[저들은 왜 저렇게 입이 험해? 나이가 많은 엘프한테 저래도 돼?]

[엘프 사회에서도 버려진 자들입니다. 신경 안 쓰시는 게 좋습니다.]

[그럼 전쟁에 동원되는 게 보통 아닌가?]

[200살 이후로부터 나이가 적은 엘프부터 전쟁에 징집되기 때문에...]

[아하.]

정말로 나이가 깡패인 사회였다. 뭐든 것이 나이순이었다.

‘정말 미친 사회야. 죽는 엘프가 적어지니까, 정말 돌아버린 사회가 되어버렸어.’

드낙이 도박하는 엘프들을 바라보았다. 흡입하는 마약 도구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이들은 마력이 담긴 칩을 통해서 도박을 하고 있었다.

[호텔로 가자.]

[예.]

“뭐여, 시벌? 너 나이 몇인데 구경만 하고 그냥 발을 빼냐?”

욕지거리하며 년놈을 지껄이던 놈이 드낙의 앞을 가로막았다. 드낙을 제외한 나머지 6명의 디아볼로스가 흉악한 표정을 지으며 무기에 손을 올렸다.

반면 드낙은 시원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좀 할 줄 몰라서.”

“손이 없어? 손만 있으면 누구나 카드놀이는 할 수 있지.”

그 말에 드낙이 몸을 돌려서 거침없이 자리에 앉았다.

“룰만 설명해주고 바로 해보자고.”

“마력 칩은?”

“10개만 빌려줘.”

“와하하하!”

엘프 부랑자 10명이 크게 웃었다. 부랑자라고 해도 옷차림은 전혀 더럽지 않았다. 마력만 있으면 그냥저냥 살 수 있기 때문이고, 마력칩을 모으는 것도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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