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전사 78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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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들이 그곳에 들어섰다.
“크윽...난 아냐! 풀어줘!”
꼼꼼히 속박된 엘프들을 만지고 드낙인지 확인했다. 하지만 드낙은 분명히 존재했지만, 그들에게 보이지 않았다.
속박된 마지막 엘프까지 확인했다. 드낙은 없었다. 하지만 드낙은 존재하고 있었다. 모든 엘프가 그 모순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머리가 이상해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흐, 흐흐.”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신이 붕괴할 것만 같았다.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거기서 드낙이 한층 더 진화했다.
악마의 재능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재능이 화려하게 꽃을 피워냈다.
그저, 『암살』 하는 것만으로도 한계를 돌파하고, 돌파하고 계속 뚫고 나갔다. 그 순간, 드낙은 중립신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절로 입에 미소가 피어올라 왔다.
“정보 마법에도 더는 보이지 않는다! 그가 뭔가를 했다!”
“더, 더 많은 힘을 정보 마법에 투입해라!”
꽈작!
그렇게 말한 자의 청철 갑옷이 박살이 나며 심장에 그대로 꿰뚫렸다. 피를 쏟아내며 쓰러졌지만, 누구도 드낙을 본 자가 없었다.
정보 마법에도 안 뜨면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짧은 순간에 드낙은 정보 마법에 자신이 색적되는 걸 헤쳐나갔다. 단번에 해결한 것이다.
무시무시한 재능이 발휘되었다는 증거였다.
신에게조차도 자랑할 수 있는 드낙이 움켜쥐고 있는 단 하나의 재능이 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암살의 재능.
미브로스 리꼬와 조금만 얽혀있었음에도 그의 수법을 단번에 이해하고 체득(體得)했다. 그것만 봐도 드낙이 지닌 재능은 대단했다.
반마(半魔)가 되면서 그 재능은 가만히 있었음에도 자연스럽게 격상했다.
칼질 한 번 하지 않은 손으로도 검술의 정수를 찌르는 천재처럼, 굳이 암살 기술을 연마하지 않아도 이미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고 있었다.
그 군더더기는 엘프들을 잘라내면서, 죽이면서 단번에 떨어져 나갔다.
더는 정보 마법으로도 드낙을 찾을 수 없었다.
아예, 엘프들의 인식 범위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제 그만.”
드낙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누구도 드낙을 찾을 수 없었다.
덜덜덜.
딱딱딱.
처음으로 맛보는 공포에 무너뜨린 엘프들이 몸을 떨고, 이빨을 부딪쳤다. 오한이 척추 끝까지 가득 차올랐다.
“대충 알았다. 너희들의 수준.”
힘을 합치면 초월의 힘 그 자체는 압도적으로 많아진다. 하지만 그 방향이 드낙에게 향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었다.
점, 면, 공간 그 자체에 초월의 힘이 영향을 뻗쳤음에도 드낙을 잡을 수 없었다.
“시시해서 죽고 싶어졌다. 내가 두려워하던 놈들이 설마 이정도라니... 너희들을 내가 너무 과대평가했다. 싸울 마음조차도 사라질 지경이다.”
목소리는 한 단어, 한 단어마다 엉뚱한 곳에서 들려왔다. 그 누구도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그럴 수 없어서였다.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드낙의 한 단어 때문이었다.
마치, 목에 칼이 닿은 듯했다.
생명체가 지니는 극한의 집중력이 펼쳐졌지만, 드낙을 찾을 수 없었다.
드낙은 그런 엘프들을 가만히 서서 바라보았다.
이미 모든 게 끝났다. 하지만 검은 그대로 쥐고 있었다.
‘암살이란 무엇인가.’
몰래 사람을 죽이는 것을 암살이라 부른다. 흉수를 못 찾는 게 암살이다.
‘암살의 극의.’
그런 암살의 정상에 선 자는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을까. 거기서 출발하면 드낙이 지닌 암살의 알고리즘을 파악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보이지 않아야 한다.’
서로 마주하고 있음에도 상대는 자신을 보지 못해야 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드낙은 가능했다.
그의 암살 재능은 세파리아스와 비견될 수 있었고, 세파리아스조차도 드낙이 제대로 단련하지 않은 암살 능력을 고평가했다.
그런 자가 반마(半魔)가 되었다.
악마는 육체의 힘이다. 육체를 소모해서 초월의 힘을 사용하는 상위 종족이다.
즉, 현실의 육체에 관여하는 바가 반신(半神) 나아가 신(神)보다 더 컸다.
드낙은 자신의 육체를 변형시켰다. 이미 투창을 하기 위해서 육체를 변이시키기도 했던 드낙이었고, 자신의 피를 이용해서 조잡하지만 3체의 하급 악마를 만들기 위해 육체를 구성한 적도 있었다.
타인의 육체를 조잡하게 만들었지만, 그 경험치는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왔다.
또한, 다른 사람은 조잡하게 만들어도 자신의 특기가 녹아든 육체를 구성하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눈을 감아도 그릴 수 있었다. 손을 놓아도 구상할 수 있었다. 털 하나하나까지. 모든 육체 설계도를 떠올릴 수 있었다.
둔재(鈍才)에 불과한 드낙이 그 정도까지 엄청난 디테일을 보유할 정도로 그가 지닌 암살 재능은 대단했다.
고로, 드낙이 새롭게 만든 육신을 볼 수 있는 엘프는 존재하지 않았다. 암살의 정수가 깃든 육체였으며, 드낙이 그 육체를 운용했다. 그게 말도 안 되는 풍경을 만들었다.
속박 마법에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엘프 군중 속에서 이를 피했다.
엘프가 스스로 자신들에게 구역을 정해서 속박 마법을 했을 때나 걸릴 수 있었지만, 그런데도 볼 수 없었다. 드낙과 눈이 마주쳐도 인식하지를 못했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드낙은 인간의 탈을 벗은 존재였다.
가장 중요한 점은 업(業)을 운용할 줄 안다는 점이었다.
드낙이 변형시킨 반마의 육신은 〈권능〉이 스며든 육체와 같았다. 육체 자체에 능력이 녹아 있었다. 드낙이 가진 암살의 재능이 녹아든 육체였다.
그 육체는 그 자체로 드낙의 암살 재능이 부여된 몸이 되었다.
이것은 드낙의 여덟 번째 권능이라고 부르기에 적합한 수준이었다. 〈반마의 암살 육체〉는 강력한 권능이었다. 찰나의 순간에 변형시킨 육체였음에도 권능이라 여기기 충분했다.
그 결과 권능이 부여된 드낙의 육체 그리고 드낙의 재능 그 모든 것이 녹아서 이 기괴한 상황을 만들어냈다.
적어도, 드낙을 볼 수 있는 자는 반신급(Demi-god)은 되어야 했다.
‘격(格)이 낮은 자들은 볼 수 없고, 수준이 낮은 자들 또한 날 볼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인식력과 실력을 지닌 자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초월의 힘만 많은 멍청이만 가득했다.
수재(殊才)급의 재능으로는 드낙의 암살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인간이나 엘프가 지금의 드낙 육체를 보려면 세파리아스는 되어야 했다.
‘힘은 힘일 뿐이지. 하지만 난 그런 정면승부는 하지 않는다. 격과 실력이 안 되면 날 볼 수 없는 육체를 만들었다.’
다만, 정보 마법에는 걸려들었던 게 드낙이었다. 유일하게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드낙은 구역 전체를 때리는 속박 마법 앞에 무력하게 당하기도 했고, 자신에게 표적이 찍히는 걸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발악해도 거기는 벗어날 수 없었다.
‘아!’
그러나 암살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드낙은 그 파훼법도 읽어냈다.
천부적 재능을 지니고 있었기에 암살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산 하나를 넘고, 대해를 건너며 얻을 깨달음을 획득할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이 수천 번, 수만 번을 수련하고 실력 있는 자들에게 들어가서 고개를 조아리며 가르침을 한 마디라도 받으려고 노력할 때, 그냥 사람 하나 죽이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암살자가 드낙이었다.
‘무너뜨린 엘프는 결국, 내 피를 받아들인 놈들이다.’
그들에게는 이미 피의 거미줄로 드낙과 연결되어있었고, 그 심연을 통해서 서로 마주 볼 수 있었다. 정보 마법을 사용하고, 유지하고 있는 엘프에게 간섭해서 능력을 부여해주면 그만이었다.
정보 마법에 대한 재능을 거세하고, 정보 마법에 대한 인식률을 떨어뜨리는 능력이었다. 동시에 드낙은 이를 통해서 순식간에 무너뜨린 엘프들이 자신을 보지 못하는 능력도 내어줬다.
능력이라고 하기에는 독약이나 다름없었다.
그 결과 드낙은 이들이 시시해졌다. 마찬가지로 엘프들을 포용할 힘을 획득했다. 〈보이지 않는 드낙〉의 능력을 얻은 무너뜨린 엘프는 드낙을 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개개인의 무너뜨린 엘프와 드낙의 차이는 심각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놈들은 나를 너무 과소평가했어.’
무너뜨린 엘프들은 드낙의 맹점을 찔렀다고 희희낙락해 했다.
배반했다면 가장 먼저 모든 걸 쏟아부었어야 했다. 드낙과의 연결고리부터 잘라야 했지만 그 누구도 그렇게 하지 못했으며 지금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평범한 엘프로 돌아갈 수 없다는 본능 때문이다.
움켜쥔 돈을 놓지 않으면 팔이 잘리는데도 못 놓는 것이다.
그렇기에 드낙은 이들이 시시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시시하다, 시시해.”
무너뜨린 엘프들은 도망칠 생각도 하지 못했다. 도망쳐봤자 소용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드낙에게 반기를 들었을 때부터 뒤가 없었다.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어디를 가든지 찾아낼 것이다.’
드낙과의 연결고리를 끊어도 하급 악마로서의 존재는 약화되지만 확실하게 그 흔적은 남는다. 반마(半魔)가 동족의 냄새조차도 못 찾을 리 없었으며 드낙은 천부적 암살자이기도 했지만, 천부적 사냥꾼이기도 했다.
엘프들은 드낙이 지닌 재능을 깨닫고 있었다.
“도망쳐봐라. 왜 도망을 안 치지?”
“살려주십시오! 뭐든지 하겠습니다!”
무너뜨린 엘프 하나가 큰절을 올리며 순식간에 태세를 전환했다. 그 모습에 드낙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으허, 허허허허!”
황당함이 묻어져 나왔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드낙 또한 자신이 얼마나 큰 위험에 맞닥뜨렸는지 잘 알고 있었다. 여기서 암살의 꽃을 피우지 않았다면 그냥 그걸로 끝났을 터였다. 중립신이 도와줬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이것도 예상했을지도 모르지.’
중립신이라면 가능했다. 하지만 드낙의 재능이 반마의 육체를 통해서 꽃을 피우는 건 제법 놀랐을 게 분명했다. 그 순간 중립신의 시선을 느낀 것이 드낙이었다. 자신을 위협적으로 보는 게 안 즐거울 리가 없었다.
제법 짜릿했다.
다른 무너뜨린 엘프들도 저항을 포기하고 무릎을 꿇었다.
똑똑한 이들답게 이것이야말로 유일한 살길임을 알았다.
드낙은 그런 그들을 보며 천 명에 달하는 무너뜨린 엘프를 처참하게 죽였다. 아이기디우스를 비롯한 천 명의 반골집단이 목숨이 그대로 달아났다.
또한, 50명의 엘프 위원들도 참살당했다.
잠깐 뿐이라고 해도 완장을 찼다. 충분히 혼란을 유도해서 막을 수 있었다. 의견이 갈리면 드낙을 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가장 괘씸한 놈들.”
동시에 고위 엘프 150명 중 단 1명을 제외하고 모조리 쳐 죽였다.
드낙은 이 모든 이들을 손수 죽여서 그 업을 모조리 취했다. 중립신은 그중에 3할만 가져갈 수 있었다. 드낙이 직접 죽였기 때문이다. 본래는 반반이었지만 상황에 따라서 차이를 낼 수 있었다.
‘사, 살았나?’
엘프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때 드낙이 명했다.
“10명씩 짝을 지어서 제비뽑기해서 1명씩 뽑아라.”
피는 아직도 더 흘러야 했다.
13850명이 제비뽑기를 했고, 그 중 1,385명이 차출되어서 목이 달아났다.
살아남은 무너뜨린 엘프의 숫자는 12,465명이었다.
“10명씩 짝을 지어서 1명씩 전처럼 뽑아라. 내가 지명한 6명은 제외다.”
드낙이 거침없이 6명을 가려냈다.
“으. 으으...”
11,214명이 남았고, 거기에 6명이 들어가서 11,220명이 되었다.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고, 머리통이 돌아다녔다. 피가 흙과 뒤섞여서 진창이 되었으며 무릎을 꿇고 있는 엘프들을 적셨다.
진동하는 피냄새는 엘프들의 코를 마비시킬 정도였고, 하늘 위에는 까마귀떼가 나타나 땅에 내려앉아 고개를 갸웃거리며 간을 봤다.
‘이제 끝이겠지.’
‘우린 아직 이용 가능성이 있어.’
“남은 10명씩 짝을 지어서 1명을 뽑아라.”
드낙이 더욱 간결하게 말했다.
“으...”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엘프들 중 몇몇이 주먹을 말아쥐었다. 드낙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저 분노.’
‘저 오만함.’
무력하게 죽어가는 현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기는 저 고결한 마음.
저걸 부러뜨려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드낙이 움직임이 일어나는 무너뜨린 엘프를 죽이지는 않았다. 그저 저 움직임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 죽일 생각이었다.
스스로 목을 내놓는 엘프의 숫자는 갈수록 줄어들어 갔다.
그들 숫자가 줄어들어 갔기 때문에 한 번에 나오는 엘프의 숫자가 줄어들어 갔다.
그 숫자는 무너뜨린 엘프의 숫자가 5,500명이 될 때까지 줄어들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더는 불경한 마음을 품은 엘프가 나오지 않아서였다. 그제서야 드낙이 검을 들어올렸다. 그동안 파악해놨던 고결한 엘프의 목을 모조리 쳤다.
자신이 뭔가 이 세상을 위해서, 엘프를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 뭔가 할 수 있다고 여기는 혁명가들을 죽였다.
운이 좋아서 남아있던 놈들이다. 그 숫자는 500명에 달했다.
그 결과 고작 30% 남짓한 엘프만 살아남았다.
이들은 그들 동족의 시체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그럴 필요가 있었다.
“너희들은 더는 엘프가 아니다. 다시 태어난 악마(Reborn Diabolos)다. 디아볼로스라 칭하겠다.”
엘프의 고리를 완전히 절단하기 위해서 드낙은 엘프라고 칭하는 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악마적인 단어를 썼다.
디아볼로스 5천 명은 그렇게 피구덩이 속에서 다시 태어났다. 드낙이 이들에게 가장 먼저 명령한 것은 동족을 먹이는 짓이었다.
“먹어라. 더 이상 이들은 너희들의 동족이 아니다. 이들의 시체를 먹고, 피를 마셔라. 그게 디아볼로스다. 그게 너희들이며, 나의 권속이 되는 진정한 증명이다.”
주변이 조용해졌다.
누구도 먼저 나서지 못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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